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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첫날부터 아이들 앞에서 노래했습니다

산만한 교실에서 아이들과 행복하게 공존하기

등록|2013.03.08 10:43 수정|2013.03.08 10:43
"선생님, 오늘 첫날인데 수업해요?"
"그럼 수업해야지, 안 해?"
"에이. 오늘 첫 날인데요."
"첫날이니까 더 열심히 해야지."
"그래도요."
"걱정 마. 재밌을 거야."

위 대화는 내가 교실에 들어간 뒤 3분 쯤 지난 뒤 한 아이와 오고간 대화다. 그 전에는 다른 한 아이와 이런 대화가 오고갔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아이에게)뭐 하냐?"
"(다른 아이가 큰 소리로) 걔 지금 야동 봐요."
"야동? 좋지. 근데 야동이 아니라 게임하는 것 같은데?"
"(또 다른 아이가)야, 야동 좋단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아이가)그럼 개임은 해도 되요?"
"응. 10초만."

<10초 후>

"이제 수업해야지. 자리 좀 비켜줄래?"
"조금만 더 하면 안 돼요?"
"좋지. 5초."

<5초 후>

"5초 지난 것 같은데?"
"예.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 말 영어로 해봐."
"Thank you!"
"선생님에게 말할 때는 뒤에 sir를 붙이는 거야."
"Thank you, sir!"
"You're well come."

그런 다음 칠판에 30개의 단어를 빼곡히 붙인다. 하얀 종이(A4)에 가로로 2개씩 적은 단어를 칼로 잘라 뒷면에 좌석을 붙여서 만든 단어 카드다. 50장을 만드는데 2시간 정도 걸린다. 숙련이 되기 전까지는 조금 더 걸렸지만.

"여기 있는 30개의 단어가 이번 주에 여러분과 함께 배울 본문에 나오는 단어들입니다. 영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어입니다. 전쟁에 나가려면 총이 필요한데 그 총에 총알에 없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겠지요? 단어는 바로 총알입니다. 한 주일 동안 배울 이 단어를 오늘 한 시간 안에 다 외우게 될 것입니다. 물론 모든 학생은 아니고 절반 이상."

"에이 말도 안 돼요."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내기할까?"
"예. 내기해요."
"알았어. 이기는 사람이 노래하는 거다."
"(한 아이가)노래요?"
"(다른 아이가)이기는 사람이요?"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이겼다. 그래서 내가 노래를 불렀다. 싸이먼과 가펑클의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아이들이 좀 놀라는 것 같다. 놀랄 일이 그뿐일까? 나는 내기를 하기 전에 먼저 출석을 불렀다. 이름을 부르면 나와 눈을 2초 동안 바라보며 영어 한 문장 씩 말해야한다. 문장이 쉽게 떠오르지 않으면 "I love you" 혹은 "I have a dream"이라고 말하면 된다. 아이들이 신기해하는 눈치다. 신기할 일이 그것뿐일까?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의 눈 속을 들여다본다. 거부반응을 보이는 아이는 딱 두 명.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다. 대수롭게 생각하면 나만 상처 받으니까.

해마다 첫 수업시간에 하는 친절서약을 다음 시간으로 미루었다. 이유는? 친절 서약 내용을 아이들 공책에 적어야하는데 공책을 준비해온 학생이 10명 남짓뿐이어서였다. 특성화고 아이들의 형편이 좀 그렇다. 하지만 내일은 다를 것이다.

올해 2학년들이 배울 교과서(영어1)는 전문계 특성화고 학생들이 소화하기에는 수준이 턱없이 높다. 내년부터는 전문계 학생용 실용영어를 배운다. 1학년은 올해부터. 교과서가 아닌 다른 자료를 개발하여 수업을 하는 것도 동료교사들과의 합의가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 나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모든 본문을 퀴즈화한 것이다. 1학기 동안 배울 500여 단어를 파워포인트를 이용하여 그림화한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방학 동안에 틈틈히 그 작업을 했다.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오면서 나는 웃었다. 학생들과의 내기에서 이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교실에 들어서기 전에 나 자신과 한 가지 약속(다짐)을 했던 것이다. 그것은 수업 시간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은 절대 사용하지 하지 않기로.

"조용히 해!", 혹은 "Be quiet!"

올해 수업을 맡은 2학년 네 반 중에서 두 반은 작년에 가르쳤던 학생들이다. 나머지 두 반이 문제다. 아이들의 이름이 잘 외워지지 않는다. 하긴 만난 지 불과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긴 하다. 작년에 들어가지 않은 반 중 한 반은 지난해 우리 반 바로 옆 교실이었다. 우리 반에 비해 아이들이 반듯하고 질서도 있어보였다.

그런 줄 알았는데, 막상 만나보니 그게 아니었다. 산만하기가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생기가 있다. 작년 우리 반 아이들처럼. 그러면 되지 않나 싶지만, 그래도 수업은 진행해야하니 또 잔머리를 굴릴 필요가 있었다.

