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를 보고서 관객은 웃을 수 없다
[리뷰] 영화 <웃는남자>, <레미제라블>에 못미쳐
영화계가 소설과 친해진 듯한 요즘이다. 최근 개봉하는 영화들을 보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매우 많은데, 이를 보면 마치 글과 영화가 서로 공생하는 모양새같은 느낌이 든다. 영화계는 소재고갈을 글로 된 작품을 스크린으로 옮김으로써 극복하고, 문학계는 영화화된 작품을 통해 홍보수단을 새로이 얻는다. 서로 상부상조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최근에는 고전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이 새삼 각광받는 분위기인데, 지난 2012년 연말 크게 흥행한 <레미제라블>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고전은 이미 지난 세월동안 작품성을 인정받은 상태이니 영화화하는데 있어 흥행을 어느 정도 보장받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안나 카레리나>, <위대한 개츠비>의 연이은 개봉에 앞서 지난 3월 28일 개봉한 <웃는남자> 역시 그런 추세의 영화들 중 하나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레미제라블>을 썼던 빅토르 위고의 작품이기도 하다.
빅토르 위고의 또 다른 소설을 영화화, 이번에도 성공?
<웃는남자>는 빅토르 위고가 "나는 이보다 더 뛰어난 소설을 써본 적이 없다"고 밝혔을 정도로 애착을 가진 작품이었다. 그렇기에 <레미제라블>을 보고 나서 감동을 느꼈던 많은 관객들이 <웃는남자>의 개봉소식을 듣고 기대감이 높아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얼굴에 흉터를 가진 남자의 이야기. 흡사 <다크나이트>의 조커를 떠오르게 만드는 생김새를 지닌 그의 이야기는 물론이거니와, 깔끔하면서 인상깊은 영화의 포스터부터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프랑스의 가난한 서민들이 겪는 애환을 절실히 드러내면서도, 그 안에서 사랑이야기와 삶의 굴곡까지 담아냈던 <레미제라블>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은 <웃는남자>를 보고서 웃기가 쉽지 않을 듯 하다. 담고있는 메시지는 비슷하지만, 영화는 그보다 흉터를 가진 남자의 삶과 사랑에 너무 비중을 둔 나머지 무게감이 떨어진다.
<웃는남자>는 당시 시대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풍자와 감동까지 놓치지 않았던 <레미제라블>과 동떨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연기와 영상미는 나쁘지 않았지만, 안타깝게도 굵직한 줄거리의 원작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느낌이다.
'고전의 영화화'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부유한 자들의 횡포와 가난한 자들의 분노가 파도처럼 몰아치던 시대. 갖가지 욕망과 감정들의 충돌을 빅토르 위고는 글로써 훌륭하게 표현해냈다. 반면 이를 영상으로 옮긴 영화 <웃는남자>는 다소 아쉬움을 드러낸다.
<레미제라블>은 비록 극 중 서민들의 혁명이 성공하지 못하여 관객들의 대리만족을 모두 충족시키지는 못했지만, "용서와 사랑으로 우리는 구원된다"는 단순하면서도 삶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감동을 이끌어냈다.
그에 비해서 <웃는남자>는 대리만족과 감동,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놓쳐버린 영화에 가깝다. 영화를 보고난 관객의 머릿속에는 그웬플렌의 흉터만이 공허하게 떠오를 뿐이다. 그가 외친 "부자의 낙원은 빈민의 지옥으로 채워지네!"라는 말이 돌아오는 메아리조차 없이 상영관 안에 울려퍼지는 것처럼.
<레미제라블>이 개봉하여 흥행돌풍을 이끌어가던 당시, 누리꾼 중 누군가는 "혁명은 프랑스가 하고, 콘텐츠수익은 미국이 가져가네"라는 재미난 댓글 한줄로 할리우드서 영화화된 프랑스 고전의 현실을 압축해냈다.
