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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개발? 우리 좀 이제 놔주세요 계속하면 아파트 위에 망루 올릴 것"

[현장] '엎어진' 31조짜리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서부이촌동 민심

등록|2013.03.29 15:09 수정|2013.03.29 15:09

▲ 27일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의 중산아파트. 아파트 벽면에 '한강수가 혈수가 되도 내집 사수한다'는 글귀가 적혀있다. ⓒ 김동환


"용산참사 당한 분들은 세입자지만 우리는 집주인들이잖아요. 평생 뼈빠지게 일해서 겨우 하나 마련한 집을 눈뜨고 뺏기게 생겼는데 지금 보이는 게 있겠어요? 개발이고 나발이고 강행하기만 해봐. 한강변에 있는 우리 아파트 옥상에 망루 올릴테니까."

27일 용산구 이촌2동(서부이촌동)의 중산 아파트. 이곳 주민 조안나씨는 벌개진 얼굴로 말릴 새도 없이 울분을 뭉텅뭉텅 쏟아냈다. '최후 대책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망루' 얘기를 꺼냈다. 그는 "요즘 통 보이지 않는 박원순 시장에게도 이 얘기를 똑똑히 전해달라"고 덧붙였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6년 만에 파산 위기를 맞으면서 사업 향방에 대해 이목이 쏠리고 있다. 20여 개 개발사 중 최다 지분을 가진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사업정상화 방안을 내놓긴 했지만 원만한 사업 진행의 열쇠를 쥐고 있는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개발사들의 증자를 통한 획기적인 주민 보상안이 제시되지 않을 경우 31조 규모의 개발 사업이 '엎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코레일은 이 사업에 추가로 돈을 더 넣을 생각이 없다는 입장이다.

▲ 27일 용산구 서부이촌동 시범아파트. 벽면에 '서민재산 강탈하는 개발사업 결사반대'라는 글자가 페인트칠로 쓰여져있다. ⓒ 김동환


주민들 "드림허브 보상 사기에 속았다"

4호선 신용산 역 5번 출구 앞에서 0017번 버스를 타고 10여 분 움직이면 서부이촌동 앞을 지난다. 버스 정류장으로 세 개, 어른 걸음으로 걸어서 15분 정도면 대각선으로 가로지를 수 있는 작은 크기의 동네다. 봄이 찾아왔지만 최근 이 지역 분위기는 과거 어느 때보다 을씨년스럽다. 이곳이 포함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 흔들리면서 주민들 사이에 찬반 여론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는 상태기 때문이다.

이곳 주민들이 양분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7년부터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코레일이 낸 부지 개발 사업에 주민 동의 없이 서부이촌동을 포함시키면서 이 지역 주민들은 찬성과 반대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서부이촌동은 5개의 아파트가 주택지역을 감싸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행정상으로도 이렇게 6개 구역으로 나뉜다. 주민들이 '지번'이라고 부르는 단독·연립·다세대주택(604가구)는 대체로 개발을 찬성하는 쪽이었다. 반대로 한강을 마주하고 있어 조망권 이점을 가진 대림아파트(638가구)와 성원아파트(340) 주민들과 대지가 시 소유로 되어 변변한 보상을 받기 어려운 중산(266가구)·시범아파트(228가구) 주민들은 개발 반대 입장이었다.

2011년 서부이촌동 주민조사에서는 개발에 찬성하는 주민들이 56%로 절반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조사에서도 구역에 따른 개발 찬반은 뚜렷히 갈렸다. 대림아파트와 성원아파트의 찬성률은 39.6%와 32.4%에 불과했던 것. 중산아파트와 시범아파트는 땅 소유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주민 조사에 포함되지 않았다.

전체 주민 중 56%의 찬성을 이끌었던 건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인 드림허브가 제안했던 파격적인 보상이었다. 드림허브는 주민들에게 이주비로 최고 3억 원을 무이자로 제공하고 이사비로 최고 3500만 원을 지급하며 계약금 10%만 미리 내면 잔금 90%를 입주시에 치를 수 있게끔 하겠다면서 확약서를 작성했다.

▲ 27일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대림아파트 주민 서숙이씨가 주민 동의서를 구하며 드림허브측이 배포한 팜플렛을 들어보이고 있다. ⓒ 김동환


문제는 지난해 8월 터졌다. 보상을 약속하며 주민동의를 받았던 드림허브 측이 사업설명회에서 돌연 확약서 내용을 지킬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날 아파트 노인정에서 만난 대림아파트 주민 서숙이씨는 "드림허브가 아파트 33평을 통합개발하면 보상금으로 12억 2천만 원을 주고 각종 프리미엄을 합치면 30억 6925만 원으로 불려준다고 하더니 입을 딱 씻더라"고 설명했다.