한참 수업을 하고 있는데 두 아이가 종이에 뭔가를 그리며 딴 짓을 하고 있었다. 동그라미와 가위표를 열심히 치고 있는 걸보니 오목 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만 둘까 하다가, 두 아이를 앞으로 불러냈다. 영어단어를 읽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발음부호를 공부하고 있었던 터라 주의를 환기시킬 필요도 있었다. 다행히도, 두 아이 모두 내게 미안해하는 기색도 역력했다. 다시 자리로 들어가라고 할까 하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다음 수업 시간을 위해서도 뭔가 조치가 필요할 것 같았다.

"이름이 뭐지? 아직 선생님이 이름을 못 외워서."
"김 아무개예요."
"넌?"
"이 아무개예요."
"김 아무개, 이 아무개, 김 아무개, 이 아무개, 김 아무개, 이 아무개… 아, 이름 다 외웠다!"

내가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환히 웃자, 산만하기로 치자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 아이가 저만치서 큰 소리를 묻는다.

"선생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응. 이 아이들 이름 외우고 있었어. 이제 다 외웠다. 이름 예쁘네. 김 아무개. 이 아무개."
"걔들 기합은 안 줘요?"
"기합을 주기로 하자면 너부터 줘야지."
"왜요?"

"네가 제일 산만하니까 그렇지."
"제가 언제요?"
"네 이름이 뭐더라?"
"박아무개요."
"박아무개, 박아무개, 박아무개… 이름 다 외웠다!"
"헐! 그런데 왜 이름을 외우시는 거예요?"

"(갑자기 큰 소리로) 너 이리 나와!"
"(놀라며) 예? 왜요?"
"넌 선생님이 너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 좋아? 아니면,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박아무개야, 좋은 말로 할 때 앞으로 오지 않으련? 하고 이름을 부르며 부드럽게 말하는 게 좋아?"
"당근 이름을 불러주시는 게 좋지요. 근데 깜짝 놀랐잖아요?"
"그래? 미안."
"아니에요."

그렇게 박아무개와 시시껄렁한 대화가 오고가는 사이, 앞에 나와 있는 두 아이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너희들 다음부터 그러면 안 돼!"
"예. 다시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박아무개가) 걔들 그냥 보내면 또 해요."
"(박아무개에게) 허허, 너나 잘하세요."
"정말이라니까요?"
"그래. 그럼 오늘만 내가 대신 기합을 받지."

그리고는 웃옷을 벗고 교실 바닥에 엎드려 팔굽혀펴기를 열 번했다. 난리가 났다. 앞에 나와 있던 김아무개와 이아무개는 발을 동동 구르는 것 같고, 박아무개는 자리에 일어나 또 뭐라 지저귀기 시작한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짝꿍과 은밀히 떠들거나 손장난을 치고 있던 아이들도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그러더니….

"와, 멋지다!"

그 다음날이었다. 그러니까 바로 어제(6일)다. 머라이어캐리의 'Hero'를 배우며 한참 수업을 하고 있는데, 또 다른 두 아이가 공책에 뭔가를 적어가며 열심히 딴 짓을 하고 있었다. 두 아이를 앞으로 불러내어 칠판에 적어놓은 문장을 해석해보라고 했다. 바로 이런 문장이었다.

You don't have to be afraid of what you are.
(지금의 당신의 모습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참고삼아, 머라이어캐리의 'Hero' 노랫말은 이렇게 시작된다.

There's a hero
If you look in side your heart
You don't have to be afraid of what you are
There's an answer
If you reach in to your soul
And the sorrow that you know
Will melt away

당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거기에 영웅이 있지요.
지금 당신의 모습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영혼 깊숙이 다가가면 답이 있을 겁니다.
그럼 당신이 알고(겪고) 있는 슬픔은
눈 녹듯이 사라질 거예요.

두 아이는 내가 해석해보라고 요구한 문장을 끝내 해석하지 못하고 자리에 들어갔다. 사실, 영어 기초가 부족한 아이들이 손쉽게 해석할 만한 문장은 아니었다. 게다가 수업 시간에 딴 짓을 하고 있었으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다만, 나는 두 아이를 비롯한 모든 아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오늘 이 노래를 여러분과 함께 배우려고 한 이유가 있어요. 영어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전 여러분들이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은 상관 안 해요. 하지만 영어를 두려워하지는 않았으면 해요. 제가 여러분에게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고 했지요? 그건 여러분이 영어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주겠다는 말이기도 해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영어가 아니에요. 두려워하는 여러분의 마음이에요. 그걸 없앴을 수 있도록 선생님이 도와줄 게요. 아니, 여러분 자신이 할 수 있어요. 자, 크게 따라서 읽어봅시다."

So when you feel like hope is gone
Look in side you and be strong
And you'll finally see the truth
That a hero lies in you

그러니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이 될 때는
당신의 안을 들여다보세요. 그리고 강해지세요.
언젠가는 진실을 깨닫게 될 거예요.
영웅은 바로 당신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교육공동체 벗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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