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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데서 나온 폐기물, 왜 농민이 떠안나"

5일 폐기물장 설치 반대 나선 부여군 은산면 주민들

등록|2013.03.06 10:43 수정|2013.03.06 14:20

▲ 지난 5일 오후 금강유역환경청 앞. 부여군 은산면 상경 주민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 김종술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고 오전 4시에 일어나 부리나케 아침 해먹고 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집회 차량에 올라탔어. 자식이 내려와서 산다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포기하고 싶지만, '이 나이에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것도 아닌데 왜 이 고생일까'라는 생각에 눈물이 나."

79세 할머니의 하소연이다. 할머니가 새벽부터 집을 나선 이유는 충남 부여군 은산면 대양리 산 25-1번지 일대 87만1996㎡(26만3778평) 면적에 1만1000평 규모로 설치하려는 산업지정폐기물장(아래 폐기물장) 때문이다. 이 폐기물장이 설치되면 16년간 운영될 계획이며 ▲ 폐주물사 ▲ 철강(폐내화물) ▲ 광재 ▲ 분진 ▲ 도자기유약바른 편윰 ▲ 열강화성수지 등을 이곳에 처리하게 될 전망이다.

폐기물장 설치반대대책위원회와 주민 150명은 지난 5일 오전 이 사업을 추진하는 한맥테코산업㈜의 본사가 있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을 찾아 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항의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오후에 대전으로 자리를 옮겨 금강유역환경청(아래 금강청) 앞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농성에 참가한 주민들은 오후 5시 30분께 해산했다.

오전 8시, 머리띠에 어깨띠까지 동여맨 주민들은 부여군에서 대형버스를 타고 한맥테코산업 맞은편 인도에 도착했다. 이들은 회사 측과의 면담 자리에서 "사업이 추진되면 토양이 오염돼 환경 피해가 우려되고 지역 농산물 값은 폭락할 것"이라고 사업철회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은 "사업 추진에는 변함이 없다"는 회사 측의 통보를 듣고 어깨가 축 처진 채 회사 건물에서 나와야 했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풀이 죽어 돌아오던 일부 주민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휴게소 바닥에서 차가운 도시락을 먹었던 고령의 주민들은 급체까지 해 들어눕기도 했다.

오후, 주민들을 태운 차량이 집회 장소인 금강유역환경청에 도착했다. 현장에는 경찰통제선을 두른 경찰과 금강청 직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반대대책위 김기일 사무국장은 "천년 고도 부여땅에 폐기물장이 웬말이냐"며 "주민생존권 무시하고 폐기물장 설치하는 한맥테코는 각성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집회에 참가한 주민들은 "투쟁하자, 투쟁하자"라는 구호로 답했다.

다시 주민대표들은 금강청장과의 면담을 위해 금강청 안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금강청장과의 면담은 무산되고 금강청 환경평가과 관계자는 건물 뒤에 있는 사무실로 주민들을 안내했다.

야생동물보호구역에 폐기물장? "말도 안 돼"

▲ 하행선 기흥휴게소에서 점심으로 도시락을 먹은 일부 주민들은 급체까지 하기도 했다. ⓒ 김종술


반대대책위 황정익 위원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하는 포도는 당도가 높고 품질이 좋아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담당자로부터 '폐기물장이 들어오면 농산물을 가져갈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다른 시·군 공장에서 사용한 지정폐기물을 왜 농업을 천직으로 삼는 지역 주민들이 떠안아야 하느냐."

이어 그는 "매립장이 들어오는 사업예정지는 축령봉 자리에 있는 고지대로 폐기물장이 들어오면 인접 지역에 지하수·하류 지역에 수질오염이 생길 게 빤하다"며 "또 집중호우시 산사태의 우려가 있다, 폐기물이라도 흘러내려가면 수은·납 등 중금속이 유출돼 치명적인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로 지난 2010년 7월 23일 집중호우로 사업장 주변 인근 주택 두 채가 유실돼 두 명이 사망하고 한 명이 실종됐다. 사업예정지는 지속적으로 산사태가 발생한 지역이다. 주민 생명보호를 위해 하류지역에 사방댐(재해지역 선정)이 조성됐지만,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황 위원장은 "사업예정지 400m 지점은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멸종위기종 1급인 수달(천연기념물 제330호)과 멸종위기종 2급인 살쾡이가 서식하는 곳"이라며 "언젠가 석산을 하려는 사업자도 포기하고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에서 '생태적으로 우수한 지역'이라고 지정해놨으니 국가에서 법으로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대책위 서창원 총무는 "사업장 인근에서 발원해 은산천과 청양군 지천으로 흘러드는 물줄기가 있는데 이곳은 세계유일의 법적 보호종이자 천연기념물 533호로 지정된 미호종개의 서식지"라며 "은산천은 은산별신제(중요무형문화제 제9호)가 있어 매년 3월이면 하천물에서 목욕을 하고 이 물로 술을 담아 제관에 사용하고 있어 오염에 노출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여군은 전국농산물 생산량 1위 지역"이라며 "전국 밤 생산량의 16%, 메론 생산량의 13%, 양송이 생산량의 45%가 이곳에서 생산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2003년 개발된 농특산물 공동브랜드인 굿뜨래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 연속 농식품 파워브랜드 대상 수상의 영예를 차지해 소비자들로부터 신뢰와 함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고 덧붙였다.

금강청 "전문가 의견 청취해 결정할 것"

▲ 금강유역환경청 환경평가과 관계자와의 면담 당시. 주민들은 원론적인 답변을 듣고 힘없이 돌아서야 했다. ⓒ 김종술


서 총무는 "환경부가 허가한 제천의 한 폐기물 매립장이 지난해 폭설로 붕괴해 오염원이 유출, 사법기관에 고발까지 당했지만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것을 아느냐"며 "같은 일이 반복되서는 안된다"고 충고했다.

확인 결과 원주지방환경청이 담당하고 있는 충북 제천시 소재의 한 폐기물매립장(축구장 2~3개 크기)은 지난해 폭설에 20여 미터 깊이의 입구와 가장자리 부분 40여 미터의 에어돔이 무너져 지금까지 복구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당시 해당 폐기물매립장을 취재했던 지역방송사에 따르면 뚜렷한 복구계획이 없이 시설이 방치되고 있고, 임시 비닐막이 밀폐된 상태라 인화성 가스가 쌓여 2차 사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금강청 환경평가과 관계자는 "지금까지 정식 서류가 접수되지 않은 상태지만 환경영향평과 과정에서 주민설명회나 공청회를 통해 주민들이 왜 안 되는지 논리적으로 사업자에게 대응하고, 서류가 접수되면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면담을 끝마치고 나오던 주민은 "새벽에 아침도 굶어가며 업체나 금강청에 찾아가 사정하고 부탁해 봤지만 돌아오는 얘기는 원론적인 말뿐"이라며 "힘없고 빽 없이 살아가는 우리 같은 농민들은 발로 차면 체이고 짓밟히면서 가진 자들의 뒷처리만 하면서 살아가야 하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그는 "죽는 날까지 이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 지난 5일 오후 금강유역환경청 앞. 부여군 은산면 상경 주민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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