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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엉 운 조인성 걱정했던 노희경, "명줄 끊어지겠다"

[인터뷰 ①] "'그 겨울' 오수, 내 생각엔 굉장히 섹시한 남자다"

등록|2013.04.06 09:22 수정|2013.04.06 09:26

▲ SBS드라마스페셜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오수 역의 배우 조인성이 5일 오후 서울 한남동의 한 호텔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수, 아니 배우 조인성이 웃고 있었다. 짙고도 깊었던 오수의 고독이 바람을 타고 걷혔기 때문이었을까. 이 남자에게도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온 모양이었다. 하지만 조인성은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종방연 다음 날, 기분이 유독 이상했던 그는 노희경 작가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이렇게 말하는 게 '배우'처럼 보이는 것 같아서 이상한데", 잠시 말을 고르던 조인성은 "나도 이게 어떤 기분인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이상하더라고요. 갑자기 일이 끝난 것에 대한 허탈감 때문인 건지…. 사실 5~6개월 준비했으니 영화보다 오래한 작업이잖아요. 이 프로젝트에 대한 아쉬움인지 캐릭터와 헤어지는 아쉬움인지는 모르겠는데, 아침 11시 반에 선생님께 전화해서 엄청 울었어요. 아무 말 없이 계속 듣고만 계시더라고요."

"눈물 흘리는 연기, 밑천 드러난 것 같아 무섭기도 했지만…"

- 원래 그렇게 눈물이 많아요? 오전에 그렇게 눈물을….
"눈물이 많은 편은 아니에요. 많이 아쉬웠던 것 같아요. '잘했다, 고맙다' 그런 감정이었던 거죠. (노희경 작가에게) '몇 신만 더 써주시면 안 돼요?' 했더니, '그러게 대충하지 그랬니, 그러다 명줄 끊어지겠다' 하시더라고요. 그동안에도 배우들이 너무 몰입해있는 걸 보시곤 '저렇게까지 하면 안 된다'고 하셨거든요. 저에게도 '다음엔 또 어쩌려고 그러니' 하시던데요. 어머니가 자식을 보는 그런 마음이셨던 것 같아요."

- 드라마에서도 참 많이 울었는데요.
"선생님이 지문에 써 주셨으니까요. (웃음) 다 '운다, 눈물 글썽인다, 손으로 얼굴 가리고 운다', 그런 거였어요. 선생님이 강한 카리스마가 있는 분이기도 하지만 마음이 여리시거든요. (오수에) 동화돼서 그런 지문을 써 주신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한 번은 '우는 것에 대한 압박감이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어떻게 울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여자 배우도 아닌 제가 눈물을 흘릴 때의 표정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밑천이 드러나는 것 같고, 무서웠어요. 눈물을 흘리는 게 너무 이슈가 되면 더 다양하게 보여드리고 애쓰게 되고. 그런데 그런 순간 엇나가거든요. 그랬더니 9부 엔딩을 보시고는 '그만 울어도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대신 '마지막에 딱 한 번만 울어' 하셨어요."

- 그런 고민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우는 것에 대한 부담은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중요한 건 극본의 힘이었죠. 시청자가 몰입하니까 제가 울었을 때도 지루해 보이지 않았던 거고요. 몰입이 안 되는, 흐름을 못 따라가는 드라마였다면 제 연기가 오버스럽고 감정이입도 안 됐을 거예요. 철저히 극의 힘이었어요. 시청자를 따라오게 하는 힘. 그래서 제가 마음 아프게, 다채롭게 우는 것처럼 보였던 거죠."

