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섬에 자리잡은 조선소...인근 주민들 "못살겠다"
[르포] 야도 FRP 조선소...여수시 "뿌리뽑겠다" vs 조선소 "정당한 영업"
▲ 소경도로 들어가는 신월동 선착장에서 직선거리로 400m 앞에 있는 작은 섬 야도는 불무섬으로 불린다. 일제강점기 때 여수 지역 최초의 홍등가로 유명했다. ⓒ 심명남
여수가 항구라는 것을 알려면 신월동 해변을 한번 걸어봐야 한다. 이곳은 바다 위에 떠있는 섬 풍경이 압권이다. 육지인 여수와 돌산을 사이에 두고 10여 개의 작은 섬들이 펼쳐지는 파노라마. 이곳에서 시작해 최남단 백도까지 360여 개의 섬이 꼬리를 문다.
신월동을 거닐면 하모 요리로 유명한 경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곳을 거닐라는 말도 이제 못하겠다. 맞은 편 섬에서 불어오는 분진이 날아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소경도로 들어가는 신월동 선착장에서 직선거리로 400m 앞에 작은 섬 야도가 보인다. 불무섬으로 불리는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여수 지역 최초의 홍등가로 유명했단다. 그런데 현재 4가구가 사는 야도에 연일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다름 아닌 조선소 때문이다.
불법 영업 신우조선소... 주민 발발
불무섬에 문제를 야기한 신우조선소가 들어선 것은 지난해 10월. 돌산 마상포에서 3년 영업하겠다던 이 업체는 결국 18년만인 지난해 주민들의 반대에 못이겨 쫓겨났다(관련기사: 바닷가 마을에 날리는 하얀가루..."살기 괴로워요").
이 업체는 지난 8월 불무섬으로 자리를 옮겨 또다시 영업을 재개 중이다. 외진 곳에 있던 조선소가 오히려 아파트 밀집지역 맞은 편인 시내로 들어온 것은 선뜻 이해하기 힘든 처사다. 이로 인해 아파트 입주민은 물론 주변 월호동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 업체의 실 소유주는 하아무개씨다. 이후 사위 임 아무개씨가 대표로 등재된다. 최근 그의 딸 하아무개씨로 대표가 바뀌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 FRP 선박을 찍어내는 원형인 '몰드'라는 배모양의 틀 옆에 합성수지인 FRP가 가득 쌓여있다. ⓒ 심명남
▲ 몰드에서 찍어낸 후 완공 직전인 FRP 선박 ⓒ 심명남
21일 오후 <호남투데이> 기자와 함께 사선을 타고 야도를 찾았다. 업체 측의 거부로 섬을 취재하는 데는 애를 먹었다는 이 기자는 화가 단단히 났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19일 취재차 우리 대표님과 함께 야도를 들어가려 했으나 입도를 거부당했어요. 신우조선 대표 임씨에게 '팽' 당했죠. 방송사도 취재를 막았는데 <호남투데이도> 안 된다, 아무도 배를 태워줄 수 없다는 거예요 참."
우리가 탄 배가 현장에 도착했다. 메케한 화학품 냄새가 진동한다. 한 작업자는 석면가루를 날리며 그라인더 작업을 진행중이다. FRP(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수지에 본드를 칠하는 여성작업자의 손놀림이 바쁘다. 용접작업도 한창이다. 취재진을 본 작업자들은 사진을 찍지 말라며 거칠게 항의했다.
시에서 신우조선소에 19일 작업중단 조치를 내렸지만 열심히 작업이 진행 중인 조선소, 감독도 하지 않는 여수시가 참 우습다.
지난 12일 불법 영업에 대해 '뿌리를 뽑아라'며 강력한 제재 의사를 밝힌 여수시장은 20일 월호동사무소에서 100여 명이 모인 '시민과의 대화'에서 담당 국장을 통해 "조속한 시일 내 최대한 행정력을 통해 업무처리를 하겠다"라며 법대로 집행을 약속한 바 있다. 순간 파란색 정복을 입고 강력한 대응 운운하던 여수시장의 얼굴이 잠시 스쳐갔다.
