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교사인 나는 '에비'가 무섭다
종북세력 규정 국정원장과 의원자격 심사하겠다는 국회의원들에 부쳐
'에비'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몇몇 가설적인 어원론이 따라다닌다. 그중 유력한 가설이 임진왜란 기원설이다. 당시 왜군들은 자신들의 전과를 올리기 위해 죽은 조선인의 귀와 코(耳鼻(이비))를 베어 간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때의 '이비(耳鼻)'에서 일부 모음이 변동하면서 생긴 것으로 '에비'를 보는 것이다.
이 말은 실제 생활에서 어른이 우는 아이를 강박하여 달래거나, 심심해하는 아이를 놀라게 할 때 쓴다. 대개 아이 앞에서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에비' 하고 크게 말하는 식이다. 그런 점에서 '에비'는 일종의 유아언어(幼兒言語)인 셈이다.
1960년대 후반, 시인 김수영과 평론가 이어령 사이에서 참여·순수 문학론과 지식인의 사회 참여를 매개로 한 지상 논전이 벌어진다. 이 논전은 오늘날까지 우리나라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문학 논쟁으로 평가받고 있다.
논쟁의 포문은 이어령이 열었다. 이때 야심만만한 젊은 평론가였던 이어령은 예의 '에비'라는 말을 중요한 열쇳말로 사용한다. 논쟁의 시발점이었던 <'에비'가 지배하는 문화>(조선일보, 1967년 12월 28일)라는 글에서 그는 한국문화의 반문화성을 언급한다. 이를 위해 "정치권력의 에비", "문화기업가들의 지나친 상업주의 에비", "소피스트케이트적인 대중의 에비" 등 세 종류의 '에비'를 거론한다.
그는 문학가를 포함한 당대의 문화인들이 이들 '에비'를 멋대로 상상하고 창조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고 있다고 여겼다. 문화인들의 '문화적 침묵', 곧 부재하는 '에비'를 의식한 문화인들의 소심과 무능을 질타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당대의 작가들에게 "성인의 냉철한 언어로 예언의 소리를 전달해야 할 시대"를 대면하자고 주장했다.
이 글을 접한 시인 김수영은 발끈했다. 그는 <사상계>(1968년 1월호)에 당시 문화인들의 침묵이 그들 자신의 소심증과 무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무형적인 정치 권력의 탄압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 '괴수' 앞에서는 개인은 물론이고 거대한 매스미디어 집단도 감히 대항을 하지 못하는 것이 당대의 현실이라고 그는 일갈한다. 이후 이들의 논쟁은 지식인의 사회 참여 문제, 문학의 참여·순수에 관한 문제로 확대된다.
나는 실상 '종북세력'이나 '내부의 적'이 아니다
새삼스레 내가 지금 이곳에 그 40여년 전의 논쟁을 길게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어령이 처음 쓰고 김수영이 맞받은 '에비'라는 말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과연 '에비'가 있는가 없는가. 그 '에비'로 지금의 2013년을 설명할 수는 없는가.
21일 오전, 전교조(위원장 김정훈)는 민주노총, 4대강 범대위 대표자들과 함께 서울 서초동에 있는 서울중앙지검을 방문했다. 이들 단체를 '종북세력', '내부의 적' 등으로 규정한 원세훈 국정원장을 국정원법 위반,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전교조 교사다. 그러므로 원세훈 국정원장의 생각에 따르면, 나는 '종북세력'이자 대한민국 '내부의 적'이다. 물론 나는 실상 '종북세력'이나 '내부의 적'이 아니다. 그 '종북세력'이나 '내부의 적' 부류가 할 만한(?) 일을 할 수 있는 의지와 역량(?), 또는 사회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지도 않다.
그런데 이 나라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은 내가 속해 있는 노동조합에 '종북'이니 '적'이니 하는 무시무시한 말을 붙여 자신의 부하들을 다그쳤다. 그들의 '준동'을 막으라는 취지였을 게다. 그래서 걱정이다. 내 눈앞에 현존하는 '에비'가 지금 나를 옥죄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것이 과연 나만의 강박적 상상일까.
