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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시련을 극복하는 나무들의 지혜

핵실험 속에서도 봄은 온다!

등록|2013.02.18 11:32 수정|2013.02.18 11:32
2월 18일, 오늘은 얼었던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다. 옛 세시기를 보면 "입춘이 지나면 동해동풍이라 차가운 북풍이 걷히고, 동풍이 불면서 얼었던 강물이 녹기 시작한다고 했다. 우수입기일(雨水入氣日) 이후 15일간에 눈이 비로 바뀌면서 얼었던 땅이 녹고,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다 늘어놓고,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가며, 초목에 싹이 튼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눈도 많이 내리고 추위가 맹위를 떨쳐 북한 땅에서 흘러내려온 임진강은 아직도 꽁꽁 얼어 자동차가 다닐 정도로 두껍다. 얼음의 두께가 무려 30~40cm에 달해 꽁꽁 결빙된 임진강은 겨울 풍경 그대로다.

얼음 밑에서는 주기적으로 "끙끙~ 쩌엉~쩡" 하며 강물이 신음을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물과 얼음 사이에 틈새가 생겨 물이 진동을 하며 내는 공명(共鳴) 현상이다.

▲ 자동차가 지나가도 깨지지 않을 정도로 두껍게 얼어붙은 연천군 미산면 임진강(2월 16일 현재) ⓒ 최오균


▲ 아직도 두껍게 꽁꽁 얼어붙은 임진강 ⓒ 최오균


그런데다가 북한이 국제사회의 충고를 저버리고 핵실험을 강행한 한반도는 마음까지 얼어붙게 하는 냉기가 흐르고 있다. 지구상에 단 하나, 냉전의 철조망이 155마일 휴전선을 가로막고 있는 한반도는 북한의 핵실험으로 겨울이 더욱 길어진 느낌이 든다.

휴전선이 지척에 있는 이곳 연천은 어제 아침에도 눈이 내렸다. 산천에는 눈이 아직 녹지 않은 채 그대로 하얗게 덮여있다. 또 다시 핵실험을 강행하겠다는 북한의 엄포는 한반도에 찾아오는 봄을 더욱 더디게 하려나 보다.

사실 우리나라만큼 사계(四季)가 뚜렷한 나라도 매우 드물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풍경과 계절의 미각을 뚜렷이 맛볼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그리 흔치 않다. 그러니 아름답게 변화하는 금수강산에 둘러싸인 땅에 태어난 것 하나만으로도 우린 큰 축복을 받고 있는 샘이다.

생각해 보라! 반년 동안은 쉴 새 없이 비가 내리고, 나머지 반년 동안은 목 타는 건기가 지속되는 열대 지방이나, 365일 내내 물 한 방울 구경하기 힘든 건조한 사막 지대, 혹은 1년의 절반은 밤이요, 나머지 절반은 낮만 지속되는 극지방에서 평생을 살아간다면 삶이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 추위에 떨고 있는 앙상한 겨울 숲. 나무들은 잎을 떨어뜨리고 최소한의 생명을 유지한 채 겨울을 나며 봄을 준비하고 있다. ⓒ 최오균


자연 속에 나무와 식물들의 삶은 마치 우리네 인생역정과도 같다. '봄'에는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풍성하고 울창한 숲을 이루는가 하면, '가을'에는 수확의 열매를 남겨두고 우수수 잎을 떨어뜨린 채 겨울을 준비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겨울'에는 앙상한 뼈와 가죽만으로 언 땅에서 혹독한 시련을 견디며 다음에 다시 태어날 생을 준비한다.

이처럼 나무들의 사계(四季)는 인생의 사계와 같다. 당신은 지금, 인생의 어느 시기를 걷고 있는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겨울 속에 있지는 않은가? 만약 그대가 겨울의 시련기에 있다면 살을 에는 북풍이 그대를 더욱 두렵게 할 것이다.

