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사내하청 문제 겨냥한 공약 어디로?
박근혜 정부 국정 과제에서 경제민주화 용어 사라져... 개별 공약 후퇴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난해 11월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조재현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에서 '경제민주화'가 빠졌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승리의 1등 공신인 경제민주화를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21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내놓은 217쪽의 국정과제집에서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는 찾을 수 없다. 경제민주화를 의미하는 '원칙이 바로선 시장경제 질서 확립'은 5대 국정목표의 하부 전략으로 축소됐다. 또한 구체적인 국정과제는 140대 국정과제 중 2.1%인 5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선 전,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당선인의 핵심 공약이었다. 박근혜 당선인은 대선 한 달 전인 11월 16일 직접 경제민주화 5대 분야 35개 실천과제를 발표하면서 "경제민주화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선공약집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의 경제민주화'가 10대 공약으로 자리매김했다.
박 당선인은 대선에서 '신뢰와 원칙', '약속은 지킨다'는 이미지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대선 승리 이후 공약 이행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새 정부 국정과제에서 경제민주화의 위상이 축소됨에 따라, 경제민주화가 '선거용'이었다는 비판은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뢰 이미지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인수위는 "경제민주화는 후퇴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류성걸 경제1분과 간사는 "공약하고 논의했던 대로 세부적으로 반영이 돼있다"고 해명했다. 강석훈 국정기획조정분과 위원은 "경제민주화를 '원칙이 바로 선'이라는 광의의 용어로 (바꾸어) 사용했다"고 거들었다.
[비정규직] 현대차 사내하청 문제 겨냥한 공약 사라져
박근혜 당선인이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할 때 제일 먼저 언급한 것은 '경제적 약자의 권익 보호'다. 박 당선인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 간의 차별을 해소하고, 보험설계사·학습지 교사·화물운송기사 등 특수고용직 종사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대선공약집에서 1페이지에 걸쳐 특수고용직 근로자 현실에 맞게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제도를 설계해 특수 고용직 근로자의 사회안전망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특수고용직 표준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여 특수고용직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보호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정과제에는 '산재·고용보험 적용 확대 방안 마련·추진'으로 축소됐다.
'최저임금 인상' 공약도 마찬가지다. 박 당선인은 대선공약집에서 '반복해서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지급하는 사업주에 대해서는 징벌적 배상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반영분에 소득분배 조정분을 더하는 구체적인 최저임금 인상기준을 내놓았다.
하지만 징벌적 배상제도는 국정과제에서 탈락했고, 최저임금 인상 기준은 '합리적인 기준 마련'으로 대폭 후퇴했다.
현대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 수 있는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약속도 휴지조각이 됐다. 대선공약집에는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 동일한 불법파견 확인 시 원청업체가 직접 고용하도록 행정명령을 하겠다'고 밝혔다. 직접 고용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이다. 하지만 국정과제에는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다'는 내용만 포함됐다. 현대차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재벌개혁] '대기업 인력 빼내기' 막아달라는 호소에도, 공약은 뒷걸음질
박근혜 당선인은 대선 전 "대기업집단의 불법행위와 총수일가의 사익편취행위에 엄격하게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부득이득이나 손해액이 5억 원을 웃돌면 가중처벌을 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 상의 횡령 등에 대해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형량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 국내 재벌총수가 저지르는 범죄에는 배임이 많다. 대선 전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형량을 강화하겠다는 죄목에 배임이 빠져 비판을 불렀다. 하지만 이번 국정과제에서는 더 후퇴했다. '형령 등에 대한 형량 강화'로 축소된 것이다.
기업지배구조 개선 공약과 관련해 소액주주 등 비지배주주들이 독립적으로 사외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공약도 휴지조각이 됐다. 사회이사의 경영감시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이 공약은 국정과제에 포함되지 않았다.
대선공약집에 있던 다중 대표소송제도 국정과제에서 탈락했다. 자회사·손자회사 경영진이 잘못을 저질러 손해가 발생했을 때, 모회사 주주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재벌총수 일가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다. 2007년 법무부가 도입을 추진했지만, 재계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이번에도 재계의 반발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금산분리 공약도 뒷걸음질 쳤다. 대선공약집에서 금융회사가 보유한 비금융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향후 5년간 단계적으로 5%까지 강화하기로 했지만, 국정과제에서는 '의결권제한 강화'로 모호하게 바뀌었다. 류성걸 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는 "책자는 요약이기 때문에 세부적인 사항이 없다, 공약에 있는 대로 저희들이 금산분리 추진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근혜 당선인이 강조하는 중소기업 관련 공약도 일부 후퇴했다. 특히 중소기업 인력 확보 방안 중 대기업에 부담이 되는 공약이 사라졌다. 대선공약집에는 중소기업의 인력 확보를 위해 중소기업 기술인력을 반복적으로 빼가는 대기업에 대해 교육훈련분담금을 가중 부과하기로 했다. 하지만 국정과제에서 이 공약을 찾아볼 수 없다.
지난달 25일 인수위 정무분과가 광주의 한 중소기업을 방문하자, 이 회사의 경영진은 대기업의 인력 빼내기를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박효종 정무분과 간사도 "그런 애로사항은 해결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손톱 밑 가시'의 대표적인 사례로 인력유출을 꼽았다. 하지만, 약속은 휴지조각이 됐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