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도와주면 10년 뒤에 좋은 사회가 된다"
[인터뷰] '풀무학교' 닦은 충남 홍성군 홍동마을의 큰어른 홍순명 선생
책을 내고 나서 문득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세월 독서와 경험으로 다져진 분이 적지 않고, 기자가 쓴 <책 놀이 책>에 소개한 '책 놀이'도 선구적으로 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배움이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 도서관, 문화, 가족, 어린이와 관련해서 가르침을 줄 선생님들을 찾아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첫 번째로 찾아뵌 분은 충남 홍성군 홍동면의 '밝맑도서관' 관장님인 홍순명 선생이다. 앞으로 여러 '선생님'을 만나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 기자 주
밝맑도서관의 홍순명 선생(밝맑도서관 이사장님, 이하 '선생'으로 표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올해 3월 1일 일본 도농교류와 6차 산업의 전설이자 <농촌의 역습>(쿵푸컬렉티브)의 저자인 일본 NPO법인 에가오츠나게테 소네하라 히사시 대표와 동행해 만나뵈었을 때다. 그때는 한창 <책 놀이 책>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홍순명 선생께 책이 나오면 꼭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겠다고 약속한 바 있었다. 이 만남은 그 약속을 지키는 일환이기도 했다. 때문에 선생은 만나자마자 <농촌의 역습>이 잘 나가고 있느냐며 안부를 물었다.
홍순명 선생은 1958년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풀무학교)가 만들어진 이래 1960년부터 교사 생활을 하며 협동조합운동을 개척하는 등 지금의 홍동마을과 풀무학교를 당신 손으로 50년 넘게 다져오신 마을의 '큰어른'이다. 그런데 76세의 고령에 '밝맑도서관'에 애착을 쏟아내고 서울, 수원 등 유명하다는 헌책방에 다니며 도서관 열정을 불태운 사연이 궁금했다.
이야기는 4월 24일 홍동마을 홍순명 선생 댁에서 한 시간 반 남짓 진행되었다. 선생은 새로운 언어에 대해서 무척 관심이 많으셨고, '풍덩', '대포에 물 묻히기', '엄마들 마음에 쏙 들어가겠네' 등 순우리말을 많이 담아 깊은 뜻과 구수한 정감이 서려 있었다. 고 이오덕 선생이 "살아 있는 마지막 상록수"이라고 평했던 말이 생각났다. 대화는 문답 식으로 정리했다. (선생은 경어를 주로 사용하며 말했는데, 글의 구성상 경어를 생략했다.)
- 대치동에서 논술강사 하다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들을 만나면서 책을 썼습니다. 제 꿈이 어린이도서관 만드는 것인데 제 나이(36)로 따지면 앞으로 50년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도 풀무학교에서 50년 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젊다는 것은 아주 큰 재산인데, 몇 십 년 동안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치동이라고 한 빛깔이 아니라 여러 빛깔이 있다. 대치동 부모들도 어린애들 잘 컸으면 하는 마음은 있거든. 이왕이면 대치동처럼 경쟁이 심각한 한복판에서 일을 추진해도 좋을 것 같아. 이를테면 대포에 물 묻히는 셈이다."
- 선생님이 생각하는 도서관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책만 하는 것보다는 꽃으로 상징되는 자연, 빵으로 상징되는 먹을거리, 내 아이만 아니라 모든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랑, 그리고 나서 책. 이런 게 어우러진 도서관을 만들면 이것도 하나의 사회가 되기 때문에 어린애들이 사회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어떤 기본 그림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가운데 자연과 먹을거리, 동물권을 생각하는 종합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경쟁을 부추기지만 도서관에서는 그러지 말자. 학교는 벌써 하나의 제도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도서관은 그렇지 않다. 너무 딱딱하면 벌써 도서관이 아닌 거지. 그리고 참여형 도서관이어야 한다. 내가 아는 성공한 도서관들을 엄마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엄마들이 관심을 갖고 에너지를 끌어내면 도서관은 물론 동네가 아주 밝아진다."
