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우식 신작 시집 <살아가는 슬픔, 벽>. ⓒ 고요아침
강우식과 같은 해에 태어난 많은 작가들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 시인 조태일과 소설가 이문구 등. 한 살 아래의 김현(문학평론가)과 이성부(시인) 등도 지상의 사람이 아니다. 20대 중후반의 젊은 시인들이 문제적 작품을 들고 나오며 한국 시단의 새로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오늘. 나이를 잊고 <삼국지>의 노장 황충을 닮은 '시적 결기'를 보여주는 강우식의 시가 반갑다.
서시격으로 읽히는 '시인의 말'을 읽는다. 50년간 시를 써온 사람의 바람답다.
무릎 장단 저절로 쳐지는
좋은 시 한두 수쯤 있었으면 한다.
이번 강우식의 시집은 모두 2행짜리 단촐한 시로 이뤄졌다. "좋은 시는 짧다"는 고래로부터의 전언이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님을 실증하는 것들이다. 19세기 중반 활동했던 프랑스 시인 로트레아몽(본명 이지도르 뒤카스). <말도로르의 노래>라는 제목을 단 산문시집으로 유명한 그지만 기실 로트레아몽 최고의 절창은 2줄짜리 시 '나무'다.
나무는
자신의 위대함을 모른다.
강우식에게로 돌아가자. 일흔의 순한 눈으로 보면 세상의 질서와 이치, 사람의 도리와 본질이 명료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가을비 3'을 보라. 가난과 불평등에 땅을 치던 젊은이도 세월이 흘러 '세상보는 눈'을 가지게 된다면 결국은 이런 결론에 가닿지 않을까.
빈한하게 살아 한 생이었다고 푸념치마라
누군들 저 비울음에 젖어 목줄 떨며 안 지나가겠는가.
그림에도 조예가 깊다는 시인은 자신보다 앞서 살다간 선배 예술가에게는 이런 헌사를 바친다. 네덜란드의 화가 반 고흐에게 보내는 노래. 이 2줄의 문장 속에 '불행하게 살다간'(지금에야 그림 한 점이 수백 억 원을 호가하지만, 고흐는 권총으로 자살하기 전 제 그림을 단 한 번도 돈 받고 팔아보지 못했다) 천재의 삶이 온전히 녹아들었다.
미칠 듯 타는 황맥(黃麥) 위, 떼 귀신의 비명 까마귀
귀를 자르고 탈지면 같은 구름으로 봉해 버렸다.
시인이 두 줄로 세상 보는 이유
2줄짜리 연애시도 재밌다. 제목부터가 흥미롭다. '삼월이'란다. 하기야, 강우식이 유년을 보냈던 시절에는 이런 이름이 가진 여자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중 하나와의 만남을 60년 가까이 잊지 못하는 것일까. 애틋하면서도 웃음을 부른다.
가시내를 사랑했나봐 지금도 못 잊는 걸 보니
어릴 때 3월이 오면 기를 쓰고 놀렸던 이름 삼월이.
변해버린 삶의 사이클 탓에 결혼을 미루고, 출산까지 미루거나 기피하는 요즘 세태가 강우식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장가'라는 시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무슨 결혼을 해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결혼적령기 한국 사내들을 위로한다. 그 기개가 당당하다. 앞서 말한 바 황충의 목소리다.
뭐 그리 갖출 게 많으냐 미루다 끝장난다
사내가 불알 두 쪽 차고 어느 난바다엔들 못 서겠느냐.
책의 끝부분. 강우식은 2행의 짧은 시 작업을 하는 이유를 스스로 설명한다.
"촌철살인은 못되더라도 시의 군더더기 없는 맛을 나타내려고 쓴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강우식은 문단에 나온 후 20년을 4행시 작업에 매달렸다. 그리고, 이제 2행시. 일흔셋 강우식은 더 가벼워지고 간명해졌다. 맞다. 시인에겐 세상의 진실, 인간의 본질이 길게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짧게 요약되는 것.
<살아가는 슬픔, 벽>에는 앞서 언급한 시 외에도 아주 많은 2행시가 실렸다. 편 수를 헤아리기가 힘들다. 그중 최고의 절창을 찾아보는 재미는 독자들에게 주는 노시인의 선물이다. 나는 아래 시가 최고라 생각한다.
일생 땅 한 뙈기 가진 것 없어도
내 죽어 누군가의 흙이 되다니 고맙다.
- 위의 책 중 '흙'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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