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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참사' 났는데도... 청와대 "인사위 활동 충실했다"

검증 실패 민정라인 두둔... 여당서 불거진 문책론에도 선 긋기

등록|2013.03.25 18:01 수정|2013.03.25 18:01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인선한 고위 공직자 중 5번째 낙마 주인공이 된 김병관 전 국방장관 후보자에게 결정적 타격을 가한 KMDC 주식 보유 사실이 보도된 지난 19일 청와대 핵심관계자의 입에서는 한숨이 터져나왔다.

전날(18일)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가 공직자 주식 백지신탁 제도에 대한 소통 부족이라는 황당한 이유로 사퇴하게 된 후 연이어 터진 인사 잡음에 답답한 마음을 토로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21일에는 김학의 전 법무차관이 '별장 성접대'라는 초유의 스캔들에 휘말려 임명장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사표를 썼다. 22일 결국 김병관 후보자도 중도 낙마했고, 25일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해외 비자금 계좌 보유 및 역외 탈세 의혹으로 국회 인사청문회를 열지도 못하고 짐을 쌌다.

인사 실패 원인 진단 못하는 청와대 "인사위 활동 충실했다"

▲ 지난 3월 11일 오후 청와대 세종실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첫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모두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하루가 멀다 하고 불거지는 인사 잡음으로 청와대의 인사 검증 부실 논란과 함께 검증 책임자들에 대한 문책론이 확산되고 있다. 또 새 정부가 인사의 공정성을 꾀하겠다면서 청와대에 설치한 인사위원회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청와대는 '인사 참사'로까지 평가받는 인사 실패에 대해서 곤혹스럽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실패를 가져온 원인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진단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는 인사위원회가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조직법 개편안 처리 지연으로 정식 출범을 못했지만 그동안 인사위원회 활동에는 큰 문제가 없도록 노력했다는 것이다. 윤창중 대변인은 25일 기자들과 만나 "공식 출범은 안 했지만 인사위원회는 본질적인 활동에 충실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사위원회의 정상적인 활동에 불구하고 잇따른 인사 실패의 원인에 대해서는 제대로된 설명을 내놓지는 못했다. "민정수석실에서 검증했다"는 답변이 전부였다.

하지만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유명무실한 인사위원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높다. 현재 인사위는 박 대통령 취임 한 달이 지나도록 인적 구성과 구체적 활동이 장막 뒤에 숨어있다. 인사위 구성에서 대해 청와대는 공식적으로 확인해 준 적이 없다. "구체적으로 공개할 경우 불필요한 잡음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청와대가 내놓은 이유다.

청와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인사위는 허태열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이정현 정무수석, 곽상도 민정수석,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이남기 홍보수석이 고정 멤버로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인사위에 박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포진하다보니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전혀 발휘될 수 없는 구조라는 데 있다. '나홀로 인선'을 고집하는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대통령의 의사결정에 제동을 걸지 못하는  최측근 참모들의 침묵이 공적인 인사시스템 무력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일방통행 시스템 인사위... 국민 여론에 무심

▲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 ⓒ 권우성


또 새 정부의 국정철학 공유와 전문성이라는 가치 기준을 앞세우다, 더 중요한 국민 여론에는 둔감해지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만수 후보자도 인선 사실이 발표되자마자 과거 김앤장과 율촌 등 대형로펌에서 대기업의 소송 대리인을 맡아 활동한 경력 때문에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규제해야 할 '경제 검찰'의 수장으로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때문에 조세법 전문가라는 청와대의 인선 배경 설명은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김학의 전 차관의 문제도 '성접대'라는 여론 휘발성이 강한 의혹에 연루돼 있었지만 신중한 접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야권 관계자는 "국민 여론 보다는 대통령의 심기를 더 살피는 참모들이 인사위에 포진하고 있는데 인사위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고위공직자 인선 과정에서 일차적 검증 책임이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한만수 후보자의 경우 언론의 취재 활동을 통해 수십억 대의 해외 비자금 계좌 보유와 역외 탈세 의혹이 불거졌다. 언론 취재를 통해 드러날 정도의 사안을 검찰·경찰, 국세청, 국정원 등 권력기관이 취합해 놓은 검증 자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청와대 민정라인이 놓친 것이다.

'성접대' 의혹으로 물러난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김 전 차관의 성접대 의혹은 수개월 전부터 사설 정보지를 통해 불거졌고 경찰에서도 이 같은 사안에 대해 내사를 진행 중이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김 전 차관 본인이 강하게 부인하자 임명을 강행했다가, 결국 성접대 리스트에 김 전 차관의 실명이 거론되는 상황에 이르자 사표를 받았다. 게다가 청와대와 경찰은 부실 검증에 대한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곽상도 민정수석비서관을 포함한 민정라인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공개적으로 민정라인 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민정라인 교체 목소리... 선 긋는 청와대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불교방송에 출연해 "공직 후보자가 내정됐을 때 검증하는 팀이 제대로 체계가 안 잡혔다는 지적들이 있는데 최근 김학의 법무차관 낙마 과정 등을 보면 실제로 그런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며 "초반 인수위원회 인사 시에는 대통령이 아직 취임을 못했고 검증 인력이나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아 좀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었지만 (취임 후) 검증 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 위치에 가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곽상도 민정수석 사퇴론에 대해서는 "시행착오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능력이 안된다고 생각된다면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인책론에는 선을 긋고 있다. 민정라인의 검증 실패도 불가항력이었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민정수석실에서는 당연히 검증을 했지만 해외 계좌 문제는 짧은 시간 안에 현실적으로 (밝혀내는데) 한계가 있다"며 "(문책론에 대해서는) 논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김학의 전 차관의 성접대 의혹에 대해 "재산이나 세금, 부동산은 모두 기록에 있지만 처음에 없던 동영상이 나중에 나오면 그것은 (검증이) 안 되는 문제"라며 "검증이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감쌌다. 여당 내에서 불거지고 있는 대통령의 사과 필요성에 대해서도 윤창중 대변인은 "들어 본 적이 없다"고 잘랐다.

"대통령이 단수 후보 지명하는 방식, 검증 불가능"

하지만 청와대의 안이한 대응이 계속되고 '수첩'에서 사실상 단수 후보를 지명하는 박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인사 스타일이 변하지 않는 한 취임 한 달 국정운영의 동력을 갉아먹은 '인사 참사'는 계속 반복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참여정부에 몸 담았던 한 인사는 "복수를 후보에 올려 놓고 혹독한 검증을 해도 사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게 인사"라며 "대통령이 '이 사람을 시키겠다'고 맘을 먹는 순간 민정라인의 검증은 허술해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단수 후보를 점찍는 방식으로는 제대로 된 검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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