- 200여 가족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릴 적에 감정을 어루만져주는 사람도 없었고, 감정표현할 길도 없고, 마음이 억눌리는 일은 많아서, 그렇게 자라난 부모가 아이를 대할 때 무척 힘들어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어른의 틀에 맞추지 말고 어린이의 세계에 풍덩 빠진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아이들의 세계를 잘 자라나도록 도와주면 아이들이 10년 뒤에 좋은 사회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 때 균형이 참 중요한데 뭔가 억압을 받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고, 너무 공주나 왕자를 만들어버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어린이가 너무 억압을 당하면 왜곡이 되어 버리고, 그렇다고 오냐 오냐 키우면 안하무인이 되어 버린다.
사랑도 받고 사랑도 줄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 나는 이것을 '중산층적 감각'이라고 한다. 중산층이라고 하면 좀 이상하지만, 어린애들 사이에서는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동물들과도 친하고, 외국에도 우리와 같은 아이들이 있고, 달나라에는 국경이 없고, 심지어 똥도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안다."
- 네, 유년 시절의 경험이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오리 농법을 하는데, 오리가 나면 각인을 시킨다. 오리가 처음 깨어났을 때 본 사람을 평생 따라다니거든. 처음 눈뜬 세상이 전부니까. 대학교까지 나와도 제일 그립게 떠오르는 건 어릴 적 시절인 까닭은, 그 때가 세상에 처음 눈을 뜰 때거든."
- 그런데 부모님과 아이들 세대차이가 심해서 걱정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종이밥>이라는 작품을 보면서 아이는 공감을 못하고 슬프다고 팽개쳤는데, 엄마가 어린 시절 추억이 갑자기 떠올라서 아이 앞에서 펑펑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동문학이 충격적인 게, 쉬운 줄 알고 접근했다가 한 방 제대로 맞는 것 같습니다. <강아지똥> <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 <무명저고리와 엄마> 같은 작품 보면 세계가 흔들리는 느낌이랄까요?
"왜냐하면 가상의 세계와 실제 세계 사이에서 연결된 세계를 작가들이 살아가면서 발견해서 그렇다. 그런 글이라야 아이들 마음도 움직인다. 권정생 씨도 자기가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똥은 다 싫어하는 것인데도 도시 애들은 똥을 좋아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똥을 애교스럽게 부른다. 얼마나 훌륭한 거요."
"지역문화가 국가·기업이 결탁한 문화를 이겨야 해"
- 제가 제주 출신인데, 벌써 외지 생활을 11년째 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토박이를 군대에서 보았는데 상당히 성격이 부드러운 것 같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거칠지가 않아."
- 제주도가 대표적인 유배지여서 양반들이 서당을 열고 제주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친 게 영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주 사투리에 한자어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지. 제주에 유배 많이 갔어요. 이승훈, 추사 등. 우리 동네 할머니들이 문학 기행으로 평사리, 벌교 등을 다녀왔는데, 거기도 역사의 상처를 극복하려고 많이 노력을 하고 있더라고. 제주 4.3사건은 한국의 모든 문제가 집약돼 있어서 안타까운 데 시간이 많이 지나도 알게 모르게 상처가 많다. 재일교포와도 관련이 있고, 크게 보면 한국전쟁도 트라우마고, 우리는 참전은 안 했어도 생각하면 자꾸 떠오르고 그래. 지난 번에 제주 사투리 소개해 준 게 뭐였더라?"
- '기꽈'라는 말입니다. '그래요?'라는 말이고, '친척'을 의미하는 '궨당'이라는 말도 '권당'(眷黨)이라는 한자어에서 왔습니다.
"'기(其)냐?'는 한자어인데, 충청도에서는 '기유' 라고 한다. 충청도 대표 사투리는 '거시기'라고 한다. 분명히 얘기하면 어떤 피해가 올 지 모르니까 '거시기'라는 말을 보따리로 싸 놓은 것이다. 간단한 말인데, 속에 보면 하도 극단적인 경험을 해서 얼른 표현이 안 돼 거시기라고 했다. 정확하게 자기 주장을 얘기했다가 큰일날지 모르니까.
