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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전 아이들의 '샌드백'이었습니다"

[제보취재] 장기간 학교폭력 시달린 고등학생 이야기... "자살한 아이 심정 이해"

등록|2013.04.02 20:27 수정|2013.04.02 20:27


▲ 지난 11일 학교폭력에 대한 유서를 남기고 경북 경산에서 목숨을 끊은 고등학교 1학년생이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CCTV에 잡혔다. ⓒ 경북경찰청 제공


새 학기가 시작된 지난 3월 경북 경산의 고교생 최아무개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상을 떠난 최군은 장기간 학교폭력에 시달렸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정부가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을 시행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지적이 다시 나오고 있다. 

같은 달 21일 <오마이뉴스> 사무실로 비슷한 사연의 제보전화가 걸려왔다. 고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아버지는 "아이가 2년 넘게 괴롭힘을 당했는데도 학교에서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기자의 이메일로 아들이 쓴 진술서를 보내왔다.

아들의 이름은 홍성민(19, 가명). 경기도 ㄱ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홍군은 1학년 때부터 최근 3학년 개학 첫 주까지 동급생들에게 괴롭힘 당한 내용을 진술서에 상세하게 담았다. 

닷새 뒤 홍군을 직접 만났다. 그는 가정학습 조치를 받아 학교에 나가지 않고 있었다. 기자는 홍군에게 "2년 넘게 괴롭힘을 당했는데도 학교에서 모르고 있었냐"고 물었다.

"제가 말을 안 해서 그래요. 괴롭힘 당해도 혼자 참고 말았어요. 말한다 해도 괴롭힌 애들이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에요. 선생님들도 무관심한 것 같아요. 한 선생님은 제가 괴롭힘 당할 때 교실에 같이 있었는데도 모르더라고요. 그런데 참는 게 너무 괴로워서 견디다 못해 최근에 아버지한테 먼저 말하게 된 거예요."

홍군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산 고교생의 심정이 이해된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하소연할 데가 없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홍군은 "괴롭힘 당한 일을 말한다 해도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보복을 당할까봐 두려웠을 것"이라며 "학교폭력 피해학생들의 짐을 덜어주려면 괴롭힘 당한 일을 마음 놓고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괴롭힘 당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홍군은 수차례 한숨을 쉬고 말을 멈췄다. 기억을 힘들게 더듬는 모습이었다. 또 홍군은 "제가 친구들이랑 많이 달라서" "다른 아이들보다 튀어서"라고 재차 말하며 학교폭력 피해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려했다. 대체 홍군에게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왜 홍군은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을 남긴 상황에서 다니던 학교를 떠나려 하는 것일까.

홍군의 육성을 통해 그 사연을 들어보았다.

[이야기 하나] "다른 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성적 놀림까지 당했다"

저는 다른 애들하고 달라요. 어렸을 때부터 말 배우는 게 느렸어요. 그런 것 때문에 제가 많이 튀어 보였나 봐요.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학년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어요. 친구들은 시도 때도 없이 저를 때리거나 놀렸고 연필 같은 물건도 빼앗아 갔어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니 제게 욕을 하는 친구들도 나타났어요.

괴롭힘을 당해도 '싫다'는 말을 못했어요. 왠지 모르겠지만 참고 말았어요. 어머니는 제가 속말을 안 하게 된 게 "증조할머니 때문"이라고 했어요. 7살 때까지 저를 도맡아 키운 증조할머니는 치매기 때문인지 저를 자주 때렸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무서워서 숨죽이고 있었죠. 그때 경험이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남은 것 같대요.

중학교 때 당한 괴롭힘은 지금도 잊지 못해요.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 1학년 수련회 때였어요. '노는 애들'이라 불리는 남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저를 데리고 방으로 갔어요. 제게 "바지를 내리고 자위행위를 해보라"고 시켰어요. 그때 저는 성적인 정보를 전혀 몰랐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다른 애들보다 뭔가 배우는 게 느리거든요. 그래서 시키는 대로 따라했죠. 아이들은 그런 저를 보며 깔깔 웃었어요.

수련회 이후에도 노는 애들이 저를 한 번 더 학교 화장실로 불렀어요. 수련회 때 한 행위를 또 해보라고 시켰어요. 저를 보려고 학교 아이들이 점점 화장실로 많이 몰려들었고 여자 아이들은 욕하며 지나갔어요.

결국 그때의 불미스러운 사건이 담임선생님에게도 전해졌어요. 저는 "노는 애들이 시켜서 그랬다"고 솔직하게 말했어요. 그러나 그 행위를 시킨 아이들은 "그런 적 없다"고 부인했어요. 선생님도 "어쨌든 그런 행동을 한 너한테 잘못이 있다"고 했어요.

원래 당뇨병 때문에 몸이 안 좋으셨던 어머니는 병세가 더 위독해지셨어요. 저를 둘러싼 문제 때문에 충격 받으셨나 봐요. 아버지도 소문 때문인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시게 됐어요. 가족의 생계에 어머니 병수발까지 도맡아야 했던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저를 다른 중학교로 전학 보내면서 보육원에 맡기셨어요.