조선소의 불법 영업이 불거진 것은 지난해 10월 19일이다. 도서지역 경도 경로잔치에 참석차 도선을 탄 서완석, 노순기 시의원 덕분이다. 이들은 자연녹지인 공원지역 내에서 공사가 진행 중인 불법 현장을 발견했다. 이후 도시계획과에 신고했다.
공원구역 내에서 허가 없이 불법적으로 형질을 변경해 FRP조선소가 운영되고 있는 현장이 발각되는 순간이었다. 이들의 위법 사항은 ▲ 공원녹지법 위반 ▲ 공유수면 매립 위반 ▲ 불법 건축물 설치 ▲ 국유지 무단사용 위반 등 불법이 드러났다. 이후 여수시는 업체에 원상복구와, 시정명령, 650여 만 원의 강제이행금도 부과했다. 결국 시는 업체를 고발했다.
▲ 직선 거리로 40m 떨어진 야도 FRP조선소 너머로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주민들의 항의가 시작되었다. ⓒ 심명남
▲ 19일 작업중지가 내려진 신우조선소 작업장에 쌓인 석면가루(위)와 여성 작업자가 FRP를 칠을 하고 있다. 한 남성이 그라인더질(우)을 하고 있는 모습이 21일 확인되었다 ⓒ 심명남
소경도 주민들의 항의 방문도 이어졌다. 지난달 25일에는 이 조선소 소유의 어선이 침몰해 기름이 유출되면서 인근 자연산 바지락이 폐사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4일 후 주민대표간의 면담이 이루어졌고 상황은 급변했다. 지난 12일에는 부시장 주관으로 기획재정국장을 비롯해 12개 부처에서 야도 FRP조선소 영업 관련 대책회의가 열렸다. 급기야 19일에는 작업중지 명령까지 내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영업은 진행 중이다. 시는 강도 높은 단속에 돌입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는 없다. 불법영업 4개월 만이다.
이 같은 묻지마 영업은 여수시의 안일한 대응이 화를 자초한 면이 크다. 여수시는 핑퐁게임 하듯 담담부서가 늘어났다. 시는 최초 도시계획과에서 단속에 들어갔다. 이후 해당 동사무소인 월호동, 해양항만과, 건축과, 지역경제과, 기후환경과, 어업생산과까지 나섰다. 결국 공원과가 주관부서가 되었다.
멸치막 옆 조선소... 여수수산물 전체로 퍼질라
FRP조선소는 '몰드'라는 배모양의 틀에다 합성수지인 FRP에 본드를 칠해 배를 찍어낸다. 크레인을 이용해 통째로 배를 떠낸 후 그라인더로 갈아내기 작업을 한다. 이때 대기로 날리는 석면가루가 바로 발암물질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작업자는 "2.3.5.6.7.9.12.15.29 톤 등 10가지의 다양한 배를 만들어 낼 수 있어 연간 300억 원의 매출이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조선소 뒤편 펜스 너머 민둥산도 가관이다. 업체가 불법으로 형질을 변경했다. 야산을 굴착기로 밀어 버렸다. 조선소를 더 확장하기 위해 욕심을 부리다 덜컥 걸려들고 만 격이다. 이보다 더 우려되는 것도 발견되었다. 조선소 옆 야산을 사이에 두고 있는 대형 멸치공장이다. 바로 00수산이다. 이곳은 20년 전부터 멸치막을 운용해 왔단다.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 4명과 한국인 4명이 일하고 있다.