어느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살아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함을 아쉬워한다.'

그러므로 겨울이 우리에게 꼭 나쁜 것만도 아니며, 봄이 꼭 우리에게 좋은 것만도 아니다.

▲ 나뭇가지에 핀 눈꽃. 그러나 눈은 천천히 녹으며 나무들에게 수분을 제공해 준다. ⓒ 최오균


그러나 일반적으로 겨울은 나무들에게는 절망의 계절이다. 엄동설한에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와 수피(樹皮)를 온 천하에 드러내고 가장 힘든 계절을 보낸다. 폭설이 내린 날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나무들을 살펴보자. 나무들은 철저한 자구책을 세워 겨울의 시련을 극복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가장 힘든 순간에 나무들은 가장 처절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적막한 겨울 숲, 가지에 피어난 새 하얀 눈꽃이 그것이다! 눈꽃은 유리알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투명한 얼음 꽃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나무들은 과연 어떤 지혜를 짜내며 겨울 시련을 극복해 낼까?

절망의 계절을 극복해 내는 나무들의 지혜

낙엽이 모두 져버린 겨울 숲은 매우 쓸쓸하게 보인다. 앙상한 나무숲에서는 바람마저 외롭다. 바람과 맞장구를 치며 놀아주던 잎사귀들도, 뿌리를 덮고 있던 덤불들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바람은 앙상한 가지를 배회하며 방랑자처럼 외롭다.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을 보여주는 인생처럼, 겨울이 오면 나무들 역시 생사의 갈림길에서 그 본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윙윙 불어대는 삭풍 속에 겨울나무들은 지독한 굶주림과 함께 가혹한 시련을 맞이하고 있다.

허허로운 숲 속에는 다람쥐가 털어먹은 잣나무 껍질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딱따구리가 쪼아낸 나무구멍도 흉물스럽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거기에 옷을 훌훌 벗어버린 나뭇가지는 피골이 상접이 되어 추위에 떨고 있다.

▲ 살구나무의 겨울눈. 늦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생겨 겨울을 넘기고 이듬해 봄에 싹이 트는 눈. 대개 비늘잎으로 단단하게 싸여 있다. ⓒ 최오균

허지만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나무들을 세밀하게 살펴보자. 비록 나무들은 말이 없지만, 매우 치열하게 다음 생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다. 바위보다 더 단단한 언음 땅속에서도 나무들은 살아남을 궁리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가을에 낙엽이 질 때, 잎자루 부분에 '떨켜'라는 코르크 조직을 형성하며 잎을 나무에서 떨어뜨리게 한다. 이는 겨울에 자신의 몸뚱이가 얼지 않도록 물기가 오가는 통로를 차단학 위해서다.

그리고 나무들은 긴 휴식기에 들어가면서 겨울을 견뎌낼 준비를 한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준비 작업이다. 궁핍한 겨울 땅속에서도 살아남는 방법을 나무들은 알고 있다. 소위 적게 먹고 적게 싸는 지혜를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때가 되면 나무들은 가지 끝에 슬그머니 '겨울눈(冬芽, winter bud)'을 만들어 낸다. 겨울눈은 늦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생겨 겨울을 넘기고 이듬해 봄에 싹이 튼다.

겨울눈은 다음해 잎이나 꽃, 혹은 줄기로 성장할 놈이다. 말하자면 '싹수가 노란 놈'이다. 겨울눈은 나무들이 이듬해 성장을 위한 가장 소중한 기관이다. 그래서 이 작업은 꽃이 피고 씨앗이 만드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

▲ 연회색 솜털 옷을 껴입은 목련의 갸울눈. 겉을 비늘잎이 여러 겹으로 싸고 있어 속을 보호하고 있다. ⓒ 최오균


겨울눈을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식물은 목련이다. 연회색 솜털 옷을 껴입은 겨울눈은 비늘잎으로 그 곁을 여러 겹으로 싸고 있다. 목련의 겨울눈은 붓처럼 생겨서 목필(木筆)이라고도 한다.

