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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가자미가 인생의 교훈을 떠올리는구나

[먹고 생각하고 그냥 써라] 뱃사람들 속 달래던 음식, 물회

등록|2013.04.10 20:04 수정|2013.04.10 20:04
우리가 알고 있는 음식 중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즉석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이 고급 음식이 된 경우가 있습니다. 일례로 홍어삼합의 경우 홍어를 잡으러 간 어부들이 큰 파도를 만나 출항을 할 수가 없었을 때 가지고 온 묵은 김치와 막걸리 한 잔 하려고 뭍에서 가져 온 돼지고기를 같이 먹다가 생겨난 음식이라고 하네요. 홍어가 워낙 별미로 알려지다보니, 어부들이 먹던 음식이 어느새 고급 음식이 됐습니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물회도 마찬가집니다. 물회는 원래 동해안 어부들이 간단하게 만들어먹던 음식이었습니다. 잡아 온 오징어나 각종 잡어들을 가늘게 채썰고 고추장을 비롯한 각종 양념을 넣은 물을 부어 만든 게 바로 물회지요.

배 안에서 어부들이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할 때, 혹은 전날 술을 많이 마시고 속이 쓰리고 입맛이 없을 때 있는 재료를 한데 모아놓고 만들어 먹었다는 게 물회의 탄생입니다. 양념이 맛이 안 나면 김치국물까지 넣어 먹었다고 하니까요.

최근의 물회를 보면 오징어나 한치를 썰은 것이 많습니다. 전복이나 해삼이 들어가는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재료가 그렇다보니 가격이 뛰게 되지요. 뱃사람들의 음식을 바다 근처에도 가기가 힘든 뭍사람들이 먹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던 중 얼마 전, 물회를 먹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석계역 부근 골목 길에 있는 아담한 물회집입니다. 일전에 역전 포장마차에서 물회를 팔기에 한번 먹어볼까하고 찾아갔는데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그 때 태풍이 불어와서 물고기가 잡히지 않았다고 해서 물회를 포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몇 개월이 흘렀는데 이번에 마음먹고 물회 한 접시 먹으러 찾아갔습니다. 물회 값이 비교적 저렴한(10,000원) 것도 이 집을 찾은 이유이기도 하지요.

잘게 썬 가자미로만 만든 소박하지만, 맛나는 물회

▲ 뱃사람들이 있는 재료를 넣고 속풀이로, 한 끼 식사로 먹었던 물회 ⓒ 임동현


소담스럽게 차린 밑반찬이 나오고 본 음식인 물회가 나왔습니다. 얼핏 평범해 보입니다. 잘 섞어서 한입 넣는데 뭔가 다른 느낌이 납니다. 뼈가 살짝 씹히는 생선, 거기에 오이와 배, 고추장 양념이 곁들여지면서 입맛을 돋우네요.

이 물회에 들어간 생선은 바로 가자미입니다. 다른 생선은 들어가지 않고 오직 가자미로만 만듭니다. 오징어나 한치를 쓰면 물컹해져서 씹는 맛이 덜하다는 게 횟집 사장님의 이야기입니다. 가자미 물회를 먹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쉽게 맛을 볼 줄은 몰랐네요.

물회는 일단 건더기를 건져먹는 게 우선입니다. 젓가락으로 가자미와 야채를 집어 먹습니다. 잘게 썰어 먹기도 쉽고 억세지 않은 뼈가 씹는 맛을 더합니다. 여기에 소주를 한 잔 곁들이니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배를 타고 나간 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한 잔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어민의 느낌이 아마 이랬을 것입니다.

"이거 영덕에서 친지들이 가져온 거예요"

횟집 사장님이 가자미의 고향을 이야기합니다. 그 가자미의 고향은 바로 사장님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대게탕의 대게도 바로 '오리지널 영덕'이라고 합니다. 비로소 가게 안에 있는 영덕의 바다가 담긴 현수막이 괜히 걸려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이 물회의 재료는 영덕에서 잡아온 가자미입니다 ⓒ 임동현


문득 예전에 알던 지인 한 분이 떠올랐습니다. 모임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시고 사람도 좋으셨던, 인생을 재미있게 사는 법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고 너무나 자신만만하게 '내 인생에 후회가 없었다'라고 말씀하셨던 그분의 고향이 바로 영덕이었습니다.

"지금을 열심히 살면 돼. 그럼 후회없이 살 수 있어"

언젠가 술 한 잔을 마시고 그분께 감히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가 그분 나이가 될 때 과연 내 인생에 후회가 없다는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그건 불가능할 것 같다고 말이죠. 그때 그 분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지금을 열심히 살면 돼. 아직 젊으니까 지금 열심히 하면 후회없이 살 수 있어."

젊은 시절 배를 곯아가며 갖은 고생을 하셨던 분이지만 그 고생을 그분은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그래서 그 고생을 다 이기시고 지금 이렇게 여유있게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거죠. 이렇게 물회의 재료인 영덕의 가자미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분을 떠올리게 하고 동시에 그분이 전했던 '인생의 교훈'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빗나갔네요. 다시 물회 이야기로 돌아와야죠. 건더기를 어느 정도 건져먹으면 이제 국수를 넣을 차례입니다. 같이 나온 국수사리를 넣고 섞습니다. 감칠맛이 좋습니다.

국수를 넣고, 밥을 말고... 다양한 맛의 음식

▲ 건더기를 어느 정도 먹으면 국수를 곁들입니다 ⓒ 임동현


사실 국수를 언제 넣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건더기를 다 먹고 넣어도 되고 어느 정도 건더기가 남을 때 넣어도 됩니다. 아니면 그냥 먹기 전에 같이 비벼도 상관없죠. 하지만 제 생각에는 건더기를 어느 정도 먹은 뒤에 비비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부터 비비면 양이 많아져서 물회 맛을 제대로 즐기기 어렵고 다 먹은 뒤에 넣으면 왠지 맹숭맹숭한 느낌이 드니까요.

물회는 국수도 좋고 밥을 말아먹어도 맛있습니다. 기왕이면 물회를 먹을 땐 뜨거운 밥이 좋습니다. 그래야 찰진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배를 채우다보면 어느새 물회 그릇이 빕니다. 국수를 다 먹고도 모자라 밥 한공기를 시켜서 말아먹다보니 한 그릇을 뚝딱했네요.

그래서 물회는 세 가지 맛이 있다고 합니다. 아침은 국물을 마시며 전날 밤 음주로 인한 속쓰림을 풀고 낮에는 국수를 말아 한 끼를 간단히 때우고 저녁에는 술안주로 먹고 속이 허하면 밥을 말아 배를 채우는, 그런 맛이 물회에 있다는 것이죠.

뱃사람들이 가볍게 먹은 음식이지만 요즘 물가에 가볍게 먹기가 어려워진 물회를 이처럼 마음 편하게 먹은 적이 언제였던가 싶습니다. 바다의 맛을 느끼다 문득 지인을 생각해보고 그 지인이 전해준 소중한 말을 되새기며 가게 문을 나옵니다. '지금을 열심히 살아라'. 물회 한 그릇으로 쓰린 속과 고픈 배를 채우면서도 항상 여유를 잊지 않던 뱃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라 저절로 미소를 지어 봤습니다. 그렇게 저는 또 하나의 인생을 배웁니다.

▲ 물회와 따끈한 밥의 만남 ⓒ 임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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