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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성 "연기를 사랑하지 않는 놈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인터뷰 ②] '불안한 청춘' 배우 조인성과 '유쾌한 남자' 인간 조인성 사이

등록|2013.04.06 09:23 수정|2013.04.06 09:26

▲ SBS 드라마스페셜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오수를 연기한 배우 조인성이 5일 오후 서울 한남동의 한 호텔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통해서도, 영화 <비열한 거리>나 드라마 <봄날> <발리에서 생긴 일> 등에서도, 배우 조인성은 한결같이 어딘가 무거우면서도 고독한 '남자'였다. 그런데 브라운관 밖에서 만나본 인간 조인성은 조금 달랐다. 발랄했다. 자신의 말을 듣는 이들을 향해 쑤욱 몸을 내밀어 보였고, 가끔은 다리를 떨어 가며 대화에 집중했다. 웃음도 많았고, 툭툭 던지는 말들은 재치가 넘쳤다.

넌지시 그에 대한 인상을 전했더니 단박에 그는 "그게 매력인 거죠? 푼수 같진 않죠?"라 되물었다. 사심 좀 보태 '암요, 물론이죠'라 백만 번 외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와의 대화는 '영원히 불안한 청춘일 것만 같은 배우 조인성'과 '유쾌하고 따뜻한 인간 조인성'의 간극을 탐험하고 있었다. 

조인성의 '힐링', "친구와 열변 토하고 나면 치유가 되죠"

- 드라마에서는 오수가 오영을 통해 위로받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인간적으로도 그런 분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존재들이 분명히 있죠. 그런데 밝혀지면 그 분들이 불편하실 것 같아요. 몇 번 얘기한 분인데, 그 중 한 분이 돌아가신 제 태권도 감독님이에요. 고등학교 때 저의 멘토셨죠. 고등학생이 술을 먹으면 안 되지만, 그 분과는 술을 먹고 들어가도 부모님도 뭐라 하지 않으셨어요. 가장 화가 났던 시기였던 제 청소년기를 다스려 주셨던 분이에요."

▲ "그런 어릴 적의 제 모습이 생각나서 그런지,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영이가 오수를 위로했을 때 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멘토'들은 저를 이해해 주잖아요. 영이도 오수를 이해해주고보듬어 주니까, 거기서 오는 '포근함'같은 게 있었어요." ⓒ 이정민


- 그럼 힘들 때나 마음을 추슬러야 할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저는 혼자 있지 않아요. 근처에 친구들도 있고…. 그럴 때 지인이 좋은 것 같아요. 저를 아는 사람들이니까. 여기(연예계) 생활을 몰라도 사회라는 구조는 비슷하니까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잖아요. 그 범위 내에서 서로 열변을 토하고 나서 시원함을 느끼고 집에 돌아와서 자고. 그렇게 저를 치유해요.

올곧이 혼자 견디는 것도 (치유의) 방법이 되겠지만, 저는 친구를 이용…괜찮아요, 걔들도 절 이용할 거예요. 술값은 제가 내니까. (웃음) 다들 5분, 10분 거리에 있으니까 너무 좋아요. 기방(배우 김기방)이는 제 짝꿍이었어요. '우정장' 같은 걸 잘 써줬죠. 걔가 그 당시에 여자친구가 있어서 아기자기하게 뭘 잘 꾸밀 때였거든요. (웃음) 옛날엔 기방이가 잘생겼어요. 별명이 '에어로빅 바지'였어요. 말라서 바지도 딱 달라붙고, 재킷도 작은 걸 입었거든요."