서씨는 "국내에서 내노라하는 기업 30개가 모여서 개발을 하면서 변명이라고 하는 것도 기가 막혔다"면서 "용산국제업무지구가 도시개발이 아니라 재건축·재개발인줄 알았다고 하는데 도대체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재개발 알아서 할 테니 우리 풀어달라"

드림허브가 확약서를 뒤집으면서 동네 분위기도 뒤집혔다. 이날 만난 이 지역 주민 10여 명 중 개발 찬성은 2명 뿐이었다. 개발 찬성이라는 입장을 가진 주민도 '조건부' 였다. 한 주민은 "시간이 이렇게 지났으니 개발은 해야하지 않겠느냐"면서도 "확약서 내용을 지키지 않으면 사기범과 다를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찬성하는 주민들은 서부이촌동의 특수성을 이유로 꼽았다. 동네 자체가 만들어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특히 지번쪽은 건축연한이 40년이 넘어가는 주택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동네 면적이 좁아 단독 재개발은 어렵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지번 주민 최기종씨는 "어차피 개발을 해야 하는 동네인데 서부이촌동만 개발하기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면서 "개발은 무조건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확약서 내용대로만 보상을 해준다면 반대하는 사람 없을 것"이라면서 "요즘 드림허브가 법정관리 들어가는 등 어지러워서 개발반대 의견이 나오는 것 같은데 정부에서 조금만 밀어주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속내를 내비쳤다.

▲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을 맡은 드림허브측이 2009년 주민들과 맺은 확약서. ⓒ 김동환


개발 조건이 바뀌자 처음에는 압도적인 비율로 동의했던 지번 주민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돌아섰다. 지번 주민인 이복순씨는 "처음에 보상을 보고 80%가 넘는 지번 주민이 동의를 했지만 보상이 바뀌자 그중 70%는 반대로 돌아섰다"면서 "반대로 돌아선 주민들이 즉시 동의 철회서를 만들어 시에 갖다 냈지만 이미 유효기한이 지난 후였다"고 말했다.

"드림허브 출자사 보면 코레일도 있고 삼성도 있고 그렇잖아요. 아니 아무렴 그 대기업들이 들어와서 거짓말 하겠어라는 생각들을 한 거죠. 지번에서도 동의했던 분들도 지금은 대부분 반대하고 있고 현재 동의하는 분들은 큰 평수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에요."

재건축 여건이 안된다는 찬성론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이씨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용산국제업무지구로 편입되기 이전에 이미 저희 나름대로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었다"면서 "어차피 재개발을 해야 하는 건 맞는데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구역 지정만 해제해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 27일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대림아파트. 강제수용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 김동환


"이대로 가면 동네나 개발사나 모두 공멸"

이런 상황에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의 총대를 맨 코레일은 최근 이 지역의 개발 여부 결정권을 서울시로 넘겼다. 보상 등 이 지역과 관련한 문제 때문에 개발이 지연되고 있으니 개발을 할 건지 말 건지를 서울시가 알아서 결정하라는 것이다.

코레일의 한 관계자는 "서부이촌동은 초기 사업계획에는 없었는데 서울시에서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하면서 함께 하라고 해서 포함된 것"이라면서 "서울시에 6월 말까지 어떻게 할 건지 결정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주민들 사이에 흘러나오는 '6월 말 주민투표설'은 이런 코레일의 요청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초 드림허브 측은 보상 지역에 대한 감정평가를 마친 후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안을 고수해왔지만 채무불이행 사태 이후 코레일이 새로운 사업 정상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상황이 바뀐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서울시측은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을 아꼈다.

주민 재투표 결과 6개 구역 모두가 개발을 반대할 경우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총 부지 중 서부이촌동의 비율은 약 12%. 개발사인 드림허브는 총 사업부지 중 변경 내역이 5%를 초과하면 서울시에 사업계획서를 다시 허가받아야 한다.

▲ 27일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의 중산아파트. ⓒ 김동환


그러나 이미 한 차례 채무불이행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경기 상황에서 다시 대규모 부동산 개발 사업의 허가를 받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강변 조망권을 가진 서부이촌동이 통째로 빠질 경우 전체 사업의 수익률이 낮아지는 것도 걸림돌로 지목된다.

상황이 이러니 서부이촌동 여론은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한 주민은 "의도적으로 이 화제는 올리지 않는다"면서 "동네가 온통 찬성파, 반대파로 나뉘면서 전부 말조심하는 분위기"라고 표현했다.

애초부터 개발을 반대해온 아파트 주민들은 행정 담당인 서울시 도시계획국 지구관리계획과에 항의 방문하는 횟수를 늘리고 주민투표 촉구를 요청하는 민원전화를 독려하고 있다. 6년 만에 찾아온 '개발 탈출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대림아파트 주민인 김진명씨는 "여기서 손절(손절매) 쳐주는 것이 코레일이나 드림허브가 할 일"이라면서 "이대로 가면 동네나 개발사나 모두 공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출 이자에 허덕이다가 가장이 자살하는 일도..."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6년의 개발 과정을 거치면서 상당한 물적, 심적 고통을 함께 겪어야 했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서울시가 통합개발 방침을 정함과 동시에 이곳은 집을 팔 수도, 살 수도 없는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2298가구 중 1250가구가 평균 3억 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는 상황. 이 지점에서 주민들은 서울시에 극도의 적대감을 드러냈다. 서울시가 멀쩡한 서부이촌동을 이 상황으로 몰아넣고서 책임을 지고있지 않다는 이유다.

