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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무장반란'인가... 4.3사건은 '제노사이드'

[서평] <빌레못굴, 그 끝없는 어둠 속에서>

등록|2013.04.26 17:41 수정|2013.04.26 17:41
"부산 어린이집 폭행에 이런 나라에서 아이 낳아 기르라고?", "때릴 데가 어디있다", "정말 억장이 무너진다."

부산 민락동 한 어린이집에서 여교사 두 명이 17개월 된 여자 아이를 무차별 폭행한 것에 대한 누리꾼들 반응이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건만. 어린이 폭행은 그 어떤 것으로도 용납할 수 없다. 솜방망이 처벌은 안 된다. 어린이집만 아니라 가정과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어른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니지만, 미국 보스턴 마라톤 테러 때는 8살배기 어린이가 숨졌다. 이뿐 아니다. 전쟁이 있는 곳에 아이들은 항상 학살당했다.

지난달 18일 인권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에 따르면 지난 2년여간 시리아 내전으로 6800명 이상의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해 총 5만9천 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같은 달 13일 국제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이 공개한 '아동 인권 보고서- 공격 받고 있는 아이들'는 "시리아 어린이 3명 가운데 1명이 폭행이나 총격을 당했고, 4명 가운데 3명은 주변인들의 사망을 경험한 것으로 확인된다"고 밝히고 있다. 유엔아동기금(UNICEF)도 같은 날 "시리아 내전이 계속되면 한 세대 어린이 전체가 심각한 상처를 입어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가 될 수 있다"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놨다.

▲ <빌레못굴, 그 끝없는 어둠 속에서> ⓒ 4.3연구소

아이 등짝을 후려치는 일에 분노하고, 시리아 어린이들이 학살 당하는 것에 분노하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일이 하나 있다. 지금부터 65주년 제주 하늘 아래는 경찰이 "일곱달 된 애기를 돌에 내부쳐 죽"였다는 사실을.

민간연구단체인 제주4·3연구소가 엮어 낸 '제주4·3 구술자료 총서' 제6권 <빌레못굴, 그 끝없는 어둠 속에서>(한울 펴냄)는 1948년과 1949년 제주 하늘 아래에서 대한민국 공권력이 일곱 달 아이부터 늙은이까 무차별 학살한 사실을, 살아남은 17명의 생생한 증언을 채록했다.

제주 4.3사건이 열 달 남짓 지난 1949년 1월 16일 토벌대와 민보단(1948년 5.10 총선거 때 조직되어 1950년 봄까지, 경찰 하부 지원조직으로 활동한 민간단체)는 애월면 어음리 빌레못굴에 숨어 살던 어린아이, 노인 등 주민 29명을 무참히 학살했다. 그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양태영씨는 이렇게 증언한다.

"죄 없는 사람한테 다 죄를 만들어버리니까 그때는 그렇게 해서 많이 죽습니다.(중략) 그런 사람덜 행적을 다 알려고, 그런 사람들이 많이 와서 손사락질 해서 우리 동네 사람들, 죽은 사람이 많은 겁니다. 그땐 사람 삶이 아니었어요."(35쪽)

65년 전 제주 하늘 아래는 사람이 삶이 아니었던게다. 빌레못굴 학살 소식을 듣고 현장을 찾아 수신을 수습한 전운경씨(당시 중학생) 증언은 '글'을 통해 읽었지만, 살이 부르르 떨릴 정도이니 중학생이었던 전씨가 느꼈던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아일 맡아가지고 애기를 돌에 내부쳐서 죽여버렸어. 그러니깐 그 꼴을 보면서 이젠 나와가지고 어멍이(엄마가) 꼭 달라붙은 것 같애. 그러니깐 어멍을 개머리판으로 부숴버린 것 닮아. 이 해골 박세기가 바싹 부숴져버렸어. 거 내 추측인데. 애기는 순경이 내부쳐서 죽인 것 맞아. 돌에. 세상에 애기를 돌에 내부쳐서 죽였던 거라, 글쎄, 일곱 달 된 애기라. 참 애기도 잘 났데. 지금 살았시민 육십일 거여. 그 애기를 돌로 내부쳐서 죽여버렸어." (40쪽)

"마을 사람들 끼리 때리게"하거나, "사람 많이 죽인 사람은 표창장 탔"고, "총으로 죽이는 거는 아주 참 한량이라. 그냥 창으로 해노니까 당초 눈 뜨고 볼 수가 없는거여. 여자들을 창으로 말이여"라는 증언은 참아 읽어내려가 못한다. 아니 그보다 더 한 것도 있다. 임산부를 나무에 매달이 매타작으로 죽이고, 죽은 엄마 젖가슴을 빠는 아기 등등. 65년 전 제주 하늘과 한라산 자락 그리고 바다는 지금 우리가 보는 '평화의 섬'이 아니라 '학살의 섬'이었다.

