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층의 저주... 서울서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먹튀' 사업된 용산개발, 서민 살림살이 박살날까 두렵다
▲ 남일당 건물터2009년 1월 19일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남일당 건물터 ⓒ 안호덕
▲ 남일당 건물터2009년 1월 19일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남일당 건물터. 말라 버린 국화가 매달려 있다. ⓒ 안호덕
위 사진은 지난 2009년 1월 19일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현장, 남일당터의 모습입니다. 40층 규모 주상복합 아파트 6개동를 짓겠다던 용산 4구역 재개발사업. 그날 일어난 참사는 세입자와 상인들의 생계와 주거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용역 깡패를 동원한 강제 철거가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경찰관을 포함한 6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나 이명박 정부는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공사가 늦어져 강제 철거가 불가피했다는 변명이 전부였습니다.
그 사고가 난 지 4년이 지나 참상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대신 아스팔트와 시멘트가 조악하게 발린 터는 유료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곳은 사업주체간 내부 갈등으로 시공사인 삼성물산과 계약이 해지되고 공개입찰이 몇 번이나 유찰되어 시공사조차 선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6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 현장이 4년이 지나도록 방치된 채 겨우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유족뿐만 아니라 그 때 참상을 기억하는 국민들 모두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높게 쳐진 철재 펜스에는 누군가가 그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꽂아 두었던 국화가 말라 버린 채 매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용산참사 진상규명 해주세요!!'라는 빛바랜 글씨가 남아 있습니다.
명품 서울이 이런 모습인가요?
▲ 용산 재개발 3구역 모습 ⓒ 안호덕
▲ 용산 재개발 3구역 모습 ⓒ 안호덕
▲ 용산 재개발 3구역빈 공터로 남아 있다. ⓒ 안호덕
용산 남일당 건너편 용산 3구역 재개발 현장입니다. 용산역 앞에 위치한 이곳에는 술집과 식당 등이 즐비했습니다. 세입자와 철거 반대 단체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철거가 강행되었습니다. 위 두 장의 사진들은 1년 전 철거가 한창 진행될 때 모습입니다. 사업진행주체들은 용산 참사 후 반성은커녕 더 빠른 속도로 더 무자비하게 철거를 밀어붙였습니다.
마지막 사진은 지금의 모습입니다. 철거는 이루어졌지만 일부는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또 일부는 철재 펜스만 높히 쳐진 채 빈터로 남아 있습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시공사인 삼성물산과 조합간에 분양가 문제로 이견이 생겼고, 부동산 경기 침체와 맞물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철재 펜스와 흉물스러운 건물 잔해들, 아무렇게나 그려진 임시 주차장. 오세훈 전 시장님, 이것이 당신의 말하던 명품 서울의 모습인지 묻고 싶습니다.
단군 이후 최대 사업?
▲ 용산역세권 개발현장 ⓒ 안호덕
▲ 용산역세권 국제업무지구 사업개발부지 ⓒ 안호덕
'서울이 명품 수변도시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 '연간 5000만명의 대규모 관광수요를 창출할 것', '용산국제업무지구 조성사업은 서울이 세계 10대 도시가 될 수 있는 토대이며 서울시는 세계적인 명품 국제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2008년 2월 13일 용산역세권개발 창립 기념식에 참석한 오세훈 전 시장의 축사내용 일부분입니다. 코레일 소유의 용산 차량정비창 개발 계획을 서부 이촌동을 포함해 개발면적 51만여㎡로 확대하여 한강르네상스와 연계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도 오세훈 전 시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단군 이후 최대의 사업이라고 자랑하던 31조원 규모의 용산 국제업무지구 조성 사업이 단군 이후 최대의 부도사태를 맞자 오세훈 전 시장은 "이촌동 주민들의 뜻에 따른 결과"라고 말했다는군요. 어처구니 없는 궤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 있습니까? 공무원과 시공사를 내세워 협박과 회유로 통합 개발을 억지로 찬성하게끔 만든 장본인이 누구입니까?
개발 이익을 앞세워 주민들에게 당근을 던지고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만행을 저질렀던 사람들이
시공사가 고용한 용역들이었습니다. 이 사업이 단군 이후 최대의 부도로 귀결된다면 오세훈 전 시장은 단군 이래 최대의 먹튀꾼이 되는 건가요?
둘로 갈라진 서부이촌동 주민들
▲ 서부이촌동 주민들이 내건 플래카드 ⓒ 안호덕
▲ 서부이촌동 한 아파트에 걸린 플래카드 ⓒ 안호덕
용산역세권개발 디폴트(지불 유예)의 직격탄을 맞은 서부 이촌동의 모습입니다. 서부이촌동 주변 아파트에는 헤아릴 수 없는 현수막과 함께 담벼락마다 새겨 놓은 격한 문구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발 차익을 노리고 들어온 부동산도 즐비합니다. 또 한편에는 6년째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해 집도 고칠 수 없었다는 말을 증언이라고 하듯이 낡은 건물이 그대로 방치돼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주민들의 의견이 둘로 갈렸다는 것은 각종 현수막에서도 드러납니다. 개발에 찬성하는 쪽은 개발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개발 반대쪽은 시행사가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세워 찬성을 받아낸 만큼 공정한 주민 투표로 다시 향방을 결정짓자는 주장입니다. 두 의견을 모아내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각자의 주장대로 이웃을 원수 대하듯 한다니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세훈 시장은 감당못할 약속으로 주민들을 둘로 갈라놓았습니다. 둘로 갈라진 서부이촌동 주민들 어떡하실 겁니까?
'초고층의 저주(skyscraper curse)'라는 가설이 있습니다. 초고층 빌딩이 완공되면 경제의 붕괴가 시작된다는 이론입니다. 건축이 결정될 때는 그 사회의 건설경기가 가장 과열되었을 때이고, 준공 전후에는 부동산 침제와 경기 침체가 이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자유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뚝섬에 110층 빌딩, 인천 송도에 인천타워 151층 건설 등 10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 10여개를 짓겟다는 계획이 2008년 전후에 발표되었습니다. 용산의 드림허브도 이때 시작된 계획이었습니다. 그 때 발표된 계획들은 대부분 취소되었거나 연기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규모가 가장 큰 용산역세권개발 계획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으로 빠져 들고 있습니다.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절규가 넘쳐 납니다. 대출금을 못 갚아 경매로 넘어가는 집들이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국민들의 노후를 위해 모아둔 국민연금도 용산역세권개발에 1250억원을 투자해서 고스란히 날릴 판이라고 합니다. 용산역세권개발 디폴트 사태로 국민의 호주머니가 털리는 셈입니다.
누군가는 책임져야 합니다. 주민들을 반으로 갈라놓고 주민들을 부동산 버블의 희생자로 만든자는 반드시 심판 받아야 합니다. 내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1250억원을 투자해 고스란히 날리게 된 국민연금 투자손실도 누군가는 책임져야 합니다. 초고층의 저주, 그 저주가 서민들의 살림살이 박살낼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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