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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프리드리히 니체의 <니체 자서전 - 나의 여동생과 나>

등록|2013.03.21 10:08 수정|2013.03.21 10:08

▲ <니체 자서전> 표지 ⓒ 까만양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에게 부적합한 시대에 태어났다."

스스로를 그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부적합하다고 본 사람이 니체뿐이었을까. 스스로를 사유하는 모든 인간은 자신의 시대와 불화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니체는 유난스러웠다. 그는 다른 어떤 이가 아니라 바로 니체 그 자신이었으니까!

<니체 자서전 - 나의 여동생과 나>는, 시대와 불화한 첨단의 지점에서 "신은 죽었다"라는 도발적인 명제로 19세기 유럽의 지성계를 강타한 니체의 두 번째 자서전이다. 니체는 자신의 전 생애에서 두 권의 자서전을 집필한다. 번역자 후기에 따르면(423쪽), 첫 번째 자서전은 니체가 만 44세 생일을 맞이한 1888년 10월 15일부터 쓰기 시작해 약 한 달 뒤인 11월 13일에 완성한 <이 사람을 보라>였다.

이 책은 니체의 모친과 외삼촌, 여동생 등이 개입해 출판을 보류한 나머지 니체 사후 20년이 지난 1908년에야 처음으로 출판되는 우여곡절을 겪는다. <니체 자서전 - 나의 여동생과 나>는 당대의 독일 의사이자, 최초 영문판 서문의 집필자이기도 한 오스카 레비(1867~1947)가 단독으로 입수해 영어로 번역한 후 널리 퍼지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원고 입수 과정과 기록된 내용의 사실 관계 오류, 육필 원고의 부재 문제 등에 휩싸여 오래 전부터 진위 논란에 휩싸여 왔다.

부제의 '나의 여동생과 나'에서 알 수 있듯이, 니체가 이 책에서 특히 중점을 두고 있는 인물은 그의 두 살 아래 여동생인 엘리자베트 푀르스터-니체(1846~1935)이다. 엘리자베트는 니체와의 은밀한 근친 연애적인 상대로 일찍이 많은 사람의 삿된 시선을 받아온 인물이다. 이 책에서도 니체 자신이 "유혹을 두려워한 그녀는 오히려 인류 공통의 것을 벗어나는 것에 유혹되었고,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매력을 발휘하여 그녀의 근친성애적 자궁으로 그를 끌어당겼다"(58, 59쪽)고 고백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니체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인 동시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59쪽). 또한 니체는 여동생의 엄격한 훈련이 없었다면 자신이 "신은 죽었다"와 같은 그 자신의 핵심적인 사상을 깨달은 "청춘의 아침부터 이미 나의 천재성은 시들어버렸을지 모른다"(59쪽)고 적고 있다.

이런 점에 근거해 번역자는 이들의 애정이 "선정적이거나 외설적인" 것이 아니라 그들이 처한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배태된 애정의 한 형태였을 뿐이라고 주장한다(431쪽). 실제 니체는 5살 때 부친이 사망하자 모두 여자들만 있는 집안에서 자라게 된다. 그때 남동생이 하나 있긴 했지만, 그 또한 부친이 사망한 이듬해에 만 2세가 안 된 나이로 죽게 된다.

이 책에는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트 외에도 평생 니체의 주변을 맴돌며 그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세 명의 여인, 곧 그 모친인 프란치스카 니체(1826~1897)와 바그너의 둘째아내인 코지마 바그너(1837~1930), 그리고 니체에게 가장 큰 지적·감성적 영향을 준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1861~1937)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실려 있다.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는 독일의 저명한 작가이자 정신분석학자로, 그녀는 뛰어난 지성과 깊은 영험으로 니체 외에도 릴케, 프로이트 등 당대 유럽 최고의 지성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니체는 살로메와의 문제로 자신과 근친애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여동생 프란치스카와 신경전을 벌이고 다툴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자서전은 소박하게 말해 "니체의 인생행로를 좌우한 여성 네 명"을 중심으로 한 니체의 '여성관'에 관한 책으로 보아도 크게 틀림이 없겠다.

