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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때문에 티격태격,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

남편과 한 판 협상한 친구, 길이 보이더랍니다

등록|2013.03.26 10:24 수정|2013.03.26 10:24
"어머 웬일이냐? 못 나올 줄 알았더니. 손자는 어떻게 하고 나왔어?"

지난주 친구들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몇 달 전부터 손자를 돌보기 시작한 친구 A가 오랜만에 모임에 나와 무척 반가웠다. 지난해 11월부터 손자를 돌보기 시작하고 3~4개월 동안은 모임에 나오지 못 했던 친구라 더욱 그랬다.

"퇴직한 남편과 함께 아이 보니깐 할만해"라더니...

▲ 친구 A도 다른 친구들처럼 '손자는 절대 안 봐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친구였다. 하지만 막상 본인 앞에 닥치고 나니 어쩔 도리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 sxc


"남편하고 함께 보니깐 그것도 할 만하더라"
"네, 남편은 어쩐 일로 손자를 같이 돌봐? 혹시 퇴직?"
"나이가 있잖아, 얼마 전에 퇴직했어."

A의 남편의 퇴직은 몇 년 전부터 오가는 말이어서 그다지 당황하지 않은 기색이었다. 그도 다른 친구들처럼 '손자는 절대 안 봐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친구였다. 하지만 막상 본인 앞에 닥치고 나니 어쩔 도리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아들아이의 손자를 돌봐주기 전에 며느리의 친정엄마에게 미루려고 해도 그럴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친정엄마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터라 빼도 박도 못 해 그의 차지가 되고 만 것이다.

처음에는 남편이 도와주지 않아 친구들 모임에는 물론, 집 앞에 있는 마트도 못 갔다. A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어지간한 일은 말을 하지 않아 우리들이 걱정을 하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울증 초기 증상이 오기도 했단다.

처음 손자를 보기 시작했을 때에도 남편은 집에 있었다고 한다. 하여 친구 모임에 와서 점심만 먹고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 그를 위해 그의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만났던 터라 시간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A는 눈인사만 하고 점심을 먹었는지 말았는지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허둥지둥 집으로 돌아간 A에게 돌아온 것은 부부싸움이었다고 한다. 남편이 그 한 시간도 손자를 돌보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던 모양이었다. 마침 A가 들어가니 손자가 울고 있더란다. 그 후로 A는 모임에 나오지 못했다.

"나 이젠 손자 못 봐줘!" 남편과 협상이 시작됐다

그 과정을 알기에 우리는 그가 손자 돌보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A는 친구들 모임에도, 은행에도, 마트에도, 나갈 수가 없게 되자 우울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A는 며느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이젠 손자를 더 돌봐줄 수가 없다, 내가 병들어서 더 이상 봐주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다. 집안일 해야지, 너희들 애 뒷바라지해야지…. 그렇다고 시아버지가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나도 이젠 60살이 넘은 힘 없는 노인이야."

하지만 아들 내외도 별도리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럼 어머니 7월까지만 봐 주세요. 그때는 제가 사표를 내든지 다른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요."

아들과 며느리가 이렇게 말하니 A는 더 이상 자기 입장만 세울 수는 없었단다. 그래서 남편과 이 육아 문제를 담판을 짓기로 마음먹고 협상을 시작했단다. A는 남편에게 강하게 말했다.

"내가 30년 넘게 시집살이하고 시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셔서 이젠 조금 편해질 만하니깐 손자까지 봐줘야 하잖아. 더도 덜도 말고 한 달에 두세 번, 한두 시간 정도만 손자를 돌봐줘. 그것도 못한다고 하면 나도 더 이상 손자를 볼 수는 없어."

A가 이렇게 말하니 남편도 더 이상 물러 설자리가 없는지 마지 못 해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여유 있어 보이는 친구의 뒷모습, 마음이 환해졌다

나는 "그래 그렇게 말을 해야 네 남편도 알지.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아니? 넌 너무 말을 안 해서 병을 키워"라고 말해줬다. A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우리 모두 그가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터였다.

그의 남편은 보통 그 나이 또래의 남편들처럼 집안일을 거의 할 줄 모르고 관심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것만 해도 큰 발전인 것은 틀림없는 일. A의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친구는 "그래, 남편하고 둘이 보면 그래도 볼만해"라며 "그런데 우리들도 나이가 있어서 혼자서 손자를 돌보는 것은 정말 힘들어, 나도 그때 남편하고 봤으니깐 몇 년씩 두 아이 봐줬지 혼자였으면 그렇게 두 아이 못 봐줬어"라고 거들었다.

"맞아. 그런데 너희 남편은 집안일도 엄청 잘하잖니. 네 남편은 도와 주는 차원이 아니고 알아서 척척 하잖아. 너희 남편 같으면 업고 다니겠다." "둘이 보면 그래도 볼만하겠지. 그래도 난 싫은데 어쩌냐?" 여기저기서 다른 친구들의 걱정이 쏟아져 나왔다.

"맞벌이는 아이들이 커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옆에서 누가 잠깐씩이라도 봐줘야 끝난다고 봐야해. 초등학교 입학하면 집에 오는 시간이 일정하지 안잖아. 어느 날은 일찍 끝나고 어느 날은 늦게 끝나고…."

손주들 봐주는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래도 오랜만에 A의 뒷모습이 여유롭게 보였다. 그 A는 밥을 먹고 차 한 잔 마시고 천천히 일어선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야, 그래도 오늘은 여유가 있어서 정말 좋다. 오랜만에 너희들 얼굴을 보니깐 숨통도 트이고 살 것 같아. 다음에는 우리 집에서 더 가까운 곳으로 약속 잡아라."

A의 남편은 예전에 비해 많이 변했다고 한다. 가끔씩 피곤할 거라며 커피도 타주고, 분리수거도 해주고, 아기 기저귀도 갈아주고, 우유도 먹여주고 있단다. 오랜만에 그의 밝은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밝아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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