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주도형 창조·혁신? 지금이 1970년대인가
[주장] 개발독재 사고방식 엿보이는 미래창조과학부, 거대 관료조직 될지도
▲ 소감 밝히는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 내정된 최문기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가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코리안리 빌딩에 마련된 임시 집무실에 첫 출근하며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자리에 최문기 카이스트 교수가 내정됐다. 이전에 내정됐던 김종훈 전 미국 벨 연구소 소장이 돌연 사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가자 박근혜 정부는 자신의 싱크 탱크이자 측근 그룹들이 만든 '국가미래연구원'에 발기인으로 참여한 바 있는 최 교수를 내정했다.
이렇듯 여야의 대립으로 관련 정부조직 법안도 마련되지 못하는 사이 내정자가 바뀌는 등 미래창조과학부가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또한, 여야는 미래창조과학부의 방송 권한 이관 문제를 두고 아직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 방송 권한 이관 문제만 해결된다면 미래창조과학부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날 본질적인 문제를 미래창조과학부가 안고 있는데도 이른바 차세대 신성장 동력을 확보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장밋빛 감언에 가로막혀 지식인들조차도 비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 한국의 상황이다.
개발독재 시절의 관료주도형 정책 펼치겠다는 정부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창조경제는 과학기술과 산업이 융합하고, 문화와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 간의 벽을 허문 경계선에 창조의 꽃을 피우는 것"이라며 "경제부흥을 이루기 위해 창조경제를 추진해 가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의 한 마디에 온통 창조경제가 주요 화두가 되고 있으며 이러한 사명을 짊어진 미래창조과학부는 타협의 대상도 손을 댈 수도 없는 거대한 정부의 권력기관으로 상징되고 있다.
정부권력기관이 창조경영이나 창조경제를 주도하겠다는 것은 개발도상국에 있어서 개발 독재를 시행할 시기에는 어느 정도 효과를 나타냈다. 하지만 이후 관료주의의 팽배로 인한 규제의 여파로 비효율성이 누적돼 일정 기간 성장한 뒤에는 오히려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아왔다.
가장 적합한 예가 한국이다. 1970년대 말까지 개발 독재로 상징되는 박정희 정권의 정부 주도의 밀어붙이기식 경제 개발이 어느 정도 가시적인 경제 발전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후 곧 관료주의의 팽배로 부익부 빈익빈 등 많은 경제 사회적인 문제점을 노출했고 규제 타파를 통한 관료주의 철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러한 제3세계 개발독재시대의 정부기관 주도의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을 2013년 한국에서 다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대체 어느 나라 국가가 이 최첨단의 시대에 국가 기관이 나서서 기업의 창조 경영을 주도하고 혁신을 이루게 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게 한단 말인가.
사회주의 국가라면 시도해 볼 수도 있을지 모르나, 중국 등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미국 등 선진 경제 대국과 경쟁하기 위해 가급적 정부나 당의 관여와 규제를 줄이려고 하고 있는 시기다. 그런데 한국은 미래창조과학부라는 거대조직이 마치 앞에서 선도해 혁신을 이루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웃지 못할 논리가 통하고 있다.
창조·혁신, '미래창조과학부'를 통해서만 가능?
▲ 대통령 취임식 무대 오른 '싸이'국제가수 싸이(본명 박재상)가 지난 2월 25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식전행사에서 히트곡 '챔피언' '강남스타일'을 부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여기에는 아주 기묘한 논리가 있다. 방송 장악 의도는 없으며, ICT 개발과 방송이 융합되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 맞춰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해당 방송 부문을 미래창조과학부가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예로 들면서 무궁한 가능성이 있는 문화 콘텐츠 산업을 육성시키기 위해서도 미래창조과학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물론 할리우드의 많은 영화 대작들을 포함한 성공한 문화 콘텐츠들이 정부 기관이 주도로 나서서 개발되거나 창작됐다고 들어본 일은 없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미국 정부가, 미국의 관료 기관들이 주도하고 지원이든 규제든 관여했다면 오늘날의 애플이나 구글·페이스북 등 세계 첨단을 달리는 기업들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정부의 지원도 규제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들의 창의성을 계발한 것이다. 미국은 단지 그러한 환경을 조성해줬을 뿐이다. 오늘날의 실리콘밸리의 많은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기업들을 미국 정부가, 미국의 상무부가 혹은 미국의 과학기술 정책국이 주도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 또한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창의성을 개발하고 기업 혁신을 이룰 과제들을 국가가, 그것도 관료주의가 팽배한 정부 기관이 나서서 주도적으로 하겠다고 한다. 그것도 '창조경제'라는 그럴싸한 말을 넣어가면서 말이다. 그래서 '미래를 창조'할 '과학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목표가 미래 창출에 있는지 아니면 정말 '미래창조과학부'라는 거대 관료 조직의 창출에 있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창조경제'의 원칙적 발상은 정부 기관 개입이 아니다
한국 경제 부문의 또 하나의 수장 자리로 불리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내정된 현오석 내정자는 지난 13일 국회의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창조 경제에 관한 질의에 대해 "과거에 추격형 경제에서 이제는 융합형 선도형 경제를 지향하는 것이고 창조경제 기반은 공정한 시장경쟁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경제민주화가 기반에 깔려 있어야 한다"며 "과거와 달리 어느 한 부분에 국한된 게 아니라 경제 전반에 걸쳐 창조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라고 답했다.
