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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지 유출·남편이 아내 면접...사학 채용비리 또 터졌다

곽노현-김상곤 손 들어준 감사원, 사학법 개정과 위탁채용 활성화 제안

등록|2013.04.25 15:04 수정|2013.04.25 15:21
또 사학 채용비리가 밝혀졌다. 감사원은 지난 18일 지방교육행정 운영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사립학교들이 교원 채용 시 금품을 수수하거나 시험문제를 사전 유출하는 등의 불법을 저질러 친인척 또는 미리 내정된 지인 등을 부당 채용한 사실을 밝혀냈다.

금품수수, 시험지 유출, 친인척 채용... 언제 근절될까?

▲ 감사원이 밝힌 경기도 한 사립학교의 채용 비리. 이 사립학교의 채용비리는 한 편의 코메디 첩보 영화를 보는 듯하다. ⓒ 감사원 자료


사립학교의 고질적인 사학비리, 특히 교원채용 비리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닌데 이번에 드러난 경기도 한 사립학교의 채용비리는 한 편의 첩보 영화를 보는 듯하다.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특수학교인 경기도의 한 사립에서는 2009년 정규 2명, 기간제 6명 등 교사 8명을 신규 채용하였다. 그런데 특수교사 자격증도 없는 이들이 정교사로 합격된 사실이 드러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역시 비결은 '아버지'였다.

2009년 이 이사장은 학교장과 미리 짜고 8명을 사전에 합격시키기로 내정했다. 그 8명 중 2명은 자신의 딸과 예비사위였고, 경기도 교육청 특수교육담당 장학관이 부탁한 그의 아들, 이사장의 매제가 부탁한 매제친구의 아들도 있었으며, 당시 근무하고 있던 그 학교 기간제교사 4명이었다.

이사장은 채용 시험 관리책임자이자 지필고사 출제위원인 교장과 공모하여 교감을 통해 문제지와 빈 답안지를 미리 건네받은 후 합격내정자 8명에게 주고 답안을 작성해 오게 하였다. 그리고 지필고사와 면접이 끝난 후 미리 작성된 답안지와 시험장에서 작성한 답안지를 바꿔치기하여 이들을 합격시키고 교사로 임용한 것이다. 이 과정의 문제점을 발견한 경기도 교육청 담당자가 처음에는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이후 채용을 부탁한 장학관의 부탁으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이를 묵인한 것이 드러났다.

2010년에도 똑같은 수법으로 정교사 1명, 기간제 9명 등 10명의 교사를 신규 채용했는데, 이 과정에서는 4000만 원의 금품 거래도 있었다. 각각 2000만 원씩 총 4000만 원의 빚이 있던 이사장은 채무 상황을 요구하지 않는 조건으로 채권자 2명을 자기 학교에 기간제교사로 채용하고는 돈을 갚지 않는 방법으로 금품을 수수한 것이다.

이때에도 이사장은 교장에게 지필문제지와 빈 답안지를 미리 빼내서 작성해 오도록 하고 시험 당일 작성한 답안지와 바꿔치기했다. 더 웃기는 것은 교장이었다. 이 교장은 이사장의 지시에 의하여 2명에게 시험문제를 유출한 것 자신이 아는 기간제교사와 또 다른 응시자에게 시험문제를 사전에 유출하여 합격한 것이 드러난 것이다.

이 교장은 교사 채용 비리가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시험문제 관련 파일을 삭제하고 컴퓨터를 포맷해 버리고 거짓말을 지시하기까지 했다.

이 학교 교사 채용 비리의 백미는 2012년에 벌어졌다. 2012년에는 정교사 15명, 기간제 5명 등 총 20명의 교사를 신규 채용했다. 이사장은 2009년과 2010년에 부정한 방법으로 채용된 12명의 기간제 교사들이 교육청 민원이나 형사 고발을 하여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하여 이들을 정교사로 채용하기로 교장과 공모한다.

이사장과 교장은 이들 12명 외에 법인 사무국장의 아들과 교장의 대학후배를 추가로 합격 대상자로 정하는 등 총 14명을 정교사로 채용하기로 최종 내정하고 방법을 모색했다. 그들이 생각해 낸 방법은 기상천외한 것이었다.