나는 사투리를 국어책에도 집어넣으면 좋겠다. 북한에서 만든 말 중에서도 예쁜 게 많은데, 예컨대 볼펜을 '돌돌붓'이라고 한다. 이건 억지로 의역을 한 게 아니라 참 예쁘게 잘 만들었다. 어쨌든 국가가 재단하는 것보다는 지역과 향토성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 제주에서 요새 '제주 올레길'이나 '지슬' 같은 지역 특성을 살린 문화가 각광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지슬>을 우리 동네에서도 한다길래 기다렸는데 공주에서 한 번 상영하고는 닫아버리는 거야. 동네 사람들이 뜻을 모아 2회 분을 몽땅 사서 보니 극장이 아주 꽉 찼다. 그 때 영화관에서 만난 사람들이 순식간에 반가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모습을 본 극장에서도 놀라서 이틀인가 사흘 연장상영을 했다. <지슬> 같은 향토성 있고 문화의식 있는 사람이 만든 것이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 상연되는 곳이 의식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다면 지역에 대해서 실망했을 텐데, YMCA, 전교조 등의 단체들과 지역민들이 합심해서 사람을 모으고 함께 보니까 참 좋더라. 영화에서 나는 할머니가 죽어가면서 자신을 죽인 군인에게 '당신에게도 부모가 있나요?'라고 묻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죽이면서도 경어를 쓰고 죽으면서도 경어를 썼는데 강렬해서 잊히지 않는다. 군인들을 무조건 다 나쁘게 보는 게 아니고, 뭔가 알 수 없는 권력의 힘에 의해서 비참하게 되는 모습을 잘 그렸다."
- 지슬은 제주 사람들이 밥 대신 자주 먹는 서민 음식인데 제주 문화에는 '먹는다'는 게 특색이 있습니다. 심지어 '제나 지내러 간다'는 말 대신 '제사를 먹으러 간다'고도 합니다. '제사 지낸다'는 돌아가신 분이 주인공이 되는데, '제사 먹는다'는 말은 후손들이 주인공인 셈입니다. 현기영 소설가의 작품 <지상의 숟가락 하나>에서도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간다"가 비중 있게 나오듯, '먹는다'에는 제주의 묘한 문화가 담겨 있습니다.
"그걸 이해하려고 하다 보면 거기 느껴지는 깊은 뭔가가 있다. 그걸 잊지 말고 살려서 승화되는 쪽으로 하면 민족문화를 한 단계 높이는 거다. 바스크 지역 등에서 고난을 당했지만 산업적으로 문화적으로 새롭게 다가가거든. 문화적 재산을 잘 살려야 한다. '육지'에서 느끼지 못하는 뭔가가 있다. 제주는 유난히 애착이 가."
- 하지만 못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한국사람으로 만들어버리려는 동화정책이나, 지역을 서울에 종속시키려는 폭력이 걱정입니다.
"국가와 기업이 결탁한 문화, 그런 건 문제가 있다. 문화 중에서도 어려움이나 고통이 배제된 문화는 '장난감 문화'다. 깊은 고독과 역사의 아픔이 있어야 제대로 된 문화가 배어 나올 수 있다."
-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풀무학교와 홍동마을을 닦아 오시면서 하필이면 지금 '밝맑도서관장'이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다. 옛날에는 산업의 70%가 농촌이었고, 농민들이 일을 해야 나라가 먹고살았다. 중산층 정도의 자각, 기초가 되는 농민의 모습을 만들어가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옛날부터 했다. 처음에는 도서관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급한 것은 농업 경제였으니까. 그래서 협동조합, 유기농 등을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축산, 유통, 가공 일로 넘어갔지. 자꾸 세월이 지나면서 교육과 경제도 있어야 하지만 복지도 있어야겠더라고.
복지 속에는 장애인, 노인, 어린이 포함이 되지만, 어느 순간 생각해보니 문화가 있어야겠어. 경제는 육체에 관한 일이고, 정신은 여유가 있어야 남을 생각할 수 있고 농업의 의미와 가치를 알려면 문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골 일이라는 게 휙휙 되는 게 아니다. 우선 학생들에게 필요하다 해서 동시다발적으로 학교에서 했는데, 지역에 나가서 자리 잡는 거는 순서대로 경제 문제, 그 다음에는 가공 유통 이렇게 하다가 복지, 문화 그 단계가 되어야 하고, 여러 사람이 호응해서 도서관이 되었다."
