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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좀비'

[리뷰] <웜 바디스>, 좀비물과 결합한 로맨틱 코미디로 장르의 벽을 허물다

등록|2013.03.27 09:24 수정|2013.03.27 09:24

▲ 영화 <웜 바디스>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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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면서 영화 속의 좀비들은 점차 변해왔다. 시체가 살아난다는 설정 자체만으로 공포를 주던 과거에서, 최근에는 더욱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원하는 관객의 요구에 따라 느리게 걷던 좀비들이 마구 내달리기 시작했다. 여러 좀비영화들이 거듭되며 차별성을 두기 위해 좀비들이 떼로 등장하며 스케일이 커지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사람들은 '좀비물' 자체에 이내 식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최근에 미국드라마 <워킹데드>가 아슬아슬한 내용전개로 분발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면에서 좀비영화는 쫓고 쫓기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자아내는 선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었다.

그러다가 2013년 3월, 새로운 영화가 나타났다. 좀비를 소재로 다룬 영화인데도, 전혀 공포스럽지 않은 것이 특징인 <웜 바디스>는 개봉 열흘 만인 지난 25일 100만 관객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색다른 시도, 좀비가 사랑에 빠지는 로맨틱 코미디?

주인공인 R(니콜라스 홀트 분)은 좀비다. 그 자체가 이미 색다른 시도이다. 여지껏 어느 영화가 '좀비에 맞서 싸우는 인간'이 아니라 '좀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던가? 그런데 <웜 바디스>는 당당하게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인간을 잡아먹으며 살아가는 삶에 허탈해하며 그 의미와 자신의 정체성을 궁금해하는 R.

그러던 어느날, 그의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난다. 살아있는 인간이자 생존자 그룹의 리더를 아버지로 둔 줄리(테레사 팔머 분). 그리고 그는 첫눈에 줄리에게 반해버리고, 좀비로서는 좀처럼 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줄리를 살육의 현장에서 무사히 구해낸 것이다.

이렇듯 범상치 않은 첫만남으로 시작된 둘의 동거는 아슬아슬하게 전개된다. 좀비가 인간과 사랑에 빠지다니, 좀처럼 생각해내기 어려운 발상이다. 이런 설정은 '이루어질 수 없을 듯한 사랑이야기'로 이어지고, 둘의 이름과도 비슷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이런 점에서 <웜 바디스>는 잔인한 생존게임이 아니라, 아기자기한 사랑이야기와 통통 튀는 발랄함으로 무장하고 있다. 이른바 '좀비를 소재로 한 로맨틱 코미디'인 것이다.

▲ 영화 <웜 바디스>의 한 장면. 주인공 R은 줄리와의 사랑을 통해 좀비에서 인간으로 돌아오게 된다. ⓒ CJ엔터테인먼트


장르의 벽을 넘어선 <웜 바디스>, 충분히 매력적

이전에도 '살육'과 '생존'을 내용의 대부분으로 삼던 기존의 좀비물에서 변화를 시도한 사례는 있었다. <좀비랜드>나 <새벽의 황당한 저주>가 그 예인데, 하지만 이 영화들도 딱히 식상함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다고는 보기 힘들다.

그 이유이자 두 영화의 공통점은 '등장인물들이 좀비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그래서 극 중 좀비들이 무의미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좀비라는 소재가 내용전개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그로 인한 인과관계도 불분명하기에 마치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했던 탓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웜 바디스>는 이와 확실히 다르다. 소재로 쓰인 좀비, 주인공 R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자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하고 체온이 따스해진 것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좀비와도 같다"는 표현을 위해 쓰였기 때문이다.

'사랑'과 '삶의 의미'를 연결짓고,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영화는 말한다. 외롭고 쓸쓸하게 일과 공부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흔히 말하곤 하는 '이게 사는건가'라는 농담섞인 자조를 <웜 바디스>는 좀비라는 시각적인 요소를 통해 구체화한 것이다. '좀비물'과 '로맨틱 코미디'의 두 장르가 벽을 넘어 만난 것은 그런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인 시도라고 생각한다.

▲ 영화 <웜 바디스>의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좀비가 당신에게 속삭인다 "사랑하세요"


영화는 마치 봄기운이 다가오기 시작한 날씨처럼, 관객들에게 "사랑하세요"하고 속삭이는 듯 하다. 바로, 사랑에 빠진 좀비가 점차 다시 따스한 피가 도는 사람으로 돌아온다는 설정이 그러하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데, 달콤한 사랑에 빠지는 것 만한게 어디 또 있을까?

하지만 단지 사랑 뿐 만이 아니다.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다면, 좀비와 다름없이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을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는 삶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웜 바디스>는 그런 간단하고도 분명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단지 살아내는 삶이 아니라, 의미를 갖고 삶을 살아가라고. 가슴 뛰게 만드는 일을 찾아서 나아가라고.

혹자는 이 영화의 내용전개가 개연성이 없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의 소재인 '좀비'나 '사랑', 둘 중 어느 쪽도 설명이 가능한 일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은 이미 알만한 사실이지 않은가? 논리로 접근하는 순간 매력이 사라지고, 그것으로부터의 느낌 자체로 받아들여야 마땅한 것들이라는 점도 말이다.

이 영화에서만큼은 다른 모든 물음은 내려놓고, 편안하게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 삶이 팍팍해진 것은, 너무 많은 질문 때문일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더욱 필요한 것은, 그보다는 더 많은 영감과 설레임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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