- 친구도 좋지만, 가정을 갖는 것도 방법일 텐데요.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는 건가요?
"결혼을 해야 할 나이가 오고 있다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물리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 '나의 결혼상대가 누구일까'하고. 그런데 남자는 끝까지 어린애에요. 어머니도 아버지를 두고 '아들 셋을 키운다'고 하시거든요. 남자가 그런 존재인가봐요. (웃음)

상대는 저보다 큰 여자여야 하지 않나 싶어요. 덩치가 아니라 마음이…아니, 덩치까지 컸으면 좋겠어요. (웃음) 저를 '네가 뛰어봤자 벼룩이지', '네가 뛰어봤자 내 손바닥 안이지' 하는 마음으로 바라봐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제가 좀 더 의지할 수 있고, 저를 귀여워해 줘서 제가 막 돌아다니다가도 돌아와서 기댈 수 있는 그런 여자를 만나면 바로 할 것 같아요. (웃음) 태현이 형(차태현)은 '결혼 빨리 해라, 참 좋다'고 그래요. 저도 마흔이 되기 전엔 무조건 해야겠죠."

▲ ⓒ 이정민


▲ 막간을 이용해 물으니, 조인성 역시 '피겨 여왕'의 팬이었다. "여왕을 평가할 순 없지만 대단한 것 같아요. 그 나이에. (웃음) 강인함도 있고, 또 생각이 유연해서 좋아요. 지나치게 차분하지도 않고, 큰 업적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척하지 않는 점도요." ⓒ 이정민


조인성을 깨우친 혜민 스님의 '한 마디'…"울컥하더라"

- 이렇게 재밌는 분인데, 작품은 남성미가 강한 것들을 많이 택하시는 것 같습니다. 대중도 이런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진 않을까요?
"일부러 '남자다워 보여야지' 하면서 작품을 선택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남자배우가 마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적어도 저는 벗어나 보이고 싶어요. '마초적인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해서 <쌍화점>도 해 봤고…. 그런데 그런 작품들은 한정되어 있어요. 아니면 아예 로맨틱 코미디거나, 코미디죠. 차승원·임창정 선배님이나 태현이 형처럼 너무 잘 하시는 분들이 계시긴 한데, 제가 그렇게 하는 건 위험할 것 같아요. 해 보지 않아서 (연기가) 과잉될 수 있거든요. '웃겨야지' 하고 들어갈 테니까요.

그래서 반대로 생각해 봤어요. '저의 유쾌함을 캐릭터 안에 주입해보자'는 거죠. <비열한 거리>나 <봄날>, <발리에서 생긴 일>, 그리고 이번 작품에도 약간은 저의 유쾌함이 들어 있어요. 그러면서 캐릭터도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죠. 덜 무거워 보이게 희석할 수도 있고요. 안 그랬다면 오수가 더 무거워 보였을 거예요.

이 정도 수준이어야지, 제가 작정하고 그 선배님들처럼 웃기겠다고 하면 개인기만 쓰다가 나올 것 같아요. 자신이 없어요. 대놓고 하는 게. 최강희 선배님도 그런 연기를 잘 하시는데, 그것도 경험이 있어야 되는 거거든요. 저는 그보다는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 때 그런 재미있는 요소를 넣어서 캐릭터에 해가 안 갈 정도로, '이게 조인성의 색깔이지'하고 느끼실 정도로만 하고 싶어요. 로맨틱 코미디는 자신이 없어요. (웃음)"

- 제대 후 출연했던 한 토크쇼에서 "연기를 사랑하진 않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나요?
"'연기를 사랑하지 않는 놈'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어요. 모든 배우가 몸 바쳐 연기하지만, 저 역시 진이 빠지게 연기하거든요. 제가 다작을 못하는 이유가 '너무 힘드니까'에요. 당장 올해에 작품을 하나 더 하라고 하면 못 해요. 저도 살아야죠. 그래서 '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착각했나 봐요.