전학 간 학교에서도 놀리고 괴롭히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견딜만 했어요. 착하게도 제가 보육원에서 지낸다고 놀리진 않았거든요. 시간이 지나자 "그동안 괴롭혀서 미안하다, 잘 지내보자"며 사과하는 친구들도 있었고요. 그나마 좋았던 때예요.

[이야기 둘] "대놓고 괴롭힘 당했는데도... 선생님은 무신경"  

2011년 3월 ㄱ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는 견디는 게 힘들 정도로 괴로웠어요. 입학 초반부터 아이들은 저를 만만하게 봤거든요. 한번은 사물함 자물쇠 비밀번호를 까먹어서 한 아이에게 풀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 아이는 "풀어주면 만 원 줘"라고 했고, 저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고서는 넘어갔어요. 자물쇠가 풀리자 그 아이가 돈을 달라고 했어요. 지갑에 돈이 없어서 줄 수 없었어요. 귀갓길에 그 아이는 제 지갑에 있던 교통카드를 빼앗아갔어요. 결국 저는 지하철 4정거장 거리를 걸어서 갔죠.

시간이 지날수록 괴롭힘을 당하는 횟수가 늘어났어요. 남들보다 튄다는 이유 때문에 저를 상대로 스트레스를 푼 것 같아요. '샌드백'같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화풀이 대상이 저밖에 없었나 봐요. 주로 괴롭히는 아이 몇 명은 쉬는 시간이 되면 주로 팔이나 등을 때리거나 꼬집었어요. 한번은 그들 중 한 명이 쉬는 시간에 갑자기 제 겨드랑이를 잡고 비튼 채로 1분 동안 있었어요.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프더라고요. 

수업시간에도 선생님 눈을 피해 괴롭혔어요. 갑자기 주먹으로 제 등을 때리는 식이었죠. 용기를 내서 "하지 마"라고 말하면 더 팼어요. 2학년 때 한 아이는 체육시간에 공을 세게 차서 제 왼쪽 뺨을 맞추기도 했어요. 이런 일이 여러 차례 있었죠.

조례 또는 종례시간에 담임선생님이 앞에 있는데도 대놓고 때린 적도 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아무 말 안 했어요. 눈곱만큼도 모르셨어요. 제게 신경을 안 써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1~2학년 동안 같은 담임선생님이었는데, 제 괴롭힘에 늘 무반응이셨어요.

학교 가는 게 너무 싫어 2학년 때는 말없이 10차례 결석했어요. 일주일동안 학교에 안 나간 적도 있고요. 아버지와 보육원에는 컴퓨터 게임 하느라 결석했다고 거짓말했어요. 괴롭힘 당한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거든요. 그런 식으로 학교생활을 버텨왔어요.

3학년에 올라가서도 괴롭힘은 계속됐어요. 2년 넘게 참아온 울분을 더 이상 견뎌낼 힘이 없었던 걸까요. 어느 날 저녁 아버지와 통화하다가 순간 "학교가기 싫다"며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어요. 보육원 선생님께도 그동안 괴롭힘 당한 일들을 다 고백했죠.

[이야기 셋] "경산 고교생 심정 이해돼... 괴롭힘 털어놓을 기회 보장돼야"

▲ 한 학교 정문에 학교폭력 상담 전화번호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자료사진) ⓒ 강혜란


학교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아래 학폭위)를 열어 저와 주로 괴롭힌 학생 3명을 조사했어요. 한 명은 그런 적이 전혀 없다고, 나머지 두 명은 일부 괴롭힘만 인정했다고 하네요. 결국 제가 피해학생인 건 인정됐지만 가해학생은 정해지지 않았어요. 한 자치위원은 "앞으로 학교 다닐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좋게 해결하자"고 권유했어요. 아버지는 "가해학생이 없는데 사건을 종결시킬 수 있느냐"며 경찰에 학교폭력 피해 내용을 신고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최근에 경찰 조사도 받았고요. 제 억울함이 풀릴 수 있겠죠.

얼마 전에 한 고등학생이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살했다는 뉴스를 봤어요. 그 심정이 이해됐어요. 얼마나 답답했으면… 하소연 할 데가 없었을 거예요. 괴롭힘 당한 일을 말한다 해도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보복을 당할까봐 두려웠을 수도 있어요.

학교폭력 피해자인 저는 그동안 어른들이 공감해주기를 원해왔어요. 선생님들에게 제가 괴롭힘 당한 일을 털어놓으면 잘 들어주고 적극 도와줬으면 했어요. 그동안 만난 선생님들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학폭위 때 만난 상담선생님 말고는 제 말을 경청하려는 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거든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말이죠, 학교폭력 피해학생들의 짐을 덜어주려면 괴롭힘 당한 일을 마음 놓고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줘야 해요. 괴롭힘 당한다고 말하는 것도 힘드니까요.