미리 내정한 14명을 합격시킬 목적으로 이사장과 교장이 직접 면접위원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이것으로 모자라 지필고사에서 내정된 교사들이 탈락하지 않도록 지필평가에 "나의 교직관을 논술하시오"라는 문제를 내고는 모든 응시자에게 똑같이 50점을 부여하여 동점 처리했다. 그러니까 필기시험에 아무런 변별력이 없도록 만들어서 자신들이 하는 면접을 결정적인 당락 변수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는 내정된 14명은 면접도 하지 않은 채 교장이 단독으로 이사장과 자신의 면접점수표에 점수를 마음대로 기재하는 방법으로 부정하게 면접 점수를 부여하여 이들을 최종합격자로 만든 것이다. 이들 14명을 제외한 나머지 응시자들은 완전히 들러리로 전락한 것이다.

부산, 울산, 충남 등 지역을 가리지 않는 사학 채용 비리

이번 사학비리는 경기도 이 학교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부산의 한 사학에서는 미술교사를 채용하면서 응시자의 남편이 면접위원으로 참가하여 부인을 합격시키는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

이 학교는 이 학교 설립자의 장녀이자 법인이사를 미리 합격자로 내정하고 면접위원으로 응시자의 남편(고등학교 교장)을 위촉하여 면접에 참여하게 했다. 그러니까 미술교사 채용을 하는데 아내를 남편이 면접한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이 응시자가 이 학교설립자의 딸이었는데 동시에 이 학교 이사였다는 점이다. 이 응시자는 2012년 6월 교원채용 계획을 심의 의결하는 이사회에 직접 이사로 참석하여 출제위원, 채점위원 선정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합격자는 사전에 내정되었고, 남편은 면접위원이 되고, 응시자가 자신이 직접 채용절차에 관여한 것이다.

또 다른 부산의 사학은 2009년 12월 설립자 아들(행정실장)을 윤리교사로 임용하는 사건도 있었다. 현행 사립학교법 제53조2 제9항은 사립학교 교사의 신규 채용에 있어서 반드시 공개전형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행정실장을 교사로 전직 또는 특별채용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충남의 또 다른 사학에서는 2012년 8월 법인 이사장의 딸을 채용하기 위하여 사립학교법에서 최소 30일 이상을 홈페이지나 일간지에 공고하도록 한 규정을 어기고 불과 7일만 공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짧은 공고 결과 예비교사들이 채용 공고 여부를 알지 못하여 지원자가 달랑 2명이었으며, 결국 이사장의 딸만 합격할 수 있었다.

울산의 한 사학에서는 2012년 2월 전형에서 1, 2위 교사를 뽑기로 한 규정을 무시하고, 교장과 법인사무국장이 마음대로 순위 명부를 바꾸어 신규 채용하기도 했다. 신규 채용에 권한이 없는 자에 의하여 최종 합격자가 뒤바뀐 것이다. 당사자는 얼마나 억울할까? 그러나 순위가 뒤바뀌어 합격하지 못한 예비교사에게는 아무런 구제 방법이 없다.

충남에서도 교원채용 비리는 빠지지 않았다. 충남의 이 사립학교에서는 국어교사를 채용하면서 응시자의 큰아버지(고등학교 교장)을 채점위원 및 면접위원으로 위촉하여 큰아버지가 조카의 시험지를 채점하고, 면접하여 합격시킨 것이 들통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큰아버지 교장이 부여한 점수 63점은 68점으로, 다른 채점위원이 부여한 점수 64점은 69점으로 바뀌어 10점이나 과다하게 점수를 받았다. 이렇게 하여 1차에서 6위로 탈락해야 할 조카는 4위로 통과하였고, 큰아버지의 면접 등을 거쳐 최종 합격자로 선정되었다.

감사원, 채용비리 근절 위해 사학법 개정과 위탁채용 활성화 제안

금품수수, 시험지유출, 순위조작, 친인척 채용 등 끊이지 않는 사학의 채용 비리에 대해서 교육부에 사학법 개정과 교육청 위탁 채용 활성화라는 제도적 개선책을 제안했다.

