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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서 생산된 당신의 스마트폰, 이건 몰랐죠?

[서평] 10명의 만화가가 함께 그린 인권만화 <어깨동무>

등록|2013.03.07 18:53 수정|2013.03.08 08:18
인권을 이야기하면 손사래부터 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나 먹고 살기도 바쁜데 인권은 무슨... 인권이 밥 먹여주냐?'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우리의 사고와 의식이 여전히 힘들게 보릿고개를 넘기던 1960~70년대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져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아득한 벽은 낯설고 두렵다.

이런 점은 특히 학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교사들은 대부분 당연하게도(?) 고분고분하고 순종적인 아이들을 좋아한다. 자기 목소리가 강하고 개성이 넘치는 아이들을 통제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학교는 올해부터 신입생과 그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저녁 시간을 이용해 입학식을 치렀다. 지난 6일 치른 입학식 당시 행사장 뒤쪽에 앉아 있는 아이들 몇 명이 지나치게 역동적으로 노는 모습이 많은 선생님들의 눈길을 끌었다. 내게는 그런 모습이 그 아이들 나름의 즐거움의 표시로 다가왔다. 행사가 끝나고 교무실로 올라온 몇몇 선생님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 해병대 캠프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학생들(사진에 실린 학생들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 김동이


"아까 뒤에 앉아 있던 녀석들, 정말 정신이 없더군요."
"맞아요. 올해 신입생들 아주 신났어요. 자식들, 뭘 가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 반만 그런 건지..."
"올해 1학년 전체가 그런 것 같던데요. 1학년 담임 선생님들 힘들게 생겼어요. 저런 놈들 때문에 해병대 캠프 같은 곳이 있는데 말이죠. 그런 곳에 데려가 며칠 굴리면 찍소리 못하겠지요. 하하하."


이런 대화를 한쪽에서 듣고 있노라니 '뚜껑'이 열리는 듯했다. 나는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오는 '학교가 군대입니까? 아이들이 군인인가요?'라는 말을 참는 데 얼마나 많은 힘을 썼는지 모르겠다.

해병대 캠프처럼 고약한 것이 없다. 사지와 정신이 멀쩡한 사람들을 실신케 할 정도로 '빡세게 굴리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삐딱한 해석일지 모르지만, 몸과 마음을 녹초로 만들어 매사에 고분고분하고, 모든 일에 긍정적이며,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아닌가.

'인권' 자체에 초점 맞춘 <어깨동무>

▲ <어깨동무> 표지 ⓒ 창비

하지만 세상에는 늘 고분고분하거나 긍정적이며 감사만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생각에 이르고 보니 지난 2월 20일에 나온 만화책 <어깨동무>가 떠올랐다. 이 책의 첫 번째 장 두 번째 꼭지에는 최규석 작가의 '맞아도 되는 사람'이 실려 있다.

문명화된 사회에 살면서 이 정도의 폭력(시위 진압 - 기자 주)을 경험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어떻게 이런 일들이 우리 사회의 일상적 풍경처럼 여겨질 수 있을까?

"야야, 너 버스 폭행남 동영상 봤냐?"
"와아, 그런 새끼는 사형시켜야 하는 거 아냐?"


작은 폭력에도 반응하는 우리의 분노는 어째서 이 거대한 폭력 앞에서는 움직이지 않는 것일까? (67~68쪽)

이 작품을 그린 최규석 작가는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습지생태보고서> 등의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날카롭게 파헤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는 이 짧은 작품에서도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열악한 인권 실태를 핍진하게 묘사한 갖가지 상황을 통해 우리 안에 숨겨진 비겁과 불의를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나는 반어적인 제목 속에서 작가의 날카로운 비판 의식이 잘 드러나는 이 작품을 이 책의 백미로 꼽고 싶다.

