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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마저 아름다웠던 두 여배우, 심은하 Vs. 정윤희

[흥미기획] 정윤희와 심은하, 은퇴를 통해 전설이 된 두 명의 여배우

등록|2013.03.10 11:55 수정|2013.03.10 11:55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배우 한석규가 심은하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발언을 해 화제가 됐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시기 돌연 은퇴를 발표했던 그녀였기에 아마 아쉬움이 더 컸을 것이다. 그런대 심은하를 생각하노라면 '70년대 트로이카' 정윤희가 떠오른다. 정윤희와 심은하 모두 은퇴를 함으로써 오히려 전설적인 여배우로 남은 스타들이기 때문이다.

▲ 7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미녀스타 정윤희 ⓒ KBS


정윤희, 70년대를 주름잡은 전설적인 여배우

우리나라 여배우 중 최고 미녀를 꼽으라면 60년대 김지미, 70년대 정윤희, 80년대 황신혜, 90년대 김희선, 2000년대 김태희를 첫 손에 꼽힐 것이다. 모두 당대를 풍미한 최고의 여배우들인데 그 중에서도 정윤희라는 이름은 가히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장미희, 유지인과 함께 70년대 충무로의 트로이카로 활약했을 뿐 아니라 "100년 만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미모"라는 칭송을 들을 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했기 때문이다.

70년대 여배우들 중 정윤희는 단연 도드라지는 인물이었다. 75년 영화 <욕망>으로 데뷔해 84년 <사랑의 찬가>를 끝으로 은퇴하기까지 그녀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연기, 외모, 스타성 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갖추고 있었고 여성적 매력과 여배우로서의 카리스마 역시 부족함이 없었다.

도톰한 입술과 섹시한 눈매, 농염하고 굴곡진 몸매의 정윤희는 당시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최고 미녀"라는 극찬을 받았다. 전혀 성형을 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외모는 순수함과 섹시함을 모두 겸비하고 있었고, 덕분에 그녀는 일본, 대만, 홍콩 등지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영화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만을 방문했을 때 중화권 언론이 공항에 모두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공항이 마비가 되는 일도 있었다.

재밌는 것은 정윤희의 열렬한 팬을 자청해 한 때 스캔들까지 났던 배우가 바로 최고의 액션스타인 '성룡'이란 사실이다. 중화권 등지에서 유명세를 탔던 정윤희를 익히 잘 알고 있었던 성룡은 그녀의 외모를 언제나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자신의 이상형으로 서슴없이 정윤희를 꼽을 정도였다. 성룡 같은 월드스타마저 반하게 할 만큼 그녀는 당대 최고의 미인이었던 셈이다.

이렇듯 TV와 은막을 종횡무진하며 연예인 소득 순위에서 단 한 번도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었던 정윤희는 84년 간통 사건에 휘말린 뒤, 결혼과 함께 연예계를 은퇴했다. 갑작스런 은퇴 소식에 대중은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연인으로, 평범한 주부로 돌아갔다.

은퇴 이 후, 정윤희는 그녀를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대중들에게 '완벽한 외모와 연기력을 갖추고 있었던' 전무후무한 전설의 여배우로 기억됐다. 인간 정윤희는 대중을 떠났지만, 배우 정윤희는 여전히 남았다. 대중이 30년 넘게 정윤희란 이름을 기억하며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영화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에서의 정윤희. ⓒ 우진 필름


심은하, 절정의 인기를 누린 최초의 '신비주의 스타'

정윤희가 70년대 최고 스타였다면, 심은하는 90년대 최고 스타였다. 그녀는 스타가 어떻게 배우로 성장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여배우였고, 그 존재감만으로도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는 스타였다. <마지막 승부> '다슬이'부터 <청춘의 덫> '윤희'에 이르기까지 심은하가 연기한 캐릭터는 모두 변화무쌍한 다채로움을 자랑했다.

심은하는 연예 생활 동안 온갖 추문과 루머, 스캔들에 시달렸지만 그것을 작품과 연기력으로 극복한 몇 안 되는 여배우였다. 연예인으로서의 운은 타고 났다고 할 정도로 끊임없이 대중의 주목과 사랑을 받았던 그녀는 90년대 중반 이후에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이른바 '신비주의 전략'을 구사하며 더욱 높은 인기를 누렸다.

심은하는 자신을 철저히 숨기는 것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수준 높은 작품으로 관객과 소통함으로써 여배우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배우였다. 이는 90년대 충무로에서 활약했던 여배우들 중 그녀만의 유일한 장기였다. 라이벌 전도연조차 "심은하는 이미지 메이킹이 뛰어난 배우라서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고 고백할 만큼, 여배우로서 매우 독보적인 이미지를 자랑한 것이다.

▲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 ⓒ 우노 필름


<8월의 크리스마스>를 시작으로 배우와 신비주의 스타로서의 진일보를 동시에 꿈꿨던 심은하는 <미술관 옆 동물원>과 <텔미썸씽>으로 절정의 흥행력을 자랑했고, <청춘의 덫>을 통해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다. 그리고 그 절정의 순간에서 그녀는 돌연 은퇴라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 뒤 한 치의 미련 없이 연예계를 떠났다. 사람들의 열렬한 구애와 열광에도 불구하고 미동조차 하지 않는 꼿꼿함으로 영원히 신비스러운 여배우의 이미지를 지켜낸 셈이다.

처음 TV에 등장했을 때만해도 일개 신인 여배우에 불과했던 그녀는 이처럼 보여줄 것은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을 것은 보여주지 않는 방식을 통해 배우의 묵직한 존재감을 완성할 수 있었다. 적절한 이미지 메이킹과 활발한 작품 활동을 통해 자신만의 자존 독립적 공간을 보유했던 그녀는 대중이 자신을 사랑하기 이전에 동경하도록 만들만큼 영리하고 똑똑한 스타였던 것이다.

▲ 영화 <인터뷰>에서의 심은하. ⓒ 시네2000


오늘날 심은하는 여전히 한석규를 비롯한 동료 배우들과 대중이 '기다리는' 여배우로 남아있다. 현역 시절 충무로의 신데렐라, 미디어의 여신이라는 호칭을 받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녀의 이름은 은퇴와 함께 영원한 은막의 전설이 되었고 대중의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 숨 쉴 수 있게 됐다. 

그래서일까. 70년대 정윤희와 90년대 심은하를 보고 있노라면, 정상의 자리에서 미련 없이 훌훌 털고 일어나는 것도 스스로를 참 멋있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그녀들의 연기를 계속 볼 수 없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때때로 그녀들 같은 전설적인 여배우들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도 나름의 축복이 아닐까. 추억은 추억 속에 남아 있을 때 더 아름다운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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