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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어려워요? 이 책을 보세요

[서평] 이남곡의 <논어,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

등록|2013.02.13 14:44 수정|2013.02.13 15:43
당신은 <논어>를 완독한 적이 있는가. <논어>는 동양 고전의 정수이자 중국의 위대한 고전으로 평가받는 책이다. 유교의 주창자인 공자(孔子:BC 551~479)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유교 경전을 가르칠 때 맨 처음 다뤄지기도 한다. 그러니 동양 3국의 변방에서 유교 문화의 자장권 아래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 읽어봤음직 하지 않는가.

하지만 주변에서 <논어>를 온전히 읽어낸 이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당연히 <논어>가 포함된 사서오경(四書五經)을 통독한 사람은 더욱 드문 것 같다. 어찌 보면 그 방대한 저작을 통독하는 일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도대체가 그 책들을 읽으면서 우리 시대와 맞는 구석을 찾아내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6년 전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한 선배 교사에게서 사서오경 한 질을 얻은 적이 있다. 모두 13권으로 분간된 12만 원짜리의 이 거질은, 1983년에 '한국서적공사'라는 거창한 이름의 출판사에서 나왔다. 세로쓰기 조판이 낯설기는 했지만 그리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20여 년 전만 해도 세로쓰기 책들은 결코 낯설지 않았다. 행간 간격도 제법 넓어 읽는 맛이 시원할 듯했다.

이삿짐을 싸느라 분주한 선배 집에서 책을 받아 차로 옮겨갈 때만 해도 내 가슴은 잔뜩 부풀어 있었다. '그동안은 완질이 없어서 제대로 못 읽은 거야. 이번에는 확실하게 사서오경을 읽어낼 수 있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그 부푼 바람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런저런 일들에 치여 바빴던 까닭도 있었지만, 세로쓰기로 되어 있는 본문의 글자들을 내 눈길이 제대로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역자의 해설과 본문 구절의 의의를 당최 알기 힘든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배경 지식이 없이 계속 읽어나가다가는 시간만 낭비할 것 같았다. 사서오경의 완독 프로젝트는 채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이 책 <논어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은 유교나 공자에 대한 특별한 배경 지식이 없이도 공자 사상의 고갱이를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점은 특히 커다란 10개의 주제로 장을 나눈 후 <논어>의 관련 구절을 해설하고, 이를 오늘날의 현실에 적용하여 살피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내용 체제를 통해 좀 더 확실하게 드러난다. 무미건조한 번역문과 이에 대한 기계적인 해설로 되어 있는 기존의 주해서들과 다른 점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유행처럼 번진 동양 고전 새로 읽기 버전의 하나로 볼 만하다. 이들 버전은 원문의 충실한 번역보다는 주해자의 독특한 관점과 해석을 우선시하는 고전 독법을 선호한다. 또한 고전 텍스트 자체의 논리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 관련되는 지점을 파악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것은 유교 경전의 전통적인 권위를 중시하는 이들이 쉽게 눈살을 찌푸릴 수 있는 방식이다. 이들은 고전의 권위를 쉽게 변하지 않는 교조(敎條), 곧 도그마에서 찾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전이 진정한 의미의 고전이 되는 데에는 그러한 도그마를 벗어나는 일이 필요한 것 아닌가.

요컨대 고전은 그 해석의 관점과 독해의 주안점이 중요한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텍스트, 그래서 기존의 권위적인 해석에 반기를 드는 독법이야말로 하나의 텍스트를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는 조건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논어>라는 하나의 텍스트가 어떤 식으로 새롭게 읽힐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논어>를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기존의 어떤 이미지와도 겹치지 않는 것이었다. 제목부터가 그렇지 않은가. '논어,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이라니! 과거의 저자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공자는 봉건 군주제와 가부장제를 옹호한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 사람이 어떻게 '아집이 없는 자유인, 실사구시의 과학적 인간, 화공동진(和光同塵: 빛을 감추고 티끌 속에 섞여 있다는 뜻으로, 자기의 뛰어난 지덕을 나타내지 않고 세속을 따름을 이르는 말)의 현실 참여적 인간 그리고 소통의 달인'으로 이해될 수 있었을까.

