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천국, 불신 지옥", 하느님의 뜻 아니다
[서평] 비교종교학계의 세계적인 석학 오강남 선생이 쓴 <종교란 무엇인가>
▲ <종교란 무엇인가> 겉그림 ⓒ 김영사
우리 반은 2주 전인 4월 3일 예배가 순서였다. 그 며칠 전부터 간단히 찬양 연습을 해 온 우리 반 아이들은 강단에 서서 특별 찬양 노래를 불렀다. 나도 찬양이 끝나자마자 기도를 했다. 그리고 그 기도가 끝나자마자 목사의 설교가 이어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내 기도가 끝난 후에 목사의 설교 대신 동영상 한 편이 나오기 시작했다. 화면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면면을 보니 '하나님의 나라'라는 미국에서나 만들어졌을 법한 조잡한 영상이었다. 동영상의 대강은, 이승에서 죄악을 저지르면서 '나쁘게' 살면 처참한 형벌을 받는 지옥으로 떨어지고,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착하게' 살면 행복하게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천국으로 간다는 내용이었다.
깜짝 놀랐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화면 연출이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이루어져 있어 차마 두 눈 뜨고 보기 힘든 대목이 많았다.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두 눈을 감은 채 침묵의 기도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옵소서.'
동영상은 마치 열광적인 기독교도 집단의 부흥 집회에서나 볼 만한 것이었다. 그것은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상투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조잡한 볼거리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런 메시지를 충격적인 영상을 통해 접하니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예배가 끝난 후 들어간 수업에서 아이들이 내보인 반응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아는 하나님이 그런 분이었단 말인가
요즘 10대는 어지간한 것은 다 알아서 웬만한 것이 아니면 꿈쩍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동영상 속의 선정적인 화면이 주는 정서적인 불쾌함이 그런 10대들마저도 '흥분하게' 만든 것이다.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바로 예민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숨길 수 없는 10대가 아닌가.
예배를 마친 그날 오후 내내, 나는 마음이 답답했다. 머릿속도 복잡해졌다.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저리도 편협한 분이었단 말인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정녕 지상의 인간들이 하는 일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가, 그들이 자신을 믿지 않으면 그 누구라도 지옥의 불구덩이에 던져 버리는 무서운 분이란 말인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그런 옹졸함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모든 인류를 구한답시고 자기 자식까지 내어 준 이가 어찌 불구덩이에서 고통 받는 한낱 인간들을 모른 체하고 놔둘 수 있겠는가 말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결국 종교나 신앙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문제라는 결론이 나왔다. 도대체 종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배금주의, 출세주의, 성공지상주의 등 개인과 집단의 번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종교, 권력에 기생하거나 스스로 권력화된 종교, 양적 대형화에 골몰하는 종교, 내 종교만이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고집하는 배타주의 종교, 이런 기본적인 문제를 위시하여 종교 간의 갈등, 성직자의 도덕적 해이, 교회 세습 문제, 성직자의 세금 문제, 기복 일변도로 자기중심주의를 공고히 하는 일반 신도들의 신앙 행태, 맹신과 광신과 미신 사이를 오가는 미숙한 종교 의식 등, 이러한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스러운 종교인이나 종교 집단이 과연 얼마나 될까? - <종교란 무엇인가> 6쪽, '여는 글'에서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노장과 힌두교 등 세계 각 종교들을 섭렵하고 종교의 참된 의미를 찾는 일에 천착해온 비교종교학계의 석학"(책 앞쪽 날개의 저자 소개 글에서)이라는 <종교란 무엇인가>의 저자 오강남 교수(서울대학교 규장각 방문교수)의 문제 의식은 위 인용문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그리고 저자의 이런 문제 의식은, 종교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천착인 제1부의 '진리의 길'과 제2부의 '자유의 길', 종교적인 삶의 자세나 태도에 관한 제3부의 '믿음의 길'과 제4부의 '함께 가는 길' 등에서 구체적으로 풀어 헤쳐지고 있다.
