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다 상설전시관의 현대예술이 더 볼 만하다
[유럽문명의 원류 이스라엘 이집트 여행기 20]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모형도 ⓒ 이상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멋지다. 그러나 서너 가지 이유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첫째 건물의 외부와 내부가 멋있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이 도서관을 흰 코끼리에 비유한다. 가치가 있지만, 이집트의 경제로는 유지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외화내빈을 지적한다. 겉은 화려하고 웅장하지만, 상대적으로 소장 도서는 아직 빈약하기 때문이다. 자금이 부족해 건설 당시인 2002년, 50만 권의 장서만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2010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으로부터 50만 권의 도서를 기증받아 현재는 100만 권을 소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건물이 수용할 수 있는 장서를 다 채우려면 앞으로 80년은 더 걸릴 거라고 한다.
▲ 도서관 내부 ⓒ 이상기
세 번째로는 이집트 학술 당국의 검열을 지적한다. 이것은 사다트 이후 무바라크까지 이어진 권위적인 정권 탓이다. 이들 권위적인 정권은 이집트의 미래보다는 정권의 유지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이집트의 정치상황이 장서의 다양성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내용적인 측면에서 세계적인 도서관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또 한 가지 이곳은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보다는 도서관을 관광하려는 사람이 더 많이 찾고 있다. 학문의 전당이기 보다는 관광지가 되어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산만한 편이다. 그러면 관광 인프라라도 제대로 갖춰져야 하는데 그렇질 않다. 도서관의 내부 구조를 설명하고 전시된 내용물을 소개하는 팜플렛이나 안내 자료가 보이질 않는다. 또 이들을 자세히 소개하는 안내 책자도 만들어지질 않았다. 그리고 운영과 관리 시스템도 완전해 보이질 않는다. 학문이든 관광이든 앞으로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려면 수십 년은 걸릴 것 같다.
모든 것이 지하에 들어가 있다
▲ 고대유물 박물관의 전시물 ⓒ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일반 도서관과 특별도서관, 박물관, 상설전시관, 미술관, 학술 연구센터 등으로 나눠져 있다. 그 중 중심이 되는 일반 도서관은 지하 1층에서 4층까지 차지하고 있다. 학문별로 분류해 도서를 전시하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 그것을 찾아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지하 1층에는 어문학, 자연과학, 기술(응용과학) 분야의 책이 전시되어 있다. 지하 2층에는 사회과학과 희귀도서들이 있다. 지하 3층에는 예술과 멀티미디어, 종교 분야 자료와 도서가 있다. 지하 4층에는 철학, 사전류, 정기간행물, 신문과 잡지 지도 등이 있다.
특별도서관은 6가지 분야로 나눠진다. 첫째 예술, 멀티미디어, 시청각자료 도서관이 있다. 책 외에 멀티미디어 자료를 전시 보관하고 있다. 둘째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특별도서관이 있다. 이곳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용 도서, E-Book, 멀티미디어 등이 있다. 셋째 마이크로필름과 희귀본을 진열하고 있는 특별도서관도 있다. 희귀하거나 중요한 도서를 마이크로필름으로 찍어 보관하고 있는 도서관이다.
박물관은 네 개로 나눠진다. 고대유물 박물관, 필사본 박물관, 사다트 박물관, 과학사 박물관. 고대유물 박물관에는 고왕국 시대부터 로마시대까지 문화유산이 전시되어 있다. 필사본 박물관에는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에 쓰이거나 인쇄된 고문서와 전적류가 전시되어 있다. 사다트 박물관에는 전직 대통령인 사다트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과학사 박물관에는 파라오 시대부터 헬레니즘 시대를 거쳐 이슬람 시대까지 과학사 관련 유물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되고 있다.
▲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 이상기
상설전시관은 크게 셋으로 나눠진다. 첫째가 동시대 예술관이고, 둘째가 알렉산드리아 인상관이며, 셋째가 아랍 민속예술관이다. 그 중 동시대 예술관이 가장 크고 볼만하다. 이곳에는 20세기 이집트 출신 현대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알렉산드리아 인상관에는 무하마드 아와드(Muhammad Awad) 박사가 수집한 책자, 사진,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아랍 민속예술관에는 이슬람 시대 의상, 장신구 등 민속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상설전시관에서 만난 동시대 이집트 예술
우리 일행은 도서관 1층에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들은 다음 지하로 내려간다. 내려가면서 보니 지하 4층까지 뻥 뚫린 열람 도서관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필요한 책을 찾은 다음 책상에 앉아 책을 열람할 수 있다. 일반인보다는 학생들이 많아 보인다. 그것은 이 도서관을 알렉산드리아대학교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는 책을 보려고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먼저 상설전시관으로 향한다.