일부 주민들은 "서울시도 개발사와 한통속"이라고 지적했다. 성원아파트 주민인 임통일씨는 "서울시가 적용한 도시개발은 논·밭만 있는 곳에 도시를 건설해서 사람을 유입시킬 때 쓰는 방식"이라면서 "여기 멀쩡히 아파트 다 있고 집 다 있는데 대책 없이 도시개발법으로 수용해서 강제로 밀어붙인다는 건 집 빼앗겠다는 말 아니냐"고 반문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시가 땅 주인인 중산·시범 아파트였다. 도시개발을 할 경우 시유지는 동의절차 없이 강제 수용되며 보상비 협상도 어렵다. 주민들 사이에서 "서울시가 시유지를 코레일에 팔아먹으려 한다"는 원색적인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중산아파트 주민 조안나씨는 "대출 받아서 4억 원 넘는 가격에 집을 샀는데 시에서 받을 수 있는 보상비는 다른데 가서 전세도 못 얻을 수준"이라면서 "서민 땅 빼앗아서 개발 참여한 기업들 배불리겠다는 것으로 밖에 안 보인다"고 분개했다.

"여기가 강변이라 전망이 정말 좋아요. 아파트는 40년 됐지만 우리 주민들 다 여기서 살고 싶어 해요. 대출받은 거 이자 다 갚고 있고 재개발은 우리끼리 하면 되요. 좀 놔달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서민들이 왜 맨날 시청에 데모하러 다녀야하고 도시개발법이 뭔지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왜 법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조씨는 "개발 결정 후 내내 마음 졸이며 지내느라 다들 불면증, 우울증, 두통 같은 스트레스성 질환은 기본으로 얻었다"면서 "강변에 있는 아파트 중 한 가구는 6년 동안 재산권 행사를 못하면서 대출 이자에 허덕이다가 가장이 자살하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유가족들이 원하지 않아서 공개가 안 된 것 뿐 그런 식으로 파탄난 가정이 부지기수"라고 귀띔했다.

▲ 27일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의 중산아파트. ⓒ 김동환


이곳 주민들 역시 주민투표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등기상 아파트 땅은 시 소유지만 다른 곳이 개발구역에서 해제되면 이곳도 개발이 취소될 수 있다는 이유다.

중산아파트 주민 조아무개(78)씨는 "주민투표를 빨리 실시해야 하는데 서울시에서는 드림허브 편만 들면서 우선 감정평가부터 하자고 한다"면서 "우리도 이제 공부해서 감정평가 하면 법적으로 바로 강제집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이젠 안 당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박원순 시장이 원주민 내쫓는 재개발 안 한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지난해 8월에 낸 면담 신청을 아직도 안 받아주고 있다"면서 "(시장을) 만나게 되면 이게 어디가 원주민 위한 개발인지 꼭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조성 사업이란?
용산국제업무지구 조성 사업은 용산구 한강로3가 40-1 코레일 부지와 용산구 서부이촌동 일대를 통합 개발해 용산역 인근에 국제업무 기능을 갖춘 서울의 부도심을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진행된 사업이다. 56만 6000㎡ 부지에 2017년까지 600미터가 넘는 랜드마크 빌딩을 포함한 67개 빌딩을 지어 국제업무 기능을 갖춘 대규모 복합단지를 건설하겠다는게 초기 계획이었다.

당초 코레일 부지만 가지고 시작하려던 사업이었으나 오세훈 전 서울시장 2007년 7월 18일 개발 구역 안에 서부이촌동을 포함시키는 통합개발안을 발표하면서 확장됐다. 같은 해 12월 18일에 코레일 외 29개사가 합동으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을 위한 법인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됐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부동산 시장 침체로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삽도 뜨지 못하던 개발사업은 거듭되는 자금난을 겪다가 올해 3월 13일 52억 원의 채권이자를 갚지 못해 최종부도 위기를 맞았다. 현재까지 용산국제업무지구에 투입된 자금은 총 4조 원으로 추산되며 사업이 최종 부도날 경우 피해액은 8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드림허브의 2대주주인 롯데관광개발은 용산사업 부실로 인한 피해로 18일 법정관리 신청에 들어갔다.

드림허브는 다음달 2일로 정해진 주주총회까지 법정관리와 법인 청산(부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드림허브 1대 주주인 코레일은 25일 용산국제업무지구의 랜드마크빌딩 시공권을 가지고 있던 삼성물산에서 시공권을 반납받고 코레일이 랜드마크 빌딩을 4조2000억 원에 선매입하기로 약속하는 사업정상화안을 내놨다. 빌딩 매입금과 랜드마크 빌딩 시공권을 바탕으로 투자처를 찾아 사업진행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코레일은 다음달 2일 주주총회에서 이 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바로 청산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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