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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가 그렇게 두려운가

해고자 조합원 자격 문제 다시 논란

등록|2013.02.24 16:38 수정|2013.02.24 16:59
현직 교원이 아닌 해직 교원도 조합원이 될 수 있는 전교조 규약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과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에 어긋난다며 시정명령을 내렸으나 전교조가 이를 수용하지 않아 고용노동부가 전교조의 합법성을 박탈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기사가 22일 났다.

전교조 규약에는 "조합원이 조합 활동을 하거나, 조합의 의결기관이 결의한 사항을 준수하다 신분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입은 때에는 규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조합원 신분을 보장하고 조합원 또는 그의 가족을 구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전교조는 해직자의 조합원 자격 부여 문제는 노동조합의 자주성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가 간섭할 사안이 아니라며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제4호 라목과 제23조제1항은 '노동조합이 자주적 단결체로서 근로자 아닌 자가 노동조합에 가입 또는 임원으로 선출될 경우 노동조합의 주체성과 자주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취지하에 해고된 자는 원칙적으로 근로자 자격을 상실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 문제는 노조활동을 근본적으로 위축시키려는 고용주 측의 이해와 노조활동의 기본권을 지켜내려는 노동자 측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갈등을 빚어 왔던 문제다. 왜냐하면 노조 입장에서는 노조활동과 관련된 해직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결국엔 해고가 두려워 적극적인 조합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태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 노조법이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부정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것은 형평성과 공정성을 유지하는 것에서 나아가 약자를 보호해야 할 법이 오히려 사실상 강자인 고용주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보호해 주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와는 달리 영국(노동조합및노동관계 통합법 제 296조 제1항)과 일본(노동조합법 제3조)은 모든 실업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고 있다. 프랑스(노동법전 L.411-7조)는 일정 직업에 1년 이상 종사했던 자는 직업 활동이 종료되더라도 조합원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자신이 선택한 노조에 신규 가입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NLRA 제 2조 3항)은 노동쟁의 또는 부당노동행위 관련 실직자(고용부가 문제 삼고 있는 우리나라의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고 있다.

ILO는 조합원 및 임원 자격요건 결정은 노동조합이 그 재량으로 규약으로 결정할 사항(결사의자유위원회, 제327차 보고서, 2002년, 490항)이라며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제4호 라목과 제23조제1항 폐지'를 여러 차례 권고한 바 있다.

이처럼 실업자마저 조합원 자격을 부여받고 있는 외국의 사례를 볼 때 조합 활동으로 인한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문제 삼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일이며 국제적으로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1997년 3월 11일 노동법이 개정됨에 따라 해고자의 조합원자격이 인정되는 범위는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이 있는 때까지'로 축소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후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한 사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국민의 정부 시절 비록 당시 정부가 그 실행을 보류하였지만 1·2기 노·사·정위에서 실업자의 초기업단위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내용의 노동조합법 개정안에 원칙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2004년 대법원은 서울지역여성노조가 "실업자, 구직 중인 여성이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노조를 설립하지 못하게 한 것은 부당하니 설립신고 반려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서울시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 2심과 같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는 "특정 사용자에게 종속돼 있는지에 따라 근로자개념을 정한 근로기준법과 달리 노동조합법은 단결권 등 노동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가에 따라 근로자 범위가 결정 돼야 한다"며 "일시적인 실업상태나 구직 중인 자도 노동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 한 근로자의 범위에 포함"되며 "실업자에는 해직근로자뿐만 아니라 실직자와 구직중인 실업자도 포함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2010년에는 발전노조에 대해 해고자의 조합원 관련 시정명령을 취소하는 판결(2010구합8928 노동조합규약시정명령취소)이 행정법원에서 내려진 바 있다. 물론 이 두 사례는 단위 기업 노조가 아니라 산별노조에 적용된 것이다. 그러나 전교조 역시 개별 기업에서 조직된 노조가 아니라 사실상 산별노조에 해당되므로 이 판결이 준용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전교조가 노조규약 시정명령에 대해 고용부를 상대로 노조규약 시정명령 청구소송을 냈지만 서울행정법원은 2010년 11월 "고용노동부가 내린 시정명령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는 조항은 1980년 국보위 시절 만들어져 1997년에 폐지된 군사독재시절 유산인 '제3자 개입금지법'과 본질상 같은 역할을 하는 악법조항이다. 아니 오히려 제3자 개입 금지법 보다 더 나쁘다고 할 수 있다. 제3자 개입금지법이 노조 밖의 진보적인 단체의 노조 활동 지원을 차단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면,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 박탈을 규정하는 조항은 기본적인 노조 활동 자체를 사실상 제한하는 조항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온갖 사유로 정당한 노조활동을 해고 근거로 남발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면 왜 새누리당 정부(고용부가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박근혜 정부 출범 후인 3월에 조치하겠다는 걸로 봐서 박근혜 정부도 동일한 입장임을 알 수 있다)는 새 정부 출범 초기에 굳이 전교조만을 문제 삼아 법외노조로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지난 대선 때 후보자 3차토론 시 박근혜 후보가 보여줬던 전교조에 대한 입장을 안다면 이런 상황이 그리 이상할 것도 없고, 또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전교조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많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그 숫자가 몇이든 간에 아이들에게 민주시민 교육을 제대로 시키려는 전교조 교사들이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민주시민교육을 제대로 받은 국민은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것에 이해관계를 갖는 자신들에게는 무조건적인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6만 여 전교조 교사 자체도 정치적 걸림돌이지만 그들에 의해 교육받고 있는 자라나는 세대들이 더 큰 두려움의 대상이 아닐까?

