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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를 무덤에서 불러내나"... KBS 현대사 다큐 논란

KBS 새노조 등 언론·역사 시민단체, 반대 기자회견 열어

등록|2013.03.19 17:53 수정|2013.03.19 17:53

▲ 언론노조 KBS본부(KBS 새노조)를 비롯한 언론, 시민단체들은 19일 오후 KBS 본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다음달 8일 봄 개편을 앞두고 신설되는 현대사 다큐 프로그램이 "박정희 정권을 미화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 KBS 새노조


다음달 8일 KBS(사장 길환영) 봄 개편에 맞춰 신설되는 현대사 다큐프로그램, <그때 그 순간>(가제)이 박정희 대통령을 미화한다는 비판이 계속되는 가운데, 전국언론노조 KBS 본부(KBS 새노조)가 입수한 이 프로그램 기획안에 '10월 유신'을 경제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 것으로 포장한 내용이 담겨 있어 의혹이 증폭될 전망이다.

KBS 새노조가 19일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A 외주사의 기획안에는 "1969년 13.8%에 달했던 경제성장률은 1972년 5.8%로 급락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며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해 강압적인 자원분배가 필요했고 철권이 요구되었다…"고 적혀 있다.

새노조는 이에 대해 "박정희 독재를 영구화하기 위해 획책한 유신을 경제적 난관을 타개하기 위한 정책적 판단으로 둔갑시킨 것"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조차 머리 숙여 사과했던 유신을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처럼 포장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비판했다.

새노조가 밝힌 기획안에는 '10월 유신' 외에도 '새마을운동', '윤이상', '육영수 피습' 등 박정희 정권과 관련된 아이템이 포함돼 있다.

KBS의 역사 다큐 논란은 지난 2011년에도 있었다. 당시 KBS는 친일파 논란을 일으켰던 백선엽 장군과 이승만 전 대통령을 미화한 다큐멘터리 방영을 강행해 안팎에서 강한 비판을 받았다. 길환영 KBS 사장은 당시 두 다큐의 제작 책임을 맡은 콘텐츠본부장이었다.

이승만·백선엽으로 논란 일으켰던 길환영 사장, 이번엔 박정희?

이에 대해 KBS 새노조를 비롯해 민족문제연구소,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언론·역사 관련 시민단체소속 10여 명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봄 개편이 "부역사장의 정권 헌납, 관제 개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역사 왜곡과 함께 사측이 졸속으로 기획했다는 점, 외주사에 제작을 맡겼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이들은 "기획과정이 007작전하듯 비밀리에 진행됐으며 준비도 졸속, 날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은 "3월 1일자로 발령받은 담당 PD는 4월 초까지 한 달하고 일주일 남짓한 기간에 60분짜리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며 "10년 넘게 이어온 <역사스페셜>도 제작 기간이 최소 2개월로, 분명 불가능한 요구"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외부제작을 맡긴 이유에 대해서는 "내부에서 제작할 경우 잡음의 소지가 많아 질 것을 우려한 것"이라며 "철저한 을의 입장인 외주사는 KBS 사측의 요구대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길환영 사장을 향해 "국민의 외면은 공영방송의 죽음"이라며 "정권에게 아부할 것인지, 국민에게 봉사할 것인지 이제는 결단하라"라고 경고했다.

KBS "68년 긴 현대사에 특정인 미화 의혹은 왜곡"

KBS 홍보실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박정희 신화를 만든다'는 의혹에 대해 "현대사는 1945년에서부터 2013년까지로 68년이나 되는 세월"이라며 "이렇게 긴 시간에 프로그램으로 다뤄야 하는 소재는 무수히 많아, 특정인을 미화한다는 의혹은 명백한 왜곡"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KBS는 "공정성 시비를 해소하기 위해 제작을 주관하는 외주제작국에 전문성을 갖춘 제작인력을 보강할 것"이라며 "필요할 경우 학계에서 존경받는 학자로 구성된 자문단 운영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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