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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사진가였던 당신에 진 빚을 어찌 갚을까요

'저항하는 진실' 최민식 사진작가를 애도하며

등록|2013.02.13 11:29 수정|2013.02.13 15:58

▲ 1928년 북녘 땅 황해도에서 태어난 최민식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리얼리즘 사진작가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 김진형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유품, 1976년생 기계식 완전수동 카메라 Pentax MX는 오늘의 내가 가진 정서, 그리고 세상을 향한 시선과 상당히 많이 닮았다. 어린 시절 그리고 청소년 시절의 가난함과 지난함을, 그래도 나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내게 남겨주신 아버지의 유품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MX를 유실한 뒤 한동안 극심한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겨울방학 때 시작했던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통해 맨 처음 구입한 사치품 역시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는 중고 MX다. 렌즈를 통해 바라본 세상의 리얼리티는 치열하였으나 감당할 만한 것이었고, 객관적 슬픔 너머 따뜻한 관조적 시선도 가질 수 있었다.

카메라를, 사진을 좋아한다는 것과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난 전자에 가깝고, 사실 사진을 잘 찍지 못하여 스스로 좌절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좌절에 머물지 않고 렌즈로, 카메라 앵글 속에 사람을, 세상을 담아내는 것을 이토록 좋아하는 것은, 최민식에게 빚진 바 크다.

저항하는 진실, 최민식의 리얼리즘

▲ "나의 사진은 세상을 향한 발언이며 싸움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행위는 증오가 아니라 사랑을 위한 것이다." ⓒ 김진형


1928년 북녘 땅 황해도에서 태어난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리얼리즘 사진작가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작품성을 인정받아 영국의 "Photography Year Book"에 사진이 수록되고 '스타 사진가'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늘 고독한 작업에 천작할 수밖에 없는 비주류 사진가였다.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열정적으로 렌즈에 담아낸 까닭이다. 독재정권 시절에는 극빈층을 너무나 선명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작품들을 압수당하기도 했다. 1968년 사진집 <인간> 1집을 출간한 이후, 연작 시리즈 <HUMAN 인간>은 14집까지(최근에 1-14집까지의 사진 중 490여 점의 사진을 선별하여 <휴먼 선집>이 발간되었다), 그리고 30여 권의 에세이를 펴냈다. 

최민식의 화두는 언제나 '인간, 그 가난한 존재의 진실'이었다. 한국전쟁 직후부터 군부가 장악했던 1960년대, 민주화 투쟁으로 뜨거웠던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가 담아낸 사람들은 지극한 비루한 현실 속에서도 희극적 요소가 내재된 어떤 역동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권력은 늘 왜곡된 허상으로 군중을 호도했지만, 최민식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비루한 사람들의 진실을 담아냈다.

"나의 사진은 세상을 향한 발언이며 싸움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행위는 증오가 아니라 사랑을 위한 것이다. 나는 사진을 통해 사람들에게 사랑과 분노, 그리고 용기와 희망을 주고자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말을 믿는다."(<사진이란 무엇인가>, 6면)

"나는 열정을 갖고 사회정의를 위해 누구에게라도 뒤지지 않을 만큼 사진을 통한 투쟁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또한 나 자신이 가난을 뼈저리게 경험했기에 누구보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창작해 왔다고 생각한다."(<사진이란 무엇인가>, 256면)

또한 치열한 삶의 현장을 두 어깨 들썩이며 살아가는 땀내나는 사람들의 적나라한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때로 처절하고 참혹한 풍경이, 때로는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잠든 아이가 담긴 쓸쓸한 풍경은, 사진을 읽어내는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한다.