그런데 이번에 현장에서 갑자기 울컥하더라고요. 혜민 스님이 <땡큐>에서 '미래에 대한 생각 때문에 사람이 불행해지는 거다. 현재에 충실하면 불행하지 않다'고 말씀하신 게 떠올랐거든요. 저의 현재를 보면 행복한 거예요. 현장에서 웃고 있고, 즐기고 있으니까요. '내가 착각하고 있었구나' 싶었어요. 스태프들 중 저는 연기하는 포지션인 거잖아요. 그럼 '이 현장을 즐기고 있고, 이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으면 나는 연기를 좋아하는 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 왜 '나는 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을까요? 압박감 때문에?
"흥행이나 평가에 대한 압박감이 심했죠. 작품을 오랜만에 하면 할수록 너무 신경을 쓰게 돼요. 그래서 (연기를) 즐기지 못했는데 그걸 벗어나고 나니까 다르더라고요. 현장에서 어떤 기분으로 연기하는지 생각해 보면, 행복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결과도 만족스러웠으니 뭐가 문제겠어요. 그래서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같은 작품이 있기 더 어려운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 ⓒ 이정민


▲ 과거 배우 차인표는 한 토크쇼에 출연해 '초등학생이던 조인성이 내 집 앞에 찾아온 적이 있다'고 말해 화제를 불러모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조인성은 "'별은 내 가슴에' 때 차인표 선배님이 저희 할머니 앞집에 사셨다"며 "그래서 나가시는 걸 붙잡고 사인을 해 달라고 했다"는 뒷이야기를 전했다. 하지만 그 땐 배우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 이정민


"해외 진출 욕심? 나는 '로컬 배우'다"

어쩌면 그에게 평생 잊지 못할 작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로 날개를 달았으니, 이제 조인성에게는 하늘을 날 일만 남았다. 자신이 현장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 배우는 이제 다양한 작품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췄다. 독특한 것을 원한다는 그에게 인터뷰 말미 '뱀파이어는 어떠냐'고 말하자, '하고 싶은데, 그런 게 없다'며 바로 눈빛을 반짝인다.

또 다른 욕심도 있다. 최근 많은 배우들이 직접 메가폰을 잡는 것처럼, 그 역시 작품을 기획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다고. 조인성은 "각자 욕심이 다른 것 같다"며 "연출은 못할 것 같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작품을 기획해 보고 싶다. 그 속에서 내가 연기를 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연기를 사랑한다는 걸 깨달으셨으니, 다음 작품에 대한 생각도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지금 생각으로는 드라마는 바로 못할 것 같아요.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했는데 또 올 겨울에 드라마로 나오긴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서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영화를 보고 있어요."

- 드라마를 못하신다는 건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오수를 잊기 위해서인가요?
"저도 이걸 잊는데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시청자도 그런 게 사실이에요. 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거든요. 나 혼자 '잊었다'고 나타났는데 혜교가 생각나거나, <발리에서 생긴 일>이 생각나는 건 제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그래서 잊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여운을 만끽하는 시간이 조금 있었으면 좋겠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빨리 잊어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충분히 사랑받았으니까요. 아, 멜로는 조금 쉬고 싶어요. 멜로를 또 이렇게 많이 하는 남자배우는 없었을 것 같아요. 지금 어떻게 해요. 못 해요."

- 요즘 많은 배우들이 해외로 진출하고 있는데, 혹시 생각은 없으신가요.
"기회가 오면 모르겠지만 저는 '로컬 배우'예요. (웃음) 그렇잖아요. 혜교같이 재능이 많아서 해외에서 영역을 넓힐 수 있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저는 한국에서 작품을 잘 만들어서 만족도 시켜 드리고, 사랑을 받길 원하는 경우에요. 언어적 능력이 뛰어나서 해외 가서 잘 하는 배우들도 있죠. 혜교도 영어, 중국어 다 잘한다더라고요. 저는 그런 배우가 아니라 언어적인 게 떨어져요. 한국말도 제대로 안 되잖아요. 발음도 안 좋고. (웃음)"

=====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조인성 인터뷰 =====

① 엉엉 운 조인성 걱정했던 노희경, "명줄 끊어지겠다"
② 조인성 "연기를 사랑하지 않는 놈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③  조인성의 '그 겨울' 후유증 "혜교는 은퇴 생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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