- 그럼 처음 생각하시고 몇 년 정도 걸린 건가요?
"참 오래 되었지. 도서조합은 70년대부터 학교에서 했고, 지역에 나온 계기는 도시 사람들이 시골에서 농민운동을 한창 하기 시작한 80년대였으니까. 농촌에 와서 뭘 할까 하다가 이대 나온 분이 도서관 해야 한다고 해서 학교의 책들을 넘겨 줬는데, 그것도 쉽지 않아서 삐꺽거리고. 도서관을 면사무소 자치센터에 두었는데, 공무원들이니까 흐지부지 하고. 아무래도 우리가 해야겠다 해서 개교 50주년으로 도서관을 만들자 해서 2011년에 만들었지. 그 전부터 오랫동안 뭔가 해오던 게 있으니까 동네 주민들도 그렇게 하자 한 거에요."
밝맑도서관은 대지 1500㎡에 건평 143평 3층으로 지어졌다. 도서관은 본관 1층에 어린이 책방과 세미나실, 공연·전시를 위한 회랑이 마련됐고, 2층은 마을문화연구소와 밝맑기념문고, 3층은 농민교양강좌와 독서회 등의 소모임 공간으로 구성됐다. 밝맑도서관의 '밝맑'은 풀무학교의 공동설립자인 이찬갑 선생의 호에서 따온 것으로, 도서관 건립에 드는 비용 중 1억 원의 도비·군비 지원 외에 주민들의 모금과 각계의 헌금·지원 등을 통해 5억 원여를 마련하는 등 지역민의 힘으로 세운 민간 도서관이다.
홍순명 선생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내 나이가 85세가 되었을 때까지 펼쳐질 일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듯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36년의 세월도 무척 소중하고 중요하지만, 앞으로 채워갈 더 많은 세월의 귀중한 열쇠를 한꾸러미 얻어가서 무척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밝맑도서관의 홍순명 선생(밝맑도서관 이사장님, 이하 '선생'으로 표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올해 3월 1일 일본 도농교류와 6차 산업의 전설이자 <농촌의 역습>(쿵푸컬렉티브)의 저자인 일본 NPO법인 에가오츠나게테 소네하라 히사시 대표와 동행해 만나뵈었을 때다. 그때는 한창 <책 놀이 책>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홍순명 선생께 책이 나오면 꼭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겠다고 약속한 바 있었다. 이 만남은 그 약속을 지키는 일환이기도 했다. 때문에 선생은 만나자마자 <농촌의 역습>이 잘 나가고 있느냐며 안부를 물었다.
홍순명 선생은 1958년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풀무학교)가 만들어진 이래 1960년부터 교사 생활을 하며 협동조합운동을 개척하는 등 지금의 홍동마을과 풀무학교를 당신 손으로 50년 넘게 다져오신 마을의 '큰어른'이다. 그런데 76세의 고령에 '밝맑도서관'에 애착을 쏟아내고 서울, 수원 등 유명하다는 헌책방에 다니며 도서관 열정을 불태운 사연이 궁금했다.
이야기는 4월 24일 홍동마을 홍순명 선생 댁에서 한 시간 반 남짓 진행되었다. 선생은 새로운 언어에 대해서 무척 관심이 많으셨고, '풍덩', '대포에 물 묻히기', '엄마들 마음에 쏙 들어가겠네' 등 순우리말을 많이 담아 깊은 뜻과 구수한 정감이 서려 있었다. 고 이오덕 선생이 "살아 있는 마지막 상록수"이라고 평했던 말이 생각났다. 대화는 문답 식으로 정리했다. (선생은 경어를 주로 사용하며 말했는데, 글의 구성상 경어를 생략했다.)