"가난과 불평등 그리고 소외의 현장을 담은 내 사진은 '배부른 자의 장식적 소유물'이 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가난하고 누추한 삶의 진실을 사랑하는 나는 호화주택에서 사치스럽게 생활하는 졸부들에 비해 가난한 서민의 진실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하여>, 7면)

'결정적 순간'에 생의 본질은 복원된다

▲ "씨앗들 속에 아이도 씨앗처럼 누워있습니다. 뚜껑을 들썩이고 쉭쉭 김 내뿜으며 희망은 부풀어오릅니다." ⓒ 김진형


그의 사진들에서는 '포즈'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치열한 리얼리티을 담아내고자 했다. 사진은 대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된 존재가 스스로 가치를 구현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따라서 진실한 사진이란 '끊임없이 현실을 발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그는 사진을 찍고 나서 트리밍이나 포토샵 같은 작업을 절대로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가난하거나 힘이 없어도 인생의 고난 앞에서 굴하지 않는 우리 이웃의 모습을 찍어왔다. 우리의 가난한 이웃의 모습에는 가식이 없고 진실만이 가득하다. 나는 그 진실한 모습을 작품화했다. 나는 사진예술의 기본 미학을 사실주의라 생각한다. 현실을 직시해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사진이란 무엇인가>, 262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결정적 순간이란 빛과 구도와 감정이 일치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최민식은 '시간과 공간이 일치하고 이에 따르는 의식이 흐름이 하나로 맞아떨어진 바로 그 결정적 순간'에 생의 본질은 복원된다고 하였다.

최민식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신문 돌리는 외팔이, 쌍둥이 아이들에게 허연 젖가슴을 물린 엄마, 잘려나간 두 발 대신 손수레에 의지하는 거리의 남자, 거리에서 잠이 든 노파, 시위하는 무리들, 장터에서 흥정하다 싸움 붙은 여인들은 저마다 위태로운 존재들이나 치열한 생존 본능으로 저마다의 결정적 순간을 살아낸다. 그래서 최민식의 사진에 세밀하고도 명민한 언어를 입힌 하성란 작가는, 자칫 아득한 절망으로 오해받을지도 모를 사진들에 '소망, 그 아름다운 힘'이라는 합당한 제목을 지었다. 

"거뜬히 한 세월 재주 넘어 건너뛸 수도 있지만 견디며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씨앗들 속에 아이도 씨앗처럼 누워있습니다. 뚜껑을 들썩이고 쉭쉭 김 내뿜으며 희망은 부풀어 오릅니다. 돌아보면 햇빛 아래 속을 꽉 채운 우리의 삶이 익어 갑니다. 깊어집니다."(<소망, 그 아름다운 힘>, 206-214면)

최민식(1928.3.6-2013.2.12)을 애도함

▲ 나에게 사진 찍는 법이 아니라, 사진으로 담아내야 할 진실의 가치를 가르쳐준 선생 최민식의 죽음에, 나의 가녀린 추억들이 슬픔에 잠긴다. ⓒ 김진형


2013년 2월 12일, 시대에 저항했던 불온한 사진가 최민식이 생을 마감했다. 나에게 사진 찍는 법이 아니라, 사진으로 담아내야 할 진실의 가치를 가르쳐준 선생 최민식의 죽음에, 나의 가녀린 추억들이 슬픔에 잠긴다.

때로 나의 사진은 현실을 미화시키고 왜곡된 추억으로 과장된다. 디지털카메라는 '한 컷'의 소중함을 도무지 알지 못하여 '결정적 순간'을 좀처럼 맞이하지 못한다. 사진 잘 찍는 비법을 알려주는 수많은 책들은, 최민식이 금기시했던 트리밍과 포토샵의 편법에 의지한다.

오늘, 불현듯 들이닥친 이 슬픈 소식 앞에, 나의 궁색한 변명은 오갈 데 없이 처량하다. 아, 나는 그에게서 너무 멀리 떠나 있었다. 진실에 의지하여 평생 불의에 맞서 투쟁했던 그의 사진집을 한 장 한 장 애달픈 마음으로 고이 쓰다듬어 간직한다. 그가 그토록 지켜내고자 했던, 후마니타스적 리얼리즘은 결국 진실에 닿아 누군가의 굳건한 희망이 될 것이다. 나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내 사진은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을 향한 돌온한 발언이며, 저항에 다름 아니다."(<소망, 그 아름다운 힘>, 6면)

▲ "사랑이 어둠을 역전시킵니다." ⓒ 김진형


덧붙이는 글 저의 블로그(http://soli0211.tistory.com)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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