이번에는 프랑스에서 직접 영화로 만들어진 <웃는남자>를 통해 다시 한번 자국 고전의 위상을 우뚝 세우고 싶었을런지 모르겠지만, 영화계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검증된 작품이라는 소재는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되레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출력이 필요하다. <웃는남자>는 이를 입증한 씁쓸한 영화 중 하나로 남을 것 같다.
그 중에서도 특히 최근에는 고전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이 새삼 각광받는 분위기인데, 지난 2012년 연말 크게 흥행한 <레미제라블>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고전은 이미 지난 세월동안 작품성을 인정받은 상태이니 영화화하는데 있어 흥행을 어느 정도 보장받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안나 카레리나>, <위대한 개츠비>의 연이은 개봉에 앞서 지난 3월 28일 개봉한 <웃는남자> 역시 그런 추세의 영화들 중 하나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레미제라블>을 썼던 빅토르 위고의 작품이기도 하다.
빅토르 위고의 또 다른 소설을 영화화, 이번에도 성공?
▲ 영화 <웃는남자>의 한 장면. 주인공 그웬플렌은 어릴적 생긴 얼굴의 흉터를 안고 살아간다. ⓒ 씨너스엔터테인먼트(주)
<웃는남자>는 빅토르 위고가 "나는 이보다 더 뛰어난 소설을 써본 적이 없다"고 밝혔을 정도로 애착을 가진 작품이었다. 그렇기에 <레미제라블>을 보고 나서 감동을 느꼈던 많은 관객들이 <웃는남자>의 개봉소식을 듣고 기대감이 높아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얼굴에 흉터를 가진 남자의 이야기. 흡사 <다크나이트>의 조커를 떠오르게 만드는 생김새를 지닌 그의 이야기는 물론이거니와, 깔끔하면서 인상깊은 영화의 포스터부터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프랑스의 가난한 서민들이 겪는 애환을 절실히 드러내면서도, 그 안에서 사랑이야기와 삶의 굴곡까지 담아냈던 <레미제라블>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은 <웃는남자>를 보고서 웃기가 쉽지 않을 듯 하다. 담고있는 메시지는 비슷하지만, 영화는 그보다 흉터를 가진 남자의 삶과 사랑에 너무 비중을 둔 나머지 무게감이 떨어진다.
<웃는남자>는 당시 시대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풍자와 감동까지 놓치지 않았던 <레미제라블>과 동떨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연기와 영상미는 나쁘지 않았지만, 안타깝게도 굵직한 줄거리의 원작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느낌이다.
'고전의 영화화'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 영화 <웃는남자>의 포스터. ⓒ 씨너스엔터테인먼트(주)
<레미제라블>은 비록 극 중 서민들의 혁명이 성공하지 못하여 관객들의 대리만족을 모두 충족시키지는 못했지만, "용서와 사랑으로 우리는 구원된다"는 단순하면서도 삶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감동을 이끌어냈다.
그에 비해서 <웃는남자>는 대리만족과 감동,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놓쳐버린 영화에 가깝다. 영화를 보고난 관객의 머릿속에는 그웬플렌의 흉터만이 공허하게 떠오를 뿐이다. 그가 외친 "부자의 낙원은 빈민의 지옥으로 채워지네!"라는 말이 돌아오는 메아리조차 없이 상영관 안에 울려퍼지는 것처럼.
<레미제라블>이 개봉하여 흥행돌풍을 이끌어가던 당시, 누리꾼 중 누군가는 "혁명은 프랑스가 하고, 콘텐츠수익은 미국이 가져가네"라는 재미난 댓글 한줄로 할리우드서 영화화된 프랑스 고전의 현실을 압축해냈다.
이번에는 프랑스에서 직접 영화로 만들어진 <웃는남자>를 통해 다시 한번 자국 고전의 위상을 우뚝 세우고 싶었을런지 모르겠지만, 영화계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검증된 작품이라는 소재는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되레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출력이 필요하다. <웃는남자>는 이를 입증한 씁쓸한 영화 중 하나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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