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백서는 행정일지 수준, '진짜 기록' 남겼어야"
[대구지하철참사 10주기③] 대구지하철참사 백서 펴낸 홍원화 경북대 교수
지난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대구중앙로역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모두 192명이 목숨을 잃었고 151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유가족들은 아픔을 잊지 못하고 부상자들은 고통속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사건은 마무리되지 않고 유족들과 대구시는 반목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대구지역 인터넷 언론인 <뉴스민>, <티엔티뉴스>와 공동으로 당시 사고를 되짚어보고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의 안전을 점검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 대구시 백서에 나와 있는 지난 2003년 대구지하철 사고 당시 상황 ⓒ 대구시
"대구시가 발간한 대구 중앙로역 지하철참사 백서는 '행정일지'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 백서에는 단순히 사고발생 및 화재진압 과정, 각 부서들의 대응, 피해와 보상 내역 등이 담겨있을 뿐이죠. 백서는 하드웨어 요소와 소프트웨어 요소를 반드시 담아야 하나 대구시 백서는 하드웨어 요소만 일부 다루고 있습니다."
지난 2003년 2월 18일 발생한 대구 중앙로역 지하철 화재사고와 같은 대참사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려면 가장 먼저 봐야할 자료가 '백서'다. 백서는 '정부가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문제에 대해 그 현상을 분석하고 장래의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발표하는 보고서'다.
대구시는 중앙로역 지하철 참사 발생 2년 뒤인 2005년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화재사고 백서'를 발간했다. 782쪽이라는 방대한 이 백서는 사고경위부터 사고원인, 피해상황, 지하철 건설 및 운영, 사고대책본부 운영, 대구시의 대처, 언론보도 내용, 당시 사고 사진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대구시가 발간한 백서 외에 대구검찰청과 대구소방본부가 발간한 백서도 있다. 하지만 홍원화 경북대 건축학부 교수는 대구시가 발간한 백서는 '행정일지'에 불과하며 향후 대형 사고 예방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대구중앙로역 지하철 참사와 같은 대형 사고가 또 다시 발생했을 때 시민들은 똑같은 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내가 그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익힐 수 있는 백서여야 진정한 백서라 할 수 있다"며 "대구시가 그런 백서를 만들려는 의지만 있었어도 시 권한으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방대한 자료를 취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재난과 더불어 사는 나라인 일본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일본의 경우 실제 지하철 역사와 흡사한 시설을 만들어놓고 인체에 무해하지만 사고 상황과 유사한 가스를 살포, 피난 실험을 한다"며 "일본 수준까지는 못 미치지만 중국에서도 그런 실험을 한다. 한국의 경우 제대로 된 피난 실험은 고사하고 일본에서 열리는 피난 실험에 전문가들조차 참석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대구 중앙로역 지하철 참사를 객관적으로 분석해 백서를 만들었다. 사고 직후 홍 교수는 석·박사 과정 재학생 16명과 함께 중앙로역 현장을 둘러보고 소방본부 등 관련 기관과 광범위한 피해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그가 2년간 만난 생존자와 유족만 1천 명에 이른다. 홍 교수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2005년 '2·18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기록과 교훈'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시설은 선진국 수준... 문제는 운용하는 사람"
▲ 경북대 홍원화 교수 ⓒ 조정훈
"백서는 모든 사람이 쉽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대구시가 출간한 백서는 일반인이 접근하기에 상당히 복잡하고 불편하죠. 일본의 경우 한신대지진과 같은 큰 재난이 닥치고 난 뒤 곳곳에서 백서가 쏟아져 나오고 각 공공기관이나 관공서 등에 배포해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합니다. 시민들은 그 백서를 읽고 재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한편 사고가 발생하면 자신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하게 됩니다."
홍 교수는 대구 중앙로역 지하철 참사를 비롯해 2005년 대구 서문시장 화재, 2012년 부산 서면 노래방 화재 참사,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 등 여러 대형 사고가 하드웨어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안전시설이나 기계설비 등 하드웨어 요소만 보면 우리나라는 선진국 수준입니다. 최근 10년 사이 발생한 재난들이 시설 부실이나 안전장치가 미흡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문제는 소프트웨어입니다.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이 가이드라인을 무시하고 안전장치의 필요성을 망각해 사고가 벌어진 것입니다. 백서는 그런 소프트웨어 요소의 미흡을 지적하고 시정을 촉구해야 합니다."
▲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당시 불에 탄 지하철 내부 ⓒ 대구시 백서
홍 교수는 대구 중앙로역 지하철 참사 당시 대구시가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한 것이 문제를 더 키웠다고 지적했다. 모든 사고 대처의 기본은 현장 장악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대구시는 권한과 지도력으로 현장을 장악하고 사태를 파헤쳐야 했다"며 "그러나 대구시는 전문가, 정치인, 기자 등을 분별없이 사고 현장으로 출입하게 했고, 사고 직후 물청소까지 한 사실도 드러났다"고 말했다. 대구시의 초기 판단 실패와 지도력 부재가 사고발생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가족들과 추모사업이나 위령탑 건립 등에서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가 펴낸 책의 표지에는 '재난은 재난을 통해 배운다. 재난은 잊혀질 때 다시 찾아온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홍 교수는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닌 까닭에 언제나 재난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백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와 미래를 보고 예측하려면 과거 기록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 백서 한 권 제대로 안 만들고 흘려보낸 대형 참사들이 많습니다. 그때 '진짜 기록'을 남겼더라면 대구지하철 참사와 같은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잊고 싶은 기억이겠지만, 기록은 반드시 남겨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뉴스민>, <티엔티뉴스>가 공동으로 취재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