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없는 초짜 순례자, 피레네의 문턱에 서다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①] 생장피드포르를 밟기까지
미완성의 순례길에서 돌아와 나는 몇 일간 앓아 누웠다. 순례를 다 마치지도 못했으면서. 며칠 전까지 함께 걸었던, 지금도 길을 걷고 계시는 분들에게 송구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리투아니아에서 같은 기숙사에 사는 '이슬'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국인 언니와 함께, 봄 학기의 긴 휴일인 이스터 홀리데이를 이용해 3월 말부터 14일간 이곳을 떠나 있었다. 그 중 10일 동안 내가 걸은 길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져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산티아고는 예수의 12사도 중 하나였던 성 야고보의 이름을 가진 도시이다. 복음을 전하다 죽은 야고보의 유해가 묻혀 있는 산티아고로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순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이래 지금까지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람들이 이 길을 걷는 이유는 종교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아, 굳이 크리스챤이 아니어도 수많은 사람들이 한 달이 넘는 800km의 긴 여정을 소화하기 위해 자기 몸보다도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이 길을 찾는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수많은 출발지점과 그로부터 이어진 길들이 있지만, 내가 택한 길은 카미노 프랑세즈, 프랑스길이었다.
길이 들려 주는 삶의 아름다운 이야기
나는 이 길에 왜 왔을까? 다른 여행을 갈 수도 있었을 일주일 간의 이스터 홀리데이에, 수업까지 며칠을 더 빼먹으면서, 나는 무엇에 이끌려 이 길에 섰을까? 그래, 생각해 보면, 나는 단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었다. 충분히. 내 삶이 어디로 향해 가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기에. 잠깐 나를 둘러싼 다른 모든 것들을 멈추고 걸어 보고 싶었다. 답이 나오든 아니든 간에, 그곳에 가면 내가 간절히 원하던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였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결론부터 당겨 얘기하면, 길은 나에게 기대 이상의 것들을 보여 주었다. 삶의 아름다운 것들이 여기 있다고, 길은 하루하루 나에게 손짓했다. 네가 찾는 아름다운 삶은 어떤 것일까? 하고 길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때로는 힘겹게, 때로는 걷기에 중독된 사람처럼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노란색 페인트로 아마도 수십만에 달할 화살표들을 하나하나 그린 사람들의 노고만큼이나, 나를 위해 준비된 것들은 풍성했다. 그것은, 이 길을 걷는 각 사람마다에게 준비된 풍성함일 것이다. 길은 각 사람마다에게 각기 다른 것을 보여 줄 것이기에.
10일의 시간... 산티아고 입성이냐, 걷기 그 자체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는, 앞서 간 사람들이 분배해 놓은 여정은 예수의 나이를 의미하는 33일이다. 그보다 더 짧게 완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은 40일 정도를 걷는다고 한다. 나에게 주어진 10일 동안 나는 256.4km 정도를 걸을 수 있었다. 전체의 3분의 1 정도를 걸은 셈이다.
떠나기 전에는, 중간 지점을 버스로 건너뛰고 어떻게든 산티아고에 입성하려고 했다. 그렇게 이번에는 맛보기로 이 길을 걷고, 나중에 다시 와서 전체를 완주하자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와 보니, 하루에 20km 내지는 30km를 걷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맛보기란 있을 수 없었다. 처음 이틀간의 난코스를 걸으면서 앞서 언급한 '내가 왜 이 길에 왔을까'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산티아고에 도달하기 위해 왔을까, 이 길 자체를 걷기 위해 왔을까. 그리고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미완성의 순례길은 오히려 나에게 삶이 언제나 미완성의 길 위에 서 있는 것과 같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나는 길 위에서 배운다. 길은 삶을 닮아 있다. 삶은 언제나 미완성이다.