그 '에비'는 대체 누구인가. 한마디로 나를 '종북세력'이니 '내부의 적'이니 하는 말로 겁박하는 이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이 나라의 수많은 '원세훈'들 말이다.
그들이 있기에 나는 수업 시간에도 지레 주눅이 든다. 내 말과 이야기에 아이들이 '종북' 딱지를 붙이면 어떻게 하나. 그걸 빌미로 '이적' 행위 말라며 부모가 항의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순간적으로 화들짝 놀랄 때가 많다.
'에비'가 지배하는 대한민국, 국적 포기라도 하고 싶은 마음
이어령은 1960년대 후반에 '에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김수영은 '에비'의 명백한 실체를 강조했다. 나는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분명히 김수영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마따나 당시 '에비'는 "가장 명확한 '금제의 힘'"이었다.
2013년은 어떤가. 나는 지금 생존해 계시는 이어령 선생에게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고 여쭙고 싶다. 수많은 '원세훈'이 나를 포함한 많은 이에게 '종북'과 '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는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불안과 두려움을 그는 과연 어떻게 설명할까. '에비'는 있지도 않은데 왜 그렇게 소심하냐며 나를 나무라실까.
때마침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통합진보당의 김재연, 이석기 의원에 대한 국회 자격심사를 약속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의 부정을 빌미로 그들의 국회의원 자격을 문제삼겠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솔로몬의 지혜'라도 있단 말인가.
나는 그들이 대체 어떤 기준으로 두 국회의원의 '자격'을 심사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끝내 하겠다면 나는 꼭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과연 그들의 자격을 심사할 권한이 있느냐'고 말이다.
그들은 어떻게 대답할까. 모르긴 몰라도 그들은 대답 대신 싱거운 코웃음을 칠 것이다. 그게 무슨 질문이냐는 표정으로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에비'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을 정녕 부끄러워하게 될 것 같다. 무서워할 것 같다. 나는 요즘 할 수만 있다면 국적 포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말은 실제 생활에서 어른이 우는 아이를 강박하여 달래거나, 심심해하는 아이를 놀라게 할 때 쓴다. 대개 아이 앞에서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에비' 하고 크게 말하는 식이다. 그런 점에서 '에비'는 일종의 유아언어(幼兒言語)인 셈이다.
1960년대 후반, 시인 김수영과 평론가 이어령 사이에서 참여·순수 문학론과 지식인의 사회 참여를 매개로 한 지상 논전이 벌어진다. 이 논전은 오늘날까지 우리나라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문학 논쟁으로 평가받고 있다.
논쟁의 포문은 이어령이 열었다. 이때 야심만만한 젊은 평론가였던 이어령은 예의 '에비'라는 말을 중요한 열쇳말로 사용한다. 논쟁의 시발점이었던 <'에비'가 지배하는 문화>(조선일보, 1967년 12월 28일)라는 글에서 그는 한국문화의 반문화성을 언급한다. 이를 위해 "정치권력의 에비", "문화기업가들의 지나친 상업주의 에비", "소피스트케이트적인 대중의 에비" 등 세 종류의 '에비'를 거론한다.
그는 문학가를 포함한 당대의 문화인들이 이들 '에비'를 멋대로 상상하고 창조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고 있다고 여겼다. 문화인들의 '문화적 침묵', 곧 부재하는 '에비'를 의식한 문화인들의 소심과 무능을 질타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당대의 작가들에게 "성인의 냉철한 언어로 예언의 소리를 전달해야 할 시대"를 대면하자고 주장했다.
이 글을 접한 시인 김수영은 발끈했다. 그는 <사상계>(1968년 1월호)에 당시 문화인들의 침묵이 그들 자신의 소심증과 무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무형적인 정치 권력의 탄압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 '괴수' 앞에서는 개인은 물론이고 거대한 매스미디어 집단도 감히 대항을 하지 못하는 것이 당대의 현실이라고 그는 일갈한다. 이후 이들의 논쟁은 지식인의 사회 참여 문제, 문학의 참여·순수에 관한 문제로 확대된다.