▲ ⓒ 이정민


▲ 조인성은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인기를 촬영 중간 실감하며 많은 힘을 얻었다고 했다. "저나 혜교나 모두 오랜만에 드라마를 하는데 사랑을 받는다는 게 수치로 나오니까 '이 사랑을 느껴보고 싶다', '이렇게 인기있다는 걸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께 '롯데월드 가서 촬영 한 번 해 보자'고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감독님도 농담처럼 '그럴까요?' 하시고. (웃음)" ⓒ 이정민


"오수는 굉장히 섹시한 남자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오수가 눈물을 흘린 덕에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인기도 수직상승했다. 치열했던 수목극 경쟁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다. 여기에 같은 소속사의 선배 배우 고현정이 그에게 '노희경 짱. 김규태 짱. 송혜교 짱. 너도 짱'이라는 짧고 굵은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은 조인성이 더더욱 자신의 연기에 확신을 갖고 촬영에 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조인성씨가 보기엔 '오수'라는 인물은 어떤 매력이 있던가요.
"저는 오수가 굉장히 섹시한 남자라고 생각했어요. 자길 버릴 줄 아는 사람이거든요. 마지막에 확신이 든 게 오수는 영이(송혜교 분)에게 큰 잘못을 했잖아요? 친오빠도 나 때문에 죽은 거고, 거짓말도 했고. 그러고 나서 영이가 하는 말을 올곧이 다 받겠다는 마음인 게 정말 멋있더라고요. 변명하지 않잖아요.

영이를 위해 박원장(오영의 눈 상태를 속인 인물)을 때리거나 영이를 살리기 위해 많은 일을 했는데, 영이는 알지 못하니까 억울함도 있을 수 있거든요. '내가 이렇게 저렇게 했는데 왜 몰라줘. 그동안 내가 해온 건 무시하는 거야?' 그럴 수도 있었고요. 오수가 사랑의 정의를 내린 게 있잖아요. '생색내지 않는 것, 자랑하지 않는 것'. 그걸 실천하는 멋진 남자인 것 같아요."

- 노희경 작가님께서 조인성씨가 대본연습 때 목이 메게 울던 때가 기억에 남는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떤 장면이었나요?
"희선이(정은지 분)랑 소주를 마시는 신이었어요. 작가님도 그 신을 이틀 반 쓰셨대요. 병이 날 정도셨다고…. '차라리 사기를 치지'라는 대사가 되게 안 나왔대요. 저도 그 신을 읽는 순간 죽겠더라고요. '사랑했다고 그러더라, 영이가'라면서 '쓸쓸해 보이더라'고 하는 부분에서 감정이 확 왔어요. 미치겠더라고요. 결국 노희경 선생님이 연습을 중단시키셨어요. 그리고는 '이 신은 넘어갑시다'라면서 '어느 타이밍인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으니까, 더 읽지도 말고 연습도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 보기 드문 모습인데요. 대개는 배우의 감정을 더 끌어내려고 하는데, 자제를 시켰다니….
"사실 저는 그 신이 촬영 스케줄표 마지막에 들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침 첫 신인 거예요. 아침 댓바람에 실내에서 그걸 찍었어요. 인간이 할 게 아니죠. 눈뜨자마자 나가서 그렇게 울라고 하면…. (웃음) 아무리 제가 배우고, 돈 받고 연기한다지만 너무하잖아요! 첫 신부터 감정을 끌어올려야 하니까. (마지막에 찍었다면) 진짜 소주를 마시면서 하려고 했어요. 그게 좀 더 도움이 될까 했는데, 아침 첫 신이라 못 마셨죠. 그래도 첫 테이크에 오케이를 받았어요."

- 또 찍으면서 힘든 장면은 없었나요?
"영이를 끌고 올라가면서 사진을 막 찍고는 '오늘은 내가 널 버린 날이야' 했던 장면이요. 그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체력이 가장 떨어진 때였거든요. 스케줄표를 보면 '오수', '오수', '수수수수수수' 할 정도로 항상 제 신이 가장 많다 보니까, 거기서 한계가 왔어요. 고맙게도 감독님이 제 부족한 부분을 포장해 주셨죠."

- 그럼 반대로 본인이 찍고도 가장 만족스러웠던 장면은 어떤 것이었나요?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했던 장면은 영이가 불량배에게 핸드폰을 뺏겼는데, 제가 그 중 한 명의 머리를 잡고 벽에 긁을 때였어요. 그건 남자배우들이 한번쯤 해보고 싶은 장면이잖아요. (웃음) 또 1부에서 장변호사님(김규철 분)을 보면서 '많이 늙으셨네요' 하는 장면이나, ' 사람이 살아야 하는데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영이가 '사람이 사람한테 해줄 수 있는 건 용서가 아니라 위로야'라고 말하는 장면이었어요. 현장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날 정도로 좋더라고요. 마지막 회 비디오 신도 보면서 너무 슬펐고요."

