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아파트, 2층 상가 주고 8천만 원 더 내야..."
안양 융창, 송병헌 비대 위원장이 재개발을 반대하는 이유
▲ 융창지구,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집앞에 현수막을 게재했다. ⓒ 이민선
"기가 막혔지요. 34평 크기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약 8천만 원을 더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어요. 임대료 수입(약100만 원)이 나는 건물인데, 이 건물을 주고도 8천만 원을 더 내야 하니 기가 막힌 일이지요. 경실련에서 발표한 전국 32개 지역 추정 분담금 평균치와 안양 7동 덕천마을 추정 분담금 평균치를 우리 집에 대입해 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어요."
직장 생활하던 송병헌(42)씨가 재개발 반대 운동에 투신한 이유다. 자기 집이 재개발될 경우 추정 분담금이 얼마인지를 직접 계산해보니 8천 만 원을 더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는 것. 정확하게 말하면 송씨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건물은 2층짜리 상가 건물(대지 43평(141.9㎡))이다.
송씨는 현재 경기도 안양시 호계동 융창 아파트 주변 재개발 지구 재개발 반대 비상대책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융창 재개발 지구는 104,085.60㎡ 면적에, 아파트 1820세대를 짓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지역이다.
지난 2006년 8월 추진위원회 설립 승인을 받았고, 5년 후인 2011년 8월에 조합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이어 지난 2012년 2월 25일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현재 사업 시행 인가를 앞두고 있다.
지난 2월 25일 오후 3시, 비상대책 위원장 송병헌씨를 비대위 사무실에서 만나 재개발에 반대하는 이유를 들었다. 송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반대 운동을 펴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사업성이 떨어져 누구도 이익을 볼 수 없는 사업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선대인 경제 연구소 자료, 현대 경제 연구소 자료 등 다 검토해 봤는데, 부동산 경기 불황을 예견하고 있었어요. 부동산 경기가 계속 불황이라면 절대 재개발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일본에서 부동산 거품 꺼질 때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앞으로 부동산 불황이 계속될 거고, 그렇게 되면 아파트값은 계속 떨어질 것입니다. 결국 아파트를 지어도 더 이상 팔리지 않게 된다는 것이지요. 상황이 이렇다면 더 이상 재개발을 하지 말아야겠지요. 재개발 이란 게, 결국 연립 같은 거 다 부순 다음 아파트 짓는 사업이잖아요."
송씨가 재개발 반대 운동을 시작한 건 작년 초순경이다. 국회의원에 출마한 지인을 돕기 위해 선거 사무실에 들렀다가 '재개발'이란 것을 알게 됐고, 그 이후부터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송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재개발 공약을 검토하게 됐는데, 재개발이란 게 참 문제가 많은 사업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내가 사는 곳이 재개발 지역이라서 더 관심이 갔어요. 나름의 공부를 끝내고, 조합장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공영개발' 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어설픈 제안이었지요."
기왕에 할 바엔 '공영개발'로 하자는 송씨 말에 아무도 동조하지 않았다. 실망한 송씨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얻은 결론이 '재개발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사업이란 것'이다.
주민들 갈팡질팡...'어려워'
▲ 송병헌 위원장 ⓒ 이민선
송 위원장은 현재 '조합 해산 동의서'를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미 시작된 재개발 사업을 멈추려면 토지 등 소유자(집주인이나 땅 주인)들에게 조합 해산 동의서(50% 이상)를 받아야 한다.
조합이 결성된 정비구역을 해제하는 방법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하 도정법)에 명시돼 있다. 도정법 16조 2항에 따르면 "조합 설립에 동의한 조합원의 2분의 1 이상 3분의 2 이하의 범위에서 시·도 조례로 정하는 비율 이상의 동의 또는 토지등소유자 과반수의 동의로 조합의 해산을 신청"하면 해당 지자체 장은 조합 설립 인가를 취소해야 한다.
또한, 16조의 2항에 따라 조합이 해산되면 해당 지자체 장은 시·도지사 또는 대도시의 시장에게 정비구역 등의 해제를 요청하여야 한다. (도정법 4조3항) 하지만 재개발 해제 동의서를 받는 일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고 한다.
"이거(해산 동의서 받는 일) 정말 어려워요. 만나서 설득해야 하는데, 일단 만나기가 어려워요. 주소가 없어서 우편으로 유인물 하나 보내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현재 가두방송, 주민 설명회 등을 하고 있는데, 이것도 자금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자주 하기는 어렵지요."
요근래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추정분담금'이 주민에게 통보될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추정 분담금'을 미리 알려 준다면 주민들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인데, 어째서 송 위원장은 걱정하고 있는 것일까?
"저는 추정 분담금, 특히 추정분담금을 산출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추정 보상가를 처음부터 믿지 않았어요. 결국, 재개발하려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달콤한 정보(시세보다 높은 보상가)가 제공될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추정분담금을 알려 달라는 신청서를 내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재개발 반대 운동을 잠시 미루고 직장에 잠시 다닐 때, 다른 사람들이 신청해 버렸어요."