▲ 2013년 공교롭게도 3.1절날 항일의병의 역사적 고장 충남 홍성 홍동마을에 일본인 소네하라 대표를 모시고, 마을의 큰어른인 홍순명 선생을 뵈었다. (오른쪽 홍순명 선생) ⓒ 오승주
- 대치동에서 논술강사 하다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들을 만나면서 책을 썼습니다. 제 꿈이 어린이도서관 만드는 것인데 제 나이(36)로 따지면 앞으로 50년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도 풀무학교에서 50년 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젊다는 것은 아주 큰 재산인데, 몇 십 년 동안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치동이라고 한 빛깔이 아니라 여러 빛깔이 있다. 대치동 부모들도 어린애들 잘 컸으면 하는 마음은 있거든. 이왕이면 대치동처럼 경쟁이 심각한 한복판에서 일을 추진해도 좋을 것 같아. 이를테면 대포에 물 묻히는 셈이다."
- 선생님이 생각하는 도서관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책만 하는 것보다는 꽃으로 상징되는 자연, 빵으로 상징되는 먹을거리, 내 아이만 아니라 모든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랑, 그리고 나서 책. 이런 게 어우러진 도서관을 만들면 이것도 하나의 사회가 되기 때문에 어린애들이 사회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어떤 기본 그림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가운데 자연과 먹을거리, 동물권을 생각하는 종합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경쟁을 부추기지만 도서관에서는 그러지 말자. 학교는 벌써 하나의 제도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도서관은 그렇지 않다. 너무 딱딱하면 벌써 도서관이 아닌 거지. 그리고 참여형 도서관이어야 한다. 내가 아는 성공한 도서관들을 엄마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엄마들이 관심을 갖고 에너지를 끌어내면 도서관은 물론 동네가 아주 밝아진다."
- 200여 가족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릴 적에 감정을 어루만져주는 사람도 없었고, 감정표현할 길도 없고, 마음이 억눌리는 일은 많아서, 그렇게 자라난 부모가 아이를 대할 때 무척 힘들어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어른의 틀에 맞추지 말고 어린이의 세계에 풍덩 빠진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아이들의 세계를 잘 자라나도록 도와주면 아이들이 10년 뒤에 좋은 사회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 때 균형이 참 중요한데 뭔가 억압을 받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고, 너무 공주나 왕자를 만들어버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어린이가 너무 억압을 당하면 왜곡이 되어 버리고, 그렇다고 오냐 오냐 키우면 안하무인이 되어 버린다.
사랑도 받고 사랑도 줄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는 것, 나는 이것을 '중산층적 감각'이라고 한다. 중산층이라고 하면 좀 이상하지만, 어린애들 사이에서는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동물들과도 친하고, 외국에도 우리와 같은 아이들이 있고, 달나라에는 국경이 없고, 심지어 똥도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안다."
- 네, 유년 시절의 경험이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오리 농법을 하는데, 오리가 나면 각인을 시킨다. 오리가 처음 깨어났을 때 본 사람을 평생 따라다니거든. 처음 눈뜬 세상이 전부니까. 대학교까지 나와도 제일 그립게 떠오르는 건 어릴 적 시절인 까닭은, 그 때가 세상에 처음 눈을 뜰 때거든."
- 그런데 부모님과 아이들 세대차이가 심해서 걱정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종이밥>이라는 작품을 보면서 아이는 공감을 못하고 슬프다고 팽개쳤는데, 엄마가 어린 시절 추억이 갑자기 떠올라서 아이 앞에서 펑펑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동문학이 충격적인 게, 쉬운 줄 알고 접근했다가 한 방 제대로 맞는 것 같습니다. <강아지똥> <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 <무명저고리와 엄마> 같은 작품 보면 세계가 흔들리는 느낌이랄까요?
"왜냐하면 가상의 세계와 실제 세계 사이에서 연결된 세계를 작가들이 살아가면서 발견해서 그렇다. 그런 글이라야 아이들 마음도 움직인다. 권정생 씨도 자기가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똥은 다 싫어하는 것인데도 도시 애들은 똥을 좋아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똥을 애교스럽게 부른다. 얼마나 훌륭한 거요."
"지역문화가 국가·기업이 결탁한 문화를 이겨야 해"
- 제가 제주 출신인데, 벌써 외지 생활을 11년째 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토박이를 군대에서 보았는데 상당히 성격이 부드러운 것 같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거칠지가 않아."
