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한국지엠, 8조 투자받기로 했지만, 노동자들은 '고용불안'

노조, "공장별 생산계획, 돌려막기 경영" 반발

등록|2013.02.27 20:38 수정|2013.02.27 20:38
지난 22일 지엠(GM)이 향후 5년 동안 한국지엠에 8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함께 발표된 애프터서비스(A/S)와 CKD(Complete Knock Down : 자동차 부품을 포장·수출하는 방식)의 외주화 추진, 공장별 차량 생산 계획 등을 두고 노동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지엠의 '2014년 크루즈 신형(D2XX) 생산에서 군산공장 배제' 방침에 대해 전국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이하 지엠노조)와 군산 지역사회가 반발하자, 지엠은 부평 2공장에서 생산할 예정이던 캡티바 후속모델을 군산공장에서 생산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지엠노조 등은 지엠이 '돌려막기'식 경영을 펴고 있다며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지엠, 한국지엠 발전 전략 'GMK 20XX' 발표

▲ 팀리 지엠 해외사업부문 사장과 한국지엠 세르지오 호샤(Sergio Rocha) 사장. 이들은 22일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향후 한국지엠에 8조원을 투자해 6개 신차 등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 한국지엠 제공> ⓒ 한만송


지엠에서 서열 5위로 알려진 팀리(Tim Lee) 해외사업부문 사장과 세르지오 호샤(Sergio Rocha) 한국지엠 사장 등 주요 경영진은 지난 22일 부평공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지엠의 미래 발전전략이라 할 수 있는 'GMK 20XX'를 발표했다. 지엠 경영진은 "지엠은 한국을 떠나지 않으며, 군산공장에서 캡티바 후속모델을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향후 5년간 한국지엠에 8조 원을 투자해 신차 6종과 차세대 파워크레인 등을 개발, 한국 내수시장 점유율을 20%로 끌어올리겠다는 비전도 밝혔다.

호샤 사장은 "최고의 제품을 디자인·생산·판매하는 것이 지엠과 한국지엠의 비전"이라며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서는 ▲ 내수시장 기반 강화 ▲ 글로벌 디자인·엔지니어링 역량 강화 ▲ 글로벌 생산 역량 강화 ▲ 글로벌 CKD 역량 강화 등 4대 핵심 영역에 집중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GMK 20XX' 전략에 따른 공장별 차량 생산 계획을 보면, 부평공장에서 차세대 소형차 감마(T400)와 차세대 전기차 그리고 차세대 엡실론(말리부 후속모델)과 파워트레인을 생산한다. 창원공장에선 차세대 미니(M400)와 파워트레인을 생산한다. 군산공장에선 라세티프리미어(수출용) 생산을 연장하고, 크루즈 모델을 부분 변경해 생산한다. 올란도 생산도 연장하고, 차세대 캡티바를 추가로 생산한다.

지엠이 한국지엠 출범 후 매년 1조여 원을 투입해 신차를 생산한 것과 비교하면, 이번 'GMK 20XX' 전략은 한국지엠에 선물 보따리를 푼 것처럼 보인다.

지엠노조, A/S와 CKD 부문 외주화 방침에 반발

▲ 한국지엠지부 사무지회 조합원들이 지난 20일 한국지엠 부평공장 식당 앞에서 '연구개발 생산물량 지속 방안 제시하라'는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 한국지엠지부 사무지회> ⓒ 한만송


하지만, 노조와 현장조직들은 지엠의 이러한 전략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유는 지엠의 A/S와 CKD 부문의 외주화 방침 때문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 보도를 보면, 지엠은 한국지엠의 CKD라인 외주화로 1000여 명의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CKD 생산물량은 한국지엠 생산물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지난해 한국지엠은 내수와 수출을 포함해 총 80여만 대를 생산해 판매했고, CKD 방식으론 120여만 대를 생산해 수출했다.

지엠노조는 지난 26일 소식지를 통해 "노조는 꾸준히 직영 정비(A/S)의 확대를 요구했고, CKD 부문은 한국지엠의 핵심 사업이지만 상당히 외주화돼 있어 비정규직이 다수인 상황"이라며 "외주화는 (노사) 단체협약 사항이므로 (회사가) 일방적으로 시행할 수 없고, 외주화에 단호하게 맞서겠다"고 밝혔다.