▲ 나깁 마푸즈 두상 ⓒ 이상기
전시관 입구에 나의 눈길을 끄는 두상이 있다. 석고로 만든 하얀 조소상인데, 설명을 보니 에삼 다르위시(Essam Darwish)가 2011년에 만든 나깁 마푸즈(Naguib Mahfouz)상이다. 나깁 마푸즈(1911-2006)는 198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집트의 유명 작가다. 카이로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문화부 공무원 생활을 했다. 소설을 많이 썼으며, 시나리오도 수십 편 썼고, 희곡도 몇 편 썼다. 그는 종교의 문제, 신의 문제를 다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로부터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그는 아브라함이라는 공동 조상을 가지고 있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서로 싸우고 다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서방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평화를,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평화를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이 정치가나 종교인들의 미움을 살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노벨상을 받은 1988년 이후 그의 작품에 대한 논란은 가열되었고, 늘 경호와 감시 속에 살았다. 그렇지만 그는 항상 이집트 민중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마푸즈를 존경하는 다르위시가 그의 조소상을 만든 것이다.
▲ 헤닌의 작품 '밤을 응시하는 그녀' ⓒ 이상기
나는 이제 동시대 예술관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가장 먼저 나의 눈에 띄는 작품은 아담 헤닌(Adam Henin)이 만든 올빼미상이다. 헤닌은 이집트 고대 문화유산에서 영감을 얻어 물고기, 새, 동물들을 단순한 형태로 표현했다. 1990년에 만든 이 작품의 제목은 올빼미가 아니고, '밤을 응시하는 그녀'다. 그렇다면 야행성 동물인 올빼미가 이집트의 암담한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보편적으로 예술가들은 동시대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때문이다. 아담 헤닌은 1960년 이래 이집트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가이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작품이 아메드 압델-와합(Ahmed Abdel-Wahab)의 조소상이다. 그도 역시 고대 이집트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가로 유명하다. 특히 나라와 백성을 사랑했던 아케나톤에 관심을 가지고, 그의 사려 깊은 마음과 자비심을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이곳에 그의 작품이 세 점 있는데, 모두 인물상이다. 이 중 얼굴이 길게 표현된 조소상이 아케나톤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른 두 인물상 중 하나는 아케나톤의 부인 네페르티티로 보인다.
▲ 네페르티티 입상 ⓒ 이상기
그 옆에는 청동으로 만든 네페르티티 입상도 보이는데, 이것도 압델 와합의 작품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리고 다른 작가의 수 많은 청동조각상과 석상, 도자 예술품들이 보인다. 이들은 모두 예술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나름대로의 주제와 철학을 보여주고 있다. 이집트 예술이 고대에 번성하고 그 이후 계속 퇴보만 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현대에 와서 그들은 서양의 기법을 받아들여 전통과 현대를 결합한 새로운 경향의 예술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곳 동시대 예술관에는 이와 같은 조각품 외에도 하미드 사에드(Hamed Saeed), 핫산 솔리만(Hassan Soliman), 모히_엘딘 후세인(Mohie-Eldin Hussein) 같은 화가들의 그림도 있다. 나는 이들 그림을 둘러보고 잠시 아랍 민속예술관에 들러 아라비아 전통 의상, 카페트, 장신구 등을 살펴본다. 모두 화려한 색상과 정교한 예술성을 보여준다. 알록달록 원색적인 색깔과 문양, 전통적인 디자인, 정교한 금세공술을 통해 우리는 아랍 민속예술의 정수를 파악할 수 있었다.