<어깨동무>는 2003년 <십시일反>, 2006년 <사이시옷>에 이은 세 번째 인권 만화다. 앞서 발간된 두 책이 '차별'과 '평등'에 방점을 찍었다면, <어깨동무>는 '인권'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은 '거대한 힘, 아찔한 현장' '다 너 잘되라고?!' '세대유감' '끝나지 않은 인권 이야기' 등의 네 꼭지로 이뤄져 있다. 처음 세 꼭지가 각각 권력(국가·기업), 교육, 세대 차원의 인권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면, 마지막 꼭지는 인류가 인권 개념을 정립하고 인권선언문을 만들기까지 거쳐온 지난한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쯤되면 인권학개론이라고 할 만하다.

기업인들이 원하는 '꿈의 공장'

▲ <어깨동무> 중 '꿈의 공장'의 한 장면 ⓒ 창비

첫 번째 장은 '거대한 힘, 아찔한 현장'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대기업이나 국가와 같은 거대권력과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통해 보편적인 인권 개념을 환기한다. 모두 세 개의 꼭지로 이뤄져 있는 이 장에서 '맞아도 되는 사람'과 더불어 눈길을 끄는 작품은 정훈이의 '꿈의 공장'이다.

'꿈의 공장'은 세계 최대 규모의 공장에서 휴대전화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군대식 관리 체제와 인간을 기계화하는 생산 시스템 덕분에 세계적인 자살률을 자랑하는 이 작품 속 공장의 실제 모델은 중국에 있는 대만 국적 업체 '폭스콘'이다.

애플의 최대 납품 업체이기도 한 폭스콘은,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경제 특구가 된 광둥성 선전(深圳)에 대규모 공장을 세웠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비인간적인 처우와 강제적인 통제 시스템을 이기지 못한 노동자들이 자살을 하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폭스콘 공장은 '노동자들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이후 폭스콘은 선전 특구의 공장을 상당한 규모로 축소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40만 명에 가까운 이들이 닭장 같은 공장에서 전 세계의 유명 전자회사 상표가 붙은 첨단 휴대 전화를 생산하고 있다. 현재 폭스콘은 중국 전역에서 150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함으로써 중국 내 최대 외국 기업으로 군림하고 있다.

하지만 폭스콘의 공장에서는 보안 요원들의 강압적인 통제와 폭행 등 반인권적인 행태가 끊이지 않아 노동자들의 자살과 파업 등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중국 당국의 무관심이나 안일한 대처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작품에서의 바람과는 달리, 세계 최대의 공장인 폭스콘에서는 '무덤'의 역사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인권 인플레이션? 당연하다

'다 너 잘되라고?!'와 '세대유감'에는 학교와 교육, 세대 차원의 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 점에서 첫 번째 장에 비해 담겨 있는 이야기는 대체로 가볍다. 그렇다고 그 문제의 심각성까지 마냥 가벼운 것은 아니다.

가령 두 번째 장에 들어 있는 '사랑이란 이름의 추억 박탈'과 '교문 안 이야기' '그 아이' 등은 교육 문제를 둘러싸고 욕망 덩어리의 군상들이 드러내는 인권 문제를 실감나면서도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교육에 관한 한 우리는 '사랑이란 이름의 추억 박탈'을 그린 김수박 작가의 말처럼 '모두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의 행위를 하지만 사회적 결과는 나쁜 딜레마 말이다.

상대방이 사교육을 시키고 내가 안 시킨다면 내 아이의 성적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사교육을 안 시키고 나는 시킨다면 내 아이의 성적이 올라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모두가 시킨다면? 모든 학부모가 똑같은 사교육을 시킨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서로가 돈만 썼다는 결론이 됩니다.(본문 117쪽)

이 책의 '여는 글'을 보면 인권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와 비슷하게 '인권이 밥 먹여주냐'는 말을 비아냥거리듯 말하는 사람도 많다. 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인권은 지금보다 더 초초초 인플레이션이 되어야 합니다. 인권이 밥 먹여주냐고요? 그렇습니다. 인권은 밥을 먹여줄 뿐만 아니라 살아갈 방편도 마련해 줍니다.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실천하며 행동하는 게 중요합니다."
덧붙이는 글 <어깨동무>(정훈이 외 9인 | 창비 | 2013.02.|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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