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라는 배우가 사는 법 "실수 줄여가는 과정"
[인터뷰] '파파로티' 상진 통해 성악가 꿈 이뤄…"편안해지고파"
▲ 배우 한석규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해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기복이 별로 없는 목소리로 "나는 00라고 생각했어요. 음,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이라고 조근조근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넘버3>의 태주, <쉬리>의 유중원, <베를린>의 정진수가 느껴지지 않았다. <8월의 크리스마스> 속 정원 같았다고 해야 할까. 군데군데 쉼표가 있었지만, 배우 한석규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한석규는 영화 <파파로티>에서 까칠한 시골 음악 선생님 상진 역을 맡았다. 성악가의 꿈을 접어야 했던 상진은 성악 천재인 건달 학생 장호(이제훈)를 가르치게 된다. 한석규는 자신이 맡은 상진이라는 캐릭터를 "진폭이 아주 넓은,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장호에게서 마치 모차르트를 보던 살리에르 같은 심정을 느낌과 동시에 포기했던 자신의 꿈을 다시 찾는 과정을 그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한석규는 "빤한 주제이지만 어떻게 연출, 연기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한석규, 20살 차이나는 후배 이제훈과 친해진 비결은?
▲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파파로티>에서 호흡을 맞춘 이제훈과는 실제 20살 차이. 대선배와의 연기가 어찌 어렵지 않았으랴. 한석규는 "결과물을 풍부하고 좋게 만들기 위해서 이제훈과 많이 친해지려고 했다"면서 "'빨리 친해지고 싶다'는 뜻으로 욕도 했다"고 전했다. 욕하는 본인도 부끄럽고 쑥스럽지만 후배들에게 먼저 손을 내밂으로써 '앙상블'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석규는 "선배가 되면 현장에서 촬영 테이크를 주도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게 좋다. 하지만 신인이나 후배들은 그렇게 못 한다"면서 "뭔가 불만족스럽지만 말을 못하고 있을 때, 먼저 눈치채고 '한 번 더 하자'고 나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데뷔 초창기에 선배님들과 작업을 많이 했다. 어렵기도 하겠지만 좋은 점이 참 많다. 불편함을 느끼는 것도 좋은 거다. 시간이 쌓이면 나중에 자기도 그 위치에 오르거든. 어떻게 신을 요리하는지 리듬 조절하는 것도 배우고. NG 내는 것도 창피하니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청나게 대사를 외우시더라. 그때 나도 선배님들이 '한 번 더 할래?'라고 물어주시는 게 그렇게 고맙더라. 속상해하는 게 딱 보이니까 딱 눈치채고, 마치 자기가 만족하지 못한 것처럼 '다시 한 번 하자' 이러는 거지. 나도 그때 배웠다. 이런 게 쌓이면 파트너로서 돈독해지는 거지."
▲ <파파로티> 속 한석규의 모습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이어 한석규는 "<파파로티>를 통해 새삼 동료의 중요성을 많이 느꼈다"고 전했다. 오달수와 조진웅, 강소라 등이 없었다면 영화가 완전히 달라졌을 거라고 했다. 한석규는 "(오)달수와 (조)진웅이, (강)소라에게는 <파파로티>가 작은 무대였지만 흔쾌히 해줬다"면서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영화가 훨씬 풍부해질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아울러 "나도 그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배가 되면 좋겠다"고 미소 지었다.
연기 잘하고 싶어? 같은 실수 반복하지 않으면 OK
▲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보면 볼수록 아쉽다"고 말하는 한석규. 그는 20년 넘게 연기했지만 아직도 부족함을 느낀다고 했다. "완벽주의 아니냐"고 묻자 "다른 이들도 그럴 거다. 골프 잘 친다는 타이거 우즈도 자기 경기에 만족 못 한다고 하지 않더냐"고 반문했다. 다만 '다음엔 더 잘해야지'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게 된다고 했다. 이는 후배들을 향한 조언으로도 이어졌다. "연기가 늘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라고.
"연기하는 환경은 항상 비슷하다. 완전히 다른 게 확 오거나 하지 않는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고. 스스로 판단하면 <8월의 크리스마스>도 참 별로다. 연기를 안 해보겠다고 했지만 어느 순간 함정에 빠져서 안 하는 척을 하는 것 같았고. 아쉽고 그렇다. 전부 다 그러면 연기 못 하겠지.(웃음) 어느 순간 '괜찮네' 하는 것도 있다. <파파로티>에서 노래하는 장호를 바라보는 에필로그 신 같은 것 말이다. 연기를 잘한다는 기준이 뭐냐고? 내가 하고 있지만 관객으로 뚝 떨어져서 보게 되는 것. 저 사람이, 저 배우가 하는 게 공감되면 그게 되는 거다."
▲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늘 다른 장르의 다른 인물, 다른 이야기를 연기하고 싶다는 그는 "시간이 흘러 가만히 보니까 '그래 봐야 큰 관통선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면서 "생각이 많은 편인데 정체 모를 그런 사람 역을 맡으면 잘할 것 같다"고 분석했다. 기회가 된다면 한 인물 안에서 선악과 비겁함, 용감함을 모두 보여주는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금 전력투구하겠다는 의미에서 "다음 생에는 배우가 되지 않겠다"고 말하는 한석규.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편안해지는 것이란다.
"마흔 살 전에는 직접 연출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었다. '뭘 해야 하지' 싶었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막 생기더라. 직접 연출하기보다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연출자와 함께하고 싶다고 할까.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 역을 맡으며 곰곰이 생각했는데 조선의 마지막 왕인 영친왕 이야기를 하고 싶다. 보통 각 나라에서 왕조를 스스로 유지하거나 없애는데 조선왕조는 일본이 조직적으로 없앴다. 세종을 연기하면서 이씨 왕조의 마지막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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