나는 실상 '종북세력'이나 '내부의 적'이 아니다
▲ 김재연, "자격심사로 사상 검증하냐"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과 이석기 의원의 자격심사 상정은 사상을 검증하겠다는 의도이며 정치보복으로 볼 수 밖에 없다며 자격심사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새삼스레 내가 지금 이곳에 그 40여년 전의 논쟁을 길게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어령이 처음 쓰고 김수영이 맞받은 '에비'라는 말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과연 '에비'가 있는가 없는가. 그 '에비'로 지금의 2013년을 설명할 수는 없는가.
21일 오전, 전교조(위원장 김정훈)는 민주노총, 4대강 범대위 대표자들과 함께 서울 서초동에 있는 서울중앙지검을 방문했다. 이들 단체를 '종북세력', '내부의 적' 등으로 규정한 원세훈 국정원장을 국정원법 위반,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전교조 교사다. 그러므로 원세훈 국정원장의 생각에 따르면, 나는 '종북세력'이자 대한민국 '내부의 적'이다. 물론 나는 실상 '종북세력'이나 '내부의 적'이 아니다. 그 '종북세력'이나 '내부의 적' 부류가 할 만한(?) 일을 할 수 있는 의지와 역량(?), 또는 사회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지도 않다.
그런데 이 나라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은 내가 속해 있는 노동조합에 '종북'이니 '적'이니 하는 무시무시한 말을 붙여 자신의 부하들을 다그쳤다. 그들의 '준동'을 막으라는 취지였을 게다. 그래서 걱정이다. 내 눈앞에 현존하는 '에비'가 지금 나를 옥죄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것이 과연 나만의 강박적 상상일까.
그 '에비'는 대체 누구인가. 한마디로 나를 '종북세력'이니 '내부의 적'이니 하는 말로 겁박하는 이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이 나라의 수많은 '원세훈'들 말이다.
그들이 있기에 나는 수업 시간에도 지레 주눅이 든다. 내 말과 이야기에 아이들이 '종북' 딱지를 붙이면 어떻게 하나. 그걸 빌미로 '이적' 행위 말라며 부모가 항의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순간적으로 화들짝 놀랄 때가 많다.
'에비'가 지배하는 대한민국, 국적 포기라도 하고 싶은 마음
▲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 철회하라"진보정당 국회의원 구명 시민사회공동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한 국회윤리특위 자격심사 합의를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이어령은 1960년대 후반에 '에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김수영은 '에비'의 명백한 실체를 강조했다. 나는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분명히 김수영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마따나 당시 '에비'는 "가장 명확한 '금제의 힘'"이었다.
2013년은 어떤가. 나는 지금 생존해 계시는 이어령 선생에게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고 여쭙고 싶다. 수많은 '원세훈'이 나를 포함한 많은 이에게 '종북'과 '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는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불안과 두려움을 그는 과연 어떻게 설명할까. '에비'는 있지도 않은데 왜 그렇게 소심하냐며 나를 나무라실까.
때마침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통합진보당의 김재연, 이석기 의원에 대한 국회 자격심사를 약속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의 부정을 빌미로 그들의 국회의원 자격을 문제삼겠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솔로몬의 지혜'라도 있단 말인가.
나는 그들이 대체 어떤 기준으로 두 국회의원의 '자격'을 심사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끝내 하겠다면 나는 꼭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과연 그들의 자격을 심사할 권한이 있느냐'고 말이다.
그들은 어떻게 대답할까. 모르긴 몰라도 그들은 대답 대신 싱거운 코웃음을 칠 것이다. 그게 무슨 질문이냐는 표정으로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에비'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을 정녕 부끄러워하게 될 것 같다. 무서워할 것 같다. 나는 요즘 할 수만 있다면 국적 포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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