▲ FRP 조선조 옆에 위치한 00수산은 20년째 이곳에서 멸치를 말려 수협에 위판하고 있다. 멸치를 말리는 대발이 쌓여있는 가운데 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 심명남
이곳 관계자는 "옛날처럼 소규모가 아닌 대규모 조선소가 생겨 문제다"면서 "그라인더 질을 하면 하얀 가루가 바다로 뿌옇게 흘러 내려 목이 칼칼하다"면서 "내가 이곳에서 일 못한다고 나가면 (멸치막 사장이) 굉장히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며 조선소에 대한 불만을 터트렸다. 멸치막 책임자 송씨의 말이다.
"조선소 사장이 상당히 끗발이 좋은가 봐요. 어제(20일) 하루만 작업 중단하드만 오늘은 계속 일해요. 우린 멸치를 공장 안에서 건조하지만 멸치가 식품인데 이 사실이 밖에 알려지면 누가 먹겠어요? 모든 멸치가 수협으로 들어가는데 여수가 전체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죠. 멸치막 옆에서 저렇게 크게 조선소를 하면 안 된다고 봐요."
▲ 20년째 야도에 살고 있는 조순옥(59세)씨는 "요즘처럼 뒤쪽에서 바람이 불면목이 칼칼하고 간지럽다, 애기 아빠가 밖에 널어놓은 빨래를 입으면 몸이 껄끄럽다"고 불편한 심기를 비쳤다 ⓒ 심명남
조선소 뒤편에 있는 한 가정집을 찾았다. 20년째 이곳에 살고 있는 조순옥(59세)씨는 "우리 집 뒷산이 다 대나무 밭이었는데 산을 밀어버려 벌거숭이가 되어 버렸다"면서 "아직은 큰비가 안 와서 괜찮지만 큰 비가 오면 우리 집이 다 피해를 볼 것 같다"라고 걱정을 털어놨다. 조씨는 이어 "처음에 땅 주인이 와서 옛날처럼 배를 뭇는다길래 저렇게 크게 할 줄은 몰랐다"면서 "요즘처럼 뒤쪽에서 바람이 불면 목이 칼칼하고 간지럽다, 애기 아빠가 밖에 널어놓은 빨래를 입으면 몸이 껄끄럽다고 한다"면서 불편한 심기를 비쳤다.
여수시 FRP조선소 문제, 땜방식 행정 아닌 대안 마련해야
▲ 야도가 바라다 보이는 신월동 금호아파트 앞 인도에 불법 FRP조선소를 규탄하는 펼침막이 곳곳에 있다. ⓒ 심명남
한편 신우조선소의 입장은 완강하다. 신우조선소 대표 임씨는 "중앙조선소와 일성조선소와 지분계약을 맺고 회사가 합병식으로 되었다"라며 "10%의 지분만큼 수익을 드리겠다고 계약을 했고 일성조선소 몰드를 인수했다"면서 "여긴 전부터 영업했던 곳이다, 대표가 바뀌었다고 영업을 못하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며 철거의향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임씨는 이어 작업중지명령이 났는데도 영업을 한 것에 대해 "아직 공문을 못 받았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불법 건축물과 적발된 부분은 시정 용의가 있고, 임야 복구는 원상복구를 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멸치공장이 피해를 호소하는 데 대해 "직접적인 민원제기는 없었다"며 "00수산과 주민 4가구에 대해서는 죄송하다"는 뜻을 전했다.
어촌에서 FRP 배는 분명 필요하다. 배는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300억 매출을 올려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3D업종 FRP 조선소의 불법영업은 분명 단속대상이다. 반면 일이 벌어지면 단속에만 급급한 땜방식 행정은 결국 행정력만 낭비될 뿐이다. 여수시는 3D업종을 쫓아낼 궁리만 할 것이 아니라 이들 업종도 원활히 영업을 할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해 줘야 한다. FDA도 인증한 청정 여수의 수산물에 발암물질 FRP 석면가루가 묻었다는 끔찍한 일은 상상만해도 끔찍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전라도뉴스> <여수넷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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