교통편 예약도 하지 않고, 장비도 안 갖춘 초짜 순례자
프랑스길을 걷기 위해 참 많은 교통편을 이용하며 돈을 많이도 썼다. 내가 사는 도시인 카우나스에서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까지 버스로 이동, 빌뉴스에서 파리까지 비행기로 이동, 도착 시간이 늦어 파리에서 하루를 자고 파리에서 떼제베로 바욘이라는 도시까지 이동, 바욘에서 다시 떼제베로 드디어 프랑스길의 출발지인 생장피드포르에 도달했다.
근검절약을 하며 여행을 다녀야 하는 처지인 우리에게 총 100유로에 달하는 떼제베 가격은 너무 비쌌다. 이건 미리미리 예약을 하지 않은 우리의 탓이기도 했지만. 게다가 우리는 파리의 미친 물가에 기겁을 하고 간이 콩알만해져 있었다. 이렇게, 사색적인 여정이 되어야 할 것 같은 순례길은 돈 걱정으로 시작되었다. 돈은 항상 문제다.
그리고 도착해 보니, 오직 우리만이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다른 순례자들은 모두 등산화에 등산스틱에, 완전한 장비들을 갖추고 있었다. 남들의 3분의 1의 기간을 걷는다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탓도 있고, 한국에서부터 이런 걷기 여행을 할 생각을 하고 온 것이 아니라서 장비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던 탓도 있다. 이러한 준비 부족이 나와 동행인 언니에게 얼만큼의 역경을 가져다 주는지를 우리는 이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생장피드포르의 순례자사무소는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순례자사무소의 안내자들은 대부분 노인 분들이다. 영어를 조금밖에 못 하시지만 따듯하고 친절하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순례자여권을 받고 생장피드포르의 첫 번째 도장을 받았다. 약간의 기부금을 내고 순례자의 상징인 가리비를 하나 집어 가방에 매다니 이제 비로소 순례길을 걸을 준비가 끝났다. 내가 걷는 길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며 알베르게에서의 첫 밤이 지나간다.
나는, 리투아니아에서 같은 기숙사에 사는 '이슬'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국인 언니와 함께, 봄 학기의 긴 휴일인 이스터 홀리데이를 이용해 3월 말부터 14일간 이곳을 떠나 있었다. 그 중 10일 동안 내가 걸은 길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져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산티아고는 예수의 12사도 중 하나였던 성 야고보의 이름을 가진 도시이다. 복음을 전하다 죽은 야고보의 유해가 묻혀 있는 산티아고로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순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이래 지금까지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람들이 이 길을 걷는 이유는 종교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아, 굳이 크리스챤이 아니어도 수많은 사람들이 한 달이 넘는 800km의 긴 여정을 소화하기 위해 자기 몸보다도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이 길을 찾는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수많은 출발지점과 그로부터 이어진 길들이 있지만, 내가 택한 길은 카미노 프랑세즈, 프랑스길이었다.
길이 들려 주는 삶의 아름다운 이야기
▲ 프랑스길의 출발지점, 생장피드포르 ⓒ 류소연
나는 이 길에 왜 왔을까? 다른 여행을 갈 수도 있었을 일주일 간의 이스터 홀리데이에, 수업까지 며칠을 더 빼먹으면서, 나는 무엇에 이끌려 이 길에 섰을까? 그래, 생각해 보면, 나는 단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었다. 충분히. 내 삶이 어디로 향해 가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기에. 잠깐 나를 둘러싼 다른 모든 것들을 멈추고 걸어 보고 싶었다. 답이 나오든 아니든 간에, 그곳에 가면 내가 간절히 원하던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였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결론부터 당겨 얘기하면, 길은 나에게 기대 이상의 것들을 보여 주었다. 삶의 아름다운 것들이 여기 있다고, 길은 하루하루 나에게 손짓했다. 네가 찾는 아름다운 삶은 어떤 것일까? 하고 길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때로는 힘겹게, 때로는 걷기에 중독된 사람처럼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노란색 페인트로 아마도 수십만에 달할 화살표들을 하나하나 그린 사람들의 노고만큼이나, 나를 위해 준비된 것들은 풍성했다. 그것은, 이 길을 걷는 각 사람마다에게 준비된 풍성함일 것이다. 길은 각 사람마다에게 각기 다른 것을 보여 줄 것이기에.