경찰 조사가 끝나면 저는 다른 고등학교로 전학가거나 계속 가정학습을 받을 생각이에요. 지금 학교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까요. 만약 다시 학교에 나간다면 저를 괴롭혔던 애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제가 다른 아이들이랑 달라서 괴롭힘을 당해온 것이겠지만….

피해학생 재학 고등학교 "괴롭힘, 모른 건 아니었지만…"


홍군이 재학 중인 경기도 ㄱ고등학교는 장기간 학교폭력을 당해왔다는 피해학생의 주장에 "괴롭힘 당한 일을 모른 건 아니었지만 심각한지는 몰랐다"며 "가해학생으로 지목된 아이들도 괴롭힌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ㄱ고교 교감은 지난 3월 29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학폭위를 열었지만 가해학생으로 지목된 아이들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며 "피해학생 측에서 117(학교폭력 신고전화)에 신고해 사건이 경찰로 넘어가게 됐으니 조사 결과에 따라 선도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감은 "거친 아이들이 툭툭 때리며 장난친 것을 피해학생이 일종의 폭력으로 느낀 걸 수도 있다"며 "가해학생으로 지목된 아이들은 그런 행동을 장난 이상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교감은 "(학교는) 힘 센 아이들이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정도로만 알았다, 피해학생이 정말 괴롭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 심각성을 몰랐다"며 "결과적으로 이렇게 돼서 피해학생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는 "학교도 (학교폭력) 지도·예방을 위해 노력하지만 사각지대가 많다"며 "학교 상황을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교감과 한 전화통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경찰 초청 교육해도 학교폭력 일어나... 학교도 피해학생 하루 종일 돌볼 수 없어"

- 사건이 학폭위에서 경찰로 넘어간 이유는 무엇인가.
"학교에서는 학폭위를 열었지만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았다. 학교폭력 사건의 경우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 분명해야 한다. 피해학생은 분명한데 가해학생이 불분명했다. 오래 전에 일어난 일이라 명백한 물증은 물론 증인도 없어서 학폭위에서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보류했다. 피해학생 측에서 117(학교폭력 신고전화)에 신고해 경찰로 사건이 넘어가게 됐다. 따라서 아직 가해학생이 불분명한 사건이다. 일단 피해학생은 우선 보호조치 차원에서 학교장이 가정학습 하도록 했다. 학교는 조사 결과에 따라 선도 조치를 취할 것이다.

우리 학교에는 거친 아이들이 많다. 이번 피해학생은 약간 얌전한 아이다. 거친 아이들이 툭툭 때리며 장난친 것을 일종의 폭력으로 느낀 걸 수도 있다. 가해학생으로 지목된 아이들은 그런 행동을 장난 이상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

- 가해학생으로 지목된 학생들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나.
"당연히 부인한다. 한 명은 전면 부인하고 두 명은 일부만 인정했다. 툭툭 때린 적은 있지만 지속적이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가해학생으로 지목된 아이들이 일진회에 가담할 정도로 말썽을 부린 적은 없다. 한 아이는 다른 학교폭력 사건에 연관된 적이 있지만 이번 사건과는 무관하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은 전혀 폭력과 관련된 적이 없다.

- 같은 반 친구들의 반응은 어떤가.
"그 반 아이들이 피해학생에 대해 말을 안 하려 한다. 일반적으로 사건이 경찰로 넘어가면 말들을 안 한다. 어느 쪽 편도 안 들려고 한다."

- 피해학생은 1학년 때부터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학교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나.
"모른 건 아니다. 아는데, 그게 어느 정도인지 몰랐다. 힘 센 아이들이 약한 아이들 괴롭히는 것으로 알았다. 피해학생도 정말 괴롭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 몰랐다. 학교에서도 교육이나 상담에 노력을 기울였는데 결과적으로 이렇게 돼서 참담하다. 피해학생에게도 미안하다."

- 2년 동안 피해학생 담임을 맡은 선생님도 괴롭힘 당한 일을 모르나.
"다른 반에도 장난이 심하거나 괴롭히는 일들이 있으니 모르진 않았을 텐데, 약간의 장난 정도로 인식했지 이 정도로 심각한지는 몰랐을 것이다. 피해학생이 일찍 말했어야 했다. 학교에 전문 상담교사도 있으니 빨리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학교도 나름 (학교폭력과 관련해) 지도하며 예방하려고 노력했다. 지난해에는 교실 뒤에 '학교폭력은 평생 생활기록부에 남는다'는 포스터를 붙여놓고 계도하기도 했다. 폭력예방교육도 어느 학교보다 많이 한다. 지난해에도 피해학생 반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나 경찰을 불러 그 반만 특별히 교육한 적 있다. 그럼에도 알게 모르게 (학교폭력이) 일어난다. 사각지대가 많다. 피해학생을 하루 종일 돌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이런 일이 은근히 일어난다. CCTV도 학교 안에는 설치할 수 없으니 증거를 잡을 수가 없다. 학교 상황을 이해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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