- 제주도가 대표적인 유배지여서 양반들이 서당을 열고 제주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친 게 영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주 사투리에 한자어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지. 제주에 유배 많이 갔어요. 이승훈, 추사 등. 우리 동네 할머니들이 문학 기행으로 평사리, 벌교 등을 다녀왔는데, 거기도 역사의 상처를 극복하려고 많이 노력을 하고 있더라고. 제주 4.3사건은 한국의 모든 문제가 집약돼 있어서 안타까운 데 시간이 많이 지나도 알게 모르게 상처가 많다. 재일교포와도 관련이 있고, 크게 보면 한국전쟁도 트라우마고, 우리는 참전은 안 했어도 생각하면 자꾸 떠오르고 그래. 지난 번에 제주 사투리 소개해 준 게 뭐였더라?"
- '기꽈'라는 말입니다. '그래요?'라는 말이고, '친척'을 의미하는 '궨당'이라는 말도 '권당'(眷黨)이라는 한자어에서 왔습니다.
"'기(其)냐?'는 한자어인데, 충청도에서는 '기유' 라고 한다. 충청도 대표 사투리는 '거시기'라고 한다. 분명히 얘기하면 어떤 피해가 올 지 모르니까 '거시기'라는 말을 보따리로 싸 놓은 것이다. 간단한 말인데, 속에 보면 하도 극단적인 경험을 해서 얼른 표현이 안 돼 거시기라고 했다. 정확하게 자기 주장을 얘기했다가 큰일날지 모르니까.
나는 사투리를 국어책에도 집어넣으면 좋겠다. 북한에서 만든 말 중에서도 예쁜 게 많은데, 예컨대 볼펜을 '돌돌붓'이라고 한다. 이건 억지로 의역을 한 게 아니라 참 예쁘게 잘 만들었다. 어쨌든 국가가 재단하는 것보다는 지역과 향토성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 제주에서 요새 '제주 올레길'이나 '지슬' 같은 지역 특성을 살린 문화가 각광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지슬>을 우리 동네에서도 한다길래 기다렸는데 공주에서 한 번 상영하고는 닫아버리는 거야. 동네 사람들이 뜻을 모아 2회 분을 몽땅 사서 보니 극장이 아주 꽉 찼다. 그 때 영화관에서 만난 사람들이 순식간에 반가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모습을 본 극장에서도 놀라서 이틀인가 사흘 연장상영을 했다. <지슬> 같은 향토성 있고 문화의식 있는 사람이 만든 것이 지역 주민들에 의해서 상연되는 곳이 의식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다면 지역에 대해서 실망했을 텐데, YMCA, 전교조 등의 단체들과 지역민들이 합심해서 사람을 모으고 함께 보니까 참 좋더라. 영화에서 나는 할머니가 죽어가면서 자신을 죽인 군인에게 '당신에게도 부모가 있나요?'라고 묻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죽이면서도 경어를 쓰고 죽으면서도 경어를 썼는데 강렬해서 잊히지 않는다. 군인들을 무조건 다 나쁘게 보는 게 아니고, 뭔가 알 수 없는 권력의 힘에 의해서 비참하게 되는 모습을 잘 그렸다."
- 지슬은 제주 사람들이 밥 대신 자주 먹는 서민 음식인데 제주 문화에는 '먹는다'는 게 특색이 있습니다. 심지어 '제나 지내러 간다'는 말 대신 '제사를 먹으러 간다'고도 합니다. '제사 지낸다'는 돌아가신 분이 주인공이 되는데, '제사 먹는다'는 말은 후손들이 주인공인 셈입니다. 현기영 소설가의 작품 <지상의 숟가락 하나>에서도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간다"가 비중 있게 나오듯, '먹는다'에는 제주의 묘한 문화가 담겨 있습니다.