흔히 종교를 진리를 찾아가는 구도의 여정에 빗대곤 한다. 여기서 진리란 무엇을 뜻할까. 성경의 요한복음 8장 32절에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게 진리란 말인가. 저자는, 진리가 무엇이냐는 물음은 "예수님도 피하신 질문"(28쪽)이라며 그 어려움을 핑계로 애써 망설이지만 곧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정의를 내리고 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길, 그리고 다른 위대한 종교 지도자가 보여준 길이란, 이렇게 실재의 높고 깊은 차원들을 하나하나 발견해감으로 더욱 완전한 자유를 누리리라는 것이었다. 참된 의미의 종교의 길, 진리의 길은 실재에 대해 이미 주어진 설명이나 관념에 만족하지 않고, 부단히 새로운 차원, 더 깊은 차원의 실재를 발견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어놓는 '열림'의 길이다. - 31쪽
그렇다. 종교에서 말하는 진리는, 가령 예수가 온몸으로 보여 주었던 것처럼, 당대의 가치나 관습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에 저항하고 그것을 혁파하는 삶 자체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저자가 말한 그 "'열림'의 길"에서 진보와 혁명의 철학을 떠올려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종교를 가진 많은 사람이 변화를 두려워한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그들이 믿는 신이 잘 지켜 주기를 원할 뿐이다. 여기에다 좀더 욕심을 내어 자신들에게 모자란 것을 신이 채워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교회나 절에 헌금이나 시주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지 않은가. 신도들의 이런 은밀한 욕망을 잘 알기에 교회 목사들이 신도들에게 "하느님은 즐겨 내는 자를 기뻐하시느니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목에서 힘을 뺀 목사를 찾아다닌 이유
예배 시간에 헌금자의 이름과 액수까지 불러주는 일, 도표를 그려 벽에 붙이는 일, 주보나 지상에 크게 공표하는 일 등으로 무슨 경매장 같은 데서나 볼 수 있는 경쟁 심리를 이용하는 것, 헌금 액수에 따라 장로직이나 집사직을 안배하는 매관매직 같은 것이 성행하는 것, 기회 있을 때마다 성경에 나타난 헌금에 관한 장절을 모두 끄집어내어 그것을 코걸이 귀걸이 식으로 해석하며 각종 헌금을 합리화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하는 것, 돈 잘 나오게 하기로 유명한 부흥사를 모셔와 부흥회를 열고 거기서 나온 돈을 계약에 따라 몇 할씩 나누어 갖도록 하는 것 (중략) - (243쪽)
저자는 이를 "모두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경우"(243쪽)라며 에둘러 말한다. 하지만 어찌 이 모두를 어쩔 수 없는 일로 볼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이런저런 명목으로 헌금을 낸 사람들의 이름과 액수를 밝히는 일이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일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온 우주가 그의 것이니, 모자랄 것이 없으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코 묻은 헌금 같은 데 연연하지 않으"(244쪽)실 것 같은데 말이다.
나는 지금 전체 신도 수가 50명이 채 되지 않는 조그만 교회를 다니고 있다. 이곳은 내가 한동안 내지 않았던 십일조 헌금을 꼬박꼬박 내는 교회이기도 하다. 그 전에 다니던 교회는 신도 수가 500명을 넘는 큰 교회였다. 그러니 십일조 헌금을 내더라도 그것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기가 힘들었다. 당연히 나는 그 교회를 다니면서 십일조 헌금을 내지 않았다.
나는 십일조 헌금을 포함하여 교회에 내는 모든 돈이 나나 우리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을 위한 것임을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사용처나 사용 내역을 알고 싶다면 교회 사무실에 가서 그 구체적인 내역을 언제든지 알아볼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신도수가 500명이 넘는 교회에서 십일조의 사용 내역을 알고 싶다고 항상 목사나 장로를 찾아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내가 한동안 조그만 교회를 찾아 헤매고, 나와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는, 목에서 힘을 뺀 목사를 찾아다닌 이유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아주 기꺼운 마음으로 십일조 헌금을 내고 있다.
헌금과 관련하여 저자가 강조하는 바도 이와 똑같다. 그는 헌금이 진정한 감사의 표현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 갖는 법을 연습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고도 말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 것은 "역겨운 헌금"(249쪽)이다. 그래서 저자는 "마음의 변화 없이 이기적 목적으로 갖다 내는 헌금 그리고 분향, 월삭과 안식일, 기도 등 모든 종교적 행사는 하느님께서 '가능히 여기는 바'요, '무거운 짐'이 된다"(249쪽)고 주장한다.
종교는 인간이 자신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스스로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낸 '제도'의 하나다. 그러니 그것은 때로 세속적인 일에 얽혀들어 갈등에 휩싸일 수도 있고, 사람과 집단 사이에 분쟁을 불러올 수도 있다. 우리가 종교에 대해, 그리고 종교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부단히 성찰하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우리의 노력에 이 책이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종교란 무엇인가> (오강남 지음 | 김영사 | 2012. 09. | 1만 3천 원)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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