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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지자체장' 반구대 암각화로 힘겨루기?

반 울산시 고수한 문화재청장 임명에 긴장 고조

등록|2013.03.19 17:27 수정|2013.03.19 17:44
세계적 문화유산이지만 일 년 중 절반 이상이 물에 잠기면서 훼손이 심각한 울산 울주군 대곡리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 그 반구대 암각화 살리기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급물살의 핵심은 반구대 암각화 보호론자인 변영섭 고려대 교수(고고미술사)가 지난 18일 문화재청장에 취임한 것이다. (관련기사: 문화재청장 '반구대 암각화 TF팀' 구성... 보존 청신호)

특히 반구대 암각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대선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던 박근혜 대통령이 '울산 반구대 암각화 유적보전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더 잘 알려진 여성 고고미술사 교수를 문화재청장에 전격 임명하면서 그 의중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변 문화재청장 임명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그가 반구대 암각화보전방법을 두고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공방을 벌이는 동안 줄곧 반 울산시 행보를 해왔다는 점이다. 친박근혜계인 박맹우 울산시장과의 역학 관계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 훼손이 심각해지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 ⓒ 시사울산 자료사진


신임 문화재청장, 문화재법 개정 언급 주목돼

그동안 반구대 암각화가 훼손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전임 이명박 정부가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은 현행법의 문제와 문화재청의 댐 수위 조절안에 맞선 울산시장의 힘이 강했기 때문이다.

3선을 거치는 동안 '제왕적' 지자체장으로 불릴 만큼 강한 이미지로 각인된 박맹우 울산시장의 '포스'에 문화재청도 더 이상 역할을 못해 온 것이 사실이다. 박맹우 울산시장은 지난해 10월 울산시 국정감사에서 토목공사 의혹을 지적하는 감사 위원들에게 '버럭'할 정도로 강인한 면모를 보여왔다.

하지만 박맹우 울산시장이 대표적인 친박근혜계 정치인으로 알려진터라 이번 문화재청장 임명은 정가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 때문에 앞으로 문화재청 안 추진에 울산시장이 계속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을 지가 주목된다.

문화재청이 그동안 전국 문화·고고학계의 내노라하는 인사들의 힘을 얻으면서도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을 추진하지 못한 것은 현행법상 '국보 등 국가소유 문화재는 관할 지자체가 관리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

이 때문에 울산시는 지난 2007년 수 차례 문화재청에 반구대 암각화 앞에 차수벽(물막이벽)을 설치하자고 제안한 후 다시 2008년에는 암각화 앞 대곡천의 물길을 우회시키기는 수로 터널을 설치하는 토목공사 방안을 요구해 왔다.

특히 지난 13일에는 용역 의뢰한 한국수자원학회(대표 한건연)의 수리모형실험 결과에 따른 생태제방 설치를 주장하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80m 떨어진 대곡천 주변에 높이 10~15m(해발 60~75m), 길이 450m의 둑(생태제방)을 쌓으면 암각화의 침수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맹우 울산시장은 14일에도 기자간담회를 열어 "식수원인 댐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울산시가 암각화 보존보다는 식수확보 문제에 우선하고 있다는 문화계 등 일부 인사들의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며 제방안을 고수했다. 이는 기자간담회 8일 전인 6일, 변영섭 문화재청장이 김호석 화백 등과 함께 반구대 암각화를 살펴본 후 훼손 상태를 알린 것과 무관치 않아 보였다.

하지만 몇 일 사이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5일 전격적으로 변 교수를 문화재청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신임 변 문화재청장은 18일 취임에서 "문화재관리에 필요한 법률을 개정·제정하는 일을 하겠다"고 일성을 터드렸다. 박맹우 시장과 울산시를 겨냥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앞서 변 청장은 지난 2011년 문화계 인사들과 기자회견을 열고 "울산시장 박맹우의 유로변경안은 문화유산과 환경을 파괴하는 일이며 토목사업 예산을 따내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며 "국회 예결위는 유로변경안을 위한 예산은 절대 책정하면 안된다"고 박 시장과 강한 대립각을 세웠었다.

특히 변 청장은 울산시가 내세우는 '댐 수위 조절에 따른 시민식수 부족'에 대해 "정부와 울산시는 아직까지 아무런 대책도 못 내면서 최근에는 물 부족이 아닌데도 물 부족이라고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했었다. 그만큼 양측의 골이 깊다.

박맹우 울산시장, 박 대통령 의중에 반하나?

반구대 암각화와 박맹우 시장의 연관 관계도 눈여겨 볼만하다. 울산시 도시국장 등을 역임하던 그는 지난 2002년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울산시장으로 당선됐다. 2002년은 반구대 암각화 보존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나왔고, 전 세계적 관심을 끌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이후 박 시장이 3선을 하는 11년은 반구대 암각화의 공방이 이어진 기간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지난 2002년 울산에서 활동하다 프랑스로 유학, 자연사박물관 박사과정에 있던 이상목씨가 프랑스에서 발간되는 고고학 전문지 <아케올로지아> 9월호에 자세하게 소개한 후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문화재로 급부상했다.

또한 지난 2002년에는 본격적으로 반구대 암각화 보존 심포지엄이 울산에서 열렸다. 당시 심포지엄에서는 장석환 대진대 교수 등이 "사연댐의 수위 조절, 대곡천의 유로 변경, 차수 벽형 제방축조 등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결국 이 심포지엄 후 11년 동안 방안 중 한 가지도 추진되지 못해 결국 소중한 문화유산의 훼손만 가속화 시킨 것이다.

당시 심포지엄에서 박맹우 울산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반구대 암각화의 바람직한 보존을 위한 시책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위해서도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문화재청은 세계문화유산 등록이 울산시 때문에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권석주 문화재청 유형문화재 과장은 "세계문화유산 등재 요건은 반구대 암각화와 그 주변의 기본적인 환경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 최선의 방법은 댐수위를 낮추는 것이며, 제방을 쌓는 것은 주변 환경을 파괴하는 것으로 등재 불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변영섭 문화재청 임명후 울산시의 입장가 관련해 19일 보도된 울산지역 일간지의 기사가 주목을 끈다.

이 신문은 "울산시 관계자는 '신임 문화재청장의 TF팀 구성 등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기존에 진행 중인 수리모형 용역 결과의 최종보고서가 완료되는대로 이를 문화재청에 공식 전달할 예정이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어 "생태제방 축조에 대해 문화재청이 '공사시 소음 진동 발생' 등을 문제삼고 있는 만큼,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토목학회나 전문기관에 구체적인 제방축조 방안과 소음진동 해결 방안을 용역 의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이 보도에 대해 울산시 담당자는 "공식적으로 울산시에서 이런 방침이 정해진 것은 없다"며 "누가 인터뷰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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