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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정치를 말하는 것이 위선?

[영원한 자유를 꿈꾼 불온시인 김수영 ⑥] <웃음>

등록|2013.02.22 18:04 수정|2013.03.06 17:28
웃음은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은 얼마나 서러운 것일까
푸른 목
귀여운 눈동자
진정 자는 기계주의적 판단을 잊고 시들어갑니다.
마차를 타고가는 사람이 좋지 않어요
웃고 있어요
그것은 그림
토막방 안에서 나는 우주를 잡을 듯이 날뛰고 있지요
고운 신이 이 자리에 있다면
나에게 무엇이라고 하겠나요
아마 잘있으라고 손을 휘두르고 가지요
문턱에서.
이보다 더 추운 날처럼 나는 여기서 겨울을 맞이하다가
오랜 시간이 경과된 후에도
이 웃음만은 흔적을 남기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
시간에 달린 기이다란 시간을 보시오
내가 어리다고 한탄하지 마시오
나는 내 가슴에 또하나의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1948)

이 시는 1948년에 지어졌습니다. 현전 작품 중에서 이 해에 쓰인 작품으로는 이 시가 유일합니다. 1948년은 남북에 각기 다른 정부가 출범한 해였습니다. 먼저 8월 15일에 남쪽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됩니다. 그로부터 25일이 지난 9월 9일에는 북쪽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출범하지요. 한 민족에 두 개의 나라가 세워지는 비극의 분단 시대가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다른 어떤 해보다 정치적으로 격변기였던 셈이지요.

1948년은 수영이 처음으로 참여한 동인지 <신시론>이 나온 해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해는 수영을 비롯한 <신시론> 동인들에게 새 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희망과 열정이 그들과 함께했습니다. 그들은 여세를 몰아 곧 두 번째 동인지 발간에 박차를 가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깁니다. 동인 모임에서 공공연히 대표처럼 행세하는 김경린에 대한 반감으로 김병욱이 탈퇴를 선언한 것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수영도 여기에 동조하려 했지요.

이러한 상황의 이면에는 김병욱-김경희와 김경린-박인환 간의 반목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1948년 남산 공원에서 열린 '문학의 밤' 참가 여부에 대한 의견 대립이 있었지요.

'문학의 밤'은 문인들이 연 일종의 시국 토론회 같은 것이었습니다. 김병욱과 김경희는 그 '문학의 밤'에 참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들은 당대 현실의 문제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내세웠지요. 반면에 김경린과 박인환은 동인 활동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문학의 밤'이 현실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고 봤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이들에게 당대의 사회 현실은 첨예한 문제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회 현실에 대한 입장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기, 아니면 회피하기가 바로 그것이지요. <신시론> 동인들은 후자를 택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논리는 궤변에 가까웠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지요.

"정치는 현실이다. 시인은 현실 위에 서 있다. 그러므로 시인이 새삼스럽게 정치를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수영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당대의 정치적인 격변 상황 속에서 자신의 문학적인 지향이 온존하기는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 괴리감 속에서 수영은 새삼 자신을 돌아봅니다. 자신의 내면을 찬찬히 응시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바로 '웃음'이 매개물 구실을 하지요.

이 시는 '웃음 (만들기)'에 관한 하나의 대전제로부터 시작합니다. 이 대전제에 따르면, '웃음'은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웃음'을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다면 그 웃음(을 만들어내는 일)은 서러운 것이 됩니다. 나 스스로가 '웃음'을 만들어내려고 몸부림치는 행동은 헛됩니다.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우물 안 개구리의 하릴 없는 뜀박질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는 "토막방 안에서 나는 우주를 잡을 듯이 날뛰고 있지요"(8행)에서 보입니다.

'고운 신'은 그런 나를 향해 '안녕'하고 손을 흔들며 가버립니다. 신의 구원은 영영 없는 것이 됩니다. "고운 신이 이 자리에 있다면 / 나에게 무엇이라고 하겠나요 / 아마 잘 있으라고 손을 휘두르고 가지요"(9~11행)가 바로 그것이지요. 그래서 화자 '나'에게 이 세상은, 그리고 현실은 '추운 날'이 됩니다. 그 현실이 연장된 미래 또한 '겨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가 '웃음'을 만들지 않으면 됩니다. 대신 세상이 '웃음'을 만들면 됩니다. 현실이 '웃음'을 만들면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조건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과 현실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 세상과 현실 위에 살아가는 사람이 바뀌어야지요.

가능성은 있습니다. '시간에 달린 기이다란 시간'(17행), 곧 영속하는 역사의 긴 끈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이다란 시간'의 끈 위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면 됩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바꾸어나가는 노력을 기울이면 됩니다. 지금은 비록 우리가 '어리다고 한탄'(18행)을 받을지라도 역사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면 됩니다.

다행스럽게도 화자는, 그리고 수영은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합니다. "나는 내 가슴에 / 또하나의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는 그런 다짐이자 선언입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향한 채찍질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새로운 '나', 아니 새 '나'를 위한 자기 부정의 고통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자기 모멸의 괴로움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나, 교만하고 어리석은 우물 안 개구리와도 같은 나와의 결별! 이것은 수영이 시종일관 지키고자 했던, 자신과의 확고한 약속이었습니다. 수영의 시가, 그리고 문학이 지금 바로 이곳의 현실과 불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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