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한 지게, 내 소년시절이 고개 들었다
50여 년 세월이 지났건만 지금도 나무냄새에 취했다
거의 매일같이 오후에는 한두 시간씩 걷기 운동을 하며 소일한다. 걷기 운동은 여러 가지 성인병을 안고 사는 내게 필수적인 일이다. 걷기 운동을 할 때마다 두 가지 마음이 동행을 한다. 질병들을 지니고 사는 기구한 신세지만 그래도 유유자적하듯 매일 걷기운동을 할 수 있는 내 처지에 대한 감사와, 직장에 몸이 매어 있거나 노상 일에 쫒기며 사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으레 동무를 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걷기 운동은 즐겁고도 행복한 일이다. 들길과 산길과 해변을 거닐며 갖가지 상념을 떠올리고, 수많은 추억들과도 만나고, 자연사물과 친화한다는 것은 정녕 복된 일이다. 그냥 걷기만 한다면 두어 시간이 지루할 수도 있지만, 묵주(黙珠)를 지팡이 삼으니 기도 실적(?)도 올릴 수 있어 걷기운동은 내게 일거양득이다. 또 좋은 상념을 얻게 되면 일석삼조가 되기도 한다.
집을 나서면 동서남북이 다 걷기 운동을 할 수 있는 길이니 오늘은 어떤 길을 선택할까 잠시 고심하기도 한다. 산지사방이 다 나를 부르는 것 같다. 이미 수없이 밟은 길들인데도 마냥 궁금하고, 다시 걸을 때마다 반갑고도 정답다. 어떤 길을 오랜만에 밟을 때는 괜히 미안해지는 심정이 되기도 한다.
오랜만에 걷는 길, 옛 추억에 잠기다
그런 미묘한 마음을 안고 하루는 우리 집에서 남쪽 방향의 한 갈래인 송암리 길을 걷게 됐다. 무척 오랜만에 걷는 길이었다. 송암리에서도 끄트머리 길을 걸으며, 이 길을 걸은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 시오리 상간인 송암리 끄트머리 길을 걷노라면 송암리에서 사는 초등학교 동창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태안초등학교까지는 20리(8km)인 길을 때로는 달음박질을 하며 학교를 다닌 친구들이었다. 지각하지 않으려고 책보를 허리나 어깨에 단단히 두르고 달음박질을 할 때는 필통 안의 연필토막 뛰노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장단을 맞춰주곤 했다는데, 그런 경험은 나도 많이 했다.
나는 학교에서 가까운 읍내에서 살았지만, 시오리나 20리 상간에서 고무신 신고 학교를 다닌 친구들을 떠올리면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용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한다. 좁은 농로며 오솔길들이 시멘트나 아스콘으로 포장돼 자동차 길이 되고, 5분이면 읍내까지 갈 수 있는 길이 되고 보니 두 다리 걸음으로는 읍내가 더욱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연히 마주친 지게
길이 좋아진 만큼 걷기는 더욱 힘들어진 묘한 이치를 생각하며 등성이 하나를 넘었을 때였다. 빈 지게를 지고 오는 노인 한 분을 만났다. 지게를 보는 순간 나는 탄성을 발하며 발을 멈췄다. 참 오랜만에 보는 지게였다. 지금은 농촌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지게를 나는 넋을 놓고 보다가 자석에 끌리듯 노인의 뒤를 따라갔다.
노인은 길옆 산으로 들어가 지게를 세워놓고 땔나무를 장만하고 있었다. 지금도 산에서 나무를 하는 이가 있고, 지금도 재래식 부엌이며 아궁이가 있는 집이 존재함을 그 노인에게서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노인의 허락을 얻어 지게를 져보기도 했다. 일순 소년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와락 덤벼들기도 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 산에 나무를 하러 다녔다. 처음에는 바구니를 들고 솔방울을 주워 가마니에 담아 새끼로 멜빵을 만들어 지고 오곤 했다. 5학년 때부터는 지게를 졌다. 처음에는 내 키와 지게가 많지 않아 지게 다리가 땅에 닿는 탓에 곤란을 겪었는데, 아버지가 지게 다리를 잘라주어 지게질을 잘할 수 있었다.
갈퀴로 솔잎을 긁기도 했고, 도끼와 괭이를 이용해 나무 등걸을 캐기도 했고, 낫으로 푸장나무를 베어오기도 했다. 한 겨울 눈 덮인 산 속으로 들어가 몰래 소나무 가지를 치다가 산 임자에게 들켜 몽둥이에 맞아 지게뿔이 부러진 적도 있었다. 또 나뭇짐을 지고 눈길을 걷다가 미끄러져 지게와 함께 논배미에 처박힌 적들도 있었다.
소년 시절의 그런 나무꾼 기억을 되살려 지은 <나무꾼의 추억>이라는 단편소설을 2005년 <월간문학> 8월호에 발표해 평론가들의 호평을 얻기도 했다. 특히 평론가 임헌영 선생은 '수채화 같은 작품'이라는 말로 극찬했다.