알고 보니 추정분담금을 알려 달라고 요청 한 건 비대위에서 일하는 주민이었다. 지난 2012년 2월 1일 개정된 법령에 따라 (도정법 16조 2항)해당 지자체 장은 토지 등 소유자의 100분의 10(10%) 이상의 요청이 있을 경우 토지 등 소유자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만한, 개략적인 정비 사업비 및 추정 분담금 등을 조사하여 제공 할 수 있게 됐다.
달콤한 추정 보상가가 나올 것이란 송 위원장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안양8동 상록 재개발 지구나 비산동 임곡 재개발 지구 모두, 추정 보상가가 실거래가 보다 높게 나왔어요. 일반적으로 보상가는 실거래가 보다 낮은 게 정상입니다. 우려가 현실이 돼 버린 것이죠. 추정 분담금을 산출하기 위해서는 '추정보상가'를 필히 산출해야 하는데, 그 추정 보상가가 높게 나왔으니, 주민이 조합해산 동의서를 내지 않으려 하는 것이지요. 시세보다 높으니 그냥 현금 청산하자는 마음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 우리 지역에도 추정보상가가 각 개인별로 통보되면 똑같은 현상이 벌어질 겁니다. "
안양 8동 상록재개발 지구와 비산동 임곡 재개발 지구 추정보상가가 시세보다 높게 나온 건 사실이다. 안양시가 제공한 임곡재개발지구 우성아파트 (64.44㎡,21평 평) 추정 보상가는 2억4640만 원으로, 부동산 사이트에 나와 있는 '상한가' 보다도 높았다. 부동산 사이트인 '닥터 아파트' 에 나와 있는 아파트 가격 상한가는 2억3500만 원이고 하안가가 2억1천 만 원이었다.
이 밖에도 '추정분담금'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고 송 위원장은 밝혔다. 만약, 터무니없는 추정치가 나와도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추정치라는 게 참 애매한 겁니다. 추정치라도, 공신력 있는 시가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민은 철썩같이 믿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책임은 없지요. 안양시가 제공한 정보를 믿고 재개발에 찬성했다 해도, 나중에 그 결과에 대해 안양시는 책임질 일이 없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추정치일 뿐이거든요."
한편, 안양시가 주민에게 제공한 추정 보상가는 경기도가 마련한 'GRES' 추정분담금 시스템으로 산출한 것이다. 'GRES'는 재개발 주민들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참고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경기도가 만든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으로 추정 보상가를 산출하는 방식은 주택 공정 가격에 보정률을 적용하는 방법이다. 안양시에서 제공한 추정보상가가 시세보다 높은 이유에 대해 이정국 감정평가사는 "안양시에서 제시한 추정 보상가가 시세보다 높은 게 사실이라면, 시세를 감안하지 않고 단순히 보정률을 적용해서 그런 것 같다" 고 말한 바 있다.
반대하는 척 하다가 뒷돈 받으려 한다고?
▲ 비대위 사무실 ⓒ 이민선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조합도 송 위원장을 힘들게 하고 있다고 한다.
"조합에서, 해산 동의서에 도장을 찍지 말라고, 도장 찍으면 불이익 당한다고 겁주고, 재개발하면 집값 올라간다고 꾀고... 조합들이 갈피를 못 잡고 있어요. 이 말 들으면 이 말이 맞는 것 같고, 저 말 들으면 저 말이 맞는 것 같다고들 하소연하고 있어요."
한편, 이러한 송 위원장 주장을 조합장 이 아무개씨는 강하게 부인했다. 조합원 겁 준 일도 없고, 비대위원들 하는 일에 관여한 적도 없다는 것. 3월 1일 오후 조합장 이씨는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비대위원들 하는 일에 관여한 적도 없고, 방해한 적도 없다. 또 그 분들 주장을 반박한 적도 없고. 그저 꾸준히 조합 일 할 뿐이다. 없는 말 만드는 건 속상하다. 정당하게 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재개발을 취소시키기 위해 다니던 직장도 팽개치고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그동안 오해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게 가장 힘들었던 일이라고.
"혼자서 막 뛰어 다니다 보니 오해도 많이 받았어요. 송병헌이 조합장하려고 저런다는 둥, 반대하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뒷돈 받으려고 그런다는 둥, 사실 이게(오해 받는 것) 가장 힘들었어요. 내친김에 얘기할게요. 제 목표는 오로지 하나, 재개발 폐지하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대안 개발 찾아야지요. 재개발은 도시 미관 사업일 뿐, 절대 인간들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이 아닙니다.
인천시와 서울시는 사업을 속속 취소하고 있어요. 인천시는 주민동의 없이도 인천시장 직권으로 구역지정을 해제했고, 서울시도 재개발·재건축구역 해제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요. 이런 거 보면 역시 시장 마인드가 중요한데, 안양시는 도대체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최대호 안양 시장도 분명 후보 시절엔 '뉴타운, 재개발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했는데. 되고 나니 나 몰라라 하고 있어요. 아예 관심도 없는 것 같아요."
덧붙이는 글
안양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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