▲ 알렉산드리아 인상관의 책과 사진 ⓒ 이상기
그리고 동시대 예술관 옆에는 아와드 콜렉션을 전시한 알렉산드리아 인상관(Impressions of Alexandria)이 있다. 이곳은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한 학자, 여행가, 예술가들의 작품이나 기록, 흔적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는 공간이다. 여기에는 또한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희귀사진도 전시되어 있다. 이러한 작품을 수집한 아와드 박사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빅토리아 대학교를 졸업한 후 건축가, 역사학자, 문화유산 보존가로 활동했다.
알렉산드리아 인상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옛날 알렉산드리아 지도와 파로스 등대 그림이다. 알렉산드리아 지도를 통해 나는 파로스 등대가 있는 지역이 신항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알렉산드리아는 서쪽 구항만에서 시작, 동쪽 신항만으로 도시 영역을 확장해 나간 것이 된다.
그리고 이곳 알렉산드리아를 여행한 사람들의 기록 중에는 프랑스어 책자들이 많다. 그것은 학술적인 목적으로 이집트를 찾은 최초의 유럽 사람이 프랑스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책으로는 <알렉산드리아 항구> <아랍의 기념비적 예술품들>이 있다.
망고 주스의 부드러운 맛을 결코 잊을 수 없다
▲ 알렉산드리아 천문관 ⓒ 이상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제대로 보려면 오후 내내 이곳에서 머물러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늘 오후 기자로 돌아가 나일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밤 8시 아스완행 야간열차를 타야 한다. 그러려면 이곳 알렉산드리아에서 오후 두세 시에는 떠나야 한다. 그러므로 오후 1시까지 도서관을 보고 2시 정도까지 점심을 먹는 것으로 일정이 정해졌다. 이제 30분 정도 밖에는 시간 여유가 없다. 나와 아내는 박물관을 아예 포기하고 민속예술관을 좀 더 둘러본다.
그리고는 1층으로 다시 올라와 책자를 한두 권 산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소개하는 책자가 있으면 사려고 했지만 없다. 그리고 도서관을 나와 밖에 있는 시설물과 조형물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먼저 이 도시를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 두상 앞에 선다. 웬 일인지 알렉산더의 얼굴에서 우수가 느껴진다. 그리고 바다 쪽으로 도서관 상징조형물과 천문관(Planetarium)이 보인다. 이들을 보고 나서 우리는 알렉산드리아대학교 앞에 다시 모인다.
▲ 엘코 비씨에서 생과일 주스를 즐기는 회원들 ⓒ 이상기
식당으로 가기 전 잠시 시간 여유가 있어 우리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생과일 주스를 가장 잘 만든다는 엘코 비씨(Elko Bissi)로 간다. 알렉산드리아 구시가 해변에 있는 가게인데, 사람들이 아주 많다. 우리는 길가 테이블에 앉아 망고와 딸기 그리고 오렌지를 주문한다. 나는 망고를 시킨다. 잠시 후 500cc 맥주잔 크기의 잔에 킹 망고(King of Mango) 주스가 담겨 나온다.
한 모금 입에 넣으니 부드럽고 달콤하고 시원한 맛이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그리고 진한 맛이 입에 착 감긴다. 아침 일찍 몬타자 궁전으로부터 점심 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까지 걸으며 느꼈던 피로가 일시에 사라지는 것 같다. 열대 과일이 맛있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 수준인지는 몰랐다.
이게 다 알렉산드리아에 살고 있는 제정희 가이드 덕분이다. 그녀는 알렉산드리아에 사는 주부기 때문에 문화유산보다는 일상생활 분야에 더 전문가였던 것이다. 그녀는 지난 밤 우리를 시장으로 데리고 가 살구, 자두, 무화과 열매를 아주 싼값에 사주기도 했다.
여기서 이삼십 분 휴식을 취한 다음 우리는 식당으로 간다. 맥주도 한잔씩 하며 여유 있게 점심을 먹고 오후 2시쯤 카이로를 향해 출발한다. 어제 왔던 사막도로를 따라 역으로 기자까지 갈 것이다. 휴식을 위해 중간에 사다트 시티에 한 번 정도 설 예정이다. 오늘은 날씨도 아주 좋아 전망도 좋은 편이다. 그렇다면 사막도로 주변 풍경을 제대로 관찰 할 수 있을 것 같다. 길가로 나일강 하구로부터 이어지는 운하가 보이기 시작한다.
덧붙이는 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공식 홈페이지 www.bibalex.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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