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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수만부 찍던 슬램덩크, 지금은 어디로?

[오프라인 만화는 지금①] 만화 생태계 죽이는 불법 만화 스캔

등록|2013.04.14 14:14 수정|2013.04.15 00:30
"초판을 7000부 찍었던 때죠. 기대작이 아니어도 그 정도는 기본이었어요. 슬램덩크나 원피스 같은 인기작품들은 초판으로 1만 부를 찍고 2쇄, 3쇄를 찍어냈었죠."

대원씨에스아이(이하 대원) 관계자의 말이다. 슬램덩크, 원피스, 열혈강호. 만화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화책을 출판한 곳이 대원이다.

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1990년대는 만화의 부흥기였다. 판매부수 100만에 달하는 단행본이 나왔고 소년챔프, 아이큐 점프(서울문화사)부터 순정만화 잡지인 윙크(서울문화사), 화이트까지 다양한 만화잡지가 출판됐다. 만화잡지사에서 주최한 신인 공모전을 통해 새로운 작가들도 등장했다. 잡지에서 연재되며 인기를 얻은 만화들은 단행본으로 출간되며 인기를 이어나갔다.

코믹챔프 2013년 8호1991년 <소년 챔프>로 창간한 후 <아이큐점프>와 함께 1990년대를 풍미했던 우리나라 대표 소년 만화 잡지다. ⓒ 대원씨아이


IMF로 경제 불안이 극심했던 1997~1998년에도 만화출판사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직장에서 정리해고 당한 이들이 도서대여점을 차렸고 이들은 대부분 만화를 대여했기 때문이다. 1997년 당시 전국에 약 1만2000개에 달했던 도서 대여점은 만화출판사의 큰 손님이었다. 대원 관계자는 "책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가 되자 상황이 급격히 달라졌다. 포화 상태에 달했던 대여점 중 문을 닫는 곳이 속출했다. 출판사들은 만화를 '공급'할 곳을 잃었다. 전국에 2000~3000개 의 도서 대여점만이 살아남았다. 웬만한 신간은 다 들여놓던 대여점들도 인기작가 작품들이 아닌 이상 '신간'은 거들떠도 안 봤다.

도서 대여점의 호황에 발맞추어 많은 판매를 올렸던 만화책들의 판매가 뚝뚝 떨어졌다. 2만부씩 찍었던 만화들을 많아야 2000~3000부씩 찍게 됐다.

적발하는 사이에 두 배로 늘어나는 불법 스캔 만화

더 큰 문제는 '불법 스캔 만화'였다. 초고속 인터넷의 등장 이후 함께 '불법 스캔'이 초고속으로 퍼진 것이다. 만화 출판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일본에서 신간이 출판되면 거의 하루 이틀 만에 한국어로 번역되어 인터넷에 올라오는데, 이걸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말했다. 불법 다운로드가 벌어지는 P2P와 웹하드 사이트는 총 100여 개가 넘는데, 일일이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에 2002년에 서울문화사, 학산문화사, 아이엠닷컴 등 국내 대표적인 만화 콘텐츠 제공업체들은 '만화저작권 보호협의회'를 만들었다. 협의회는 공유사이트에서의 불법 다운로드나  개인홈페이지, 카페, 블로그에서 불법으로 만화를 업로드 했을 시 '만화저작권침해신고'를 받고 있다.

열혈강호 58권대원씨아이에서 출판하는 열혈강호는 우리나라 대표 인기 만화다. ⓒ 대원씨아이


협의회에서 사실 여부를 검토한 후 저작권 침해 여부가 있다고 판단되면 우선 서면으로 1차 경고조치를 취한다. 경고조치에도 불법 서비스가 지속될 때는 각 해당 저작권자의 권리를 위임받은 출판사가 직접 나서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다. 협의회는 2012년에만 1만5000건에 달하는 불법 만화를 적발했다. 이렇듯 저작권이 침해된 채 불법으로 유통되는 스캔만화에 대한 피해액은 협의회 추정 145억 원(2012년)에 달한다.

출판사는 출판사 나름대로 불법 스캔 만화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대원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도 블로그나 P2P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며 "적발하면 포털 사이트에 관련 게시글을 내리거나 블라인드처리 해달라고 요청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들 역시 어떤 부분에서는 독자이기도 해 회사에서 일일이 정면 대응하기 어렵다"고 난감한 입장을 전했다. 동시에 "삭제 요청을 하는 동안에도 불법 스캔은 삭제 요청의  배로 생긴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 때 5~6개씩 나오던 만화 잡지, 이제는 폐간

불법 만화 스캔이 늘어남에 따라 오프라인 만화시장은 침체기일 수밖에 없다. 온라인에서 쉽게 만화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발길은 '오프라인'까지 닿지 않았다.

'팡팡', '화이트', '이슈', '챔프', '해피' 등 5개의 만화 잡지를 발간했던 대원은 2000년대 초 '이슈'와 '챔프' 두 잡지만 남기고 나머지 잡지들을 휴간하거나 온라인서비스만 제공하고 있다. 관계자는 "포켓몬스터가 연재된 팡팡은 한 때 3만부씩 찍기도 했는데 결국 휴간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아이큐점프서울문화사가에서 발간하는 <아이큐 점프>는1988년 창간한 대한민국 첫 소년 잡지만화다. ⓒ 드림컴어스


서울문화사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아이큐 점프', '영점프', '빅점프', 윙크', '슈가' 등 약 5개의 만화잡지를 발간했던 서울문화사는 현재 '점프'만을 오프라인 잡지로 발간하고 '윙크'는 온라인에서만 운영한다.

출판사 관계자는 "10년째 잘 나가는 작품이 똑같다"며 "새로운 작가와 새로운 만화가 등장해야 하는데, 충성도 높은 소수의 독자들을 빼고는 만화를 사 보지 않는다. 오프라인 만화 시장이 얼어있는 상황에서 다양한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만화 작가들 역시 답답한지 재미없어서 안 보는 건 괜찮은데, 다운받아서 볼 건 다 본다며 한숨을 내쉰다"며 오프라인 만화 시장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순수오락만화의 출판시장 규모는 2000년대 초 7000억 원 규모였다. 인터넷 공유사이트나, 만화의 불법복제물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최근에는 50%이상 줄어들어 2800억 원 규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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