캡티바 후속모델의 군산공장 생산 계획에 대해서도 "군산에 있던 '폭탄'을 부평으로 옮겨놓는 '폭탄 돌리기'식의 해법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조합원들 내부를 경쟁시키는 지엠의 결정에 분노한다"며 "캡티바 후속이 부평이냐 군산이냐의 논란이 아닌 각 공장의 발전 전망을 확보하기 위해 지엠에 맞서 싸운다는 원칙 속에서 대응 방안을 세울 것"이라고 했다.

2000년 정리해고 당시 해고자 1700여 명이 발생한 부평공장은 정리해고 공포가 크다. 또한 부평공장의 생산물량을 다른 공장으로 이전하는 것은 부평뿐 아니라 인천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캡티바 후속모델을 군산공장에서 생산하겠다는 지엠의 계획이 알려지자, 부평2공장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캡티바는 부평2공장의 주력 생산 차종에 속한다. 부평2공장은 알페온과 말리부·수출용 토스카와 캡티바를 생산해왔다.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된 캡티바는 4682대로, 캡티바는 말리부(1만3210대), 알페온(7008대)과 함께 부평2공장의 주력 차종이다.

지엠이 향후 부평2공장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겠다고 밝혔지만, 캡티바 생산물량을 쫓아갈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창원공장에서 생산하는 전기차의 경우 시간당 1대 정도이며, 전기차 수요는 국내·외적으로 일반 승용차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부평2공장에서 근무하는 박아무개(43)씨는 "부평2공장에 말리부 후속모델을 투입한다고 하지만 언제 들어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회사 발표 이후 불안감을 많이 느끼는 것이 사실"이라고 공장 분위기를 전했다.

지엠노조 사무지회도 "A/S 인건비 절감과 CKD 외주화는 8조 원 투자와 상반되는 고용불안을 야기한다"며 "8조 원을 투자할 거면 설비를 개선하고 직원의 처우를 개선해 자발적인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지엠의 '돌려막기' 전략, 노-노 갈등 야기하나

▲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소형 SUV '트랙스(Trax)'. ⓒ 한국지엠


글로벌 생산체계를 갖추고 있는 지엠은 종종 국경을 넘어 생산물량을 이전·배치했다. 한국지엠이 최근 국내 시장에 출시한 트랙스(Trax)도 당초 유럽에서 생산될 차종이었다.

군산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크루즈의 2014년 신형 모델을 유럽을 비롯한 국외에서 생산하는 대신, 부평2공장에서 생산해온 캡디바의 후속모델을 군산공장에서 생산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자 '돌려막기' '언 발에 오줌 넣기'식 전략이란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이는 자칫 생산 공장 간 갈등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한편, 회사의 이러한 전략에 대한 지엠노조의 대응이 미온적이란 주장이 현장조직에서 나오고 있다. 22일 기자회견에 앞서, 민기 노조 지부장은 지난 21일 팀리·호샤 사장과 면담을 진행했다. 또한 회사는 22일 직원들을 대상으로 경영설명회를 열었다.

지엠노조가 A/S와 CKD 외주화 추진과 함께 부평공장 생산물량 이전과 관련해 회사로부터 통보를 받고도 기자회견과 경영설명회를 대응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전 지엠노조 간부는 "트랙스 디젤 차량을 출시하지 않은 것과 지난해부터 제기된 한국지엠 생산물량 국외 이전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문제를 봐야한다"며 "노조 집행부는 지난해부터 지엠의 경영전략에 끌려만 다녔지, 안정적 생산물량 확보 등에 대해서 확답을 얻어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지엠노조 한 대의원도 "생산물량을 가지고 노동자들을 통제하고, 외주화로 고용을 불안하게 한다"며 "그럼에도 노조가 경영설명회와 기자회견에서 무(無)대응으로 나온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번에 발표된 지엠의 경영전략은 올해 하반기에 예정된 노조 지부장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현 노조 집행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현장조직들은 지엠노조가 지엠의 전략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공격할 공산이 커 보이고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