▲ 안개 낀 마을 생장피드포르는 고요한 모습이다. ⓒ 류소연
10일의 시간... 산티아고 입성이냐, 걷기 그 자체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는, 앞서 간 사람들이 분배해 놓은 여정은 예수의 나이를 의미하는 33일이다. 그보다 더 짧게 완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은 40일 정도를 걷는다고 한다. 나에게 주어진 10일 동안 나는 256.4km 정도를 걸을 수 있었다. 전체의 3분의 1 정도를 걸은 셈이다.
떠나기 전에는, 중간 지점을 버스로 건너뛰고 어떻게든 산티아고에 입성하려고 했다. 그렇게 이번에는 맛보기로 이 길을 걷고, 나중에 다시 와서 전체를 완주하자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와 보니, 하루에 20km 내지는 30km를 걷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맛보기란 있을 수 없었다. 처음 이틀간의 난코스를 걸으면서 앞서 언급한 '내가 왜 이 길에 왔을까'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산티아고에 도달하기 위해 왔을까, 이 길 자체를 걷기 위해 왔을까. 그리고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미완성의 순례길은 오히려 나에게 삶이 언제나 미완성의 길 위에 서 있는 것과 같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나는 길 위에서 배운다. 길은 삶을 닮아 있다. 삶은 언제나 미완성이다.
▲ 비행기 1번, 기차 2번을 갈아타고 도착한 프랑스길의 출발지, 생장피드포르 역 ⓒ 류소연
교통편 예약도 하지 않고, 장비도 안 갖춘 초짜 순례자
프랑스길을 걷기 위해 참 많은 교통편을 이용하며 돈을 많이도 썼다. 내가 사는 도시인 카우나스에서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까지 버스로 이동, 빌뉴스에서 파리까지 비행기로 이동, 도착 시간이 늦어 파리에서 하루를 자고 파리에서 떼제베로 바욘이라는 도시까지 이동, 바욘에서 다시 떼제베로 드디어 프랑스길의 출발지인 생장피드포르에 도달했다.
▲ 예약을 미리 하지 않아 무려 89유로를 주고 산, 파리에서 바욘까지의 떼제베 티켓. ⓒ 류소연
근검절약을 하며 여행을 다녀야 하는 처지인 우리에게 총 100유로에 달하는 떼제베 가격은 너무 비쌌다. 이건 미리미리 예약을 하지 않은 우리의 탓이기도 했지만. 게다가 우리는 파리의 미친 물가에 기겁을 하고 간이 콩알만해져 있었다. 이렇게, 사색적인 여정이 되어야 할 것 같은 순례길은 돈 걱정으로 시작되었다. 돈은 항상 문제다.
그리고 도착해 보니, 오직 우리만이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다른 순례자들은 모두 등산화에 등산스틱에, 완전한 장비들을 갖추고 있었다. 남들의 3분의 1의 기간을 걷는다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탓도 있고, 한국에서부터 이런 걷기 여행을 할 생각을 하고 온 것이 아니라서 장비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던 탓도 있다. 이러한 준비 부족이 나와 동행인 언니에게 얼만큼의 역경을 가져다 주는지를 우리는 이후 서서히 깨닫게 된다.
▲ 순례자사무소의 안내인들은 대부분 노인들이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시지만 따듯하고 친절하다. ⓒ 류소연
생장피드포르의 순례자사무소는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순례자사무소의 안내자들은 대부분 노인 분들이다. 영어를 조금밖에 못 하시지만 따듯하고 친절하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순례자여권을 받고 생장피드포르의 첫 번째 도장을 받았다. 약간의 기부금을 내고 순례자의 상징인 가리비를 하나 집어 가방에 매다니 이제 비로소 순례길을 걸을 준비가 끝났다. 내가 걷는 길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며 알베르게에서의 첫 밤이 지나간다.
▲ 순례자 등록을 마치고, 방명록에 흔적을 남겼다. 한국인 순례자들의 흔적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다. ⓒ 류소연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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