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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에 갈라 터진 이들... "날씨가 풀려도 걱정"

[현장] 쌍용차 평택공장 앞, 송전탑 고공농성 100일 문화제

등록|2013.02.28 23:02 수정|2013.03.01 00:02

퇴근하는 동료에게 손 흔드는 철탑 농성자들지난 4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한상균(52) 전 지부장, 문기주(53) 정비지회장, 복기성(38) 비정규지회 수석부지회장이 77일째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공장 부근 철탑에서 국정조사 실시, 비정규직 정규직화,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자료사진> ⓒ 권우성


"날씨가 풀려도 걱정이에요."

서울의 최고기온이 13도까지 올라갔던 28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평택 쌍용차 공장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 신혜진(46, 주부·경기도 고양)씨는 마음이 편치 않다.

101일째 평택 공장 앞 송전탑 25m높이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한상균(52) 전 지부장, 문기주(53) 정비지회장, 복기성(38) 비정규지회 수석부지회장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복기성(36) 부지회장이 허리 통증이 심해져 치료하지 않으면 하반신 마비 증세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이 따뜻한 기온에 풀리면, 허리 증세가 악화될 수 있다.

하늘로 올라간 지 101일... "땅에서 씩씩하게 싸우자"

▲ 28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대한문 앞에서 쌍용차 평택 공장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 신혜진씨. 신씨는 철탑에서 고공농성중인 3명의 노동자들의 건강을 염려했다. ⓒ 강민수


신씨와 복기성 부지회장과는 인연이 깊다.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될 일을 찾던 신씨는 복 부지회장의 아내가 몸이 안 좋다는 소식을 듣고는 지인들과 함께 일명 '파스 통장'을 만들었다. '파스값에 보태라'는 마음의 후원금을 매달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철탑에 오르기 전, 신씨는 지인들과 함께 도시락을 싸들고 복 부지회장이 투쟁하던 평택의 비정규직 사무실도 찾아가곤 했다. 복 부지회장이 송전탑에 올라갔다는 소식을 들은 후, 날씨 뉴스를 볼 때마다 송전탑이 생각났다.

"이제 내려왔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우리 살, 깎아 먹고 있는 것 같아요. 철탑에서 내려와 밥 잘 먹고 씩씩하고 튼튼하게 같이 싸우길 바라요."

신씨가 탄 버스가 이날 평택 쌍용차 공장 앞에서 서자, 확성기 마이크 소리가 울렸다. 철탑 위의 세 사람이 퇴근길 노동자들에게 선전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버스에서 내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신씨는 송전탑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버스에서 내린 후 신씨는 공장 앞에서 열린 '쌍용차투쟁승리를 위한 100전 100승 문화제'에 참석했다. 한 겨울을 철탑에서 보냈지만 농성자 3인이 요구했던 국정조사는 이행되지 않고 있다. 지난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박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이들의 요구에 묵묵부답했다.

이날 문화제는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고, 기뻐하고 환호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행사가 진행됐다. 가수 홍순관씨의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지>, 민중노래패 '꽃다지'의 <임을 위한 행진곡>의 노래공연과 극단 '새시대예술연합'의 상황극이 어우러지는 깊은 밤이 이어졌다.

"칼바람에 갈라 터진 그대들, 들여다볼 때까지 이 자리 지킬게요"

▲ 28일 오후, 경기도 평택 쌍용차 공장 앞에서 열린 100일 문화제에는 가수 홍순관씨의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지>, 민중노래패 '꽃다지'의 <임을 위한 행진곡>의 노래공연과 극단 '새시대예술연합'의 상황극이 어우러지는 깊은 밤이 이어졌다. ⓒ 강민수


▲ 가수 홍순관씨의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지>, 민중노래패 '꽃다지'의 <임을 위한 행진곡>의 노래공연과 극단 '새시대예술연합'의 상황극이 어우러지는 깊은 밤이 이어졌다. ⓒ 강민수


"별빛이 흐르는 밤이에요. 우리들의 꿈도, 눈물 같은 시간도 흘러 흘러 언젠가 별이 되겠죠. 매일 밤, 알라딘 요술램프에서 거대한 거인, 지니가 나와 철탑을 에워싸면 좋겠어요. 바람한 점, 비 한 방울 들어갈 수 없도록 문기주, 한상균, 복기성에게 바치고 싶어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고동민씨의 아내, 이정아씨가 한 통의 편지를 읽었다. 세 사람의 건강을 염려하면서 요술램프의 거인, 지니가 그들을 지켜달라는 바람이었다. 그리고 이씨는 다짐했다.

"설날, 철탑 앞에서 어린 자식들이 올린 세배를 받던 당신에게 힘내시라는 말조차 할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이 말만큼은 자신 있게 내뱉겠어요. 그대들 무사히 이 땅 밟을 때까지 돌아서지 않을게요. 칼바람에 갈라 터진 그대들의 얼굴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을 때까지 이 자리를 지킬게요."

이날 문화제에는 시민 300여 명(경찰 추산)외에 김정우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과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권영국 변호사 등도 참석했다.

대학 동기와 문화제를 찾은 한연지(21, 상명대 사진과)씨는 "퇴근 선전전 때 한상균 동지의 목소리가 갈라지고 쉬었다"며 "어서 빨리 내려와서 따뜻한 밥을 먹고 제 목소리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노동문제연구회에서 선배 2명과 함께 온 신혁진(20, 사학과)씨는 "내려올 때까지 건강했으면 좋겠다"며 "하루 빨리 사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힘들면 내려와요, 힘껏 앉아줄게요"에 '고맙다'고 화답

▲ 28일 오후, 쌍용차 평택 공장 앞 송전탑에서 열린 100일 문화제 참석자들은 "힘들면 내려와요, 힘껏 앉아줄게요"하고 외쳤다. ⓒ 강민수


공장 앞에서 뜨거운 문화제의 열기를 이어가던 참석자들은 무대와 100m 떨어진 송전탑 앞으로 이동했다. 참석자들은 촛불을 들고 '한상균 건강해라', '문기주 건강해라', '복기성 건강해라'를 외쳤다. 송전탑 앞에 도착해서는 "힘들면 내려와요, 힘껏 안아줄게요"를 다시 외쳤다.

한상균 전 지부장은 촛불을 든 참가자들을 향해 "너무 고맙다"고 운을 띄운 뒤, "동지들이 보내준 따뜻한 마음으로 어느 해보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희망이 왔다가도 멀어지고, 다시 좇아가면 멀어지길 반복하는 그 시간이 어찌 힘들지 않겠냐"라며 " 오늘 동지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외롭고 그리울 때마다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복기성 부지회장이 "굳게 닫힌 공장 철문을 열어 공장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자"고 말하며 참석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마이크를 이어받은 문기주 정비지회장은 "동지들의 전진을 보고 하늘에 오른 저희들이 건강하게 땅으로 내려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며 "노동자들의 열망이 무엇인지 자본과 정권에 보여주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제는 퍼포먼스로 마무리됐다. 촛불을 든 참가자들은 하나의 단어를 만들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들이 만든 단어는 단 하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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