▲ ⓒ 이정민


▲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말미 오수와 오영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고, 벚꽃 아래에서 재회했다. 이 장면은 실제로 가장 마지막에 촬영됐다. 조인성은 "아예 (마지막 장면을) 남겨놓고 촬영하고 있었다"며 "영이와 키스하는 엔딩을 끝으로 촬영도 끝났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오수와 오영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둘이서 예쁘게 사랑하겠죠. 이탈리아에도 가지 않았을까요? (웃음)" ⓒ 이정민


"솜사탕 키스, 처음엔 '이게 뭐하는 건가' 싶었다"

- 극중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신도 있었지만, 오수의 손을 보여주는 장면도 많았습니다. 
"신경을 많이 썼죠. 손 연기 때문에 난생 처음으로 네일 케어도 받았어요. (웃음) <봄날>을 찍을 때 감독님이 '손만 따겠다'는 거예요. 그땐 '왜 그러지, 특별한 감정도 없는데' 했거든요. 그랬더니 제가 연기할 때 손을 막 움직인대요. 저도 몰랐던 거였어요. 김규태 감독님도 그걸 보신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이 손 연기가 플러스알파가 됐죠. 영이 얼굴만 그냥 잡고 있으면 이상하잖아요. 감정에 따라서 손도 움직이고 해야지. 따로 계산하거나 구상하진 않는데, 연기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오는 반응 같은 거예요. 연기할 때 포장이 되는 거죠. (감정을) 표정에만 담으려고 하면 힘이 들어갈 때도 있지만, 그렇게 에너지를 분산시켜 주면 밸런스가 맞으니까요. 감독님이 현명하게 잘 해주신 것 같아요."

- '솜사탕 키스' 역시 많은 화제가 됐죠. 실제론 어떠셨나요?
"그걸 이틀을 찍었을 거예요. 한 번 촬영하고 감이 안 좋아서 또 찍었죠. 처음엔 '이게 뭐하는 건가' 싶었어요. 감독님은 일단 해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아이리스>에서 '사탕키스'를 만들었던 분이셨으니까, 그런 예쁜 그림을 만들고 싶으셨나봐요.

그런데 이건 키스를 하는 것도 아니고, 롱 테이크인데 솜사탕만 입에 대고 가만히 서서 이러고(실제로 의자에 앉아있던 조인성은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구부리고 한참 가만히 있었다) 있으니까, 되게 민망해요. 찍고 나서 '이슈가 안 되면 알아서 하세요'라고 했을 정도에요. 우린 오글거렸지만, 예쁘긴 예쁘더라고요. 감독님의 센스였던 거죠. 그 장면을 보면서 '솜사탕 좀 팔리겠구나' 했어요. (웃음)"

- 이번 작품에서 롱코트나 멜빵 같이 극중에서 선보인 패션도 함께 인기를 얻었습니다. 조인성씨의 의견이 들어간 건가요?
"'이미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해요. 의상 같은 것을 통해 캐릭터를 이미지화 시켜 놓으면 '저게 오수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예쁜 옷이라고 다 입으면 이미지가 안 생겨요. '예쁘다'는 생각만 들지. 오수는 긴 코트, 보라색·버건디색 수트, 멜빵 같은 것들을 주로 썼어요. 색을 입힌 거죠. 보통 입지 못하는 화려한 색을. 오수가 날티 나는 것도 있으니까요. 그걸 형상화시켜놓으니까 보는 분들도 이해가 빠르지 않았을까 싶어요."

▲ ⓒ 이정민


=====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조인성 인터뷰 =====

엉엉 운 조인성 걱정했던 노희경, "명줄 끊어지겠다"
② 조인성 "연기를 사랑하지 않는 놈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③  조인성의 '그 겨울' 후유증 "혜교는 은퇴 생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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