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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값 검사' 공개 노회찬 의원직 상실... 법조인들 허탈

대법원,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과 자격정지 1년 확정

등록|2013.02.14 18:15 수정|2013.02.14 18:15
이른바 '안기부 X파일'에 등장하는 삼성그룹의 '떡값검사'의 실명이 담긴 보도자료를 홈페이지에 공개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14일 대법원에서 징역형이 확정됨에 따라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게 됐다.

대법원 제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14일 '떡값 검사'의 실명이 담긴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하고, 이 보도자료를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개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로 기소된 노회찬 의원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면책특권은 국회의원이 국회 내에서 자유롭게 발언하고 표결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것인데, 홈페이지에 도청자료의 내용을 게재하는 행위는 국회의원의 국회 내에서의 자유로운 발언과 별다른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국회의원이 국회 발언 전에 기자들에게 발언내용을 보도자료로 배포하는 행위는 대상이 기자로 한정돼 있고, 보도자료를 받은 기자들도 각자의 책임하에 선별해 보도하는데 반해, 국회의원이 홈페이지에 보도자료를 게재하는 행위는 전파가능성이 매우 크면서도 일반인들에게 여과 없이 전달돼 두 행위를 같이 평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런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홈페이지에 보도자료 형태로 도청내용을 게재한 행위가 면책특권의 범위 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도청자료의 일부 내용이 이미 언론에 공개됐다고 하더라도, 도청 내용 중 아직 공개되지 않은 관련 검사들의 실명을 그대로 적시하면서 대화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한 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의 공개 또는 누설에 해당한다"며 "홈페이지에 보도자료를 게재한 행위에 대해 통신비밀보호법의 위반죄의 성립을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법조인들 "정의가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순간"

이번 판결에 대해 판사 출신인 서기호 진보정의당 의원은 트위터에 "[노회찬 의원직 상실] 떡값 검사 명단을 인터넷 게재했다는 이유로, 그것도 공익적인 사유인데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반대로 기소했던 황교안은 법무부장관 후보로, 정의가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순간"이라고 대법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법위원회 위원인 이재화 변호사는 트위터에 "대법원 노회찬 의원의 상고기각. 의원직 상실. 도둑은 처벌하지 않고 도둑잡아라고 외친 사람을 유죄로 인정한 격 아닌가?"라며 "떡값검사의 명예가 국민의 알권리보다 더 소중한가? 표현의 자유를 무시한 이번 대법원 판결은 세계적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안기부 X파일' 사건에서 떡값검사와 삼성에 면죄부 수사한 황교안은 법무부장관으로 내정되고, 떡값검사에 대한 수사 촉구한 노회찬은 국회의원 상실했다"며 "이 부조리한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 서글프다"라고 개탄했다.

부장검사 출신인 최영호 변호사는 트위터에 "노회찬 상고기각으로 의원직 상실. 그를 지지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 삼성 X파일에 대한 법원의 통신비밀보호법 해석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듯"이라며 "보호법익과 비밀침해의 객체에 관한 재검토 필요"라고 지적했다.

안상운 변호사는 트위터에 "노회찬 의원 결국 유죄 확정. 안기부, 오늘 발렌타인 축하 파티하겠다 ㅠㅠ"라고 안기부(현 국가정보원)를 힐난하며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가장 잘 악용한 홍준표, 안상수 등을 참고해 조금 더 세련된 방법으로 떡값 검사 명단을 발표했으면 하는 아쉬움이.."라는 말을 남겼다.

재판부 5번 거친 노회찬 의원 사건 어떻게 진행됐나?

제17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던 노회찬 의원은 옛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현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1997년 9월 당시 이학수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나눈 대화내용을 도청한 녹취록 등 소위 '안기부 X파일'(이를 보도한 이상호 전 MBC 기자는 '삼성 X파일'이라 부른다)을 입수했다.

이에 노 의원은 2005년 8월 법사위원회 회의가 열리기 직전 국회의원 회관에서 '삼성 명절 때마다 검사들에게 떡값 돌려, X파일에 등장하는 떡값검사 7인 실명공개'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하고, 자신의 홈페이지에도 올렸다.

이 무렵 X파일의 대략적인 내용은 언론을 통해 공개됐으나, 노 의원이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했다. 그러자 7명 중 1명으로 지목된 안강민 변호사(당시 서울중앙지검장)는 허위사실이라며 노 의원을 검찰에 고소했고, 검찰은 2007년 5월 노 의원을 명예훼손과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1심은 2009년 2월 노회찬 대표에게 유죄를 인정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으나, 항소심인 서울중앙지법 제8형사부(재판장 이민영 부장판사)는 2009년 12월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며 1심 판단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기자들에게 보도자료 배포행위는 보도 편의를 위한 것으로서 국회의원의 직무상 발언에 부수해 행해진 행위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대상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보도자료를 홈페이지에 게재한 것에 대해서도 "녹취록 대화는 국내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이 검사들에 대한 조직적인 금품전달계획을 내용으로 하고 있어 국회의원 신분이던 피고인이 이를 공개한 것은 수사 촉구 등의 정당한 목적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당시에는 공소시효 완성이 임박해 국가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하는 국회의원으로서는 마땅히 녹취록에 관련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할 필요성이 있었고, 야당 국회의원이 수사를 촉구하는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은 신속하게 여론을 환기시키는 것"이라며 "따라서 보도자료를 홈페이지에 게재한 행위는 긴급성과 보충성도 충족해 정당행위에 해당돼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에 검사가 상고했고, 대법원 제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2011년 5월 노회찬 대표가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배포한 행위와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홈페이지에 보도자료를 게재한 행위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단해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파기환송했다.

홈페이지 보도자료에 '떡값 검사' 명단 게재에 의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부분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이 검찰의 수사를 촉구할 목적으로 보도자료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고 하나, 이미 언론을 통해 전모가 공개된 데다가 국회의원 지위에서 수사기관에 대한 수사 촉구 등을 통해 그 취지를 전달함에 어려움이 없었음에도 굳이 전파성이 강한 인터넷을 이용해 불법 녹음된 대화의 상세한 내용과 관련 당사자의 실명을 그대로 공개한 행위는 방법의 상당성을 결여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피고인의 공개행위가 재계와 검찰의 유착관계를 고발하고 수사를 촉구한다는 점에서 공익적인 측면을 갖고 있더라도, 이런 공익적 효과는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상당부분 달성됐다"며 "굳이 홈페이지 게재라는 새로운 방식의 공개를 통해 위 대화의 직접 당사자나 관련자들에게 추가적인 불이익의 감수까지 요구할 수는 없다"며 "보도자료를 홈페이지에 게재함으로써 통신비밀을 공개한 행위는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대법원의 파기환송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항소부는 2011년 10월 대법원 취지대로 유죄를 인정해 노회찬 대표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이에 노회찬 의원이 대법원에 다시 상고했으나, 이날 유죄가 확정됐다. 정리하면 이번 사건은 총 5번의 재판을 거쳤다. 정리하면 1심 유죄→2심 무죄→대법원 일부 유죄 파기환송→파기환송심 유죄→대법원 유죄 확정이다.

한편 노회찬 대표는 1심 유죄 판결 직후인 2009년 3월 다른 사람의 대화내용을 녹음해 공개하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통신비밀보호법 제16조 제1항 2호에 대해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으나, 헌법재판소는 대법원 판단이 끝난 2011년 9월에야 통신비밀보호법에 대해 재판관 7대 1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a href="http://www.lawissue.co.kr"><B>[로이슈](www.lawissue.co.kr)</B></A>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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