얼핏 보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 수가 없지만, 자세히 보면 현 내정자도 자기 모순적인 답변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정한 시장 경쟁을 바탕으로 하는 경제 민주화의 기반을 이야기하면서도 정부가 경제 전반에 걸쳐 창조를 바탕으로 하는 융합형 선도형 경제를 지향하겠다는 것이다.
현오석 내정자 자신이 창조경제를 "경제 주체의 상상력·창의력·과학기술 기반으로 한 경제 운용을 해서 그것이 성장 동력에도 도움되고,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되고, 시장도 경제 측면의 패러다임"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경제 주체의 창의력 등을 기반으로 한 경제의 운영을 기업이나 민간인이 아닌 국가의 기관이 운용하겠다고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창조경제란 말을 처음 사용했다는 영국의 경영전략가인 존 호킨스(John Howkins)는 2001년에 펴낸 책 < The Creative Economy>에서 "창조경제란 새로운 아이디어, 즉 창의력으로 제조업, 서비스업 및 유통업,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기업의 창의력(creativeness)을 기업 성장의 가장 중요한 동력으로 봤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창조 경제란 '상상력과 창의성,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경제운영을 통해 국가 성장 동력을 창출하고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만들어 가는 정책'이라며 이의 실현 여부는 국가의 과학기술 정책의 성패에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명백한 국가 주도론이다. 쉽게 정리하자면 정부 기관을 대표하는 관료가 모든 것을 주도하겠다는 뜻이라 할 수 있다.
선진국, 관료주도형 정책서 손뗀 지 오래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일 청와대 세종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일찌감치 국가 기관이나 관료제의 병폐를 절감한 관계로 정부의 권한을 민간단체나 민간 위원회로 이관해 창의성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도 기업을 만들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이는 정부 관여가 아니라 오히려 정부 비관여를 통한 경쟁의 장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창의성이 성공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이를 펼치기 위해서는 '미래창조과학부'라는 거대 조직의 판단이 선행돼야 자금의 융자라도 받아볼 수 있으며, 시장에 내놓아 소비자와 국민들의 판단과 선택을 받기 전에 먼저 '미래창조과학부' 관료들의 선택을 받아야 이마저도 가능하다면, 누가 창의성을 발휘할 것인가. 미래창조과학부를 위한 아이디어만이 난무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과거 관료주의가 낳았던 병폐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방송 조직의 일부를 가져가겠다는 발상에도 '정부가 방송을 장악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기업의 창의력을 기반으로 하는 혁신을 이제 '미래창조과학부'가 전담해 주도하겠다고 한다. 어쩌면 일자리 창출은 온데간데없고 '미래창조과학부'라는 관료 조직만이 살아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업 혁신은 제한된 지식 기반과 폐쇄적인 조직 문화를 극복하고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창조적 혁신을 통해 기업 스스로 연구 개발비의 투자를 늘리는 등 민간과 기업이 주체가 돼야 미래의 신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국가가, 국가의 정부 기관이, 이를 바탕으로 한 과거의 관료 조직들이 전면으로 나선다면 그 갈망하던 '창의성'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지금은 세계 경제 분야에 있어서 나라 간의 국경도 무너지고 공산주의 국가도 국가의 관여와 규제를 풀겠다고 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미래창조과학부'라는 거대한 조직을 만들어 창조경제를 주관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 거대한 조직이 그래도 일자리는 창출할 것이라는 기대에 매몰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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