이것은 해석과 독법 여하에 달려 있다. 물론 그 해석과 독법이 원전의 본디 뜻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예를 통해 보자. 당신은 중용(中庸)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중(中)'이 '가운데'를 뜻하니, 중용은 이도저도 아닌 중립, 또는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자세나 태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알고 있지 않는가.

공자는 옹야 편 27장에서 '중용의 덕은 지극한 것이다(중용지위덕야 기지의호)'라고 말했다. 중용 또는 중도에서 중(中)은 가운데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딱 들어맞는'이라는 의미가 더 적합하다. 그 시점에 가장 잘 들어맞는, 즉 '적중(的中)'하는 것을 뜻한다. 단순히 극단을 취하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중용이나 중도는 '진리란 무엇인가?', '참이란 무엇인가?', '지금의 현실에서 무엇이 가장 옳은가?'라는 물음 앞에 끝없이 충직하고자 하는 태도가 전제된다. 따라서 중용의 덕은 지극한 것이고, 줏대가 없이 타협하거나 적당히 섞는 것과는 다르다. 실제로 중용의 길을 실천하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 그것은 약자의 길이 아니고 인격이 성숙한 사람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130, 131쪽).

중용을 말하면 중립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이때의 중립은 양 극단이 아닌 중간에 있는 것으로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에게 양 극단이 아닌 중립이 있을 수 있을까. 조화나 균형은 참 좋은 말이지만, 실제의 사안에서 조화나 균형의 자세를 구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조화나 균형은 오히려, 그 사안이 민감할 때 그것으로부터 회피하려는 이들의 변명거리 구실을 하지는 않는가.

중립이나 중용에 대한 성찰은 교육에서 무척 중요하다. <논어>의 제19편인 '자장' 12장에는 '자유'와 '자하'의 문답이 나온다. 저자는 이들의 문답을 설명하면서, "본질은 외면하고 지엽말단에 맴도는 교육이나 실천과 유리된 관념의 주입은 둘 다 극단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양 극단으로 흐르지 않는 참다운 교육이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양 극단으로 흐르지 않는 참다운 교육'은 과연 어떤 것일까. 저자는 이에 대해 명확한 의견을 밝혀놓지는 않고 있다. 저자는 다만 지나친 기능주의나 지나친 본질주의 모두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세계적인 교육학자인 파울루 프레이리가 주창한 '프락시스(praxis)'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이론에 바탕을 둔 실천, 또는 현장에서의 실천과 유리되지 않은 이론 등을 뜻하는 그 유명한 개념 말이다. 교육의 현상과, 그 현상의 이면에 숨겨진 본질을 끊임없이 탐색하는 태도 또한 '양 극단으로 흐르지 않는 참다운 교육'을 실천하려는 교육자의 자세가 될 수 있겠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이 머지 않았다. 그런데 새 대통령의 출현에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도 많지만, 걱정과 두려움으로 새 정부의 출범을 기다리는 사람 또한 그 못지 않게 많다. 어제 날짜(2013년 02월 12일 화요일) <경향신문>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업무 수행과 관련한 여론조사 질문에 대해 51.9%가 '잘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나머지 48.1%는 '잘못하고 있다'와 '모름 ․ 무응답' 등이었다. 51.9% 대 48.1%! 이는 지난 대선 때 양분된 표 구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박근혜 씨가, '독재자의 딸(strongman's daughter)'이 대통령이 되는 세상을 큰 걱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반대편의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으로써 정치를 한다면 마치 북극성이 그 제자리에 있어도 여러 별들이 이를 향하여 도는 것과 같다"[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 而衆星 共之] - 제2편 위정 1장 (104쪽)

저자의 말대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위정자의 가장 큰 덕목은 아집에서 벗어나 이해관계와 관점이 다른 사람들이나 집단이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품성이 아니겠는가. 나는 진심으로 박근혜씨가 그런 대통령이 되어 우리 역사에서 성공한 위정자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이남곡(2012), 논어 ․ 사람을 사랑하는 기술, 휴. 326쪽. 값 13,000원.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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