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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 장군 기리는 장성 입암산성 위령제 열려

임진왜란때 순절한 윤진 장군과 이름없이 산화한 영혼 달래

등록|2013.03.24 10:45 수정|2013.03.24 10:45

▲ 제관들이 인사를 하고있다 ⓒ 고광춘


제4회 입암산성 위령제가 23일 오전 11시 장성새재 입구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장성문화원(원장 김영풍)이 주관하고 장성군과 장성향교(전교 이상용)가 후원하는 행사로 이상용 전교의 집전으로 초헌관에 반강진 장성유도회장이, 아헌관에는 격암공 이경국 장군의 후손인 고창군 고부면에 거주하는 이상기씨가, 종헌관에는 김성진 북하면민 대표가 맡아 진행됐다.

▲ 평신 ⓒ 고광춘


이날 행사는 고려시대 몽고 침략때 송군비 장군을 비롯한 휘하장졸, 임진왜란때 순절한 윤진 장군과 그 휘하 장졸 그리고 동학혁명 당시 전봉준의 휘하 장졸들의 이름 없는 영혼들의 혼을 달래기 위한 행사이다.

한편, 장성군 북하면 신성리 산25번지에 소재하는 입암산성은 시도기념물 제2호(1972년 1월 29일 지정)로 해발 655m에 위치해 있고 산의 지형을 이용한 포곡식 산성으로 무주의 적상산성, 담양 금성산성과 함께 호남의 3대 산성이다.

▲ 김영풍 장성문화원장이 제사가 끝난 후 행사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고광춘


산정상에 갓바위가 있어 입암이란 이름이 지어졌으며 축성시기는 정확한 기록이 없으나 삼한시대때 축조된 것으로 추측되며 호남지방의 군사 요충지이다. 전설에 의하면 후백제시대에 견훤이 고려 왕건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했다고 전해지지만 문헌에는 몽고침입때 송군비 장군이 몽고군의 침략을 격퇴한 사실이 기술돼 있다.

특히 임진왜란때 윤진(1548~1597) 장군이 왜적의 침략에 최후까지 항거하다 순절한 곳으로도 유명하며, 현재 윤진 순의비가 남아있다.

▲ 입암산성 등산 안내도-등산로가 개발되어 많은 등산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 고광춘


또한 동학혁명 당시 전봉준이 이곳에서 병사들과 잠시 머물렀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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