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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사건을 쫓는 형사, 그 주위를 맴도는 기자

[리뷰] 스튜어트 맥브라이드 <콜드 그래닛>

등록|2013.04.05 11:21 수정|2013.04.05 15:24

<콜드 그래닛>겉표지 ⓒ 랜덤하우스

범죄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는 '기자'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 기자가 작품의 주인공인 경우도 있지만, 아닌 경우가 더 많다.

문제는 이런 기자들 중에서 수사관들과 안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인물이 더러 있다는 점이다. 어찌보면 이것은 경찰과 기자라는 직업의 생리상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하나 발생했을 때, 경찰은 사건의 세부정황은 외부로 공개하지 않고 수사를 진행한다. 반면 기자는 어떻게 해서든 사건의 세세한 면을 알아내서 보도하려고 한다.

자신만이 알아낸 정보를 가지고 기사를 써서 신문 1면을 장식하거나, 더 나아가서 전국적인 특종을 날린다면 기자로서 그보다 기쁜 일도 없을 것이다. 기자에게 기쁜 일은 경찰에게 열받는 일이 될 가능성도 있다.

범인의 검거를 위해서 절대로 공개되지 말았어야할 정보가 대중들에게 알려졌다면 사건 수사는 그만큼 어려워진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경찰은 해당 기자에게 짜증이 날테고 동시에 동료들을 의심하게 된다. 분명 경찰들 중에서 누군가가 어떤 대가를 받고 기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을 테니까.

북유럽에서 발생한 영유아 살해사건

스코틀랜드 작가 스튜어트 맥브라이드의 2005년 작품 <콜드 그래닛>은 스코틀랜드의 도시 애버딘을 배경으로 한다. 영국 북단의 도시는 왠지 조용하고 한적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곳에서도 살인사건은 발생한다. 그것도 다섯 살도 안된 영유아들을 대상으로 한 잔인한 살인사건이 발생해서 사람들을 경악하게 한다.

주인공인 형사 로건 멕레이는 1년 전에 열다섯 명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을 체포해서 영웅이 된 인물이다. 그때입은 부상을 치료하고 현장에 복귀한 로건 앞에 또다른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세 살짜리 어린아이를 목졸라 죽이고 그 시체를 유기했다. 좀처럼 보기힘든 사건이 발생하자 언론의 관심도 이 사건 수사에 모여들게 된다.

그 중에는 한 신문사 기자인 콜린 밀러도 포함되어 있다. 신문사 내에서 '왕재수'라고 불리는 그는 사건을 파헤치고 기사를 작성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인간관계는 젬병인 인물이다. 스스로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그의 기사가 1면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문사 내에서 아무도 대놓고 그와 맞서지 않는 것이다.

이 콜린 밀러가 형사 로건에게 접근해온다. 밀러는 공개되지 않은, 형사들만이 알고있는 사건의 세부사항을 말하면서 자신과 거래하자고 제안한다. 밀러는 자신만이 아는 정보를 제공해서 수사를 돕고, 로건은 수사상황을 밀러에게 알려줘서 밀러가 계속 1면 기사를 따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로건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그 사실이 알려지면 경찰청 내에서 로건의 자리가 위험해질 가능성도 있다.

대신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밀러가 언론을 이용해서 어떻게 경찰청과 로건을 물먹일지 모를 일이다. 사건수사도 벅찬데 로건은 얄미운 기자라는 또다른 골칫거리를 안게 생겼다. 작품을 읽다보면 호기심도 크게 두가지 방향이다. 누가 어린아이만을 골라서 살해하는 것일까? 경찰청 내에서 누가 밀러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일까?

경찰과 기자 사이의 관계

실제로 이런 상황이 되면 경찰들은 기자가 눈엣가시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절대로 공개되서는 안되는 정보를 매번 알고와서 거래를 제안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난처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열받아서 주먹을 휘두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펜은 칼보다 강한 법이니까.

기자들도 이런 처지에서는 나름대로 고민할 것이다. 진실을 대중들에게 알려주는 쪽을 택하고 덤으로 자신만의 특종까지 거머쥘지, 아니면 살인사건의 조속한 해결이라는 대승적인 관점에서 알아도 입을 다물고 있을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기자와 경찰은 충분히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적당한 선에서 서로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그에 맞게 기사를 쓰고 수사를 진행한다면 서로 '윈-윈'하는 관계가 될 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려면 각자가 들고있는 패를 모두 솔직하게 보여주고 협상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에서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기 힘들다.

<콜드 그래닛>은 지금까지 아홉 편이 발표된 '로건 멕레이 시리즈'의 첫 번째 편이다. 작가는 잔인한 범죄와 함께 그 무대인 도시 애버딘의 풍경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등장인물들이다. 이어지는 시리즈에서 콜린 밀러와 로건 멕레이의 관계가 어떻게 좋아질지(또는 나빠질지)가 가장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콜드 그래닛> 스튜어트 맥브라이드 지음 / 박산호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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