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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게! 순대 자시러 개성까지 갈 텐가!

<남으로 창을 내겠소>란 시가 걸려 있는 순댓국집

등록|2013.04.20 16:33 수정|2013.04.20 16:33
4월 18일, 날씨가 맑다. 텃밭을 돌아보고 있는데, 연이 할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곡에 가서 상추모종을 사오자고 한다. 육모판에 파종을 한 상추는 너무 작아 정식을 하려면 아직 멀었다. 상추를 빨리 먹으려면 좀 더 큰 모종을 갔다가 심어야 한다. 나는 아내와 함께 연이 할머니 집으로 가서 연이 할머니를 태우고 전곡으로 갔다.

▲ 전곡에서 사온 상추 모종 ⓒ 최오균


전곡 육모상에 도착하니 여러 가지 상추 모종이 싱싱하게 나와 있다. 치마상추, 청상추, 칙거리 상추, 켈 등 5가지나 되는 상추모종을 샀다. 한판은 너무 많으므로 한판을 사서 연이 할머니와 절반씩 나누었다. 잘라서 따로따로 사면 더 비싸다는 것. 상추모종을 고루다 보니 점심때가 다 되었다.

오랜만에 연이 할머니와 나들이를 했는데 점심이라도 대접을 하고 싶었다. 우리는 툭 하면 연이 할머니 집에서 순두부 등 특식이 있을 대마다 불려가 식사를 하곤 하는데 이럴 때 점심이라도 함께 하고 싶었다. 전곡 읍내에서 맛있는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전곡역 쪽에 중국집이 잘한다고 육모상 아주머니가 추천을 했다.

식당으로 가려고 하니 연이 할아버지한테 빨리 오라고 전화가 왔다. 그래서 우린 그냥 집으로 갔는데 마전리에 개성 순대를 잘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연이 할아버지랑 함께 가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연이 할아버지는 큰 물통을 철물점에 가서 수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외양간에 있는 물탱크를 함께 들어서 자동차에 싣고 함께 마전리 개성순대 집으로 갔다.

▲ 개성순대 간판 ⓒ 최오균


순댓집 입구에는 "여보게! 순대자시려 개성까지 갈텐가!"란 간판이 걸려 있고, "여기서 개성까지 39km" 이정표를 표시해 놓았다. 흐음~ 그럼 여기서 개성 순대를 먹으라는 것 아닌가! 꽤 오래됨직한 <순댓국>이란 현판이 걸려 있고, 주변에는 별 희한한 골동품이 여기 저기 널려 있다.

▲ 식당에는 가지가지 골동품이 놓여 있다. ⓒ 최오균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가지가지 골동품이 발을 딛을 틈도 없이 켜켜이 놓여 있다. 순대집인지 골동품 집인지 도저히 분간이 안 갈 정도다. 재봉틀, 전화기, 화로, 나무뿌리, 석유등잔……. 하여간 오래된, 오만 잡다한 골동품이 다 모여져 있다. 화장실에도 발 딛을 틈이 없이 골동품이 놓여 있다.

▲ 주방 입구에 걸려있는 괴상한 나무뿌리 ⓒ 최오균


벽을 바라보고 오줌을 누는 데 엘리엇의 <황무지>란 시가 사인펜으로 휘갈겨 새겨져 있다. "4월은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며/추억에 욕망을 뒤섞으며/봄비로 잠든 뿌리를 일깨운다……."  오호라~ 그럼 이 집 주인은 시인이이란 말인가(나중에 알고 보니 순댓국집주인은 시도 쓰고 붓글씨도 명필이라고 한다).

이렇게 황무지 같은 최전방에서 개성 순댓국을 파는 주인은 어떤 인연으로 이곳까지 왔을까? 식당 벽에는 주인이 붓으로 직접 썼다는 연천 출신 월파 김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란 시가 빗 바란 창호지에 걸려 있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밭이 한참 갈이/괭이로 파고/호미론 풀을 매지요/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강냉이가 익걸랑/함께 와 자셔도 좋소/왜 사냐 건/웃지요" 먼지 낀 창호지에 걸려 있는 시가 참 마음에 들었다.

▲ 창호지에 걸려있는 월파 김상용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 ⓒ 최오균


순댓국 집 입구에는 희미한 전등불이 켜져 있는데, 불이 켜진 날은 영업을 하고 불이 꺼진 날은 문을 닫은 날이라고 한다. 늘 이곳을 지나 다녔지만 워낙 허름하게 생긴 집이라 영업을 하지 않을 것으로만 생각을 했었다. 포천 도살장에서 돼지 내장을 매일 가져와서 옛날식으로 순대를 직접 만들기 때문에 싱싱한 순대 맛이 난다고 한다.

우린 골동품으로 가득한 순대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순대를 먹어보니 냄새도 별로 없고 맛이 제법 깊다. 우리가 동이리로 이사를 와서 개발한 식당은 왕징면에 위치한 귀빈각의 홍합짬뽕, 황해냉면집 꿩만두, 임진강변 매운탕 정도 인데, 거기에 개성 순대 집을 하나 더 올려야 할 것 같다.

▲ 정갈한 순댓국 반찬 ⓒ 최오균


▲ 따끈한 순댓국 ⓒ 최오균


깍두기에 마늘, 풋고추, 양파, 된장, 새우젓, 고추 다짐, 그리고 국수사리가 반찬으로 놓여지고, 이어서 펄펄 끓는 순댓국이 배달되었다. 너무 뜨거워 입이 데일 정도다. 우리는 후후 불어가며 순댓국을 맛있게 먹었다. 뜨거운 순댓국을 먹고 나니 온 몸에 땀이 젖는다.

개성순대를 먹으며 상추모종 이야기를 했는데 내일(4월 19일)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고 한다. 그러므로 상추 정식을 하는 것을 조금 미루어야 한다고 연이 할아버지가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상추 정식을 일요일 경에나 하기로 하고 양지바른 곳에 두고 물을 주었다. 저녁에는 쌀쌀하므로 현관에 들여 놓아야 할 것 같다.

▲ 향기 가득한 쑥 ⓒ 최오균


쑥이 지천에 널려 있어 오후에는 아내와 함께 텃밭에 널린 쑥을 캤다. 내가 임진강 변으로 이사를 와서 쑥을 캐고 있을 줄이야! 내가 살아온 사전에 쑥을 캐는 것은 없었다. 거의 평생을 도회지에서만 살아온 나는 쑥을 캘 이유도,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오늘 캔 쑥으로는 쑥떡과 쑥국을 끓여 먹을 것이라고 한다. 쑥의 향기가 마음까지 젖어든다.

누가 나에게 "왜 하필이면 최전방 연천까지 와서 살지요?" 하고 물으면 나는 씩 웃으며 대답한다. 인연 따라 오다보니 여기까지 와서 그냥 산다고. 개성 순대 집에 걸려 있는 시처럼 "왜 사냐 건/웃지요."라고 하며……
덧붙이는 글 ●개성순대집은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마전리에 위치하고 있다. 삼화교나 숭의전에서 왕징면으로 가는 길 우편에 허름하게 보인 집이다(전화 031-835-3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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