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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류를 위해 시를 쓴다"

[영원한 자유를 꿈꾼 불온시인 김수영 24] <레이판 탄(彈)>

등록|2013.04.26 13:54 수정|2013.04.26 13:54
너를 딛고 일어서면
생각하는 것은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나의 가슴속에 허트러진 파편들일 것이다

너의 표피의 원활과 각도에 이기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나의 발을 나는 미워한다
방향은 애정—

구름은 벌써 나의 머리를 스쳐가고
설움과 과거는
오천만분지 일의 부감도(俯瞰圖)보다도 더
조밀하고 망막하고 까마득하게 사라졌다
생각할 틈도 없이
애정은 절박하고
과거와 미래와 오류와 혈액들이 모두 바쁘다

너는 기류를 안고
나는 근지러운 나의 살을 안고

사성장군이 즐비한 거대한 파아티같은 풍성하고 너그러운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에게는 잔이 없다
투명하고 가벼웁고 쇠소리나는 가벼운 잔이 없다
그리고 또하나 지휘편(指揮鞭)이 없을 뿐이다

정치의 작전이 아닌
애정의 부름을 따라서
네가 떠나가기 전에
나는 나의 조심을 다하여 너의 내부를 살펴볼까
이브의 십장이 아닌 너의 내부에는
"시간은 시간을 먹는 듯이 바쁘기만 하다"는
기계가 아닌 자옥한 안개같은
준엄한 태산같은
시간의 퇴적뿐이 아닐 것이냐

죽음이 싫으면서
너를 딛고 일어서고
시간이 싫으면서
너를 타고 가야 한다

창조를 위하여
방향은 현대—
(1955)

한국 전쟁 중에 겪은, 죽음을 넘나드는 극한의 체험들 때문이었을까요. 김수영은 늘 죽음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수영은 어느 날 달력 한귀퉁이에 다음과 같은 말을 써 넣습니다.

'상왕사심(常往死心)'

아내 현경이 그 말뜻을 묻자 수영은 "늘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라"라는 뜻이라고 말해 줍니다. 그러고는 덧붙이지요.

"늘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 살아 있는 목숨을 고맙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어."

수영이 <시여, 침을 뱉어라>(1968년 4월 부산에서 펜클럽 주최로 행한 문학 세미나에서 발표한 원고)에서 말한 '몸의 시학', 곧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의 정신도 이와 관련되지 않을런지요.

김현경 여사는 회고록에서 김수영 시인이 하루하루를 새로움에 대한 열망과 몸부림으로 채워 나갔다고도 말합니다. 죽음을 불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어했던 그로서는 당연한 태도이지요. 새로움이 없는 삶이란 정체입니다.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 아니라 무기력하게 뒤로 퇴보하는 삶입니다. 그런 삶을 사는 이에게는 '극복해야' 하는 상황조차도 찾아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수영은, 거창하게도 인류의 평화와 문화의 발전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는, 죽음을 불사하며 온몸으로 시를 쓰고 늘 새로움을 추구했던 그다운 모습이기도 합니다. 사소하고 범상한 것에서부터 큰일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것을 허투루 넘기지 않은 것도 이런 태도와 관련되겠지요. 그는 술이라도 한 잔 마신 날이면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시를 쓰는 일은 바로 인류를 위한 일이야. 나는 인류를 위해 시를 쓴다."

술주정꾼의 허풍으로만 보기에는 어딘지 남다른 데가 있지 않은지요. 우리 주변에 자신이 하는 일과 관련하여 '인류'라는 말을 떠올릴 수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지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 시에는, 그렇게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자신을 헌신하고 인류를 위해 시를 쓰려고 몸부림친 수영의 시선과 태도가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작품의 제목으로도 쓰이는 '레이판 탄'은 유도탄입니다. 작품의 원주(原註)에도 "'레이판 탄'은 최근 미국에서 새로 발명된 유도탄이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원래 유도탄은 레이더나 적외선 등의 유도에 의해 목표물을 향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그 역할을 화자가 맡고 있습니다. 목표와 방향도 정확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마지막 연의 "창조를 위하여 / 방향은 현대—"가 바로 그것이지요.

'창조'는 새로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 시간과의 단절이 필요하지요. 이 시의 화자가, 나아가 시인 김수영이 그 '방향'을 '현대'로 잡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거와의 단절이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화자는 '너'로 의인화한 '레이판 탄'의 "내부를 살펴"(5연 4행)봅니다. 그곳에는 "'시간은 시간을 먹는 듯이 바쁘기만 하다'는 / 기계가 아닌 자옥한 안개같은 / 준엄한 태산같은 / 시간의 퇴적"이 존재합니다. 그 퇴적물은 바로 지금, 여기를 가능하게 한 과거입니다.

저는 '레이판 탄'에 올라탄 화자가 과거와 완전히 단절된 곳이 아니라 과거를 그 안에 껴안은 지점에서 '현대'를 향하고 있는 사실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수영은 인류를 위하여 시를 쓰고자 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과거와 전통을 결코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훗날 그가 <거대한 뿌리>에서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며 힘주어 말한 배경도 이러한 점과 관련되겠지요.

이러한 사실은, 새로운 '창조'와 '현대'를 위해 화자가 선택한 또 하나의 '방향'이 '애정'이라는 점을 통해서도 뒷받침됩니다. '애정', 곧 사랑은 김수영 시 전체를 꿰뚫는 핵심적인 열쇳말 중의 하나입니다. 수영에게는 '사랑'이야말로 모든 새로움의 원천이자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단단한 끈이었습니다. "애정은 절박하고 / 과거와 미래와 오류와 혈액들이 모두 바"(3연 6, 7행)쁜 상황이니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

한국 전쟁 기간에 30대의 삶으로 접어든 수영에게 1950년대의 현실은 결코 감당하기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랜 방황과 혼란 끝에 어둡고 음습한 과거와 결별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들을 마음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몸부림을 통해서 말이지요. 그런 수영의 모습이 잘 드러난 작품이 바로 이 시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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