비록 51.6%의 지지로 정권연장에는 성공했지만 그들은 1469만 표라는 야당 후보 지지자의 존재가 여전히 떨쳐버릴 수 없는 현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보다 단 1.8%만이라도 야당 지지자가 늘어나면 결코 다음 선거에서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전교조를 약화시키는 일은 정권의 명운이 달려있는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일 중 하나다.

최근 소위 전교조 교사들이 이적단체를 만들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국가의 적을 이롭게 할' 단체를 만든 어마어마한 범죄 집단이 불구속된 것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이미 거의 1년 전에 압수 수색 등의 수사를 다 해 놓고도 가만히 있다가 하필 지금 시점에 비록 엉성하기 짝이 없지만 조직사건으로 발표한 것도 영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

먼저 일부를 용공으로 몬 후에 그 세력을 약화시키거나 파괴하는 것은 우리 현대사에서 자주 등장한 반대파를 공격할 때 썼던 너무도 낯익은 고전적인 수법이 아닌가? 그래서 일단 전교조를 이적용공단체로 덧씌운 후에 전교조의 법외노조화에 대한 지지여론을 형성하고 이를 합리화하려는 게 그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또한 거듭되는 인사 실패와 역대 최저 당선자 지지도라는 위기 상황을 맞아 새 정부 출범 시 지지 세력을 결집시켜 안정적인 출발을 하기 위해서도 진영을 묶어세울 공동의 공격 대상이 필요해졌다. 위 대선 토론회 때 문재인 후보가 적극 옹호했던 전교조, 진보세력의 상징인 전교조만큼 그에 걸 맞는 대상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런 여러 가지 의도를 가지고 전교조를 약화시키기 위한 명분이 "근로자 아닌 자가 노동조합에 가입 또는 임원으로 선출될 경우 노동조합의 주체성과 자주성을 저해할 우려" 때문이라며 전교조의 '주체성'과 '자주성'을 염려하는 눈물겨운 배려 때문이라는 것이 가히 한편의 코미디 같을 뿐이다.

진정으로 전교조의 '자주성'을 지켜주려면 노동자의 자주적 조직인 노조가 자신의 자주적 판단에 의거해 조합원 자격을 자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전교조는 전교조의 자주성에 대한 정부의 이런 배려에는 당연히 'no thank you'일 수밖에 없다. 세계 대부분 나라들에서 해고자는 말할 것도 없고 실업자까지 조합원으로 인정하고 있는 이 시대에 제발 이런 배려는 그만두고 멀쩡한 노조에 해고자 자격 시비를 걸어 조합의 존립 자체를 부정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사실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 인정이 노조의 존립과 직접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노조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어용노조로 규정되고 있는 경우조차 노조 활동 관련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이 조항 때문에 법외노조가 된 공무원 노조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전교조만이 그 법조항의 적용을 직접 받고 있다.

따라서 전교조를 이와 같은 사유로 법외노조화 하게 되면 이는 전교조만이 아니라 전체 노조의 연대를 강화시킬 것이며 강력한 저항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민의 정부 시절 실업자의 조합원 자격을 인정했던 노사정위의 합의안에 대해 한국노총도 적극 환영하고 이의 이행을 촉구했던 바가 있다. 이는 그만큼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 문제가 노조에게는 민감한 문제이며 조직의 존립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박근혜 정부가 철저한 사회법질서 준수를 주요 방침으로 한다면서 현행 노조법의 기계적인 적용을 고집하며 전교조의 합법성을 박탈하는 사태로까지 가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저 보수 세력들의 단결을 넘어서서 정권 초기부터 보수·진보진영 간의 극한적인 대립이 초래되어 국론분열과 정국의 불안정이 야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5년 동안 장사꾼 대통령의 천박함에 시달려 왔는데 앞으로 5년을 군사독재의 유령에 시달리며 살고 싶지는 않다. 비록 박근혜 당선자의 부녀 인연이 피할 수 없는 것이긴 하나 앞으로의 대한민국 5년을 이끌어 갈 박근혜 정부는 대한민국의 시계를 40년 전으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희망을 만드는 정부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래서 오히려 아버지의 독재자라는 오명과 한계까지도 씻어내는 정부가 된다면 더욱 좋겠다.

따라서 지난 5년보다는 나은 앞으로의 5년을 기대하고 있는 마당에 박근혜 정부가 정권 초기부터 이런 어려움을 겪으며 출발하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다. 안 그래도 인사실패로 인해 국민들의 거부감과 야권의 공격은 말할 것도 없고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진영과 새누리당 안에서조차 비판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제발 해고자 조합원 자격시비 같은 문제로 전교조의 자주성을 걱정해주며 실제로는 전교조의 자주성을 파괴하는 일일랑 접어주길 바란다. 대신 국민 대통합을 위한 보다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정책에 집중해 많은 국민들로부터 박수 받는 새 정부로 아름다운 출발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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