이 책은 니체가 정신병원에 있을 때 극비리에 쓴 원고를 바탕으로 한다. 니체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뒤, 이 책을 구상하여 집필을 시작하기까지의 과정은 한 편의 흥미진진한 영화와도 같다. 책 후미에 붙어 있는 니체 연보를 활용해 그 과정을 재구성해 보자.

1889년의 새해 벽두였던 1월 3일, 니체는 이탈리아 토리노의 길거리에서 마부에게 채찍질을 당하던 늙은 말을 끌어안고 오열하다가 혼절해 쓰러진다. 1주일 뒤, 바젤의 빌레 병원에 1차 입원한 니체는 그곳에서 1주일 정도 더 머문 후 예나의 빈스방거 병원에 입원한다. 이 병원에서 니체는 다음해 3월 24일까지 머물게 된다.

1889년 9월 경, 애초 비관적이었던 니체의 병세가 호전하기 시작하였다. 그즈음부터 니체는 바로 이 자서전의 뼈대를 구상하여 집필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니체는 자신의 모친과 여동생에 대해 극도의 불신감을 드러낸다.

이 자서전의 원고를 같은 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어떤 상인에게 맡기는 계획을 세운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이 '상인'은, 1921년 대서양을 건너 런던으로 가는 여객선에서 훗날(1951년) 이 책의 최초 영문판을 출판하게 되는 새뮤얼 로스에게 독일어본 원고를 전해준다. 니체는 그 전후의 과정을 이 책의 제1장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내가 일기를 써가는 이 노트를 나의 어머니와 여동생의 간섭을 피해서 무사히 출판사에 전달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면서 맡겨둔 남자가 독감에 걸려 드러눕고 말았다.(50쪽)

니체는 이 책을 쓰면서 그를 둘러싸고 있던 네 명의 여인들에 대한 기억을 깔끔하게 정리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나의 하늘은 '여성 네 명과 나의 관계들'로 더렵혀졌고, 지금 누워서 죽어가는 나의 주위로 시커먼 뇌운(雷雲)들이 모여드는데, 이토록 암울한 노트는 내가 아프고 마비된 손가락들로 힘겹게 끼적거리는 글들을 보듬어준다. 조만간 폭풍이 몰아치리라. 그러면 나의 정신에서 분출되는 지긋지긋한 모든 것을 품은 박쥐날개 같은 나의 하늘도 억수같이 쏟아지던 산비[山雨]가 멎은 초원처럼 곧장 신선해지고 청명해지라. 이 노트가 출판되면 폭풍은 추억의 풍경에 다시금 싱싱한 생기를 불어넣고 나의 메마른 뼈들의 갈증을 해소해주리라.(58쪽)

니체는 많은 이들로부터 극단적인 숭배와 경멸의 대상으로 대접을 받아왔다. 그래서 니체의 수많은 저작은 과다한 찬탄과 구구한 억측의 근원지가 될 때가 많았다. 특히 나치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니체에 기대 자신들의 입장을 확산시키려고 한 시도는 유명하다.

이를테면 히틀러와 나치는 니체의 철학을 자신들이 주창하는 반유대주의와 민족주의 철학의 논리적인 근거로 활용하였다(11쪽). 이와 동시에 니체의 대표 사상인 초인철학은 사회주의자들이 집단적 초인, 공산주의 사회, 군중 승리를 선전하기 위해 도용한 것이기도 했다(267쪽).

니체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에 걸쳐 전 세계 지성계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위대한 작가, 철학자다. 인간 정신의 심연까지 파내려간 그의 철학적 고민들은 평범한(!) 우리가 공감하고 이해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번역자 말마따나 "니체의 저작들 중 가장 인간적이고 솔직"하다. 나는 여러분이 이 책을 통해 인간 정신의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다는 의미에서의) 한 진경(珍景)을 보여준 천재 인류의 평범한(?) 내면을 만나보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니체 자서전> 프리드리히 니체 씀, 김성균 옮김, 까만양 펴냄, 2013년 3월, 440쪽, 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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