나무를 때지 않고 아궁이에 풍구를 돌려 왕겨를 때고 살 때는 큰댁 정미소에서 왕겨를 가마니에 담아 세 가마, 네 가마씩 지게에 져 나르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 시절 리어카(수레)를 이용하게 되면서 나는 지게를 면할 수 있었다.
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를 하러 다니던 때로부터 어언 50여 년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초로의 언덕 위에서 저녁 해의 긴 그림자를 보게 됐다. 나는 저녁 무렵의 그늘진 산기슭에서 지게를 어루만지며 초면의 나무꾼 노인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 노인에게 내 소년 시절의 삽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나는 그날 밤 시 한 편을 지었다. 절절히 시를 짓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삶 자체가 산문이기도 하고 운문이기도 할 터였다. 산다는 것은 온몸으로 시를 짓는 것이기도 하고 소설을 쓰는 것이기도 할 터였다. 그런 생각도 때로는 필요한 법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나 자신을 위안하며, 우연히 시골 길에서 오랜만에 지게를 본 것에 연유하여 떠오른 추억과 심상을 우선 시로 기록할 수 있었다.
그 길에서 지게를 보다
오랜만에 송암리 길을 걸었다
예전에 여러 번 걸었던 길을 다시 걸으며
그때가 언제였더라
병을 앓기 전이었던가
앓고 난 후에도 이 길을 걸었던가
명확치 않은 기억에
괜히 골똘해지기도 했다
송암리 끄트머리에서
시오리 길을 걸어
초등학교를 다녔던
동창 친구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책보를 허리에 동여매고
지각하지 않으려고 달음박질할 때마다
연필통에서 철렁철렁
연필도막 뛰노는 소리가 철렁철렁
장단을 맞추어 주었다지
자전거도 귀했던
좁은 농로와 오솔길이었던 길들이
시멘트나 아스콘으로 포장되어
시오리 길이 5분 거리로 단축된 시절이지만
나는 옛날로 돌아간 듯
송암리 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등성이 하나를 넘던 중
뜻밖에도 지게를 보았다
지게를 지고 길 옆 산으로 들어가는 노인을 보는 순간
나는 발을 돌려 노인을 따라갔다
노인은 땔나무를 장만하고 있었다
작대기에 의지하여 두 발을 딛고 선 지게를 보며
소년 시절의 내 모습을 보았다
수십 년을 거슬러
내 모습이 거기 있었다
솔방울을 줍고
솔잎을 긁고
나무 등걸을 캐고
소나무 가지를 치고
푸장나무를 베어
바지게 가득 지고 산길을 내려오던 날들이,
눈길을 걷다가 넘어지기도 했던
내 소년 시절의 풍경이 거기 있었다
눈 덮인 산 속에서 몰래 나뭇가지를 치다가
산 임자에게 들켜
몽둥이세례로 지게뿔이 부러졌던 날도
거기 있었다
세월이 흐른 덕에
인생 오후의 한적한 길을
묵주를 지팡이 삼아 유량하듯 걸으며
뜻밖에도 지게를 만난 날
가슴 저린 반가움 속에서
소년 시절의 무거웠던 날들을 반추하며
오래도록 나무냄새에 취해 보았다.
어쨌거나 걷기 운동은 즐겁고도 행복한 일이다. 들길과 산길과 해변을 거닐며 갖가지 상념을 떠올리고, 수많은 추억들과도 만나고, 자연사물과 친화한다는 것은 정녕 복된 일이다. 그냥 걷기만 한다면 두어 시간이 지루할 수도 있지만, 묵주(黙珠)를 지팡이 삼으니 기도 실적(?)도 올릴 수 있어 걷기운동은 내게 일거양득이다. 또 좋은 상념을 얻게 되면 일석삼조가 되기도 한다.
오랜만에 걷는 길, 옛 추억에 잠기다
▲ 산기슭의 지게소년 시절 지게질을 많이 하고 살았던 나는 실로 오랜만에 지게를 보는 순간 너무도 반가워 지게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 지요하
우리 집에서 시오리 상간인 송암리 끄트머리 길을 걷노라면 송암리에서 사는 초등학교 동창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태안초등학교까지는 20리(8km)인 길을 때로는 달음박질을 하며 학교를 다닌 친구들이었다. 지각하지 않으려고 책보를 허리나 어깨에 단단히 두르고 달음박질을 할 때는 필통 안의 연필토막 뛰노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장단을 맞춰주곤 했다는데, 그런 경험은 나도 많이 했다.
나는 학교에서 가까운 읍내에서 살았지만, 시오리나 20리 상간에서 고무신 신고 학교를 다닌 친구들을 떠올리면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용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한다. 좁은 농로며 오솔길들이 시멘트나 아스콘으로 포장돼 자동차 길이 되고, 5분이면 읍내까지 갈 수 있는 길이 되고 보니 두 다리 걸음으로는 읍내가 더욱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연히 마주친 지게
길이 좋아진 만큼 걷기는 더욱 힘들어진 묘한 이치를 생각하며 등성이 하나를 넘었을 때였다. 빈 지게를 지고 오는 노인 한 분을 만났다. 지게를 보는 순간 나는 탄성을 발하며 발을 멈췄다. 참 오랜만에 보는 지게였다. 지금은 농촌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지게를 나는 넋을 놓고 보다가 자석에 끌리듯 노인의 뒤를 따라갔다.