우선, 현행 사립학교법에는 사립학교 교원채용시험 부정행위자 또는 부정합격자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국가공무원법에는 임용 시험 비리에 대해서 합격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조항이 있는데 사립학교법에는 자체 조항도 없고, 국가공무원법 준용 규정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용 시험 과정에서 사후에 부정이 발각되어도 당연퇴직에 해당하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한 합격 자체를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기도의 한 사학에서 2009년~2010년 12명이 이사장, 교장으로부터 시험문제와 빈 답안지 미리 제공 받아 부정하게 합격하였는데도 법원에서 벌금형 선고받아 합격이 취소되지 않고 현재도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강원도의 한 사학에서도 2010년 법인사무국장이 자신의 아들에게 채용시험 문제 미리 유출하여 합격시켰는데도 현재까지 교사 신분을 유지하고 있으며, 서울의 한 사립학교에서도 2012년 9월 법인상임이사에게 교사채용 대가로 금품을 제공하고 순위조작 등의 방법으로 채용된 교사 5명 현재까지 계속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는 점을 감사원은 명시하고 있다.

이런 법적 미비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감사원은 교육부 장관에게 임용 시험 부정에 대해서 합격 자체를 취소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을 제안하고 있다.

또 하나의 방안으로 감사원이 제시한 것이 현행법으로도 가능한 교육청 위탁 채용의 활성화이다. 감사원은 채용시험 위탁제도가 사학법인들의 반발 또는 교육 당국의 무관심으로 유명무실한 상태인데도 교육부가 이를 유인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감사원 자료에 의하면, 2008~2012년 시도교육청 사립교원 채용시험 위탁 실태를 점검 결과 전체 사립학교 교원의 4.2%만 교육청 위탁 방식에 의해서 채용되었다. 그나마 충남 등 8개 교육청은 위탁 채용 실적이 한 건도 없었다. 그나마 서울, 경기, 광주, 전남 등 진보성향 교육감들이 의욕적으로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 감사원의 사립학교 교원 위탁채용 실적 자료. 전체 사립학교 교사의 4% 정도만 위탁채용으로 뽑히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사학법 개정으로 위탁채용이 도입되었으나 사학법인들의 비협조로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 김행수


서울의 곽노현 전 교육감과 광주의 장휘국 교육감 등이 이를 의욕적으로 추진하였으나 사학들이 사학의 고유 권한인 임용권 침해라며 집단으로 반발해 왔다. 최근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은 아예 사학지원조례를 통하여 감사원의 제안과 거의 똑같이 위탁채용을 하는 사학법인에 대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우선하겠다는 조항을 만들었다. 그러나 경기도뿐 아니라 전국의 사학법인들이 사학운영조례 자체를 수용할 수 없다며 집단으로 반발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개정된 현행 사립학교법 제53조의2와 사학법 시행령 제23조에 의하면 사립학교 교원 공개채용이 의무화되어 있으며, 교육감에게 전형을 위탁할 수 있지만 이를 자율에 맡기다 보니 대부분 사학들이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부는 교육청으로 하여금 사학법인의 교원채용시험 위탁 여부를 학교평가지표에 반영하여 교육청이 학교 재정지원에 차등을 두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는 등 사립학교 교원 채용 시험 위탁제도를 활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감사원은 밝히고 있다.

감사원의 권고는 너무나 타당해 보인다. 감사원이 밝힌 바에 의하면 사학법인 전입금이 학교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채 1%이다. 사실상 국민 혈세와 학생의 등록금으로 운영되는 사학들이 고유권한 어쩌고 하면서 교원채용 투명화를 거부하는 것은 국민적 명분이 없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성향과 전력, 국회 다수당인 새누리당의 정책, 사학들의 기존 행태 등을 종합해 보면 사학법 개정이나 위탁 전형 활성화가 얼마나 가능할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감사원의 이번 감사 결과가 사학의 교원채용 비리 척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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