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맞추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체험기] 온종일 책과의 전쟁... 서점 직원의 하루
레일 위로 입고된 책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들어온다. 책들마다 각 부서별로 분류된다. 분류된 책들을 책장에 꽂으려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고객들은 "이 책은 어디에 가면 찾을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
온종일 책과 씨름해야 하는 서점 직원의 일과를 짧게 정리한 것이다. 서점에 새롭게 들어오는 책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각 책의 내용과 성격에 맞는 부서에 진열하는 게 그들의 주된 업무다.
서점에서 직접 일하며 겪은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책과의 전쟁'이었다. 지난 18일부터 23일까지 1주일 동안 내가 일했던 곳은 대형서점. 그렇다 보니 신간을 포함해 수천에서 수만 권에 달하는 양의 책들이 매일 입고됐다. 쉬지 않고 쏟아져 들어오는 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책의 홍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루 동안 해야 하는 주요업무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겠다.
밀려오는 푸른색 박스... 전쟁은 시작됐다
각 부서의 방으로 연결된 레일 위로 푸른색 박스들이 밀려 들어온다. 그 안에는 박스당 수십 권의 책들이 들어있다. 직원들은 인문·문학·잡지·교재·외국도서·자기계발서 등으로 나누어져 들어온 책들을 또다시 분류한다. 예를 들면 문학의 경우 시·소설·에세이 등으로 재분류하는 것이다.
마지막 차례는 가나다순으로 책을 책장에 꽂는 것이다. 서점의 규모가 크다 보니 책장 크기가 성인 남성의 키보다 클 뿐만 아니라 개수도 부서별로 수십에 달한다. A부터 Z까지, 숫자 0부터 34까지 다양한 조합으로 이름 붙여진 수 많은 책장들. 각각의 책장에는 하나의 부서에만 자그마치 수천 권의 책들이 나란히 진열돼 누군가 자신을 집어들기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어느 위치에 어떤 책이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던 근무 첫날. 나는 스마트폰보다 조금 큰 기계인 PDA를 받았다. 기계의 적색 광선이 나오는 부분에 책의 뒷면에 새겨진 바코드를 대면 'J-24'와 같이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이 화면에 뜬다. 이 짧은 문자들이 책의 이름과 저자명, 분류된 책의 종류와 더불어 책이 어느 곳으로 진열돼야 하는지 알려주는 기호인 것이다.
'쉬고 싶다'... 입고 서적에겐 자비심이 없었다
긴 시간동안 멈추지 않고 입고되는 책을 보면서 '잠시 쉬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했지만, 종이들의 묶음인 책에게 자비심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오히려 마치 '누가 이기나 해보자'라고 대결을 신청해오듯, 책들은 철제 레일 위로 끊임없이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매장 안에서 수십 차례 빠르게 다녀야 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 근육이 당겨왔다. 여러 권의 책과 PDA를 동시에 쥐고 옮겨야 했기에 팔 근육도 금세 피로를 느꼈다. 잠시 앉을 틈도 없이 계속된 업무에 하다 보니 다리를 휘청거릴 뻔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 책을 옮기다가 책장 사이로 걸어나오는 고객과 부딪힐 뻔도 했다.
책들은 반드시 지정된 구역에 진열되도록 돼 있다. 공간이 넉넉하지 않을 경우에는? 인정사정없다. 책장에 꽂힌 책들 전체를 앞이나 뒤로 바짝 당겨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어야 했다.
입고된 책의 진열이 끝나도 업무는 끝나지 않았다. 이미 진열된 책들은 고객들이 집어들고 내려놓기를 반복한 뒤 흐트러지고 순서가 뒤바뀌곤 했다. 이런 책들을 찾아 제대로 다시 정리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매우 곤란해진다. "이 책은 어디에 있나요?"라고 묻는 고객의 요청에 해당 코너에 책을 찾으러 갔을 때, 정해진 구역에서 책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재고가 많아 책장 옆에 쌓아놓은 책이 와르르 무너지기라도 하면? 그건 재앙이다. 많은 사람들이 걸음에 밟혀서 훼손되기 전에 재빠르게 다시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편리한 책 구입? 그 너머에는 땀 흘리는 사람 있다
8시간 동안 근무하면서 '휴전'은 없었다. 쉴 새 없이 여기저기서 나뒹구는 책들을 정리해야 했다.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은 다름 아닌 식사시간. 무거운 책들을 옮기던 때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너무 빠르게 지나가 야속하기만 했다.
서점의 업무가 종료되는 마감 시각이 가까워지고, 폐장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지는 순간에는 구원받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음악을 듣는 듯했다. 폐장 안내방송을 들으며 '마침내 책들이 나를 놓아주는구나' 혼잣말을 되뇌기도 했다.
책은 지식과 감정 표현을 전달하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방식이지만, 동네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 등을 통해 무척 쉽고 편하게 책을 접할 수 있게 됐다.