"그걸 이해하려고 하다 보면 거기 느껴지는 깊은 뭔가가 있다. 그걸 잊지 말고 살려서 승화되는 쪽으로 하면 민족문화를 한 단계 높이는 거다. 바스크 지역 등에서 고난을 당했지만 산업적으로 문화적으로 새롭게 다가가거든. 문화적 재산을 잘 살려야 한다. '육지'에서 느끼지 못하는 뭔가가 있다. 제주는 유난히 애착이 가."
▲ 홍순명 선생은 기자가 쓴 <책 놀이 책>을 살펴보시며 쉽게 베껴 만들지 않고 오랫동안 발로 써서 실전감 있는 책은 사람들이 알아서 찾는다고 응원을 해주셨다. ⓒ 오승주
- 하지만 못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한국사람으로 만들어버리려는 동화정책이나, 지역을 서울에 종속시키려는 폭력이 걱정입니다.
"국가와 기업이 결탁한 문화, 그런 건 문제가 있다. 문화 중에서도 어려움이나 고통이 배제된 문화는 '장난감 문화'다. 깊은 고독과 역사의 아픔이 있어야 제대로 된 문화가 배어 나올 수 있다."
-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풀무학교와 홍동마을을 닦아 오시면서 하필이면 지금 '밝맑도서관장'이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다. 옛날에는 산업의 70%가 농촌이었고, 농민들이 일을 해야 나라가 먹고살았다. 중산층 정도의 자각, 기초가 되는 농민의 모습을 만들어가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옛날부터 했다. 처음에는 도서관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급한 것은 농업 경제였으니까. 그래서 협동조합, 유기농 등을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축산, 유통, 가공 일로 넘어갔지. 자꾸 세월이 지나면서 교육과 경제도 있어야 하지만 복지도 있어야겠더라고.
복지 속에는 장애인, 노인, 어린이 포함이 되지만, 어느 순간 생각해보니 문화가 있어야겠어. 경제는 육체에 관한 일이고, 정신은 여유가 있어야 남을 생각할 수 있고 농업의 의미와 가치를 알려면 문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골 일이라는 게 휙휙 되는 게 아니다. 우선 학생들에게 필요하다 해서 동시다발적으로 학교에서 했는데, 지역에 나가서 자리 잡는 거는 순서대로 경제 문제, 그 다음에는 가공 유통 이렇게 하다가 복지, 문화 그 단계가 되어야 하고, 여러 사람이 호응해서 도서관이 되었다."
- 그럼 처음 생각하시고 몇 년 정도 걸린 건가요?
"참 오래 되었지. 도서조합은 70년대부터 학교에서 했고, 지역에 나온 계기는 도시 사람들이 시골에서 농민운동을 한창 하기 시작한 80년대였으니까. 농촌에 와서 뭘 할까 하다가 이대 나온 분이 도서관 해야 한다고 해서 학교의 책들을 넘겨 줬는데, 그것도 쉽지 않아서 삐꺽거리고. 도서관을 면사무소 자치센터에 두었는데, 공무원들이니까 흐지부지 하고. 아무래도 우리가 해야겠다 해서 개교 50주년으로 도서관을 만들자 해서 2011년에 만들었지. 그 전부터 오랫동안 뭔가 해오던 게 있으니까 동네 주민들도 그렇게 하자 한 거에요."
밝맑도서관은 대지 1500㎡에 건평 143평 3층으로 지어졌다. 도서관은 본관 1층에 어린이 책방과 세미나실, 공연·전시를 위한 회랑이 마련됐고, 2층은 마을문화연구소와 밝맑기념문고, 3층은 농민교양강좌와 독서회 등의 소모임 공간으로 구성됐다. 밝맑도서관의 '밝맑'은 풀무학교의 공동설립자인 이찬갑 선생의 호에서 따온 것으로, 도서관 건립에 드는 비용 중 1억 원의 도비·군비 지원 외에 주민들의 모금과 각계의 헌금·지원 등을 통해 5억 원여를 마련하는 등 지역민의 힘으로 세운 민간 도서관이다.
홍순명 선생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내 나이가 85세가 되었을 때까지 펼쳐질 일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듯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36년의 세월도 무척 소중하고 중요하지만, 앞으로 채워갈 더 많은 세월의 귀중한 열쇠를 한꾸러미 얻어가서 무척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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