겨울눈 중에서 꽃눈(花芽)는 크고 둥글며, 잎눈(葉芽)은 작고 가늘다. 목련의 겨울눈 중 붓처럼 큰 모양을 하고 있는 녀석은 꽃으로 피어날 꽃눈이고, 가지에 작은 모양으로 귀엽게 붙어 있는  녀석은 앞으로 싹이 날 잎눈이다.

그 겨울눈을 잘라보면 그 작은 눈 속에는 이미 꽃잎이나, 나뭇잎이 차곡차곡 포개어져 태아처럼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두릅나무의 정아(頂芽). 저 꼭지눈에서 잎이 돋아난다. ⓒ 최오균


겨울눈 속에는 나무들의 가장 부드러운 조직이 들어 있다. 그 겨울눈의 맨 끝에 있으면서 가장 큰 눈을 정아(頂芽, terminal bud, 꼭지눈)라고 부른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봄이 오면 줄기나 잎, 혹은 꽃이 될 매우 소중한 부분이다.

나무의 종류에 따라 겨울눈의 모습이나 역할은 다르다. 겨울눈의 진정한 의도는 '희망의 봄'을 준비하는 데 있다. 우리가 추위를 막기 위해 두꺼운 외투를 입듯이 '정아' 역시 겹겹이 비늘껍질이나 솜털로 속살을 굳게 감싸고 철저히 무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나무에게 이 겨울눈이 없다면 그 나무는 봄에 꽃이 피거나 잎을 돋아날 희망이 없다.

▲ 뽕나무의 겨울눈.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껍질이 갑옷처럼 단단하게 감싸고 있다. ⓒ 최오균

뽕나무의 겨울눈은 너무 단단해서 숨이 막힐 것처럼 보인다. 자목련의 겨울눈은 부드러운 솜털 같고, 개나리는 금방 꽃이 터질 것 같은 모습이다. 이상기온으로 날씨가 따뜻해지면 개나리의 겨울눈은 이를 참지 못하고 성급하게 터져 나왔다가 동장군한테 혹독하게 매를 맞는 경우도 있다.

겨울에 내리는 폭설은 하얀 솜이불처럼 마른 가지를 감싸고, 겨울눈을 자라게 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 눈이 흘리는 차가운 눈물은 여름에 내리는 장대비보다 나무들에게는 없어서는 아니 될 꼭 필요한 생명의 물이다.

천천히 녹아내리는 생명의 물을 조금씩 빨아드린 '정아'는 이듬해 자라날 잎눈과 꽃눈이 용틀임을 하며 혹독한 시련을 이겨낸다. 그리고 봄이 오면 마침내 새 생명을 잉태시킨다. '정아'! 마치 사람의 이름처럼 다정하게 들리는 정아는 나무들의 생명을 잉태시키는 가장 소중한 부분이다.

삭풍에 떨고 있는 연약한 겨울눈은 곧 얼어 죽어 버릴 것만 같은 '절망'의 상징인 동시에, 봄의 환희를 기약하는 '희망'의 심벌이기도 하다. 죽느냐, 사느냐, 희망과 절망의 극한 갈림길에 서서 나무들이 시련을 극복하고 있는 모습은 생존을 위한 가장 처절한 몸부림이다.

▲ 언땅에서 눈 속을 뜷고 나오는 여린 새싹들 ⓒ 최오균


그러나 희망과 절망 사이는 그리 멀지 않다. 북한이 핵실험을 또 다시 강행한다 해도 한반도에 봄은 온다. 핵실험 속에서도 언 땅에서는 새싹이 돋아나고, 나무들의 '겨울눈'은 절망의 계절을 극복하고 희망의 싹을 내밀 채비를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연천군 임진강변에서 텃밭 농사를 짓고 있는 기자는 숲해설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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