4·3사건 진상위원회에 신고된 희생자 숫자는 1만4028명이지만 2만5000~3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10세 이하 어린이(5.8%·814명)와 61세 이상 노인(6.1%·860명)이 전체 희생자의 11.9%, 여성 희생자(21.3%·2,985명)였다. 여성과 어린이 그리고 61세 이상 노인 희생자가 33.2%다. 학살자는 대한민국 공권력이었다.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두 차례 사과했다.

저는 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2003.10.31

국가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합니다. 또한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입니다. 그랬을 때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확보되고, 그 위에서 우리 국민들이 함께 상생하고 통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 2006. 04.03.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제 추도사

하지만 아직도 4.3사건을 '무장반란'으로 단정하는 이들이 많다.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는 '공산주의 세력이 주도한 폭동(communist-led rebellion)'이 발생하여 여러 해 동안 지속되었다.-2011.11.05  이영조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

"북한은 자신들의 전력증강과 전쟁준비를 차질 없이 진행시키는 한편 우리 국군의 전투력 증강을 방해하고, 힘을 소진시키기 위해 가용한 모든 요소를 총동원해서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그 대표적인 것이 1948년도 남한 단독총선을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일으켰던 제주 4.3사건"-남재준 국정원장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군인과 학군사관후보생(ROTC)를 대상으로 한 '북한의 대남전복전략 실체와 우리의 자세'란 제목 강연

제주 4.3사건은 이런 대남공작사의 일환으로 6.25 다음으로 피를 많이 흘리게 한 거대한 무장반란사건-<지워지지 않는 오욕의 붉은 역사>'제주 4.3 반란사건'(지만원)

"제주4.3사건은 1948년 대한민국을 건국 시기를 전후해 공산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세력들이 자유민주주의적 체제에 기반한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세력을 대상으로 벌인 무장투쟁이자 반란."-2009.02.18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

2006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4.3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한 후, 현직 대통령은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난 대선 당시 "4.3사건 완전 해결하겠습니다"는 약속을 했지만, 박 대통령은 이번 65주년 4.3사건 위령제에 참석하지 않았다. 보수정권에게는 아직도 4.3사건이 국가 공권력에 의한 '제노사이드'임을 인정하기 어려움을 확인해주었다. 하지만 4.3사건은 분명 제노사이드다. <빌레못골, 그 끝없는 어둠 속에서>가 이를 생생하기 증언하고 있다.

1948년 11월 13일 새벽, 원동마을로 향하던 제9연대 군인들(중대장 전순기 중위)이 애월면 하가리를 지나다 정순아씨 제삿집에 있던 사람들과 그 이웃 사람들을 강제로 마을 안 속칭 '육시우영'으로 끌어내어 학살한 사건이다. 이날 27명이 공개적으로 집단학살되었고, 주변 가옥 16채도 전소되었다.-육시우영 사건

이래도 4.3사건이 '무장반란'인가? 4.3사건은 국가공권력이 자행한 '제노사이드'이다. 4·3사건을 다룬 독립영화 <지슬>이 전국개봉 한 달여 만인 23일 관객 12만 명을 넘었다. <지슬>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그때 그 제주에서 실제 있었던 살아있는 증언이듯, <빌레못골, 그 끝없는 어둠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들의 '거짓'을 덧붙이지 않는 100% 실화다. 무장반란으로 '말'하고, '믿'고, '강요'하고 싶은 이들에게 <빌레못 골 그 끝없는 어둠 속에서>를 권한다.
덧붙이는 글 빌레못굴, 그 끝없는 어둠 속에서 ㅣ 제주4.3 구술자료 총서 6 | 제주4.3연구소 (엮은이)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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