체험해보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깔끔하게 진열된 책들을 편하게 구입할 수 있게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말이다. 이제는 다른 서점에 들르더라도 책을 읽은 뒤에는 반드시 원래 있던 그 자리에 다시 꽂아놔야 마음 편히 돌아설 수 있을 것 같다.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일상적인 편리함을 위해서,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땀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온종일 책과 씨름해야 하는 서점 직원의 일과를 짧게 정리한 것이다. 서점에 새롭게 들어오는 책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각 책의 내용과 성격에 맞는 부서에 진열하는 게 그들의 주된 업무다.
서점에서 직접 일하며 겪은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책과의 전쟁'이었다. 지난 18일부터 23일까지 1주일 동안 내가 일했던 곳은 대형서점. 그렇다 보니 신간을 포함해 수천에서 수만 권에 달하는 양의 책들이 매일 입고됐다. 쉬지 않고 쏟아져 들어오는 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책의 홍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루 동안 해야 하는 주요업무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겠다.
밀려오는 푸른색 박스... 전쟁은 시작됐다
각 부서의 방으로 연결된 레일 위로 푸른색 박스들이 밀려 들어온다. 그 안에는 박스당 수십 권의 책들이 들어있다. 직원들은 인문·문학·잡지·교재·외국도서·자기계발서 등으로 나누어져 들어온 책들을 또다시 분류한다. 예를 들면 문학의 경우 시·소설·에세이 등으로 재분류하는 것이다.
마지막 차례는 가나다순으로 책을 책장에 꽂는 것이다. 서점의 규모가 크다 보니 책장 크기가 성인 남성의 키보다 클 뿐만 아니라 개수도 부서별로 수십에 달한다. A부터 Z까지, 숫자 0부터 34까지 다양한 조합으로 이름 붙여진 수 많은 책장들. 각각의 책장에는 하나의 부서에만 자그마치 수천 권의 책들이 나란히 진열돼 누군가 자신을 집어들기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어느 위치에 어떤 책이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던 근무 첫날. 나는 스마트폰보다 조금 큰 기계인 PDA를 받았다. 기계의 적색 광선이 나오는 부분에 책의 뒷면에 새겨진 바코드를 대면 'J-24'와 같이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이 화면에 뜬다. 이 짧은 문자들이 책의 이름과 저자명, 분류된 책의 종류와 더불어 책이 어느 곳으로 진열돼야 하는지 알려주는 기호인 것이다.
'쉬고 싶다'... 입고 서적에겐 자비심이 없었다
▲ 수천 권의 책들이 나란히 진열돼 누군가 자신을 집어들기를 기다리고 있다. ⓒ sxc
긴 시간동안 멈추지 않고 입고되는 책을 보면서 '잠시 쉬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했지만, 종이들의 묶음인 책에게 자비심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오히려 마치 '누가 이기나 해보자'라고 대결을 신청해오듯, 책들은 철제 레일 위로 끊임없이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매장 안에서 수십 차례 빠르게 다녀야 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 근육이 당겨왔다. 여러 권의 책과 PDA를 동시에 쥐고 옮겨야 했기에 팔 근육도 금세 피로를 느꼈다. 잠시 앉을 틈도 없이 계속된 업무에 하다 보니 다리를 휘청거릴 뻔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 책을 옮기다가 책장 사이로 걸어나오는 고객과 부딪힐 뻔도 했다.
책들은 반드시 지정된 구역에 진열되도록 돼 있다. 공간이 넉넉하지 않을 경우에는? 인정사정없다. 책장에 꽂힌 책들 전체를 앞이나 뒤로 바짝 당겨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어야 했다.
입고된 책의 진열이 끝나도 업무는 끝나지 않았다. 이미 진열된 책들은 고객들이 집어들고 내려놓기를 반복한 뒤 흐트러지고 순서가 뒤바뀌곤 했다. 이런 책들을 찾아 제대로 다시 정리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매우 곤란해진다. "이 책은 어디에 있나요?"라고 묻는 고객의 요청에 해당 코너에 책을 찾으러 갔을 때, 정해진 구역에서 책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재고가 많아 책장 옆에 쌓아놓은 책이 와르르 무너지기라도 하면? 그건 재앙이다. 많은 사람들이 걸음에 밟혀서 훼손되기 전에 재빠르게 다시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편리한 책 구입? 그 너머에는 땀 흘리는 사람 있다
8시간 동안 근무하면서 '휴전'은 없었다. 쉴 새 없이 여기저기서 나뒹구는 책들을 정리해야 했다.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은 다름 아닌 식사시간. 무거운 책들을 옮기던 때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너무 빠르게 지나가 야속하기만 했다.
서점의 업무가 종료되는 마감 시각이 가까워지고, 폐장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지는 순간에는 구원받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음악을 듣는 듯했다. 폐장 안내방송을 들으며 '마침내 책들이 나를 놓아주는구나' 혼잣말을 되뇌기도 했다.
책은 지식과 감정 표현을 전달하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방식이지만, 동네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 등을 통해 무척 쉽고 편하게 책을 접할 수 있게 됐다.
체험해보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깔끔하게 진열된 책들을 편하게 구입할 수 있게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말이다. 이제는 다른 서점에 들르더라도 책을 읽은 뒤에는 반드시 원래 있던 그 자리에 다시 꽂아놔야 마음 편히 돌아설 수 있을 것 같다.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일상적인 편리함을 위해서,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땀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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