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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뱃돈 저축할 사람은 엄마에게 맡겨라!"

치장에 올인한 딸 VS 저금에 올인한 아들

등록|2013.02.15 11:19 수정|2013.02.15 11:33

▲ 딸이 설 전에 세배 돈 받으면 구입할 목록을 스케치한 그림입니다. ⓒ 임현철


"우리 아들 세뱃돈 모은 게 벌써 백만 원이 넘었다~."

어제저녁, 중학교 1학년 아들의 세뱃돈을 통장에 넣고 온 아내는 밥상머리에서 뿌듯해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인 딸은 겨우 50만 원뿐이라며 혀를 찼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돈 쓰는 데에도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크더군요.

"세뱃돈 저축할 사람은 엄마에게 돈을 맡겨라!"

아내의 말에 아들은 세뱃돈으로 받은 16만 원 전부와 가지고 있던 5천 원을 더해 16만5천 원을 흔쾌히 내놓았습니다. 돈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녀석은 용돈이 생기면 한 푼 두 푼 모으는 성격이라 허튼 곳에 쓰지 않습니다. 용돈을 줄 때면 "아직 돈이 남아 안 줘도 돼요"라며 거절하는 기특한(?) 구석이 있습니다.

이에 반해 딸은 정반대입니다. 용돈이 생기면 먼저 쓰고 보는, 아내 말을 빌리자면 "돈 쓰는 기계"입니다. 이번 설에 세뱃돈으로 받은 18만 원을 한 푼도 저금하지 않았습니다. 16만 원은 벌써 옷, 모자 등을 인터넷으로 사고, 달랑 2만 원 남았습니다.

더군다나 딸은 설전에 '세뱃돈 받으면 어떻게 쓸까?' 고민 끝에 구입할 옷, 모자, 패션 안경테 등 구입 구상을 이미 마친 상태였습니다. 딸이 구입할 옷 목록 등을 스케치한 그림을 보면 귀여우면서도 걱정이 앞섭니다. 그러고 보니 세뱃돈에 대한 추억과 생각이 많습니다.

세뱃돈, 받는 입장서 주는 입장 되어 보니...

'올해 세뱃돈은 얼마나 들어올까?'

어릴 적, 설날 관심사항은 오직 이것뿐이었습니다. 누구에게 얼마 받고, 누구에게 얼마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행복이었습니다. 어른들이 허리가 휘건 말건 관심 밖이었죠. '세뱃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그것은 크나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어쨌거나, 나이 들어 세뱃돈을 받는 입장에서 주는 입장으로 바뀌었습니다. 뒤늦게 깨달은 건, 받았으면 줘야 하는 돌고 도는 세상의 이치였습니다. 내 주머니에서 피 같은 돈을 지출해야 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어떤 해는 명절이 싫었습니다. 어떤 이는 "명절이 일 년에 한 번만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공감했습니다. 살다 보니 자연스레 세뱃돈 지출 원칙이 생겼습니다. 1:1 맞교환 방식입니다. 봉투에 든 세뱃돈 액수를 어찌 알 수 있을까 마는.

예를 들어, 우리 아이들이 총 5만 원을 받았으면 상대방에게도 5만 원을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여기에 형편이 어려운 집 아이들에게는 재래시장에서 물건 살 때 좀 더 얹어주는, '덤'까지 고려하긴 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려운 사람에게 굳이 야박하게 굴 필요 없으니까.

"이게 바로 돈 세탁 과정을 거친 돈이네"

▲ 아내 표현을 빌리자면 '돈 세탁'한 세배 돈을 말리는 중입니다. ⓒ 임현철


가정을 꾸린 후 명절이면 세뱃돈에 목매는 아이들을 위해 친가와 처가 '순례의 길'에 나서야 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배려이자 미덕의 순례 길이었습니다. 이걸 뺐다가는 아이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니까. 이번 설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설 명절 후 아이들은 세뱃돈 세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그것도 잠시, 아들의 긴~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엄마, 내 바지 세탁기에 돌렸어?"

아들은 후다닥 주머니에서 젖은 세뱃돈을 꺼내 책상에 쫙 펴 말렸습니다. 그 광경을 본 아내가 웃으며, "이게 바로 돈세탁 과정을 거친 돈이네"라며 음성적 방법으로 비자금을 챙기는 못된 정치 행태를 꼬집어 비유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절을 해 번 노력의 대가를 더러운 정치자금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못마땅했습니다.

"너희 친구들은 세뱃돈 얼마나 받았대?"

친구들은 몇 만 원에서 사십여 만 원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두둑하게 챙긴 세뱃돈이 주는 즐거움은 가만히 가진 자체만으로도 큰 기쁨입니다. 그렇지만 오직 돈 쓰는 데에 집중 중인 딸을 보며 아내가 뼈 있는 말을 했습니다.

"치장하는 것처럼 공부 좀 하지. 내가 저걸 뭘 먹고 낳았을까?"

잔소리인 줄 뻔히 알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아내. 그런 엄마에게 굴하지 않고 저축마저 거절한 딸은 '남은 2만 원을 어떻게 써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날까?'에만 오롯이 정신 팔려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아이들이 한 인간으로 우뚝 설 테니까요.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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