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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업체가 검색어 1위 되면 안 될 이유 있나

[주장] '안보의식' 우월감에 매달리는 사람들, 찌질하다

등록|2013.02.13 16:01 수정|2013.02.13 17:42

▲ 12일 오후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실시간 인기검색어 순위. 화장품 업체가 1위, 북한 핵실험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 네이버 갈무리

지난 12일,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전 세계에 충격으로 다가온 이 사건으로, 그날 오후 국내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인기검색어에도 관련된 단어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뜻밖에도 인기검색어 1위는 화장품 업체인 '이니스프리'가 올랐다. 무슨 일이었던 걸까.

해당 화장품 업체는,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있던 당일 '할인행사'를 실시한다고 알렸다. 일부 품목에 있어 최대 50%까지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반값구매의 기회'에 사람들이 검색률이 집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북한 핵실험'보다 '화장품 할인판매'가 더 인기있는 검색어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에, 일부 누리꾼들이 극렬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위태로운 상황에서, 화장품에 관심을 갖는 여성들은 생각이 있는 거냐"는 비난 발언이 이어졌고, 이에 대한 반박에도 욕설로 재차 대응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로, 해당 주장의 당위성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이러한 비판은 정당한 것일까?

'화장품 할인'에 관심갖는 사람들은 '무개념' 여성?

▲ '여성들이 안보의식이 부족하다'며 성토하는 누리꾼들. ⓒ 트위터 갈무리


"'화장품 반값 할인'이 '북한 핵실험'보다 더 인기있는 검색어라는 것은, 대한민국 여자들의 안보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는 주장에는 불편한 구석이 숨어있다. 그 원인은 논리력의 결핍으로,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에 오른 두 가지 사안인 '이니스프리'와 '북한 핵실험'이 특정 성별에 의해 선택된 것인지 확인할 길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북한 핵실험'을 남성 누리꾼들만 검색했다거나, '화장품 업체 이름'을 여성 누리꾼들만 집중적으로 클릭했다는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화장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의 관심이 더 높았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남성들도 화장품 구매에 더 적극적이 되었기 때문이고,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선물을 위해 관심이 높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또한, 같은 이유로 '북한 핵실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남성이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어불성설이다. 인기검색어 자체가 클릭 횟수가 더 많은 단어가 상위에 오를 뿐이고, 그 관심도가 특정 연령대나 성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말은 근거없는 주장에 불과하다.

둘째, '화장품 구매에 더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안보의식이 낮다'는 주장 역시도 마찬가지다. 화장품 할인행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북핵문제나 안보에 대한 관심도가 낮을 것이라는 논리에는 구체적 증거가 매우 부족하다.

설령 화장품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여성이라고 가정할지라도, 혹시라도 그들이 여군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여군이 아니더라도 최근 현역인 남성들도 군부대 내에서 세안용품을 사제로 구입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거기다 스킨·로션과 같은 제품들은 부대 안에서 보급되지 않는 것들이다(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니스프리'에서는 군인들을 위한 위장크림도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있는가?).

그리고 반드시 군인이 아니더라도, '애국 보수'를 자칭하는 사람 그 누구든 자신의 피부를 가꾸는 일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위와 같은 논리를 펴는 사람들은, '미용'과 '안보의식'은 둘 중 하나만 택일해야 하는 사항이 아니라는 점을 잊고 있는 듯하다. 결국, 국가에 대한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이라고 해서 좋은 피부를 갖기 위해 노력하지 말라는 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셋째, 마지막으로 거론할 '결핍된 논리'는 '실시간 인기검색어는 안보의식을 드러내는 도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한두 번 가벼운 클릭으로 결정되는 인기검색어는 '안보의식의 정도'를 측정하는 매개체가 아니라, 말 그대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관심사'가 가진 인기 정도의 순위를 매긴 뒤에 보여줄 뿐이다.

'북한 핵실험'을 검색해 본 사람이 '이니스프리'를 클릭한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반드시 북핵문제에 대한 관심도가 상위에 있어야만 한다'는 주장을 하기에는, 포털사이트는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남녀노소 모두의 생각을 수용하는 열린 공간에 불과할 따름이다. '국방부 인트라넷'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마우스 클릭 한번에 '나의 이념, 혹은 안보의식'을 담아야 할 어떠한 의무도 우리에게 부여되지 않는다.

'내 안보의식이 더 높지?' 우월감 과시에 불과한 비난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할인행사 중인 화장품 업체명이 더욱 인기있는 검색어라는 것은, 한국 여성들의 안보의식이 부족하다는 증거다"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으므로 설득력이 부족하다.

구체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는데도 대한민국의 국민 절반에 가까운 여성들을 '안보의식이 결여된 집단'으로 비하하는 행동은 오히려 편견에 가깝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의 바탕에는, '결과적으로 '화장품'보다 '북핵문제'에 관심갖는 내가 더욱 애국자'라는 우월감의 표출이 드러나 있다.

실제로 트위터에서 해당사안의 논리를 비판하자, 이에 대한 반박들의 다수는 "너 지방대생이지?", "너 전라도 출신이지?", "너 공익이지?" 따위의 인신공격을 해올 뿐이었다. '화장품과 안보의식' 간에 어떠한 상관관계가 존재하는지를 설명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당한 논리로 타인을 깎아내림으로써 본인이 더 우월한 존재라는 것을 입증하고 싶어하는 찌질함의 향연일 따름이었다.

영화 <베를린>에서, 북한에서 온 등장인물들에게 당과 국가에 대한 충성도를 검증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른바 '당성시험'이다. 이런 사상의 검증은 북한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비롯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와 다르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나라야말로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더 애국자다'라고 말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더군다나, 그 주장에 근거가 부족하고 비난만 가득하다면 지양해야 할 행동에 불과하다. 12일 오후부터 인터넷 게시판에서 행해지고 있는 '한국판 당성시험'으로는 당신의 애국심을 증명하지 못한다.

되레 우월감에 목말라있는 당신의 유치한 행동 만이 부각될 뿐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거기 포함되는 대상은 어느 화장품 업체나 해당업체의 소비자가 아니다. 부디, 혼동하지 말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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