노인은 길옆 산으로 들어가 지게를 세워놓고 땔나무를 장만하고 있었다. 지금도 산에서 나무를 하는 이가 있고, 지금도 재래식 부엌이며 아궁이가 있는 집이 존재함을 그 노인에게서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노인의 허락을 얻어 지게를 져보기도 했다. 일순 소년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와락 덤벼들기도 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 산에 나무를 하러 다녔다. 처음에는 바구니를 들고 솔방울을 주워 가마니에 담아 새끼로 멜빵을 만들어 지고 오곤 했다. 5학년 때부터는 지게를 졌다. 처음에는 내 키와 지게가 많지 않아 지게 다리가 땅에 닿는 탓에 곤란을 겪었는데, 아버지가 지게 다리를 잘라주어 지게질을 잘할 수 있었다.
갈퀴로 솔잎을 긁기도 했고, 도끼와 괭이를 이용해 나무 등걸을 캐기도 했고, 낫으로 푸장나무를 베어오기도 했다. 한 겨울 눈 덮인 산 속으로 들어가 몰래 소나무 가지를 치다가 산 임자에게 들켜 몽둥이에 맞아 지게뿔이 부러진 적도 있었다. 또 나뭇짐을 지고 눈길을 걷다가 미끄러져 지게와 함께 논배미에 처박힌 적들도 있었다.
소년 시절의 그런 나무꾼 기억을 되살려 지은 <나무꾼의 추억>이라는 단편소설을 2005년 <월간문학> 8월호에 발표해 평론가들의 호평을 얻기도 했다. 특히 평론가 임헌영 선생은 '수채화 같은 작품'이라는 말로 극찬했다.
나무를 때지 않고 아궁이에 풍구를 돌려 왕겨를 때고 살 때는 큰댁 정미소에서 왕겨를 가마니에 담아 세 가마, 네 가마씩 지게에 져 나르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 시절 리어카(수레)를 이용하게 되면서 나는 지게를 면할 수 있었다.
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를 하러 다니던 때로부터 어언 50여 년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초로의 언덕 위에서 저녁 해의 긴 그림자를 보게 됐다. 나는 저녁 무렵의 그늘진 산기슭에서 지게를 어루만지며 초면의 나무꾼 노인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 노인에게 내 소년 시절의 삽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나는 그날 밤 시 한 편을 지었다. 절절히 시를 짓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삶 자체가 산문이기도 하고 운문이기도 할 터였다. 산다는 것은 온몸으로 시를 짓는 것이기도 하고 소설을 쓰는 것이기도 할 터였다. 그런 생각도 때로는 필요한 법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나 자신을 위안하며, 우연히 시골 길에서 오랜만에 지게를 본 것에 연유하여 떠오른 추억과 심상을 우선 시로 기록할 수 있었다.
▲ 나무꾼과 지게 지금 시절에도 나무꾼이 있고, 재래식 부엌과 아궁이가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 지요하
그 길에서 지게를 보다
오랜만에 송암리 길을 걸었다
예전에 여러 번 걸었던 길을 다시 걸으며
그때가 언제였더라
병을 앓기 전이었던가
앓고 난 후에도 이 길을 걸었던가
명확치 않은 기억에
괜히 골똘해지기도 했다
송암리 끄트머리에서
시오리 길을 걸어
초등학교를 다녔던
동창 친구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책보를 허리에 동여매고
지각하지 않으려고 달음박질할 때마다
연필통에서 철렁철렁
연필도막 뛰노는 소리가 철렁철렁
장단을 맞추어 주었다지
자전거도 귀했던
좁은 농로와 오솔길이었던 길들이
시멘트나 아스콘으로 포장되어
시오리 길이 5분 거리로 단축된 시절이지만
나는 옛날로 돌아간 듯
송암리 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등성이 하나를 넘던 중
뜻밖에도 지게를 보았다
지게를 지고 길 옆 산으로 들어가는 노인을 보는 순간
나는 발을 돌려 노인을 따라갔다
노인은 땔나무를 장만하고 있었다
작대기에 의지하여 두 발을 딛고 선 지게를 보며
소년 시절의 내 모습을 보았다
수십 년을 거슬러
내 모습이 거기 있었다
솔방울을 줍고
솔잎을 긁고
나무 등걸을 캐고
소나무 가지를 치고
푸장나무를 베어
바지게 가득 지고 산길을 내려오던 날들이,
눈길을 걷다가 넘어지기도 했던
내 소년 시절의 풍경이 거기 있었다
눈 덮인 산 속에서 몰래 나뭇가지를 치다가
산 임자에게 들켜
몽둥이세례로 지게뿔이 부러졌던 날도
거기 있었다
세월이 흐른 덕에
인생 오후의 한적한 길을
묵주를 지팡이 삼아 유량하듯 걸으며
뜻밖에도 지게를 만난 날
가슴 저린 반가움 속에서
소년 시절의 무거웠던 날들을 반추하며
오래도록 나무냄새에 취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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