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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비밀

[시인 서석화의 음악에세이] -양희은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등록|2013.03.26 10:53 수정|2013.03.26 10:53
현존하는 대중가요 중 사랑을 노래한 것 중에서 가장 사랑의 속성을 잘 드러낸 가사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말할 것이다.

사랑과 쓸쓸함, 글자를 써놓고 보니 한글 자음 ㅅ이 다섯 개나 들어있다. 시옷, 이라고 발음해본다. '시'를 발음할 때의 스산함이 '옷'에 가서 갇힌다. 시옷은 한자로 사람 人과 닮은꼴이다. 사람이 갇힌다... 그곳은 감옥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쓸쓸함이란 수인번호가 문패로... 걸린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났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스스로에 대한 반란과 혼란, 내장까지 흔들어 놓는 광기의 시간, 모든 것이 처음이고 끝인 엇박자의 연속, 사랑은 그렇게 온다.

사는 동안 규정되고 고정되었다고 믿어온 자아는 어느새 구멍이 뚫려 그 넓이를 늘려가고, 어쩌지 못하는 쓸쓸함이 광폭하게 자리를 메우는 것. 어째서 그 사람이어야 하며 그 사람의 무엇에 자신의 세상 전부를 매다는지, 바라볼 세상도 보이는 세상도 없이 어째서 그 사람만 천지에 가득한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불치의 상태. 오감은 이미 정지됐고 살 저리는 외로움과 뼈 저미는 쓸쓸함만 저승사자처럼 앞에 서 있는 상태. 사랑은... 그래서 사랑이다.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라는 가사는 그래서 보편성과 함께 진정성을 획득한다.

그러나 사랑은 이별을 향해가는 길 같은 것이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는 흔한 논리를 들먹이지 않아도 모든 감정에는 발화점이 있고 진행되는 과정이 있으며 소실되는 엄연한 규칙이 있다. 다만 사랑이라는 것은 그 어떤 감정보다도 자기최면을 동반한 치명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정신적인 사망에 이르기 전까진 그런 규칙에서 제외될 뿐이다.

그래서 이별이 찾아오면 누구나 앞당겨 죽음을 경험한다.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났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리는 세상에 홀로 던져진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는 게 인생임을 깨닫기엔 사랑에 빠졌던 수인 생활의 기억이 너무 사무치다. 이미 종료된 사랑임에도 내가 너를 보내지 않으면 너는 떠난 게 아니라는 억지 독백을 자기 가슴에 쓴다. 그러나 시간은 정직한 것. 이별은 엄중하고 더는 너와 내가 '우리'가 아님을 깨닫는 새벽이 온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은 게 사랑이다. 그만큼 누구나 사랑의 대상은 모든 존재의 지위를 뛰어넘는 자리를 확보한다. 유일성을 담보로 한다. 외롭고 적막한 지구에서 나를 휘감은 한 사람에의 치열한 몰입, 기꺼이 감옥행을 자처하는 어여쁜 수고. 이것이 사랑의 기적이다. 영원한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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