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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 봐주는 할아버님, 서운하시겠습니다

여성가족부가 내놓은 '손주 돌보미 사업', 선별적 차별복지 아닌가요

등록|2013.03.20 15:14 수정|2013.03.20 16:17
여성가족부(장관 조윤선)가 '할머니 양육 수당' 지급 계획을 밝혀 '복지 포퓰리즘'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애당초 복지 포퓰리즘에 대한 비판은 새누리당의 몫이었는데, 이번에는 새누리당 출신 장관이 비판의 대상이 됐습니다.

여러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여성가족부는 손자·손녀를 돌보는 할머니(친할머니·외할머니)에게 정부 예산으로 월 40만 원의 수당을 지급하는 '손주 돌보미 사업'을 올 하반기부터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답니다.

이미 서울 서초구 등 일부 지자체에서 친할머니·외할머니가 손자·손녀를 돌봐줄 경우 수당을 지원해준다고 합니다. 여성가족부는 이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정부 방침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여성가족부 추진 손주 돌보미 사업 자격 및 조건 ⓒ 이윤기


▲ 두 자녀 이상인 맞벌이 가구의 12개월 이상 아이들 돌보는 경우를 대상으로 한다.
▲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중에서 한 명에게만 수당을 준다.
▲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번갈아 아이를 돌보더라도 수당은 한 명에게만 준다.
▲ 손주를 돌봐주려면 40시간 이상 아이 돌보미 교육을 받아야 한다.
▲ 손주 돌보미 수당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70세 이하로 연령을 제한한다.
▲ 부모가 정부에 20만 원을 내면 정부는 여기에 40만 원을 보태 할머니에게 60만 원을 지급한다.
▲ 만 0세 아이에게 지급하는 양육수당(20만 원)과 중복 지원을 하지 않는다.
▲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중복지원을 하지 않는다

정부는 연령을 제한하는 이유로 12개월 이하 영아를 하루 종일 돌보려면 육체적으로 힘이 들기 때문에 연령을 제한한다는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일흔이 넘은 할머니가 어렵게 손주를 키우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는데, 연령을 기준으로 기계적으로 선별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아이 돌보면 제외?

당장 제 아버지만 해도 0세 아이는 아니지만 돌 때부터 지금(만 4세)까지 조카를 키우고 있습니다. 벌써 일흔을 훌쩍 넘기셨지만, 서울과 지방으로 나뉘어 맞벌이하는 동생네 사정 때문에 힘들게 손주를 맡아 돌보고 계십니다.

그런데 정부 방침에 따르면 나이가 일흔을 넘어도 지원 대상이 안 되고, 할머니가 아니고 할아버지이기 때문에 아예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조카 나이가 0세가 아니기 때문에 '손주 돌보미 사업'과는 거리가 멉니다. 제 아버지 경우가 아니더라도, 할머니는 지원 대상이 되고 할아버지는 안 된다는 정부 방침은 위헌적 요소마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할머니의 경우도 손주 돌보미 사업에 참여하려면 40시간 이상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할머니는 교육을 받으면 아이들 돌볼 수 있고 할아버지는 교육을 받아도 아이를 돌볼 수 없다는 기준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외할머니·친할머니 모두 없는 경우는 어쩌나

뿐만 아닙니다. 정부 기준대로라고 하면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모두 돌아가셨거나 안 계신 경우에는 아예 정부의 지원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아이의 입장에서 봤을 때 외할머니 친할머니가 모두 안 계신 것도 안타까운 일인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정부의 보육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차별까지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돌봐줄 할머니가 없거나 혹은 멀리 살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베이비 시터'를 고용하고 있거나 할머니 대신 '이모' '고모' 등 다른 친척들이 돌보는 아이들은 모두 정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차별을 당하게 생겼습니다.

여성가족부 방침대로라면 이 나라의 0세 아이들 중 외할머니나 친할머니가 모두 없는 아이들은 정부 지원 대상이 아니게 됩니다. 정부가 어떻게 복지 예산 지원 계획을 세우면서 이렇게 까다롭고 특정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경우만 지원대상으로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한편 '손주 돌보미 사업'은 손주들만 차별하는 게 아니라 할머니들도 차별하는 계획입니다. 70세 미만 할머니 중 자녀가 맞벌이 부부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라면 '손주 돌보미 사업'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손주가 있는 할머니와 손주가 없는 할머니는 정부의 복지 혜택에서 심각한 차별을 받게 됩니다. 돌봐줄 손주가 있는 할머니는 정부로부터 40만 원, 자녀로부터 20만 원을 매월 받을 수 있지만, 돌봐줄 손주가 없는 할머니들은 아무런 지원도 받을 수 없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애당초 새누리당의 정책 방향은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선별적 복지'로 잡혀 있는데, 이번 '손주 돌보미 사업'은 선별적 복지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도 선별하고, 할머니 없는 아이들도 골라내고, 손주 없는 할머니들도 골라냅니다. 여성가족부가 정한 선별 기준을 만족하는 소수의 할머니와 손주들에게만 혜택이 가는 선별적 복지 정책인 셈입니다.

사실 이 정책이 2011년부터 서초구에서 시행되고 있었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새누리당 소속 서초구청장이기 때문에 시행 가능한 정책 아니었을까요. 서초구에 사는 많은 할머니들 중 고작 110명(현재 기준)의 할머니와 손주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갔습니다.

'까다로운' 조건 충족해야 받는 금전적 지원

여성가족부에서 추진하는 '손주 돌보미 사업'은 노인복지 정책도 아니고 영유아 보육 정책도 아닙니다. 이는 여성가족부가 추진하는 여성 노인 복지 정책입니다.

대안은 보편적 복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차별하지 않고, 손주가 있는 노인과 손주가 없는 노인을 차별해서 지원할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손주가 있든 없든 모든 노인들에게 보편적 정부 지원을 확장하면 됩니다.

한편, 영유아 보육정책 차원에서 바라보면 지금의 양육수당을 늘리면 보편적 복지가 됩니다. 엄마가 돌보는 아이는 정부가 20만 원을 지원하고, 할머니가 돌보는 아이는 40만 원을 지원하겠다고 하는 차별적 발상을 걷어치우면 됩니다.

실제로 어린이집에 지원하는 금액(75만5000원)에 비해 부모에게 직접 지원하는 양육수당(20만 원)은 턱없이 적습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에 대한 양육수당을 늘리면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몰리는 보육대란 문제역시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할머니가 있는 아이들만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에 대한 수당을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성가족부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손주 돌보미 사업'은 아무리 뜯어봐도 자녀가 맞벌이하고 있으면서 0세 손주가 있는 여성 노인만 1년 동안 한시적으로 금전적 지원을 받는 '까다로운' 복지 정책일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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